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님프 테티스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남긴 황금 사과를 두고

헤라와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 아테나가 서로 다투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심판을 내려 아프로디테가 주인이 되었다.

그 대가로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사랑을 얻게 해 주었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원정길에 나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스군의 아킬레우스오디세우스, 트로이군의 헥토르아이네아스 등 숱한 영웅들과

신들이 얽혀 10년 동안이나 계속된 이 전쟁은 오디세우스의 계책으로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리스군은 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철수하는 위장 전술을 폈는데,

여기에 속아 넘어간 트로이군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 놓고 승리의 기쁨에 취하였다.

새벽이 되어 목마 안에 숨어 있던 오디세우스 등이 빠져 나와 성문을 열어 주었고

그리스군이 쳐들어와 트로이성은 함락되었다.

여기서 비롯된 ‘트로이의 목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하여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이 전쟁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는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수많은 영웅 서사시가 만들어졌으나

그 중에서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받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만이 후세에 전해졌으며,

이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수많은 예술 작품이 탄생하였다.

한편 고대에는 이 전쟁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으나,

19세기의 비판적 역사 연구에서는 허구적인 신화로 취급하는 풍조가 강하였다.

그러나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부터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근거를 얻게 되었다.

1930년대에 미국의 블레겐이 트로이 유적에 대한 과학적인 재조사를 시행한 결과,

트로이전쟁이 사실성을 갖는다면 9층으로 이루어진 유적 가운데

BC 125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제7층 A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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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 할인행사
볼프강 피터슨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호머의 대하서사시 일리아스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과

브래드 피트, 올랜도 블룸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

 

누구나 대강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일리아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유혹해

트로이로 데려 가자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도 참전하게 된다.

그리스군은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로 트로이를 함락시키지만

아킬레스는 자신의 유일한 약점인 아킬레스건에 활을 맞아 죽는다.

 

두 사람의 불륜(?)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게 현실이다. ㅋ

사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파리스가 헬레네에게 빠진 것도

파리스가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아프로디테를 선택해서 아프로디테의 선물로 받은(?) 것이라니

인간들은 신들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 같다. ㅋ

 

너무 잘 알고 있는 스토리지만 영화로 재현해 내기엔

스케일이 너무 커서 과연 잘 만들었을까 싶었지만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스 신화나 서사시들은 읽을 때는 재밌는데

인물들의 이름이 너무 많고 헷갈리는게 단점이다.

그래도 고전은 수없이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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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3-24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50년대에 만들어진 "Troy of Hellen" 이란 영화가 있는데, 거기서는 패리스가 꽃미남으로 나옵니다 대의명분 보다 개인의 실존을 더 강조하는 "Troy"는 확실히 현대적이죠

sunny 2007-03-25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의 묘미는 얼마든지 재해석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네요. ^^
 

 

 

 

 

알렉산드로스라고도 한다. 트로이의 프리아모스왕의 아들로,

그가 태어날 때 어머니인 헤카베는 횃불이 도시 전체를 불태우는 꿈을 꾸었다.

이는 트로이의 멸망을 의미하는 불길한 전조라 하여, 태어나자 곧 하인을 시켜

이다산()에 버리게 하였으나 기적적으로 구조되어 파리스라는 이름으로 양()지기들의 손에서 자랐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이 거행되었을 때,

여러 신들이 잔치에 초대되었으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 제외되었다.

노한 여신은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고 쓰인 황금의 사과를 연회석에 던졌다.

아테나·헤라·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이 사과를 두고 다투자

주신() 제우스는 그 심판을 파리스에게 맡겼다.

여신들은 이데산으로 달려가 아테나는 지혜를, 헤라는 세계의 주권을,

아프로디테는 인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각각 약속하였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택하였고, 스파르타헬레네가 그에게 주어지게 되어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리고 왔으나

그녀는 이미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헬레네를 되찾기 위해 트로이 원정을 하여 트로이전쟁이 시작되었다.

파리스는 자신의 장기()인 궁술()을 발휘하고, 아프로디테의 가호를 받아 많은 적을 살상하였는데,

특히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의 유일한 급소인 발뒤꿈치를 활로 쏘아 그를 쓰러뜨렸다.

