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서 새벽까지 (2Disc) - [초특가판]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 줄리엣 루이스 외 출연 / 네오센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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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강도 세스(조지 클루니)는 동생 리치(쿠엔틴 타란티노)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한 후 계속 사고를 일으키며 도주 중에

여행 중이던 목사 가족을 인질로 잡고 국경을 넘으려 하는데...

 

헐리웃의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 제작,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최고의 명콤비의 경쾌한(?) 뱀파이어 영화

리치로 출연한 쿠엔틴 타란티노는 정말 악동 그 자체였다. ㅋ

 

뱀파이어 소굴인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벌어지는

뱀파이어와의 치열한 사투가 역시 이 영화의 압권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뱀파이어 퇴치법이 동원된다.

이제는 뱀파이어들이 클럽까지 차려 놓고 피를 공급받나 보다. ㅋ

우리의 일상까지 침투한 뱀파이어들의

조직적인 생존방식을 잘 확인시켜 준 영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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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리버 (1disc) - [할인행사]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숀 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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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숀 펜), 숀(케빈 베이컨), 데이브(팀 로빈스)

늘 함께 놀던 절친한 친구였던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려 서로를 멀리하던 그들에게

지미의 딸이 살해되면서 다시금 그들을 모이게 만드는데...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

어린 시절의 발생한 끔찍한 사건이 세 명의 친구를 비극으로 몰고 가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세 명의 친구들 역에 헐리웃 최고의 배우들인 숀 펜,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을 캐스팅 했고

이 영화로 숀 펜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원작을 읽어 보지 않았지만 세 사람의 인생을 괴롭힌 두 개의 사건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잘 그려낸 것 같다.

사건의 진실과 비극적인 결말은 맘을 씁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범죄가 피해자들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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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야마다군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 / 대원DVD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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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보는 4컷만화를 보는 듯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기존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스타일이 달라서 선호가 극명히 갈릴 것 같다.

 

터프한 할머니와 전형적인 소심한 샐러리맨 아버지

늘 깜빡 잘 잊는 건망증 심한 어머니, 사춘기의 아들과 너무 어른스러운 딸

이들 가족이 펼치는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

마치 우리 집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해 준다.

TV채널을 가지고 다투고 식사 메뉴로 고민하고

아침마다 출근, 등교전쟁을 벌이는 등

우리가 늘 반복하는 일상의 단면을 잘 그려냈다.

만화책으로 보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애니메이션으로 보기엔 좀 너무 담백(?)한 것 같아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드는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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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636년(인조 14) 12월∼1637년 1월에 청나라의 제2차 침구()로 일어난 조선·청나라의 싸움.

본문  

1627년 후금()의 조선에 대한 제1차 침입(정묘호란)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지국의 맹약을 하고 양국관계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1632년 후금은 만주 전역을 석권하고 명나라 북경을 공격하면서, 양국관계를 형제지국에서 군신지의()로 고칠 것과 황금·백금 1만 냥, 전마() 3,000필 등 세폐()와 정병() 3만을 요구하였다. 또한 1636년 2월 용골대()·마부태() 등을 보내어 조선의 신사()를 강요하였으나, 인조는 후금사신의 접견마저 거절하고 8도에 선전유문()을 내려, 후금과 결전()할 의사를 굳혔다.

1636년 4월 후금의 태종은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청()이라고 고쳤으며, 조선이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왕자·대신·척화론자()를 인질로 보내 사죄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주화론자()보다는 척화론자가 강하여 청나라의 요구를 계속 묵살하였다.

12월 2일 이런 조선의 도전적 태도에 분개한 청나라 태종은, 청·몽골·한인()으로 편성한 10만 대군을 스스로 거느리고 수도 선양[]을 떠나, 9일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왔다. 의주부윤 임경업()은 백마산성(:)을 굳게 지켜 청군의 침입에 대비하였으나, 선봉장 마부대는 이 길을 피하여 서울로 진격하였다. 13일에서야 조정에서는 청나라 군의 침입사실을 알았고, 14일 적은 개성()을 통과하였다.

조정에서는 급히 판윤 김경징()을 검찰사로, 강화유수 장신()을 주사대장()으로, 심기원()을 유도대장()으로 삼아 강화·서울을 수비하게 하였다. 또 원임대신() 윤방()과 김상용()으로 하여금 종묘사직의 신주()와, 세자비·원손()·봉림대군(인평대군()을 비롯한 종실() 등을 강화로 피난하게 하였다.

14일 밤 인조도 강화로 피난하려 하였으나 이미 청나라 군에 의해 길이 막혀, 소현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피하였다. 인조는 훈련대장 신경진(禛) 등에게 성을 굳게 지킬 것을 명하고, 8도에 근왕병()을 모집하도록 격문()을 발하였으며, 명나라에 급사(使)를 보내어 지원을 청하였다. 그러나 16일 청나라 선봉군이 남한산성을 포위하였고, 1637년 1월 1일 태종이 도착하여 남한산성 아래 탄천()에 20만 청나라 군을 집결시켜, 성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성내에는 군사 1만 3000명이 절약해야 겨우 50일 정도 지탱할 수 있는 식량이 있었고, 의병과 명나라 원병은 기대할 수 없었으므로 청나라 군과의 결전은 불가능하였다. 또한 성 밖에는 청나라 군이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하기를 일삼으며, 어미는 진중()에 잡아놓고 그 아이들은 추운 길바닥에 버려 거의 모두 굶어죽고 얼어죽었다.

