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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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2만원이라는 가사를 듣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놀랄만큼 가까운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에 새삼 놀라게 된다. 남북이 갈라선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같이 살자는 노력은 부족했다. 통일의 당위성을 실감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분단은 고착화될 위험성도 높다. 사는데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남북 교류와 화해 협력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우리는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해답이 선행되어야 한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지구상에 이념의 대립으로 갈라진 유일한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특별한 상황과 시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 많다. 북핵 문제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된 것처럼 비치는 것은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욕심과 북한의 태도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가장 큰 희망이자 매력들은 사라져가고 굶주린 국민들은 체제가 전복될 만큼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탈북자 문제와 사회 변화 문제는 북한이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 중 하나일 뿐이다. 체제 우위의 입장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시혜적인 태도에서 남북문제를 접근하는 것도 위험하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남북 화해와 교류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에 파견된 작가 오영진의 <평양프로젝트>는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만화가 주는 특별한 재미는 물론이고 짧은 주제를 통해 북한의 일상과 사람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오공식과 남북 교류 협력단 조동만, 김철수 그리고 파견 나온 리순옥 등이 보여주는 대화 내용과 일상의 모습들을 통해 북한을 보다 실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조선 중앙 방송을 통해 선전용으로 보도되는 화면과 다른 것은 남한 사람의 시각으로 북한 사람들의 모습과 태도를 그려 낸다는 점이다. 우리와 다른 생활 방식과 생각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을 이해하고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가장 기본적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나. 이산가족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면 이질적인 문화가 극복되고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도 생길 것이다. 그렇게 쉼 없이 서두름 없이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십시일반>이나 <사이시옷> 등 만화를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인권 문제에 접근했듯이 <평양 프로젝트>를 통해 북의 실상을 이해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겠다. 재밌고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매체나 방법이 더 많이 요구된다. 얼렁뚱땅 오공식의 북한 기행은 민족이나 국가의 차원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의 개념으로 접근하게 된다.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의 장벽이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라면 적극적인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손 놓고 앉아 있으면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통일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민간 차원에서 노력하고 협력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이념의 골을 건너기가 쉽지 않다. 남한에서도 국가나 사회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고 다양한 이념이 존재한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북한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지만 한 번은 건너야 하는 강이라는 동의한다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한 때가 되었다.

 넓지도 않는 땅에서 갈라져 사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화해와 평화는 먼 나라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 현실의 문제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통일은 시기상의 문제일 뿐이다. 같이 살자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결 조건이나 상황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같이 살겠다는 마음과 의지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070118-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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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셀러니 사전 - 동서양을 넘나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앤털 패러디 지음, 강미경 옮김 / 보누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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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모든 일들을 적어 놓은 책은 있을 수 없다. 한 권의 책에 한 가지씩 나누어도 전부 담을 수는 없다. 어차피 모든 역사책은 취사 선택의 결과물이다. 객관적인 역사 서술 방법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그 역사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무엇을 적을 것인가에 이미 사관이 개입된다.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무수한 충고들 속에서도 우리는 이미 오래된 미래를 간과하기 쉽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의 중심에 인간이 놓여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인간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도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일 뿐이다.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명멸했겠는가. 앤터 패러디의 <역사 미셀러니 사전>은 조금 색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역사에 접근한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책에 대한 자신감이라기보다는 특징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자연사, 문화사, 생활사, 과학사 등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책은 잡학 사전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할 목적이 아니다. 사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저자의 이름처럼 패러디와 풍자를 특징으로 삼고 있다. 재미있게 역사에 접근하자는 말이다.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하고 쉽게 세상에 관한 역사를 조금씩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접근하자는 의도이다. 하나의 주제를 아주 짤막한 형식으로 정리해 놓는 방법으로 서술되어 있다. 누구든 쉽게 심심풀이용 혹은 잡학 상식 사전용으로 읽으면 된다.

