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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올해 읽은 책 중 베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기도 하고요.
<안나 카레니나>를 완독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고 2차례 도전했지만 초반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포기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초반에 아무런 재미가 없더군요.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오랜 시간이 흘러 독서모임을 계기로 읽었습니다.
이번에 읽을 때는 처음부터 재밌더군요.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감정이 와닿았습니다. 예전에는 초반에 별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서 재미를 못 느꼈는데 이번에는 사소한 대화, 행동, 묘사가 그렇게 흥미진진할 수 없더군요.
드디어 톨스토이의 진면목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워낙 유명한 분이라 그의 다른 책들을 몇 권 읽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 <하지 무라트> 를 읽었는데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톨스토이가 왜 대단한 작가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책을 읽고 어떤 점들이 좋았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가능한 스포는 자제하겠습니다.
첫번째로는 문장입니다. 톨스토이가 문장을 잘 쓰는 작가라는 사실들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감탄이 나오는 비유들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공감가게 비유를, 묘사를 잘 할까 싶었습니다. 글을 읽는게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두번째로는 심리묘사입니다. 저는 디테일하고 깊이 있는 심리묘사를 좋아합니다. 무의식까지 묘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물들 자신조차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는 그런 순간들을 작가가 디테일하게 분석해서 묘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심리묘사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작가는 단연 도스토옙스키입니다. 그를 따라올 소설가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있더군요. 정말 인물의 심리와 감정을 훤희 들여다보는 듯한 세밀하고 치밀한 묘사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도스토옙스키와 조금 스타일이 다르지만 훌륭했습니다.
세번째로는 디테일한 생활묘사.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간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농촌의 풀베기를 체험하고, 의회에서 선거하는 것도 체험하고, 형의 죽음, 결혼, 아내의 출산, 불륜, 질투, 이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는 듯 했습니다. 이 부분들이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뭔 풀베는 걸 이렇게 길게 자세하게 썼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접 풀을 베고 노동의 상쾌함을 느낀 듯할 정도로 몰입되었고 좋았습니다. 다양한 간접체험을 깊이 있게 하고 여러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네번째로는 숨쉴 수조차 없는 의식의 흐름기법입니다. 여기서는 어쩔 수 없이 스포가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안나 카레니나가 자살을 결심하고 마차를 타고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주위를 관찰합니다. 기차역에서 열차에 뛰어들 때가지 영화로 치면 롱테이크처럼 끊이지 않고 숨쉴틈 없이 치밀한 내면묘사가 진행됩니다. 정말 역대 최고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마치 제가 안나 카레니나가 된듯이 정말 그녀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톨스토이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다음으로 <전쟁과 평화>를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