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에만 나오지만
현장 과학수사관 28명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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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보여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어떤 모습들을 생각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에만 나온다는 것은 다양한 장면들이 있겠지만 아마도 사건, 사고 현장이라는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사건, 사고 현장 그 속에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진실을 찾아 내고자 하는 이들의 숨겨진 노고를 확인할 수 있는 과학수사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과학수사대를 생각면 미국 드라마 시리즈로 정평이 나 있는 CSI를 떠 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이해한다.

그만큼 과학수사라는 의미를 우리의 인식에 박히도록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과학수사대는 또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름만으로는 쉽고 간편한 수사방식이라 과거에 비헤 많이 좋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속내를 살펴보면 여전히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상당함을 깨닫게 된다.

영화의 한 장면에만 나오지만 우리의 삶과 죽음의 현장을 아우르며 그들만의 노고를 통해 현재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에만 나오지만" 은 죽음의 현장에서 과학수사를 통해 남겨진 죽음의 이유, 사유를 밝혀 진실을 찾아 전하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서사를 과학수사대라는 이름만으로 쉽게 생각하는 나, 우리에게 깨달음과 대중적 이해의 폭을 넓혀 주고자 하는 책이다.

영화는 영화다. 무슨말인가 하면 영화는 재미를 위해 진실을 각색해 놓은 대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영화에서 보이는 CSI나 과학수사대의 활약과 같은 모습들은 표면적인 활동과 모습에 그치고 있다.

실질적으로 그들이 어떤 임무를 하고 어떤 현장에서 어떤 상황을 마주하는지는 결코 해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말할 수 없는 사실에 기반한다.

시취(屍臭) 는 아마도 지금껏 우리가 맡아 본 그 어떤 냄새 보다고 고약하고 고통스런 느낌을 준다고 한다.

죽음을 맞이한 존재의 죽음의 이유는 사건, 사고에 따라 다양하지만 죽음에 얽힌 진실은 쉬 드러나지 않기에 안타깝고 마뜩치 않은 죽음이 될 수도 있다.

죽어서 까지도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왜 죽었는지,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 수 없다면 가족이 느끼는 슬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것 같다.

과학수사대에서 활약하는 업으로의 분류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과학수사심의관, 검시조사관, 프로파일러, 지문감정관, 최면수사관, 현장과학수사관, 영상분석관, 채취증거견 운용관, 법곤충연구사, 혈흔형태분석관, 화재감식과학수사관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우리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사건과 사고에서의 죽은이들에게 가려진 진실에 다가서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은 빛을 발한다.



누구의 죽음인들 안타깝지 않을까?

삶과 죽음의 존재가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죽음을 마주한 과학수사대에게는 죽음이 가리키는 진실을 파헤쳐 가족 또는 관련인에게 알려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의무와 책임을 고된 일과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켜나가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껏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되돌아 올 수는 없었다.

떠나간 사람들의 삶에서 우리는 과연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인간의 삶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의외로 무수히 많다. 단지 우리가 무시하거나 간과하고 말고 있음을 생각하면 과학수사대가 현장에서 얻어내는 교훈은 진정 우리 삶의 미래, 더 안전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에만 나오지만 그 한 장면에서 모든걸 보여줄 수 있는 진솔한 삶의 반향을 과학수사대의 의무와 책임감에서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누려보길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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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시간 책쓰기의 기적
황준연 지음 / 작가의집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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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도 어려운데 책쓰기라니 과연 가능할까? 하는 물음을 던지는 일은 글쓰기와 책쓰기를 하고자 하는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질문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쓰기 뿐만 아니라 책쓰기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의 어려움은 아니라고 말한다.

글쓰기도 책쓰기도 나름의 과정들이 있고 규칙과 방법이 존재하기에 그러한 부분들을 익히고 따르면 충분히 글쓰기와 책쓰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흔하디 흔하게 우리는 '내가 과연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이는 우리가 단순히 작가라는 타이틀만을 위한 글쓰기나 책쓰기가 아닌 나, 우리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체계화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고 그 과정에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책쓰기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책쓰기를 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저자의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하루 1시간 책쓰기의 기적"은 책쓰기가 특별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오늘의 나, 우리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주장하며 이미 우리 안에는 책쓰기를 위한 자신의 경험, 지식, 열정들이 존재하며 그러한 것들이 바로 책쓰기의 재료가 됨을 알려 준다.

