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 관리인의 하루
한수정 지음 / 희유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공동묘지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장소로 여겨진다.

이미 죽은이들의 세상이라 생각하지만 결코 그러하지 않다.

죽음의 결과를 눈으로 보는 우리지만 한 때 우리가 사랑했던, 잊을 수 없는 이들의 존재가 여전히 현실이라는 무덤에 존재하고 있기에 어쩌면 죽음도 삶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공동묘지를 관리하는 것을 생각하면 뭐가 그리 바쁠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공동묘지는 시설들이 현대화 되어 있고 깔끔한 면이 많아 크게 손이 가는 일들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묘지 관리인이 아닌 입장에서의 생각만으로는 추론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소설 속의 공동묘지는 생긴지 15년이 된 우리가 생각하는 시스템화 된 공동묘지가 아닌 거의 모든것들이 수동화 한 공동묘지로 그 곳에서 벌어지는 묘지 관리인의 이야기들을 통해 삶과 죽음이 혼재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 관리인의 하루" 는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삼촌의 죽음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주인공 수영이 공동묘지 관리인으로 취직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재미있게 담아낸 책이다.

공동묘지를 생각하면 수 많은 괴담과 공포를 떠 올리게 되지만 소설 속의 공동묘지는 오히려 그러한 두려움의 장소라기 보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힘겨움과 지난 시간에 대한 과거사의 토로 무대로 이용되고 있는것 같다.

특히 수영은 사람들에 대한 눈썰미, 혹은 감이 빨라 그녀만의 내면적인 느낌을 엿볼 수 있고 독특하게 구성된 공동묘지 관리인의 수습기간을 통해 함께 하는 직원들과의 특성들을 잘 파악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나 처음해 보는 일 앞에서는 수습기간이 두렵고 불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앞선 선배들의 자세한 지도와 자신의 눈썰미 혹은 감을 통해 빠른 이해와 습득을 한다면 충분히 수습기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수영 역시 그러한 염려를 하지만 그녀만의 믿음직함에 무난한 수습기간 완성을 이뤄내며 우리 삶의 사연들의 다양성에 대한 눈물겨움이 오롯이 드러나기도 한다.



수영은 묘지 관리인으로의 적절한 대책과 고객으로 오는 유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역할을 잘 해 낸다.

공동묘지를 찾는 유족들의 바램이 무엇이겠는가?

이미 고인이 된 분이지만 무덤 관리를 잘하고 찾아오는 유족들과의 대인관계를 잘 쌓는 일이 바램이 아닐까?

아주 사소하지만 어쩌면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한, 바램들이 오늘의 이 소설을 저자가 쓰게 만든 근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면 씁쓸한 마음이 든다.

죽음, 죽은자들이 존재하는 공동묘지에서의 산사람의 삶의 이야기들, 삶과 죽음의 공존이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기에 삶의 오색찬란한 이야기들을 마주하는 공동묘지에서의 이야기들은 오늘을 사는 나, 우리에게 색다른 의미로 삶과 인생을 보게 해 준다.

재미는 덤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 관리인의 하루의 일독을 권유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년, 그 깊은 독백 - 익숙했던 것과의 결별 바람이 지구를 흔든다
박갑성 지음 / 예미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의 오늘은 한시가 바쁜 모습으로 굴러가는 챗바퀴 놀음이다.

그런 챗바퀴 놀음에서 나,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에 맞는 일과 휴식을 취한다는 것 조차도 어쩌면 힘겨운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각박' 이라는 단어가 그리 멀리 않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단면이 마치 하나의 벽이 세워져 쉽게 뛰어 넘거나 건널 수 없는 느낌을 갖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사람사는 일이 다 그렇지! 라고 후하게 점수를 주고 싶어도 오늘의 우리 삶의 모습들은 그야말로 헉헉대는 숨넘어가는 소리쯤으로 공전하는 느낌이 든다.

그런 나, 우리에게도 정년이라는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계기가 돌아온다.

정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을 것으로 이해한다.

지금껏 헉헉대며 살아 온 나, 우리의 인생과 삶에 윤기가 도는 여유 시간으로의 정년이 될지, 아니면 여전히 헉헉댐을 숨고를 새도 없이 또다시 달려 나가야 하는 출발선상의 나, 우리가 되어야 할지는 모두 나, 우리의 현재 마음에 따른 일이 아닐까 싶다.

