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석에서 추리소설 2천 권을 읽은 반 다인
일반 문학과 순수 문학의 장르적 경계를 말하는 데 추리문학사상의 실례가 있다.
예술 평론가이며 저명한 추리작가인 반 다인(1888~1936)이 중병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의사는 그에게 순수 문학의 독서 금지령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병석에 누운 3년 동안 2천여 권의 추리소설만을 읽었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추리소설의 지적 요소와 재미와 논리성을 재발견했고, 추리소설의 작법 및 이해를 위한 책을 썼다(The Great Detective Stories, 1927).
그는 최초의 추리소설인 <모르그가의 살인사건(The Murder in the Morgue)>(1841)을 쓴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보다 훨씬 앞서 추리문학 이론을 정립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도의 기법으로 보다 고도의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추리소설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세계 각국어로 번역 출판되었으며, 추리소설로 벌어들인 수입이 과거 순수 문학이나 예술 평론으로 번 돈보다 엄청나게 많았다.
반 다인의 성공 요인과 추리소설의 특징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첫째는 환자인 그에게 순수 문학 서적을 읽지 못하게 하면서도 추리소설은 읽게 했다는 것이다. 즉, 추리소설이 다른 장르에서 볼 수 없는 흥미와 논리의 편안함을 실감하게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2천 권이라는 방대한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스스로 추리소설의 작법을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라도 정말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면 우선 많은 작품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실증한 셈이다. 추리소설의 큰 줄기를 이루는 고전파, 혹은 전통파 추리소설은 작품마다 고유의 트릭을 가지고 있는데 이 트릭은 절대 그대로 모방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읽고 그 사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이런 전문적인 문제는 다음에 세부 항목에서 다루기로 한다.)
저명한 추리평론가인 키팅이라는 사람이 쓴 유명한 추리문학 이론서의 제목이 ‘침대 곁의 동반자, 범죄’(Bed side companion to crime)이다. 이를 보더라도 병상에 있는 사람이나 잠들기 직전의 사람들에게 편안한 마음을 제공하는 것이 추리 소설임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철저히 현실적으로, 완벽한 논리로
흔히 추리소설이라면 극도의 공포나, 가장 잔혹한 형태의 살인을 묘사하여 사람의 마음을 폭발 직전에 이르도록 긴장시키거나 불안하게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런 것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위의 책들은 설명하고 있다. 추리소설이 범죄 소설처럼 독자로 하여금 스릴을 느끼게 하고 센세이셔널리즘을 동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것이 지적 바탕 위에서 논리성을 가지고 이루어진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공포소설이나 괴기소설도 추리소설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학자도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우선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논리성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우선 논리성은 철저한 현실성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철학과 미의식의 추구를 주된 임무로 하는 순수 문학은 어느 정도 비현실성이나 환상적인 요소도 용납된다. 또한 스토리가 인과 관계로 딱 맞아 떨어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재미와 논리를 추구하는 추리소설은 그러한 요소를 극단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지적 게임인 추리소설은 철저한 현실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전개도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어야 하며, 우연히 일어난 기적 같은 것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단어 하나 지명 하나에도 현실성이 없다면 그 논리를 독자가 수긍하지 않는다. 살인의 방법이나 흉기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어야만 하고, 법률 제도도 실제 응용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바탕 위에서도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야만 추리소설이 된다. 추리소설을 미국에서는 미스터리(mystery) 소설이라고 한다. 즉, 보통의 독자들은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난해하지만, 작가는 논리적으로 해결방법을 세워 놓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어쨌든 소설 속에 제시된 방법은 실제 수사에서도 가능한 해결방법이어야 한다. 실제 수사와는 동떨어진 허구로만 소설이 구성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추리소설이 아닌 것이다.
추리소설의 플롯을 초자연적, 환상적인 것에 두려는 시도도 많이 있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추리소설도 소설인 만큼 물론 실제로 일어난 사건만을 소재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픽션이라도 스토리의 전개만은 실제의 수사와 같아야만 한다.
범인을 잡지 못해 헤매던 형사가 예언가를 찾아가 조언을 들어 범인을 잡는다거나, 우연히 길에서 주운 봉투에 범인의 핸드폰이 들어 있어서 그것을 근거로 범인을 잡았다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또한 ‘전설의 고향’처럼 조상이 꿈에 나타나 범인이 도망간 곳을 가르쳐 준다거나, 육감으로 찾아간 곳에 시체가 있다거나 그러한 것도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추리소설이다.
저명한 추리작가 중에는 논리를 냉정하게 추구하는 변호사라든가, 수사 장면에 풍부한 의학 상식을 동원하는 의사 출신이 있다. 이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쓴 소설이 바로 ‘현실성’에 충실한 작품이다. <계속>
by casp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