단지 우리는 아직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는지를 모를 뿐이기에 우리는 그러한 것을 표현해 내는 기술적 방법론을 세부적으로 이해하고 배워 활용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을 공유하고자 하며 책의 기획, 글의 구조 잡기, 매일의 글쓰기 습관 만들기, 출판사와 계약하기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독자들의 책쓰기 여정과 함께 하기 위한 기회로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 저자의 주장처럼 작가의 꿈만 꿀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꿈을 이룰 것인지를 고민하고 하루 1시간 책쓰기의 노력을 통해 작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

책쓰기는 글을 쓰는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 보는 과정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며 자신이 쌓은 지식과 경험을 타인과 나누기 위한 행위에 다름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다.

부족함에 대한 염려를 가질 수 있으나 인간은 본래 부족하고 불안하며 나약한 존재와 다르지 않다 생각하면 충분히 커버링 할 수 있는 일이며 자신감을 가지고 책쓰기에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다.

더우기 나, 우리의 책쓰기가 나와 같은 이들의의 삶과 인생에 자그마한 도움과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이 세상에 작은 족적을 남기는 일이자 희망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하다.



3달 안에 작가가 될 수 있다. 딱 3달만 이 책대로 해보라고 주문하는 저자의 강력한 주문에 슬며시 구미가 당긴다.

책쓰기는 맹목적인 책쓰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책쓰기는 온전히 나를 바꾸는 일이자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책쓰기는 나를 바꿈과 동시에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미를 동시게 갖고 있다.

그러한 연유로 나, 우리가 가진 지식과 경험들이 녹아든 책쓰기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책을 읽고 변화의 동기부여가 된다면 바랄것이 없을 것이며 우리는 그러한 의미를 책쓰기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저자 역시 그러한 의미를 부여한 책쓰기를 강조하고 있기에 하루 1시간의 기적이라 말하고 있다.

무엇하나 내세울것 없는 존재로 살았던 저자였지만 우연한 기회에 책쓰기를 접한 후 저자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우리 역시 그러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책쓰기 수업에 대해 심도 깊은 설명을 전해주는 과정을 꼼꼼히 따라해 보며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해 보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려워 할 수 없다기 보다 노력하면 할 수 있음을 깨우쳐 주는 책쓰기의 기적이라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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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는 마음 - 문화예술 변호사 박주희의 예술 같은 나날들
박주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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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오늘은 과연 어떤 의미로 이해되어야 하는것일까?

철저히 효율과 쓸모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과 인생들이 저마다의 시간속에 아우성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더, 더, 더라는 부사는 어떤 기준보다 정도가 심하게, 또는 그 이상으로의 상황을 말하는데 우리가 삶을 살고 있는 사회의 모든 것들에서 효율과 쓸모는 더, 더, 더라는 기준을 가속화해야 하는 요구를 우리에게 한다.

과연 그러한 사회속에서 나, 우리의 삶을 위한 기준으로의 효율과 쓸모에 대한 의미를 위해 계속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러한 기준점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는냐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일은 삭막한 삶이자 인생이라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아니 그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효율과 쓸모에 부합하는 인생,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비효율과 무쓸모라는 전혀 반대 되는 상황에 대한 설정을 부인하게 하거나 생각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쓸모와 효율로만 이뤄진 세상일까 되돌아 살펴 보면 그러함이 아닌 비효율과 무쓸모라는 의미를 보이는 것들도 무척이나 다양한 결속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그러함을 드러내는 작가이자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계속하는 마음" 은 우리 삶의 모습속에 발견할 수 있는 효율과 쓸모에 대한 기대감보다 예술이나 문화에 대한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비효율과 무쓸모에 대한 의미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흔히 우리는 시간과 노동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세상에서의 삶을 통해 효율적이고 쓸모 있는 존재로의 활동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삶의 모든 일들이 그렇게 효율성과 쓸모 있음으로 점철되어 있다 판단할 수 없는 일은 의외로 많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효율과 쓸모에 대해 강박적 모습으로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그것은 하나의 철칙이나 규율처럼 강제되는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주범이 된다.

그러한 측면에서 예술이나 문화적 대상에 대해 비효율적이고 무쓸모한 대상으로의 전환은 저으기 우리에게 위안과 치유의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쓸모에 대한 생각을 하면 더 많은 것들이 무쓸모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즉 쓸모라는 이야기는 '지금 쓸모 있는가' 에 해당하는 물음이고 보면 지금 당장 쓸모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연성이라 할 수 있다.



나, 우리의 삶과 인생의 시간들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지는 오로지 나, 우리의 의지와 생각에 따라 달라 진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효율적이고 쓸모 있는 삶을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비효율적이며 무쓸모한 일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저자는 자신의 경험칙에 의에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심호흡을 하고 움직이고, 멈추고, 나아가는 일을 계속하는 마음으로 하자고 주장하는것 같다.

