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클럽의 등장
한국 추리소설의 역사에는 새봄의 꽃을 피우기 위한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동면기가 있었다. 1958(필자는 김내성의 사망시기를 57년, 59년으로 혼용하고 있는데, 네이버에는 58년으로 되어 있네요. 그래서 58년으로 통일시킴)년 김내성이 작고한 이래 한국 문단에서는 창작 추리소설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1960년대 말 영문학자 이가형을 중심으로 한 영문학자들의 모임인 ‘미스터리 클럽’이 등장했다. 이가형, 문용, 장백일, 황종호, 권일송, 이상우, 유명우, 현재훈, 노원 씨 등이 주요 멤버로 참여하면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모두가 추리에 심취해 한때를 보냈다. ‘미스터리 클럽’의 멤버들은 지금도 종로 1가에 있는 ‘운정’이라는 음식점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모임에 동참하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 집의 안 주인을 ‘미스터리의 여왕’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임은 실제로 작품을 쓰지는 않는 말글대로 애호가들의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1980년대 들어 <최후의 증인>으로 한국일보 장편 소설 부문에 당선된 작가 김성종 등이 합세하면서 추리작가협회로 발전했다. 대부분이 영문학자이며 미스터리 마니아들이었던 이들은 새로운 외국 작품을 두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여기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대개가 고전파 소설들이었고 일본의 최신작도 심심찮게 거론되었다. 그리고 영문학자들의 모임에 현재훈, 김성종, 소년 추리소설을 쓰고 있던 이상우 같은 작가들이 합세하자 마침내 창작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세대 작가들과 전성시대
1983년 봄, 강남의 동서출판사 사옥에서 ‘미스터리 클럽’이 해체되고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정식으로 출발했다. 이가형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하고 황종호, 이상우가 부회장으로, 유명우가 총무로 뽑혔다.
협회는 김재원 씨가 발행하던 ‘소설문학’과 협약을 맺고 소설문학의 부록으로서 ‘추리소설’을 발간하였다. 편집은 당시 ‘소설문학’의 편집장이던 한분순이 맡았다.
이를 계기로 우리 문단에서 추리문학이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협회에서는 ‘우수 추리단편집’을 발간하기도 했으며, 많은 작가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추리문학 대상’과 ‘신예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을 하기 시작했다.
추리작가협회는 매년 ‘여름추리소설학교’를 개설하여 독자와 작가가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여름추리소설학교는 2007년에 제20회 개교를 앞두고 있다.
1983년 이가형 박사가 초대 회장을 맡은 이후 1987년부터는 작가 이상우가 19년 동안, 2006년부터는 작가 김성종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또한 김성종은 1990년부터 계간지 ‘추리문학’을 발행하면서 1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걸고 장편 추리소설을 모집했다. 1회에는 필자가(<저린 손끝>), 2회에는 이승영이, 3회에는 임사라가 수상했다. 이후 김성종은 부산에 추리문학관을 세워 독자들과 함께 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때 활약하던 대표적인 작가는 현재훈, 김성종, 이경재, 이상우, 노원, 하유상, 문윤성 등 1세대의 뒤를 이어 정규웅, 정현웅, 한대희, 김남, 이원두, 박민규, 유명우, 유우제, 박범신, 유홍종, 손영목, 안광수, 김광수, 장세연, 장근양 등이다.
이후 여러 신문사에서도 신춘문예에 추리소설 장르를 신설하였고, 잡지사 등에서도 신인 작가들을 많이 발굴했다.
강형원, 이환경, 김상헌, 이수광, 권경희, 이종학, 차영훈, 백휴, 최종철 등이 그 뒤를 이었으며 이들은 지금 중견, 또는 톱클래스의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2000년대에 들면서 추리작가협회에서는 신인 발굴에 힘을 쓰고, 계간 ‘미스터리’도 발간하면서 신인들을 양성해왔다. 방재희, 김경수, 황미영, 김차애, 이지연, 유성희, 서미애, 김하나, 이철호, 정가일, 김상윤, 나진인, 이하 씨 등이 계간 미스터리를 통해 활발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계속>
by cas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