정년, 그 깊은 독백을 마주하게 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정년, 그 깊은 독백" 은 삶의 진함을 스스로 느끼던 지난 시간의 삶에서 벗어나 이젠 하나의 벽에 기대 선 저자의 생생한 정년에 대한 독백을 들어 볼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사회가, 아니 사회 속에서 삶을 이어가야 한다는 치열함의 벽 앞에서 각각의 노력으로 승부를 했고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한 나, 우리 자신의 삶의 치열한 벽에서 물러나 나, 우리라는 자신을 비우고 내려 놓아야 하는 시간을 맞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분인(分人)으로 살면서 , 여백 위에 뒤 섞여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 모른다는 사실도 모른채 살아 온 세월을 이어으며 그 시간은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 세월이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누군들 자신의 삶의 터전이 었던 사회속의 자리를 떠나고 싶을까만 필연적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흔들리지 않으리라 먹은 굳은 마음도 어느새 눈물이 되어 흘러 내리고 사유의 결핍과 해답없는 삶의 물음들이 난무하는 지금, 정년이 한없이 원망스럽고 슬프기만 한 감정임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나 역시 저자와 같은 동년배로 같은 정년을 맞고 있으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훗~ 첫 장에서 나도 모르게 웃픈 웃음이 나왔다.

여름 편의 첫 페이지 #365에는 "애들아, 삼백육십오 일 남았어" 라는 대화체가 글이 있다.

저자는 스스로 그것을 세며 아이들에게 말했지만 나는 같이 일한 동료들에게 "선배님, 몇일, 몇달 남았습니다" 라고 전해 듣는 터에 어쩌면 그러한 기한에 대한 묘한 감정이 웃기기고 하거니와 슬픈 감정을 생산해 낸다는 사실에 훗~ 하는 웃음을 웃었으리라 생각한다.

정년을 앞 둔 마지막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은 모두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보여주듯 수 많은 생각과 다짐들,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고 절제된 행위로의 울림은 오늘 정년을 맞이하는 모든 이들이 교훈 삼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우고 내려 놓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쉽게 할 수 없었던 지난 시절을 떠나 이제 자타의적인 상황에서 비우고 내려 놓는 삶과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저자든 혹은 우리 시대의 정년을 맞는 모든 이들이든 꼭 필요한 일이자 행위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엘리트들은 사주를 보는가? - 서울대 출신 IT 전문가가 알려주는 사주풀이
김대영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엘리트, 이른바 우리 사회 상위에 포진해 있는 이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머리로 부과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터이지만 그런 그들이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왔듯이 인간의 운이나 운명과 같은 비과학적이고 비신뢰적인 사주에 목을 매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멀리도 아닌 지난 12.3 계엄을 떠 올려 보아도 그렇다.

그와 관련된 인물들 가운데 수 많은 군장성들이 실력이 없어서, 머리가 없어서 사주나, 점을 보러 다녔을까 생각하면 기가찰 노릇이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에게는 인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운과 운명이라는것이 존재하는데 그것 마져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속내를 생각하면 참으로 놀랍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모두가 같은 출발선상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이 우리를 평등이 아닌 불평등한 상황으로 만들고 우리는 그러한 환경의 힘을 빌어 나, 우리의 삶을 시작한다.

지금의 엘리트들이 그러한 존재들이기에 그들 역시 앞선 이들의 행위에 대한 교육이 그러한 방향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속시원히 그들이 왜 사주를 보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왜 엘리트들은 사주를 보는가?" 는 우리가 흔하게 재미로 보는 사주풀이, 운세풀이에 해당하는 행위를 엘리트들 역시 진지하게 한다는, 하지만 부족할게 없는 그들이 왜 사주를 보는지에 대해 이유 있는 끈거를 제시하는 책이다.

사주는 중국의 고대 세계관·철학인 사주(四柱, 네 기둥)와 팔자(八字, 여덟 자)를 통해 사람의 인생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지하려는 점복학의 일종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태어남과 동시에 우주에서 부여되는 운명의 암호라고 인식하며 그것을 모르는것 보다는 알아내는 것이 월등히 현실의 나, 우리의 삶에 유익함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누구라도 자신의 현실에 대해 만족감을 갖기 보다 불만족함을 갖는것이 현실임을 생각해 보면 엘리트라고 해서 그러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하다면 인간의 욕망은 엘리트든 아니든 다 같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들이 왜 사주를 보는지에 대한 물음은 살짝 비꼰 질문에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6Part로 구분해 사주명리학적 내용을 소개한다.

