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정윤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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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챈들러는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손꼽히는 작가인데 그의 명성에 비하면

내가 읽어 본 작품은 데뷔작인 '빅 슬립'밖에 없어 제대로 평가하기는 좀 어렵다. '빅 슬립'도 전자책으로

매일 조금씩만 읽다 보니 집중도가 훨씬 떨어져서 그 진가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하드보일드라는 장르 자체가 나하고는 조금 안 맞는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번에 그의

단편들을 모은 이 책으로 다시 한 번 시험해볼 기회가 생겼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필립 말로가 직접 등장하는 작품은 아니고 필립 말로와 비슷한

스타일의 사립탐정들이 주인공 역할을 하며 기이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다섯 편의 단편들을 수록하고 

있다. 먼저 스타 재즈 음악가인 킹 레오파디 살인사건을 다루는데 그의 시체가 돌로레스라는 여자의

침대에서 발견되면서 누명을 쓰게 될 위기에 처한 돌로레스를 스티브라는 탐정이 진실을 밝혀내면서

구해낸다. 두 번째 작품도 앞선 작품도 비슷한 구성이었는데 월든이란 남자의 죽음과 거기에 사용된

총, 사건에 연루된 여자, 사립 탐정의 등장, 전혀 의외의 범인까지 유사한 느낌이었다. 3인칭 시점이어서

그런지 앞의 두 작품은 좀 몰입이 잘 되지 않았는데 세 번째 작품은 1인칭 시점으로 훨씬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잘 읽혔다. 펜러독 부인의 사라진 진주 목걸이를 찾기 위해 거구의 남자인 월터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헨리라는 남자를 찾아갔다가 오히려 그에게 진압(?)당한 후 그와 절친이 되어

목걸이를 찾아나서는 얘기를 담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조직과 거래까지 하는데 뭔가 느낌이

오더니 역시나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친 남자들의 브로맨스가 펼쳐졌는데 그래도 나름

훈훈하게(?) 마무리를 했다고 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작품은 가장 분량이 적었는데 여기서도 호텔이 

배경이 되어 여자가 연루된 사건이 펼쳐졌고, 마지막 작품도 클럽, 총격사건, 여자, 거친 남자의 

전형적인 공식 아래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진수를 잘 보여줬다. 솔직히 개인적으론 하드보일드 스타일

과는 좀 취향이 맞지 않는 편인 것 같았는데 오히려 현실감은 다른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들에 비하면 

좀 더 있지 않나 싶다. 다만 시대 배경이 좀 오래된(1930~1940년대?) 미국인지라 확 몰입이 되진 않는 

흑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섯 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필립 말로의 형제들이라 해도 

좋을 것 같았는데 역시 레이먼드 챈들러의 진가를 알려면 필립 말로 시리즈를 읽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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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재 열전 -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인문적 세계를 설계한 개혁가들
신정일 지음 / 파람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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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조선을 걷다'라는 책을 통해서도 조선시대에 맹활약을 한 인물들의 삶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선의 천재들만 모아 그들의 인생을 다루는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 이름이 낯설지 

않아 확인해 보니 예전에 읽었던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의 저자였다. 이 책에서는 총 9명의

조선시대 천재들을 다루고 있는데 익히 알고 있던 인물들도 있었지만 잘 몰랐던 인물들도 더러 있었다.


시대 순으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 중인공은 생육신 중 한 명인 김시습이었다. 김시습의 천재성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알았다고 하고 '시습'이란 이름도 '배우면 곧 익힌다'는

의미로 최치운이 지어준 이름이라 하니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신동이라는 소문이 대궐에까지

퍼져 세종이 김시습을 승정원으로 불러 박이창에게 확인시켰고 비단 50필을 내려주면서 직접 가져가게

하니 김시습이 비단의 끝과 끝을 이어 묶어 허리에 잡아메고 갔다고 한다. 그야말로 떡잎부터 남달랐던

김시습은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과 이어진 단종 폐위 사건을 보며 벼슬길에 안 나가고 세상을 떠돌며 

살게 되었으니 세조의 쿠데타가 아까운 인재 한 명을 낭비시켰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 최초의 한글소설

금오신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5천원권의 주인공 이이는 그의 어머니와 세트로 자주 

언급되는데 아홉 번 과거를 보아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렸으니 요즘 고시 3관왕 정도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서인의 영수로 여겨졌지만 서인과 동인 사이를 잘 조율했던 그가

49세로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정쟁이 극한으로 치닫기 시작했고 그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며 경고했던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그의 부재를 절감하게 된다. 송강 정철은 국어 교과서에서 여러 가사작품들을

만나서 친숙한 인물인데 천재라고는 생각 못했지만 이 책에선 시인으로 천재로 취급해준 것 같다.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겨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라 여겨지지만 독선적인 성격 탓에 서인의 두목 역할을

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이산해는 조금은 낯선 인물인데 성호 이익이 김시습과 함께 조선의 천재로 인정했다고 한다. 정치적으론

