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무엇인가>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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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란 무엇인가
루이지 조야 지음, 이은정 옮김 / 르네상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요즘 아버지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한때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막강한 권위를 가진 존재였던 아버지들이
지금은 완전히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밀리고, 회사에서는 후배들에게 밀리고 어디에서도 환영해주는 사람이 없다.
오직 아버지로서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순간은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다.
아버지들이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버린 건 이미 오랜된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은 이런 서글픈 상태에 처하게 된 부성의 정체에 대해 인류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부성의 정체를 파악하는데는 역시 모성과의 비교가 효과적이다.
모성이 출산을 통해 생기는 천부적이고, 자연적인 것이라면
부성은 인간의 문화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것이다.
사실 부성이 천부적인 것이 아닌 인위적인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도 생물학적인 아버지의 의미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생물학적인 아버지의 가치는 큰 의미가 없음을 이 책이 잘 보여준다.
요즘 늘어나고 있는 싱글맘들을 보면 생물학적인 친부의 의미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성이 천부적인 것일 수 없는 까닭은 역시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경우 아이가 바뀌지 않는 한 자신의 아이일 수밖에 없지만
남자들의 경우 자신의 아내가 낳은 아이라고 해서 꼭 자신의 아이라는 보장이 없다.
특히 요즘같이 개방된 성문화와 불륜이 급증하고 있는 세상에
아버지와 자식간이 혈연관계인지를 확실히 담보하지 못한다.
그나마 지금은 유전자 검사니 하는 과학문명의 힘으로 확인이라도 가능하지만
과거에는 그냥 믿거나 아님 부정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수컷들은 자식에 대한 애정이 암컷과는 달랐다.
임신과정을 거치고 출산 후에도 상당 기간 아이를 돌봐야하는 모성에 비해
부성은 자식과의 유대감이 그만큼 부족했다.
인류가 문명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하면서, 일부일처제라는 가족제도를 확립해나가기 시작하면서
부성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남자들에게 요구되기 시작한다.
가정을 지키고 가족들을 부양할 임무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선 이런 부성의 역사를 그리스, 로마신화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 등을 원용하면서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일리아스'에선 트로이의 헥토르가 부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아킬레우스는 부성이 없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부성이 없는 존재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존재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함을 보여준다.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는 부성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가부장적 사회를 유지하면서 어머니의 존재보다는 아버지의 존재가
절대적이고 아버지로부터 자식으로 인정을 받느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상황까지 이른다.
이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왕의 권위가 실추되자 아버지의 권위도 실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산업혁명에 이르면 부성을 상실한 불량한 아버지들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세계화와 개인주의,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남자들은 부성을 상실한 동물적인 수컷으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오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아버지와 부성의 몰락은 한편으론 평등하고 자유분방한 가족과 사회를 만들어냈지만
자식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줄 존재를 잃고 만다.
요즘 아버지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불쌍한 마음이 든다.
불과 몇 십년 전만 해도 한 가정의 어른으로 가정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등 그 권력이 막강해서
가부장제의 폐해에 대해 여기저기서 공격을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종이 호랑이에 찬밥 신세가 되어
가족들의 눈치를 보고 사는 뒷방 늙은이(?)가 같은 처량한 모습이다.
가족들이 아버지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그들이 벌어오는 돈 뿐이니
이런 현실 앞에 부성이 어떻다고 하는 얘기 자체가 어쩌면 허황된 얘기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추세는 점점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아버지와 부성의 위기 속에 이 책은 부성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부성이 요즘 세상에서도 충분히 그 의미가 있고 해야할 역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성에 비해 천대받고 사라질 위기에까지 몰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설 자리를 잃은 부성이 모성에 버금가는 가치를 인정받고 가정과 사회를 지키는 역할을
다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위기에 빠진 가정과 사회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