논리는 꼭 기술적이거나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잘못되었다 판단한다.

사주명리학에서 제시하는 이러한 이론들을 잘 이해하고 파악해 활용하는 일도 무척이나 논리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일이다.

즉 막힘이 없이 풀어 낼 수 있음이 바로 논리이며 논리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주를 통해 개인의 기질, 성향, 강점과 약점 등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음양오행은 오행의 균형과 상호작용으로 개인성향과 인생의 흐름에 대한 분석을 하며 십성론은 자신의 성공 운세와 연애 스타일 등에 대한 인간관계에 촛점을 맞추고 있어 무척이나 귀중한 느낌이 든다.

흔히 말하는 '팔자'에 대한 의미도 성격, 사업, 직업, 재물, 향후의 운세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즉 나, 우리의 삶과 인생의 전반에 걸친 운과 운세를 듣고 지금의 나, 우리를 바꾸거나 혹은 조심해야 할 부분들을 파악해 실천해 나간다면 보다 나은 나,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열어가는 주체자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운과 운세를 스스로 만든다는 말은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행위론은 아니라고 본다.

현재의 상태를 좀더 유익하게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한 나, 우리의 노력의 일환으로 생각하면 엘리트들이 왜 사주를 보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 이야기들을 저자는 자신의 20년 사주 공부를 통해 들려주고 있어 재미있는 사주공부 시간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팔로알토, 자본주의 그림자 - 미국경제 욕망의 역사
말콤 해리스 지음, 이정민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자본주의는 역사 이래 수 천년을 이어 온 제도로 인식할 수 있다.

마치 팔로 알토 처럼, 팔로 알토는 메타 세콰이어 나무에 팔로 알토라는 이름을 붙인것으로 지명으로도 활용되지만 1000살이 넘은 팔로 알토 처럼 자본주의 역시 쭉쭉 벋어 나가는 의미를 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장 극명하게 생생함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곳이 바로 미국경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연유에 아메리칸 드림의 탄생을 부인할 수 없음을 생각하면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동시에 갖고 있는 욕망의 역사를 미국은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더구나 세계 IT 산업의 핵심지이자 미국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는 실리콘밸리는 그 역사가 150년에 불과하지만 전세계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과 함께 하는 동시성을 갖는 지역이다.

그 누가 실리콘밸리가 자신의 것들을 빼앗긴 인디언의 묘지 위에 지어진 유령이 출몰하는 유독성 폐기물 처리장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실리콘밸리를 통해 150년 간의 이데올로기, 기술, 정책을 추적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변화 했는지를 살펴 알려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팔로 아토, 자본주의 그림자" 는 미국경제의 주춧돌이 된 실리콘밸리의 150년 역사를 수 놓은 수 많은 욕망의 그림자들을 시간의 흐름으로 엮어 5부로 제시하며 실리콘밸리가 설계한 미국경제의 성장동력에 대한 이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미국경제를 말하면서 실리콘밸리를 빼 놓고 말하는 것은 주요 핵심을 빠트리고 말하는것과 다르지 않다.

1850년대 골드러시에서 2000년대 테크기업의 등장과 발전에 이르기까지의 실리콘밸리의 역사 속에는 우리가 심도 깊게 눈여겨 보아야 할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마주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를 다루는 수 많은 도서들은 모두 혁신에 대해 일갈하는 도서들이라 평할 수 있지만 실리콘밸리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실리콘밸리가 자본주의의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는지를 살펴 말하는 도서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Native American을 없애고 중국, 일본, 한국 등 다양한 이민자들이 섞인 그들의 투쟁의 역사 또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에 자본주의의 그림자 속에 존재하는 치열한 경쟁과 투쟁의 밑그림을 이해할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교는 세계적인 명문대학교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의 역사에 있어서도 스탠퍼드대학교는 기업과 협력하고 기술을 혁신하는 주체였으며 교육이 자본에 우선하는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팔로알토 지역을 돌아보면서 실리콘밸리의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확신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해도 마치 인간의 존엄성 마져 뛰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불편한 인식은 마뜩치 않은 느낌으로 전해진다.