동인으로 정철의 맞상대였다고 할 수 있는데 정철과는 달리 성품이 온화한 편이어서 동인들이 대거

화를 당한 기축옥사에서도 무사했다. 유일하게 여성으로 선정된 허난설헌은 '조선을 걷다'에서도 자세히

살펴봐서 복습이라 할 수 있었는데 여성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지만 않았으면 좀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준다. 신경준도 거의 잘 몰랐던 인물인데 '산경표'를 완성한 

실천적 천재 지리학자로 김정호 이전에 최고의 지리학자라 할 수 있었다. 정약용은 너무 유명한 인물이라

새삼스런 측면이 있었고, 김정희도 정약용과 같이 모진 유배생활 속에서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 등

엄청난 작품들을 남겨 오히려 유배생활이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황현은 

한일합병이 되자 죽음으로 저항했던 인물이었다. 이렇게 9명의 조선 천재들을 보면 대부분 평탄한 

삶을 살았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천재라 할 정도의 능력을 가졌어도 시대를

잘못 만나면 제대로 꽃 피우지 못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론 불운했을지라도 자신들의 역량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과 책들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지 않았나 싶다. 조선의 대표적 천재 9명의 삶을 통해 굳이 

천재가 아니어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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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그와 다시 마주하다 - 우리가 몰랐던 제갈량의 본모습을 마주해보는 시간
류종민 지음 / 박영스토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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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는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문화 컨텐츠다 보니까 기본적인 스토리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각자의 성향에 따라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좋아하는 사람도 제각각이다. 삼국지에 스타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신출귀몰한 지략의 소유자인 제갈량

이라 할 수 있는데 예전에 그가 쓴 '장원'이란 책도 읽은 적이 있지만 과연 실존 인물로서의 제갈량의

모습도 소설과 같은 모습인지는 의문이 든다. 이 책은 삼국지의 열혈 독자이면서 특히 제갈량에 큰 

관심을 가진 저자가 제갈량의 일생을 총 50개의 소주제로 나눠서 제갈량과 관련한 여러 논란에 대한

진실을 파헤친다.   


제갈량의 출생부터 유비에게 임관하기 전까지의 삶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숙부에 의해 길러졌다고 한다. 그리고 조조의 서주대학살 현장을 직접 경험했다고 하는데 제갈량이 

최강자인 조조에게 가지 않고 유비에게 간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청년 시절엔 자신을 관중, 악의에

비교할 정도로 자신감이 과도했고 글자 한자 한자에 집중하기보단 실용적이고 다양한 지식을 흡수했으며

키 큰 미남에 배우자의 외모나 성격보단 집안 배경을 보고 결혼을 했다고 한다. 제갈량의 본격적인 

등판은 유비의 삼고초려로부터 시작되는데 삼고초려가 사실인지 논란이 있으나 저자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제갈량의 활약상은 적벽대전에서 절정에 이르는데 화살 십만 개를 얻고 동남풍을 불게 

해 기적과 같은 승리를 견인한다. 그러나 이는 소설 속 얘기이지 역사서에는 동남풍을 불게 했다는

얘기는 전혀 언급이 없다고 한다. 제갈량이 방통이나 법정을 라이벌로 견제하지 않았느냐 하는 질문엔

아니라고 대답하고, 유비가 제갈량의 말이라면 무조건 OK를 한 건 아니라며 두 가지 사례(유종을 

공격해 형주를 차지하라는 것과 입을 함부로 놀린 장유라는 인물을 용서해주라는 것)를 제시한다. 

관우가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제갈량이 일부러 구원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는데 저자는 유비와 

제갈량이 관우가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고 본다. 


이릉대전 발발부터 사망까지의 기간에는 유비의 동오원정을 제갈량이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은 이유,

유비의 유언이 진짜 제갈량이 황제가 되라는 취지였는지, 맹획과의 고사인 칠종칠금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 등을 다룬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제갈량의 최대 사업은 북벌이었는데 다섯 번의 북벌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간 이유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북벌 과정에서 위연이 제안한 자오곡 계책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기 때문이고 읍참마속의 주인공 마속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건 마속이 패배

후 도망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갈량 사후부터 촉의 멸망까지에선 제갈량의 청렴함과 제갈량이 47세가

넘어서야 얻은 제갈첨의 얘기 등을 들려주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위인들이라 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이나 율곡 이이도 제갈량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고 한다. 이렇게 이 책에선 제갈량이란 역사속

위대한 인물의 실제 모습을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최대한 검증하는데 소설 속에서 신출귀몰한 능력을

선보였던 제갈량이 아닌 좀 더 인간미가 보이는 제갈량을 만나볼 수 있었다. 비록 소설에서 과장된 

측면이 없진 않지만 제갈량은 능력이나 인품 등 어느 면에서도 본받을 점이 많은 훌륭한 인물이 아닌가

싶은데 요즘 대선판을 보면 정말 자질들이 떨어지는 자들이 후보라고 설치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제갈량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오기 어렵겠지만 제갈량의 진면목을 제대로 살펴보면서 그의 진가를 새삼

깨닫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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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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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는 한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일본 작가 중 한 명이었는데 최근에는 좀 사이가 소원해졌다.