특히 병자년은 혹독한 추위가 오래 계속되어, 노숙(宿)한 장수·군사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기진하여 병들고 얼어죽는 자가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내에서는 최명길() 등 주화파()와 김상헌() 등 주전파() 사이에 논쟁이 거듭되다가, 강화론이 우세하여 마침내 성문을 열고 항복하기로 하였다. 청나라 태종은 조선의 항복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우선 인조가 친히 성 밖으로 나와 항복하되, 양국관계를 악화시킨 주모자 2, 3명을 잡아 인도할 것을 요구하였다. 때마침 강화도가 적에게 함락된 소식을 들어, 어쩔 수 없이 최명길 등을 적진에 보내어 항복조건을 교섭하게 하였다. 1월 28일 이에 청군은 용골대·마부대를 보내 다음과 같은 강화조약 조항을 제시하였다.

① 청나라에게 군신()의 예()를 지킬 것, ② 명나라의 연호를 폐하고 관계를 끊으며, 명나라에서 받은 고명()·책인(册)을 내놓을 것, ③ 조선 왕의 장자·제2자 및 여러 대신의 자제를 선양에 인질로 보낼 것, ④ 성절(:중국황제의 생일)·정조()·동지()·천추(:중국 황후·황태자의 생일)·경조() 등의 사절(使)은 명나라 예에 따를 것, ⑤ 명나라를 칠 때 출병()을 요구하면 어기지 말 것, ⑥ 청나라 군이 돌아갈 때 병선() 50척을 보낼 것, ⑦ 내외 제신()과 혼연을 맺어 화호()를 굳게 할 것, ⑧ 성()을 신축하거나 성벽을 수축하지 말 것, ⑨ 기묘년(:1639)부터 일정한 세폐()를 보낼 것 등이다.

1월 30일 인조는 세자 등 호행() 500명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와, 삼전도()에 설치된 수항단()에서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례()를 한 뒤, 한강을 건너 환도하였다. 청나라는 맹약()에 따라 소현세자·빈궁()·봉림대군 등을 인질로 하고, 척화의 주모자 홍익한·윤집(오달제() 등 삼학사를 잡아, 2월 15일 철군하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조선은 완전히 명나라와는 관계를 끊고 청나라에 복속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관계는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후에는 많은 고아들의 수양()문제와, 수만에 이르는(어느 기록에는 50만) 납치당한 이들의 속환()문제가 대두되었다. 특히 청나라 군은 납치한 양민을 전리품으로 보고, 속가()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종실·양반의 부녀를 되도록 많이 잡아가려 하였으나, 대부분 잡혀간 이들은 속가를 마련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속가는 싼 경우 1인당 25∼30냥이고 대개 150∼250냥이었고, 신분에 따라서 비싼 경우 1,500냥에 이르렀다. 속환은 개인·국가 모두 그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큰 일이었다. 여기에 순절()하지 못하고 살아돌아온 것은 조상에 대해 죄가 된다 하여, 속환 사녀()의 이혼문제가 사회·정치문제로 대두하였다. 1645년 10년의 볼모생활 끝에 세자와 봉림대군은 환국하였으나, 세자는 2개월 만에 죽었다. 인조의 뒤를 이은 효종(봉림대군)은 볼모생활의 굴욕을 되새기며, 북벌()계획을 추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출처-네이버

김훈의 '남한산성'의 역사적 배경인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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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 틴케이스 스틸북 한정판 (2disc) [미니아트북 포함]
잭 스나이더 감독, 도미닉 웨스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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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아버지 다리우스 1세의 뒤를 이어

그리스 정복에 나서고 이에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최고의 전사 300명과 함께 테르모필레에서 결전을 준비하는데...

 

프랭크 밀러의 원작만화를 영화화한 작품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정말 리얼하게 잘 그려냈다.

지형을 이용한 스파르타의 전략과 태어날 때부터

강인한 전사로 길러진 그들의 죽음을 각오한 용맹함에

페르시아의 수십만 대군도 패전을 거듭한다.

기적에 가까운 승리가 손 앞에 잡힐 듯 하던 스파르타군은

그들이 내친 스파르타인에 의해 무너지게 되는데...

 

역시 이 영화의 압권은 스파르타와 페르시아의 사실감 넘치는

전투씬이다. 조금은 잔인했지만 그래서 더욱 실감났고

특유의 색감은 프랭크 밀러의 만화를 영화화한 '씬시티'를 연상시켰다.

 

페르시아의 수십만 대군과 맞서는 300명의 스파르타군

그들의 무모하지만 조국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비장함이

그들을 영원히 죽지 않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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