그러한 기술주의, 자본과 결합한 기술패권주의에 대해서는 자본주의가 가진 화려함에 못지 않는 불편한 그림자들이 존재한다.

바로 경제성장으로 인한 불평등과 성장에 따르는 사회적 불평등 등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생활을 하면서도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남게 된다.

나,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통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자본주의적 기술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들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인간은 얼마든지 자기 존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

경제적 가능성은 불편을 야기할 뿐 그것이 인간의 지속가능한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지 않음을 생각해 보면 실리콘밸리가 어떤 역사를 가졌고 또 앞으로의 변화는 어떻게 진척이 될 것인지에 귀추가 주목되는 만큼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변화에 실리콘밸리의 실상을 접목해 더 나은 방향으로의 가치관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전해 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도의 미학 - 죽음과 소외를 기억하는 동시대 예술, 철학의 아홉 가지 시선
한선아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흔히 우리는 애도를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것에 한정해 표현하는 감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애도는 의미 있는 애정 대상을 상실한 후에 따라오는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정신과정으로 모든 의미있는 상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으로 이해해야 한다.

모든 의미 있는 상실에 대한 슬픔이기에 오늘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전쟁, 무차별 살인, 이민정책 갈등, 아동학대, 젠더 폭력 등 날이 갈수록 반복되고 심화되어 가는 모든 사회문제들 속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그리고 동시대를 사는 보편적인 보통사람들의 철학적 서사를 위해 우리는 애도에도 미학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도는 슬픔의 감정이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미학적이라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예술가와 철학자의 시선과 관점의 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학과 찰학을 전공한 저자의 애도를 통해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민낮들이 과연 웃어 넘길 수 있는 해맑은 세상인지에 대해 고심하고 부당하게 죽어간 이들의 사라진 흔적들을 쫓아 그들 삶의 비참함을 변화의 근거로 제시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애도의 미학"은 어쩌면 우리 삶이 이뤄지는 세상이 위장된 평화속에서 몸부림 치는 군상들의 모습을 찾아 꽃이 피니 사라져야 겠다고 생각했을 이들에게 바람이 부니 살아야 겠다는 삶의 찬란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자 하는 저자의 미학과 철학이 앙상블화 된 책이다.

저자는 주디스 버틀러, 노엄 촘스키, 베르토 에스포지토 등 9인의 사상가와 테레사 마르골레르, 이보람, 이토 바라다, 최선 등의 14인의 예술가들을 작품을 통해 그들이 비춰낸 사회의 취약성과 비폭력, 아동학대와 돌봄, 대량학살과 재현, 인권과 인간성,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성폭력과 전시강간, 이민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과 문제들을 제시하며 이들의 치열한 시선을 쫓아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의 일부를 변화의 주 요소로 우리에게 선사한다.

이러한 서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정된 세계관에 휩싸여 있는 인간들이기에 좀 더 다양한 현상, 문제들을 마주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통찰할 수 있는 일은 누구 하나만의 문제라 하기 보다는 '함께' 라는 공동의 연대감을 갖고 사는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혼란한 삶의 이야기들에 우리가 발벗고 나서거나 손들어 환영하며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이 쉽게 보이지 않음이 바로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는 자승자박의 역할자처럼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우리가 가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어떤 세상의 일부가 모두에게 가닿기를 주장한다.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나, 우리의 모습은 인간중심주의에서 철저히 개인주의로 전환되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외면하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다양한 사회현상과 문제들이라 생각하면 결국 나, 우리의 관심과 사랑의 부족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한 점을 애도해야 하는것을 저자가 의도하는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애도는 슬픔이 강조된 표현으로 우리는 나, 우리의 주변에서 수 많은 죽음을 목도한다.

하지만 그러한 죽음에 대해서도 애도하는 마음은 별로 없는것 같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유도 있겠지만 결코 사회적인 문제로 발생하는 다양한 죽음이 가져 오는 슬픔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말할 수 없다.

무정해진 나, 무관심한 나, 우리가 만든 지금의 사회라 생각하면 죽음을 애도해야 하는것이 아니라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하는 나, 우리를 애도하게 되는 역설적인 의미로 읽을 수 있을것 같다.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이 합창하는 세상의 변화는 그들의 작품과 문장을 통해 오늘 우리 사는 세상을 더욱 가치 있게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해 본다.

그들의 세상에 대한 통찰적 서사를 이 책을 통해 공감해 보길 권유해 보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