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문벌귀족의 지제들만 관료가 되다보니 병폐가 많아져서 왕권강화의 목적과 더불어서 고려 광종이 후주 쌍기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과거제도를 만들었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과거제도는 주욱 이어졌습니다.
과거 고려나 조선의 과거제도는 모두 중국에서 유래했는데 중국의 과거제도는 수나리 시대에 시작되어서 명청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하더군요.
특히 명청시대의 과거는 명나라에서 시작된 팔고문이란 독특한 제도가 있었는데 사실 팔고문이란 단어는 청나라 포송령이 지은 요재지이란 책에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지요.
요재지이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어떤 시장통에 장님 거지가 한 명 있었는데, 장님이지만 글솜씨 평가를 잘 해주기로 유명해서 그걸로 먹고 살았는데 손님이 글을 쓴 종이를 그 장님 앞에서 태우면, 장님이 그 연기를 맡고서 솜씨를 평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시험해 보려고 옛날 중국 대가들의 글을 태워봤더니 "오오, 내 혈관이 다 시원해지는군! 이건 틀림없이 OOO가 쓴 글일 거요." 하기에 팔고문으로 장원급제한 사람의 글을 태웠더니, 장님이 연기를 냄새 맡고는 토악질을 하면서 "이 따위 글을 왜 내 앞에서 태우는 거요? 도저히 못 맡겠군. 저리 꺼지쇼!라고 했다고 합니다.
포송령도 질색했던 팔고문에 대한 백과사전의 설명은 아래와 같습니다.
제예·시문이라고도 한다. 문체에 고정된 격식이 있어서 파제(제목의 뜻이나 의미를 설명)·승제(제목의 부연 설명)·기강·입수(본론으로 들어가는 부분)·기고·중고(본론의 핵심을 논술)·후고(미진한 부분을 보충)·속고(결론 부분)의 8부분으로 이루어진다.
'고'란 대우로 글을 짓는 것을 가리킨다. 기고에서 속고까지 각각의 고는 모두 2단락으로 대우를 이루는데, 4고에 모두 8개의 단이 있어 '8고'라고 부른다. 팔고문의 제재는 모두 '4서'에서 따온 것인데, 수험생들은 반드시 주희(朱熹)의 주(注)에 입각하여 논설을 해야 하며 자유롭게 써낼 수 없었다. 명·청대에 팔고문은 독서인들의 필수과목이었으나, 1905년 과거제도의 폐지와 함께 없어졌다.(출처:다음 백과사전)
팔고문은 관료시험으로 시제로 사서삼경의 한 구절을 뽑아서 발표하면, 그 구절과 시사를 연결지어 '나라가 이러이러하게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식으로 결론을 재는 글을 써야되는데 이때 글의 초입부터 결론까지 총 8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해서 '팔고문'이라고 하며 철저하게 사서삼경에 기반한 정격한문으로 써야 하고, 각 경전의 해석도 국가 공인 해석서(송나라 주희의 해석)를 따라야 하며, 내용도 '옛 유가의 성현들이라면 이런 결론을 내리셨을 것이다.' 하는 입장에서 진행해야 기술해야 하는데다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댓구의 '대비'와 같은 엄격한 규칙이 있어서 매우 어려운 시험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청시대를 거치면서 수 많은 과거시험이 치루어지자 나중에는 그동안 팔고문 출제된 시험문제가 정리되어서 사서삼경 중 어떤 구절이 과거시험 주제로 나올 만하고, 그 구절로 합격한 '모범 팔고문'은 어떤 내용과 형식이었나 하는 일종의 모범 답안이 나오게 되면서 이후 과거 응시생들은 이 팔고문 모법답안만 줄줄 외우고 되었고 그 결과 상식제로 능력부재인 팔고문 바보 관료들만 배출되는 폐해가 발생하게 되었고 청나라 말기에는 팔고문의 폐해를 고발하는 상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명청 당시에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팔고문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이 국내에서도 이미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팔고문은 명청대에 들어 상공업이 발전하고 유가경전을 위협하는 지식이 발달하자, 사상과 지식인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팔고문이 발달했고 벼슬을 하고자 팔고문을 배운 이들은 사상이 매우 편협해 질 수밖에 없다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니 마치 법률 바보를 양산했던 과거의 사법시험이 생각나는데 과거의 잘못을 통해서 현재를 바로 잡고 싶은 분들이라면 한번 쯤 읽어봐야 될 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by cas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