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트 러너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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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카레는 스파이 소설의 대부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스파이 소설을 확립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는 내가 어렸을 때 보고 아직도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뇌리에 남아

있는데 영화로도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작년말에 영면에 든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작품인 이 책은 아무래도 치열했던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맹활약(?)하던 친숙한 스파이의 모습이 아닌

퇴물(?)이 되어버린 베테랑 스파이의 마지막 몸부림(?)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비밀정보국 요원 내트는 20년 이상 활동해온 스파이지만 이제 은퇴를 앞둔 상황에서 헤이븐 분국장이란

새로운 보직을 부여받게 된다. 배터시 아틸레티쿠스 배드민턴 클럽의 챔피언이기도 한 그는 일부러

그와의 대결을 청하며 찾아온 에드와 경기를 계속 해나가면서 가까워진다. 새로운 보직에서도 부하

여직원인 까칠한 플로렌스가 심혈을 기울인 로즈버드 작전이 나름 어필을 하는 것 같았는데 에드가

장애인 여동생과 함께 배드민턴 복식 시합을 제안하자 내트는 마지못해 플로렌스에게 도움을 요청해

시합이 성사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트에겐 별다른 문제는 없었는데 이후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줄줄이 발생한다. 플로렌스의 야심찬 제안은 채택되지 않고 플로렌스가 복식 시합 전에 이미 회사를

관뒀으며 그보다 더 심각한 상황은 바로 그가 배드민턴을 치면서 만나온 에드가 자매기관이라 할 수 

있는 정보기관 정직원으로 변절한 러시아 스파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내트는

에드가 발렌티나와 비밀 접선하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난감한 입장에 처하고 결국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는데...


요즘도 스파이가 존재하고 활동하겠지만 과거 냉전시대만큼 각광(?)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 내트도 아직 40대 후반 정도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퇴물 취급을 받으며 현장에서 

밀려나는데 그러다 보니 그의 감도 좀 떨어졌다. 난데없이 접근하는 에드가 그냥 딱 봐도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결국 내트는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된다. 뒷수습을 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데 뜻밖의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결말을 맺는다. 이제는 세월의 변화에 따라 한물간 

스파이가 되고 말았지만 스파이란 직업적 자존심보다는 인간적인 선택을 하는 내트의 마지막 모습이

스파이물의 거장의 마지막 인사란 느낌이 들었는데 그의 전성기때 작품들같은 스릴 넘치는 얘기들이

펼쳐지진 않았지만 스파이가 퇴장하는 모습이 결코 씁쓸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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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9-1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존 르 카레~ 네요~
마지막 서평 부분이 좀 아쉬우면서 또 기대되네요 ㅎㅎ

sunny 2021-09-14 00:08   좋아요 0 | URL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운이라 할 수 있죠.
 
낯선 자의 일기
엘리 그리피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나무옆의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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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영어 교사인 클레어는 같은 학교 동료 교사인 절친 엘라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학과장 릭으로부터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시신 옆에는 자신이 전기를 쓰고 있는 홀랜드의 단편 공포소설 '낯선 

사람'의 한 구절인 '지옥은 비었다'가 적힌 메모가 남겨져 있고, 매일 일기를 쓰는 클레어의 일기장엔

'안녕, 클레어. 당신은 나를 모르죠'라는 낯선 사람의 글씨가 적혀 있자 자신의 주변에 범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엘리 그리피스란 작가는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2020 에드거상 최우수 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는 확실한 훈장을 달았기에 과연 어떤 작품일까 기대가 되었는데 요즘 자주 접하는 스타일의

작품이 아닌 예전 고전 미스터리의 느낌을 풀풀 풍기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클레어와

사건 담당 여형사인 하빈더, 클레어의 딸인 조지아 이렇게 세 명의 시선을 번갈아가면서 얘기가 진행

되는데, 클레어와 조지아가 다니는 탈가스 하이에는 홀랜드 하우스라 불리는 구관 건물이 남아 있고

홀랜드의 '낯선 사람'이란 작품의 내용이 중간중간에 등장해 과거 작품과의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계속

풍긴다. 범인이 엘라의 시체에 남긴 쪽지에 적힌 '지옥은 비었다'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나오는

문구로 이어지는 문구가 '그리고 모든 악마는 여기에 있다'여서 더욱 의미심장했다. 이 책에선 여러

유명 문학작품들을 언급하고 있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데 사실 사건의 중요한 단서인 작가 홀랜드와

