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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못 읽는 남자 - 실서증 없는 실독증
하워드 엥겔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가인 하워드 엥겔의 실화를 담은 이 책은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읽을 수는 없는
실서증 없는 실독증의 경험담을 잘 보여준다.
먼저 하워드 엥겔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추리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그리고 있는데
활자중독이라 할 정도의 책을 좋아하는 습관이 결국 그를 추리소설 작가로 만들었지 않나 싶었다.
캐나다에선 유명한 추리소설가라는데 솔직히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의 작품은 아직 국내엔 소개되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쓰는 것이 직업이자 책을 읽는 것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하워드 엥겔에게
느닷없이 뇌졸중이 찾아온다.
그나마 그는 자신의 증상을 바로 자각하고 아들과 함께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며
시각의 4분의 1을 상실한 것 외엔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가 없어 다행인 것 같았으나
실서증 없는 실독증이라는 작가에겐 정말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특이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좀 불편한 정도겠지만 글을 쓰는 작가에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정교한 트릭을 구사하기 위해 자신이 쓴 글을 여러 번 퇴고해야 하는
추리소설 작가에겐 거의 사망선고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연상에 의한 기억하는 방법이나 모든 걸 기억 공책에 적기, 끊임없는 읽기 노력 등으로
정상인과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읽기능력을 회복해나간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어려운 상태에서 이 책을 비롯해
그의 본업인 추리소설까지 작품을 계속 내놓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계속 책 읽는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라는데
그의 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잘 느낄 수 있었다.
요즘에는 오디오북까지 등장한 상태라 이런 매체를 이용한다거나 녹음을 통해 작업을 진행하면
어느 정도 책 쓰는 것이 가능할 것도 한데 그는 여전히 고전적인 읽는 방법을 통해 책을 쓴다.
자신의 몸 상태를 고려하면 글 쓰는 방법을 바꿀만도 한데 그의 고집 역시 대단한 것 같다.
책을 쓰는 사람이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글을 읽지 못하게 되는 끔찍한 상황을 담담하게 그린
이 책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책 못 읽는 남자가 될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지만
책 못 읽는 남자가 된다면 정말 살아도 사는 게 아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훨씬 더 살 맛 난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