 저자의 다른 책을 읽고 이런 방식의 글쓰기나 지식에 대한 접근 방식이 내키지 않는 독자라면 물론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기도 하다. 역사를 수필로 풀어내는 논문을 쓰든 독자 입장에서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한 법이다. 간단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핵심을 전달하기 보다는 가볍고 재치있게 전해주는 내용이 그리 달갑지 않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다시 같은 형태의 책을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진다.

 다만 이 책은 같은 대상이나 항목에 대해 다른 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시각과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구’를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을 실현시키는 수단’이라고 정의하거나, ‘화장실’을 ‘정보와 소식을 주고 받았던 모임 장소’로 설명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같은 사물에 대한 다른 설명이 가능한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나 견해가 아니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에 대한 역사 서술 방식은 앤털 패러디처럼 독특하고 뚜렷한 관점이 아니라면 별 의미도 재미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가볍고 재밌는 잡학 상식 사전 이상을 기대하면 돈을 다칠 수 있다. 화장실에 비치해두고 읽을 만한 책이다. 저자의 목적이 그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수많은 방법 중의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070117-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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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9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한번 사서 봐야 겠네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

sceptic 2007-01-2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심풀이로 읽을만 합니다. 즐거운 시간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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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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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출판되는 책들 중에 옥석을 가려내는 일은 정말 힘들다.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만 누구에겐가 책을 추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불특정 다수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좋은 책들을 여기저기서 추천한다. 연말이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일이지만 잘 선별해서 나중에 후회할만한 책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선택한 책 중의 하나가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이다.

김용석이나 김용규나 대중에게 익숙한 철학자들의 책은 쉽고 편안하다. 어렵게 접근하지 않고 그야말로 가벼운 읽을거리 이상의 의미를 던져준다. 다만 이렇게 누워서 떡을 먹다보면 체하기 쉽다는 반성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13편의 고전 문학을 거론한다. 파우스트, 데미안, 어린왕자, 오셀로, 변신, 구토, 고도를 기다리며, 페스트, 유토피아, 당신들의 천국, 멋진 신세계, 1984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그것이다.

특별한 기준도 이유도 없다. 저자가 읽어온 문학 작품에 대한 나름의 견해와 분석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들의 색깔이 독특하고 재미있다.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기로 독자를 주눅들게 아니다. 영화나 음악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하도 주관적인 감상으로 흐르기도 하며 시를 인용하기도 한다. 잡탕찌게처럼 끓고 있지만 맛은 특별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막힌 해설과 맛깔스런 양념이 더해져도 그 작품을 읽는것만 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은 읽었던 작품들을 다시 음미하고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 다른 사람의 책읽기를 들여다 보는 일도 즐거울 수 있고 때때로 그 과정과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것도 즐거운 일이다.

다만 이런 종류의 책들을 통해 읽지 않은 고전을 이해한 것으로 착각하는 우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책들이 겪는 본의 아닌 부작용이다. 재미와 상관없이 교양과 다른 목적으로 읽어내기에도 충분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이유가 다양한 만큼 읽는 목적에 따라 같은 책이 달리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지만.

안 그래도 바쁜 철학이 카페에서 문학을 이야기할 때 귀 기울여 들을만한 사람이 있을까? 아니 어쩌면 철학은 한가하다. 카페에서 문학 얘기나하고 예술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것이 철학 본연의 임무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을 지혜를 전해주고 새롭게 생각하게 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철학은 우리에게 의미있게 다가올 지도 모르겠다.

이론과 개념 속에서 헤매는 철학을 가깝게 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문학이나 예술을 통해서는 직접적인 삶의 모습들을 통해서든 말이다. 철학의 목적과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든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의 문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토막난 단상처럼 보이지만 깊이와 통찰력을 두루 갖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문학도 예술도 철학도 한 동네 사람처럼 정겨워 보인다. 결국 이들의 공통점은 당연하게도 인간과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둥이만 살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이나 목적도 생각도 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나 삶이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한가하게 카페에 앉아 철학이나 문학을 논할 시간이 없는 계급에 속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우울한 메시지가 아니길 바란다.