그의 작품 '낯선 사람'은 실재하는 게 아닌 이 책의 작가가 창조한 가상 인물과 가상 작품이었다. 각

부마다 마지막은 홀랜드의 '낯선 사람'의 내용을 계속 싣고 있어 이 책 속 사건과의 모종의 연관성을

부각시킨다. 엘라 이후 학과장인 릭마저 학교 내에서 살해되고 '낯선 사람' 속 살인사건과 같은 방법이

사용되면서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범인이 클레어의 일기를 보고 범행을 저지르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클레어의 반려견 허버트를 납치(?)하는 등 범인이 점점 클레어를 압박해오자 하빈더는 

클레어와 조지아를 스코틀랜드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대피시키지만 이들의 도주(?)를 범인이 가만 

놔둘리 없었다. 전반적으로 역자의 말과 같이 고딕 소설의 현대적인 재구성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는데 

책 속의 책 '낯선 사람'과 현재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의 묘한 데자뷔와 비밀을 가진 여러 주변인물들의 

사연이 잘 버무려진 작품이었다. 엘리 그리피스의 스탠드 얼론인 이 책을 인상적으로 읽었으니 그녀의 

다른 작품들도 기회가 되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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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기도가 될 때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수녀 지음 / 파람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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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그림에 관심이 있어 미술 관련한 여러 책들을 보곤 했는데 수녀가 저자인 책은 아직까지 보지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수녀라는 신분 때문에 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측면이 있을 듯 하지만

서양미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종교와 관련된 그림들에 대해선 좀 더 전문가(?)적인 설명을 해줄

거라 기대가 되었는데 역시나 그런 부분이 책 속에 가득 드러났다.


'상처 입은 치유자', '감돌아 머무는 향기', '불꽃이어라'의 3개 부분으로 나눠 그림마다 간략한 그림

설명과 저자의 감상을 소개하는데, 첫 번째 그림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였다. 탕자를 감싸 안은

아버지의 양손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돌아온 탕자'는 네 번째 글에서 다시

등장할 정도로 저자가 인상적으로 본 그림이었다. 중간중간에 시로 보이는 글이 등장하는데 별도로 

저자를 밝히지 않는 걸로 봐선 저자가 직접 쓴 시가 아닌가 싶었다. 엘 그레코의 작품이 연이어 등장한

후 계속 종교적인 작품들만 나오다가 살짝 종교화에서 벗어난 밀레의 '만종'이 등장한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도 본 것 같은데 부부 앞에 놓인 바구니에 담긴 게 원래는 죽은 아이였다는 좀 섬뜩한 얘기도 

만나게 된다. 이 책에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화가가 있는데 바로 렘브란트이다. 첫 작품도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였고 '이사악의 희생', '갈릴리 호수의 폭풍', '엠마오의 만찬' 등으로 중간중간 꾸준히 

다룬 후 후반부에 그의 젊은 시절 초상화부터 말년의 초상화까지 여섯 작품이나 줄줄이 소개한다. 나도

예전에 유럽 여행 갔을 때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크에서 젊은 시절의 초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이 나이별 작품마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담겨 있어 인생의 변화무상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조르주 루오라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도 여럿 만났는데 독특한 스타일이 인상적이었고

해바라기 등 고흐의 여러 작품들도 다루고 있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화가들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특히 고흐를 종교적인 사람으로 평가하며 그의 처절한 삶과 달리 그의 작품들은 참 환하다는 평가를 

한다. 거의 서양 작품들로 이루어진 가운데 최종태 등 국내 작가의 작품도 몇 작품 다룬다. 사실 수녀인

저자다 보니 특정 종교의 관점으로 일관하고 있어 특정 종교가 아닌 사람은 좀 그럴 수도 있는데 소개한

그림과 관련된 사회 비판 등도 하는 등 단순히 종교적 가치만 찾지는 않고 그림 속에 담긴 다양한 삶의

가치들을 전달하려고 해서 그림을 보는 또 다른 관점과 재미를 알려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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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인문 여행 - 올레 26개 코스에서 마주하는 제주네 이야기
이영철 지음 / 혜지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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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그 대안으로 가장 각광받는 곳이 바로 제주다.

국내면서도 대부분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니 해외여행 느낌도 살짝 나서 제주는 비교적 부담없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여겨지는데 나도 2019년에 제주를 가본 이후 다시 언젠가 제주를 찾을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다. 전에 '요즘 제주'라는 가이드북으로 제주 여행의 핵심을 대략 

살펴보았고,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권을 통해 제주도의 고유한 문화유산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올레길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이 책과 만나게 되었다.


