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총 9권인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를 검은숲에서 국내 최초로 완간하여 선보인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내가 첫 작품인 '로마 모자 미스터리'를 처음 읽은 것도 확인해 보니 2013년이니 전 작품을
완독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서평단을 비롯해 신간들을 먼저 읽다 보니 읽을 신간이
없을 때에야 야금야금 한 권씩 꺼내 보았더니 거의 1년에 한 권 꼴로 읽은 셈이 되곤 말았는데 드디어
마지막 작품인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왓슨 역할을 해오던 엘러리 퀸의 부친 리처드 퀸 경감이 등장하지 않고 대신 매클린 판사란
인물이 등장해 왓슨 역할을 수행한다. 가는 곳마다 사건이 발생하는 엘러리 퀸은 이번에 매클린 판사와
스페인 곶에 있는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가 이곳에서 벌어진 기이한 살인사건과 만나게 된다.
스페인 곶의 주인인 고드프리가의 손님이었던 존 마르코라는 남자가 망토만 걸친 채 알몸으로 죽은
것인데, 그 이전에 키드 선장이란 남자가 집주인인 월터 고드프리의 처남인 데이비드 쿠머를 존 마르코로
잘못 알고 마침 같이 있던 고드프리의 딸 로사와 함께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져 쿠머의 생사는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로사만 감금되었던 집(엘러리 퀸이 휴가때 쉴 집)에서 구출된다. 본의 아니게 사건에
휘말리게 된 엘러리 퀸과 매클린 판사는 사건 담당인 몰리 경감을 도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
참여하게 된다. 안주인인 스텔라 고드프리의 초대로 온 손님들인 로라 컨스터블이나 문 부부는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역력하고, 난봉꾼이었던 존 마르코가 로사도 유혹하려 해서 로사의 약혼자
얼 코트와 갈등을 빚는 등 수상한 인물들이 많은 가운데 스텔라의 하녀인 피츠가 사라지면서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진다. 존 마르코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던 로라 컨스터블이 협박 전화를 받은 후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하고 존 마르코의 악행이 드러나면서 그와 연루된 여자들의 과거가
주목받게 된다. 여자들을 협박하던 인물을 체포하면서 존 마르코가 죽던 당시 상황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얻은 엘러리 퀸은 전매특허인 독자에의 도전에 나서는데 이번에는 왠지 딱 느낌이 왔다.
'왜 존 마르코는 망토만 걸친 채 알몸으로 죽었는가'가 핵심이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범인의 윤곽이
드러났는데 피해자가 죽어 마땅한 악당이다 보니 범인에 대한 단죄보다는 범행 과정에 대한 논리적인
추리로 마무리를 짓는다. 이 책으로 국명 시리즈의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고 하니 뭔지 모를 아쉬움이
더 컸다. 이 책의 다음 작품인 '중간의 집'도 '스웨덴 성냥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었음에도 국명을 붙이지
않은 건 엘러리 퀸이 이제 국명 시리즈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는데
이후 라이츠빌 시리즈 등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그래도 국명 시리즈의 논리적인 두뇌 싸움의 묘미는
좀 사라진 듯해 본격 미스터리를 선호하는 나로선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9권의 국명 시리즈를
연속해서 읽진 않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엘러리 퀸의 도전에 응하면서 회색 뇌세포를 맹렬히 가동했던
즐거운 기억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