이 책은 유한 계층의 담소용으로 이해되기보다 색다른 방식으로 문학 읽기가 타당하다. 문학은 사람이 중심이 된다. 삶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당연하다. 둘이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누든 잘 들어보면 들을만한 이야기가 나올법하다. 다만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과 방법은 저자의 몫이고 독자들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판단한다.

추천하긴 어렵지만 정확하게 중간등급으로 어정쩡한 자세로 한번쯤 읽어보세요라고 권할만한 커피 한 잔 같은 책이다. 커피는 취향에 따라 다르게 마시면 그 뿐이다. 커피 마시면서 특별이 할 일이 없는 분들게 추천한다.


07011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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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지기 2007-01-3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한 번쯤 읽어보려고 했던 책이에요^^ 솔직한 리뷰 덕분에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당~ㅎㅎ

sceptic 2007-01-3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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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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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치에 지독하게 민감하다. 그러면서 정치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뉴스에 보도되는 정당과 정치인들의 행위를 술안주 삼아 씹어대지만 우리의 사유와 태도와 그리고 행동 방식은 정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도 한나라당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조선일보의 관점으로 현실을 비판하며 자신의 생각으로 착각한다. 왜 그럴까?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억압된 가부장적 생활 양식때문이라는 성정치학을 주장했지만 자신의 계급과 모순된 사고방식과 정치 행태를 쉽게 진단하기는 어렵다. 이런 현실은 지속되며 쉽게 바뀌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자신의 위치와 생활을 확인하고 삶의 근본적인 목표와 태도를 결정하는 일은 어디에서 배워야 하는 것일까?

정규 학교 교육을 통해서 난 이런 것들을 배우지 못했다. 하물며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입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는 더 할 것이다. 얼 쇼리스는 인문학을 통해, 정치적 삶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가난 때문에 겪는 고립적 삶을 벗어나 민주 시민으로서 정치적 삶을 누리고 그 안에서 희망과 행동하는 삶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을 통해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얼 쇼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확신을 행동으로 옮긴다.

미국에서 시작된 클레멘트 인문학 코스는 이제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얼 쇼리스의 작지만 엄청난 실험은 성공적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또다른 대안으로 자리잡았다. “최고의 학생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은 곧 모든 이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이다.”라는 허친스의 말을 교육 방법으로 굳게 믿고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삶을 행동하는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왜냐하면 정치적 삶은 질서와 자유 사이의 공간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행동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정치, 또는 중용이기 때문이다. - P. 67

수강생들로 하여금 공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 가난한 탓에 겪는 고립에서 벗어나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교육목표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클레멘트 인문학 코스는 여러 학문 분야를 통합한 형태의, 대학 수준의 강좌인데, 교수 방법으로는 여전히 소크라테스식 방법론이 활용되고 있다. - P. 202


책을 읽으면서 부족한 인문학 지식에 부끄러워진다. 서양의 문화와 그들의 정신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철학과 역사, 예술 일반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과 지식을 얻을 기회가 없었다. ‘철학아카데미’나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같은 곳을 통해 자발적인 노력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엉뚱한 발상이지만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인문학은 절대로 필요하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정신적 흐름과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예술에 대한 안목은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한 헛된 방법론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시행하고 있다. 과명시 평생학습원과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의 인문학 과정이 그것이다. 인문학은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의 이유로 살아가는 삶의 희망을 갖게 한다.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에 대한 자각은 가난한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잃고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얼쇼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의 행복을 보장하는 일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민주주의는 모든 것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이다. - P. 426