'낙하하는 저녁'으로 처음 만난 이후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마미야 형제'까지는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만났는데 그 이후로는 드문드문 만나다가 작년에 '도쿄타워'로 오랜만에 재회를

했었다. 이 책도 예전에 나왔던 책이 다시 재간행된 것인데 그 당시엔 만나지 못했다가 이번에야 읽어

볼 기회가 생겼다.



제목에 웨하스가 들어가 있어 어린 시절 즐겨먹던 과자 생각이 났다. 안 먹어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요즘도 나오는진 잘 모르겠지만 이 책 제목으로 사용된 웨하스 의자는 주인공에게 행복을 상징했다.

눈 앞에 있지만 절대 앉을 수 없는 의자. 행복해지고 싶지만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주인공의 비극은

유부남과 불륜 관계에 있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들은 은근히 불륜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년에 미술을 직업으로 하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녀의 애인, 여동생 등 주변

인물들의 얘기를 그려낸다. 그녀는 애인이 있지만 유부남이다 보니 대부분 그녀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늘 혼자 남겨지는 순간들을 견뎌야 하면서도 애인에게 그렇게 집착하지도

않는다. 종종 찾아오는 절망에 제대로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자신이 있는 곳에 속하지 못한 스파이라

생각하는 그녀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지경에 이른다. 솔직히 주인공의

삶이나 선택에 대해서는 그리 공감이 가진 않았는데 뭔가 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도 잘 모르고 감정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차라리

애인에게서 완전히 벗어나 자기의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복잡한 여자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그래도 나름의 해피엔딩(?)을 맞이하는데 자기 혼자서도 행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해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암튼 에쿠니 가오리의

특유의 섬세한 필치는 여전히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역시 사랑은 어렵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앉을 수도 없는 웨하스 의자를 만들면서 어려운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와닿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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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로 떠나는 문양여행 -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 인문여행 시리즈 17
이향우 지음 / 인문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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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조선의 4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관람했었는데 여러 건물들을 보면서 과거

왕실이 어떤 공간에서 생활을 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 특별한 설명 없이 혼자서

관람을 하다 보니 각 건물 앞에 있는 안내판의 내용 정도만 보았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6'

(경복궁), '9(창덕궁, 창경궁)', '10(덕수궁)'권과 '궁궐과 왕릉, 600년 조선문화를 걷다' 등의 책을 통해

부족한 부분들을 보충하곤 했다. 아무래도 독학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던 차에 그동안 궁궐을

갈 때마다 무심코 지나쳤던 여러 문양에 담긴 의미들을 제대로 알려줄 이 책을 만나게 되면서 몰랐던

여러 문양들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총 6장에 걸쳐 궁궐 건축에 숨겨진 전통 문양의 미학을 살펴보는데 먼저 고대 백제와 신라의 미의식으로

시작한다. 얼마 전에 새로 개편된 국립중앙박물관 백제실에서 여러 무늬벽돌을 보았지만 그 시절에 

사용된 무늬들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선 궁궐 건축의 전통 문양을 크게

식물, 동물, 자연 형태의 사물을 형상화한 형상 무늬, 직선이나 곡선의 교차로 이루어진 추상적인 무늬인

기하 무늬, 장수나 행복의 좋은 일을 상징하는 길상문자문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경복궁 아미산 굴뚝을

예로 드는데 그냥 아름다운 무늬의 굴뚝이라고만 생각했던 아미산 굴뚝에는 형상 무늬, 기하 무늬, 

길상문자문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지붕 추녀마루를 장식하는 잡상에는 우리가 서유기로 너무 친근한

현장(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차례로 등장했다. 광화문 여장이 팔괘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나 경복궁 근정전 천장 어칸에 칠조룡이 있다는 것은 이 책으로 새로 알게 되었는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점을 새삼 실감했다. 용과 더불어 왕을 상징하는 봉황은 창경궁 명전전 보개천장

등을 장식했고 어좌 뒤에 설치하는 삼곡병과 일월오봉병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 밖에 

구름문, 태극문, 방승문, 오얏꽃문 등 각종 문양이 어디에 사용되었고 무슨 의미인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3장에서는 궁궐의 서수조각과 장식을 다루는데 현재 광화문 앞에 있는 해태상은 원래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청사 중간쯤에 있어 하마비의 역할을 했고,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자세히 다뤘던

경복궁 영제교의 천록도 등에 구멍이 난 천록의 위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를 했다.

경희궁 숭정전의 상월대 답도도 원래 봉황이 조각되었었는데 공작으로 잘못 복원했다고 하니 궁궐

복원 과정에 있어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4장에선 궁궐 꽃담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보는데 경복궁 교태전 아미산 굴뚝과 자경전 서쪽 꽃담 등에 있는 여러 문양들을 정확하게 가르쳐준다.

이렇게 다양한 문양들이 사용되어 다채로운 의미를 담아냈음을 잘 알 수 있었는데 단청과 편액까지

다뤄 궁궐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문양들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에 궁궐에

갈 기회가 생기면 이 책에서 배운 문양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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