올레는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한 의미는 찾아보지 않아 몰랐는데 시골 마을의 골목길을 일컫는 제주어로

엄밀하게는 집 앞에서 마을의 큰 길까지 이어진 좁은 골목길을 말한다고 한다. 2007년 9월 1코스를 

개장한 이후 2012년 마지막 21코스까지 만들어졌고, 섬 코스, 알파 코스, 선택 코스까지 포함하면 총

28개 코스인데 21개 일주 코스 342㎞에 추가 코스 86㎞를 더하면 총 거리가 무려 428㎞에 이른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시흥 - 광치기의 1코스부터 시작해 순서대로 21코스까지 각 코스별로 주요 지점에

대한 알찬 소개를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중 5개 추천코스로 외돌개를 지나는 7코스, 송악산을 한 바퀴

도는 10코스, 한담해안 산책로를 걷는 15-B코스, 월정리 해안과 만나는 20코스, 항파두리를 지나는 

16코스를 제시한다. 나도 10코스에 포함된 송악산 둘레길은 전에 가봤지만 나머지 코스들은 전혀 가본 

적이 없어 이 책으로나마 올레길의 매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다. 제주 출신인 저자는 올레길들을 소개

하면서 제주의 아픈 역사들을 많이 알려준다. 일제강점기와 4·3 사건으로 인해 무고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흔적이 제주 올레길 곳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잘 몰랐던 제주의 역사를 이 책을 통해 많이 알게 

되었는데 설문대할망의 전설이나 고려 시대 약 100년간 몽골의 직접 지배를 받았고, 삼별초의 난이나

목호의 난 등으로 제주가 쑥대밭이 된 사정 등 제주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담아냈다. 솔직히 제주인이

아니면 피부로 와닿진 않지만 그냥 잠시 관광하러 들렀다 가는 것보단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애환에 공감해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부록으로 한라산 5개 등산 코스까지 수록해

두 발로 제주 구석구석을 살펴볼 사람들에게는 정말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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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명승 - 이야기로 풀어낸 중국의 명소들
김명구 외 지음 / 소소의책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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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은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일본과 더불어 가깝지만 먼 나라라

할 수 있다. 일부 중국몽 타령이나 하는 한심한 작자들이 없진 않지만 중국이 해온 행태는 결코 세계

최강의 강대국 중 하나라고 보기 어려운데, 중국이란 나라 자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중국이 가진

엄청난 문화와 자연에 대해서는 부러운 마음이 든다. 일본과 함께 지정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다

보니 해외여행에 있어서도 큰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인데,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지금 중국의 명소들과 그곳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들을 들려주는 이 책은 해외여행을 못 가는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거라 기대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중국은 물론, 대만, 홍콩, 마카오까지 중화권의 대표 명소 21곳을 중국 전문가 21명이 각각  

소개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중국이란 나라가 워낙 거대하다 보니 각 지역별로 적절히 명소들을 

배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면서 명소들을 차례로 소개한다. 먼저

우리에겐 안중근 의사의 의거 장소로 친숙한 하얼빈부터 시작한다. 하얼빈은 중국이 유럽 열강들의

침략을 받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유럽식 건물들이 적지 않았는데 '중앙대가'란 곳이 바로 국제도시

하얼빈에 처음 생겨난 도로이자 상업 중심지였다. 흥미로운 건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이 하얼빈을

두 차례 방문하고 글을 남겼다는 점이다. 다음으론 중국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인 자금성의 습례정이

나오는데 이곳은 청나라를 방문한 조선의 사신들이 인조가 청태종에게 했던 삼궤구고두례를 연습했던

곳이라고 한다. 코로나 전 중국 속 작은 유럽으로 우리에게도 인기가 있었던 칭다오를 거쳐 조금은 

낯선 양저우와 베이징, 시안, 뤄양과 함께 중국 4대 고도 중 하나인 난징의 진회하를 소개한다.


상하이부터는 일찍 개방되어 경제가 발전한 곳들이어서 현대적인 건물들과 명소들이 많지만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들이 선정되었고 특히 푸젠의 토루가 인상적이었다. 중국 본토를 잠시 벗어나 대만의

지룽과 지우, 홍콩의 침사추이, 마카오의 성 안토니오 성당을 소개하는데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보니 지금과 같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계속 느낄 수 있을지 심히 우려가 된다.

코로나 사태의 주역(?)인 후베이의 황학루, 무협 영화 등으로 친숙한 숭산의 소림사, 중국의 거대함을

잘 보여주는 뤄양의 용문석굴이나 시안의 진시황릉까지는 그래도 중국의 과거 중심 지역들의 명소라

할 수 있었다. 중국의 서부 지역에선 충칭 산성보도, 청두 두보초당을 거쳐(여기까진 그래도 중국

느낌이 있지만) 중국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라싸의 조캉사원과 둔황의 양관으로 중국 전역의 명소를

돌아보는 여정의 대단원의 마무리를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중화명승들을 직접 찾아가볼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잘 몰랐던 명소들과 거기에 얽힌 사연들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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