민주주의가 세상의 절대 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수많은 모순과 단점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민주적 삶에 대한 가치와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는 당위와 만나게 된다. 타자의 행복을 위해 무릅쓸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이라면 기꺼이 그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자그마한 실천과 노력으로 함께 행복할 수 있다. 인문학 과정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참이 아니더라도 모두 함께 가는 길을 찾아야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당연한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0701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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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2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인문학자들과 우리나라 인문학자들은 질적으로 다르지요.

sceptic 2007-01-1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인문학자를 찾기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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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살림지식총서 248
박종성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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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서 내가 감지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지 않다. 아니,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도 한다.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간접적인 수단으로 책만 한 것은 없다. 하지만 책은 직접적인 분석과 접촉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 가상현실 속을 헤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하다. 그것은 물론 책의 분량과 내용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안개처럼 모호했던 개념들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전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책이 전해주는 지적 유희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정말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맹렬한 속도와 분량으로 ‘살림지식총서’는 계속된다. 248권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은 작지만 커다란 의미를 지닌 책이다. 물론 나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등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에 대한 분석과 해설은 이 책의 압권이다. 짧고 간명하게 그리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핵심을 짚어내고 비교할 수 있는 내공은 하루 이틀 만에 쌓인 것이 아니다. 요약 정리식의 논의로 볼 수도 있으나 푸코, 파농, 사이드에 대한 견해와 비판은 핵심을 깊숙이 찌르고 있다. 바바와 스피박은 읽은 적이 없어 말할 수 없지만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박종성은 탈식민주의에 대한 개념과 독법들을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질은 양을 담보로 한다는 생각을 잠깐 잊게 해준다. 현재 우리의 상황에 적용 문제나 깊은 성찰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의 목적은 어차피 그런 쪽이 아니므로. 간단하고 명확한 이해와 전체적인 조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살림지식총서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식민주의는 열등감과 불평등 및 역사의 왜곡을 낳으며,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비극을 초래했다. 이런 식민주의를 비판적 시선으로 읽어내려는 ‘대응담론’이 바로 탈식민주의이다. - P. 4

탈식민화란 “모든 형태의 식민주의자의 권력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과정”이다. - P. 45


19세기 서구 열강에 의한 세계 식민지 쟁탈전은 올림픽을 연상시킨다. 근대화와 문명화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의 역사는 21세기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상처는 무수한 인류의 고통으로 남아 있다. 탈식민이든 신식민이든 용어의 개념도 중요하겠지만 신자유주의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제국주의 횡포는 여전히 계속된다. 그것이 우리들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 문제다. 거시적인 담론들을 외면하면 내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쉽게 찾아 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 청산은 요원하기만하다. 식민주의의 그늘은 아직도 검고 짙게 드리워져 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현실 속에서 우리끼리 부대낀다. 친일파 문제 하나만 놓고 생각해도 현실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아직도 식민주의자의 권력을 드러내고 해체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은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탈식민주의도 저자의 말대로 실천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제국주의의 눈치를 보며 이라크 파병했고, 한미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현실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역사가 말해준다고 하지만 결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움직여주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위해 저항할 것이며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인가?

탈식민주의는 저항담론이며 실천담론이다. …… 탈식민주의 이론이 세상 읽기의 유효한 방식이 되고, 현실 참여의 영역과 맞물려 있어야 의미가 있다. 반성과 토론만 하다가 투쟁이나 실천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면 진보는 위기에 처한다. - P. 86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진보의 위기에 대한 저자의 일침은 매섭다. 투쟁과 실천의 문제, 현실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 진보는 미래가 없다. 답답한 현실은 계속되고 현실은 외면하고 싶지만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대로 희망은 있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한방이냐 천천히 조금씩이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우리가 처한 신자유의와 신제국주의에 대한 상황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노력이 탈식민주의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주권과 자율성을 지키는데 꼭 필요한 실천담론으로서 탈식민주의는 미래 지향적 프로젝트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결코 좌파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해석이다.


0701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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