어쩌면 그러한 과정이 우리 삶과 인생의 순간들의 연속이라 볼 수 있는 터이고 보면 그러한 과정들을 효율적으로, 쓸모 있게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비효율적이면서도 무쓸모한 방향으로의 일들도 필요한 요소임을 이해해야 한다.

효율과 쓸모만을 따져 사는 인간이 있을까? 그러한 사람은 인간이 아닌 기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기계도 효율을 위해 비효율적인 시간을 들여 휴식과 정비를 하기 마련이고 보면 효율과 비효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가 함께 수용해야 마지 않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쓸모 역시 마찬가지로 무쓸모와의 수용이 필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두 쌍의 기준들이 얼마나 융합적으로 균형잡힌 모습을 구축하느냐애 따라 우리는 지속가능한 삶, 인생에서 계속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변호사이자 작가인 저자의 예술같은 나날들을 통해 그가 보여주는 비효율과 무쓸모의 시간들이 보석같이 빛나는 삶의 편린들임을 확인하는 시간을 만나보길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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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착취 : 돌봄노동
알바 갓비 지음, 전경훈 옮김 / 니케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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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 관한 한 사랑을 전재로 한 노동임을 부인도 간과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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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착취 : 돌봄노동
알바 갓비 지음, 전경훈 옮김 / 니케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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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 감정노동,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여성 존재의 정의에 대한 사회적 의식, 이는 1970년대 부터 이어 온 여성의 무임금 가사노동, 보육, 간병, 임금 가사노동 등 재생산 구역의 다양한 임금노동을 포함하고 있는 용어들이라 하겠다.

재생산은 물질적 대상을 다시 생산한다는 의미를 가지고도 있지만 사회적 자산으로의 무형의 대상을 재생산 한다는 이를 일컬을 수도 있음이다.

물론 그러한 재생산의 주체가 여성이고 보면 이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감정노동이라는 과정을 흔하게 드러내는 '사랑' 으로 포장해 내는 억측을 염려해야 한다.

감정노동은 사랑이 아니다. 아니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고 포장하기에 감정노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우리는 그러한 감정에 의해 탄생되는 재생산이 자본주의에서 모순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자본주의에서의 감정노동의 재생산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가진 정체성을 제한하는데 두었지만 이제는 탈구속적 여성성과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의 관점에 따라 주체적인 존재의 감정노동과 재생산의 주역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을 페미니즘 운동가들의 주장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에 대한 재생산의 의미를 돞아보며 깨달음의 시간을 제공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친밀한 착취" 는 사랑받고 있음이라는 '기분 좋은 상태'로 만들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을 사는 나, 우리 모두가 바라마지 않고 있지만 그것이 가시화되지 않고, 또한 누구나 이에 대해 고마워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감정노동을 전담하는 여성들의 노동 재생산인 돌봄이 묵시적으로 친밀한 착취에 다름이 아니라 주장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지위는 가정적이며 헌신적인 존재로의 모습을 부여 받았지만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운동 이후에는 그러한 여성들의 전통적 지위를 탈속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오늘날의 현실에 있어서는 남녀평등의 가치 기반으로 그처럼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상태의 지위를 벗어나 지본주의적 노동가의 모습으로 투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흔히 이야기 하는 돌봄은 생산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단 그러한 생산적인 돌봄의 주체자인 여성은 헌신과 사랑이라는 굴레로 자신의 정체성을 담당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바람직 하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다양한 일들 가운데 일부이지만 임신, 집안 일, 환자 돌봄과 같은 일 등이 사회적 재생산의 우산 아래 있음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여성들의 노동 재생산과 감정노동의 근간을 그동안 간과했음을 주지한다.

감정재생산이 중요하건 중요하지 않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패미니즘에서의 여성은 돌돔의 사유화를 정면 배치하고 사유화 하는것을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중요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스개 소리로 들릴 수 있는 일이지만 개그적인 소리로 '소는 누가 키우나?'고 했던 물음에의 답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이제는 여성에 대해 전통적 가치관으로의 돌봄을 요구할 수 없다. 아니 해서 안되는 일이다.

돌봄을 통해 얻어지는 '기분 좋은 상태'로의 상황은 누구에게나 바라마지 않는 감정을 이끌어 내지만 그것이 비단 여성만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소는 누구라도 키워야 하듯, 감정노동에 의해 재생산 되는 우리 삶의 방향성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한 재생산의 부담을 위해 우리는 전통적 기준으로 고착화된 우리 의식속의 자본주의, 가족, 성별에 대한 차이와 차별에 대한 의식을 폐지해야 하며 우리 모두가 가진 각자의 잠재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의 일이라고 딱지가 붙은 노동, 그것이 여성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함을 고민해 볼 수 있는 페미니즘적 돌봄노동의 친밀한 착취는 여전히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전통적 의미를 고수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독을 권유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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