한편 파리스의 심판에 관한 에피소드루벤스를 비롯한 후세의 많은 예술가들이

그림의 주제로 취급하였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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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로는 아킬레스. 호메로스서사시일리아스》의 중심인물이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왕의 아들로,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이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황천()의 스틱스 강물에 몸을 담갔는데,

이때 어머니가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물에 젖지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되고 말았다.

아킬레스힘줄[]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는데, 이 전설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양친은 그를 트로이전쟁에 나가지 않도록 하려고 그를 여장()시켜

스키로스의 왕 리코메데스의 딸들 틈에 숨겼는데,

그가 없이는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없다는 예언을 듣고 찾아온 오디세우스에게 발견되었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여자 아이들이 좋아할 물건들 속에 무기를 섞어 놓았는데,

아킬레우스만은 사내라서 무기를 집음으로써 정체가 드러났었다고 한다.

에피소드는 훗날 여러 미술작품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그리스군은 10년 동안에 걸쳐 트로이를 공략하였으며, 아킬레우스는 리르네소스의 왕 에티온을 죽이고

미녀 브리세이스를 손에 넣었으나 아가멤논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격분한 그가 군사를 이끌고 물러가자 그리스군은 계속 패배하였다.

이를 보다 못한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갖추고 출진하였는데,

적장 헥토르의 손에 죽자 이에 격분한 아킬레우스는 다시 출격하였다.

이때 그가 몸에 걸친 무구는 어머니가 공신()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특별히 만든 것으로

유명한 ‘아이기스’이다. 그는 적장 헥토르를 죽여 원수를 갚고 그의 시체를 전차에 매어 끌고 돌아왔는데,

헥토르의 부왕() 프리아모스가 몸소 진중으로 찾아와 몸을 굽히면서

자식의 유해를 돌려달라고 애원하자 배상금을 받고 인도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도 마침내는 파리스의 화살에 급소를 맞고 죽었다.

그는 격하기 쉬운 성격이었으나 정이 많고 트로이전쟁에서 가장 고결한 영웅으로 알려졌으며,

발이 빨라 준족(駿)의 대표자로도 알려졌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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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5693행, 24권. 각권마다 그리스 문자의 24 알파벳순()으로 이름이 붙어 있다.

옛날에는 각권마다 그 내용에 부합되는 이름이 붙어 있었고,

알파벳순으로 이름을 붙이는 방법은 BC 3세기에 처음으로 쓰인 권별법()이었다.

《일리아스》는 트로이의 별명 일리오스(Ilios)에서 유래한 것이며, ‘일리오스 이야기’라는 뜻이다.

10년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지막 해에 일어난 사건들을 노래한 것이다.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의 왕비로 절세의 미인인 헬레네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유혹해 간다.

이에, 그리스인들은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지휘로 1,000척의 배를 거느리고 트로이를 공격하지만

트로이성()은 함락되지 않는다.

자신을 섬기는 사제 크라이세스의 딸 크라이세이스가 아가멤논에게 잡혀가자

 격노한 아폴론신()이 벌로 액병()을 내린다.

이 수습책 때문에 벌어진 말다툼에서 아가멤논에게 모욕을 당한 그리스 최고 영웅 아킬레우스가 노하여

싸움에서 손을 뗀다. 이 아킬레우스의 이탈이 바로 《일리아스》의 주제이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간청으로

주신() 제우스는 신()들에게 양군을 원조하지 말도록 명하여 그리스군을 패배케 한다.

패배한 그리스군의 참상을 좌시할 수 없어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

아킬레우스의 무구()와 전차를 빌려 그의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적을 패주()시켰으나

그는 트로이의 장수 헥토르에게 살해된다.

이 소식에 접한 아킬레우스는 복수하기 위하여 헤파이스토스가 특별히 만들어준 갑주를 입고 출전하여

헥토르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욕보인다.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왕은 신들의 비호()로 야음()을 틈타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헥토르의 시체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는 것으로 끝맺는다.

《일리아스》는 비극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에 집중하여,

트로이 공방 50일 동안의 이야기 속에 10년의 전망을 담았으며,

과거를 뒤돌아보고 미래를 암시함으로써 비극성을 강조하였고,

여러 가지 비유로 자연계와 인간계의 관계를 특색 있게 묘사하였다.

무용()을 노래하고 그리스 기사도를 찬양한 이 시는 BC 90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시는 마침내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가 되었고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으며,

유럽 서사시의 모범으로서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출처-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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