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야심경에 대한 해설서입니다. 전체적으로 좋았습니다. 다만 몇몇 이해가 안 되고 저자의 글에 비판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을 그다지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 여기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고 저는 말했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유를 말해 보겠습니다. 만약 '나는 가치가 없는 인간' 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다면, 거꾸로 말해서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 이라 여기며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세상에는 경쟁이라든가 다툼 따위가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경쟁과 다툼이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 아니다' 라는 것을 증명하고자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는 증거가 아닐까요? 남을 이기는 것, 일등이 되는 것, 남의 사랑을 받는 것, 남의 마음에 드는 것, 수많은 물건이나 돈을 소유하는 것 등으로 '가치 없는 인간'에서 '가치 있는 인간' 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면 왜 그렇게 세상에는 경쟁이나 다툼이 많고, 모두가 거기에 참가하여 애면글면 겨루고 다투며 일생을 보내는 것일까요? -p44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건지는 알겠지만 조금 비판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저자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데 제가 손가락만 바라보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일단 너무 이분법적 사고 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부분을 인식합니다. 그건은 우리가 위계가 있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존경쟁, 짝짓기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인정받고, 이성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자 합니다. 가치는 주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가치는 세계에서 객관적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가치를 올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나는 충분히 가치가 있어' 라고 인식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현실과의 괴리를 평생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 행복회로나 현실도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스럽습니다.
물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도 최우선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한 부분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스스로 그 행위를 멈출 수 없다면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p52
이 부분도 좋은 말씀인데 왠지 또 딴지를 걸고 싶습니다.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가 가능할까요? 극단적인 예를 몇 가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산다는 행위는 어떤가요? 우리는 산다는 행위를 스스로 멈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사랑이라는 행위는 어떤가요? 우리는 사랑할 때 그 행위를 스스로 멈출 수 있습니까? 집착하지 않고 멈출 수 있다면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럼 그것을 사랑하다 말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사랑을 멈출 수 있다면 자유로운 상태이지만 사랑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요?
언제든지 산다는 행위를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살아가는 걸까요? 생에 대한 집착, 욕망이 없는 사람이라니 뭔가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입니다. 부처님은 왜 깨달음과 동시에 열반에 들지 않았을까요? 왜 중생에게 가르침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부처님은 과연 그 순간 자유로웠을까요? 혹시 너무 자유에만 집착하고 자유만을 최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괜히 딴지를 걸어봅니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감정은 멈출 수 없지만 행위는 멈출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 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멈출 수 없지만 행위는 우리가 멈출 수 있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스토커가 되고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감정과 행위를 나눠서 생각하니 이제 조금 이해가 됩니다.
바라기만을 할 수 있을 때, 곧 바라는 것을 멈출 수 없을 때는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이런 상태를 '탐욕', 곧 탐내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을 때 우리는 내가 무엇인가에 속박돼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낍니다. 내 의지로는 욕망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p61
참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상태, 불교에서 말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가 긍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은 보면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즉 미친 사람인 경우가 많습니다. 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남이 말려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욕망을 멈출 수 없습니다. 법륜 스님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실망하면 욕심이라고 하셨던 거 같습니다. 혹은 자신이 10만큼 노력했는데 그 이상을 바라면 욕심이라 하셨습니다.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욕심이 지나치거나.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은 경계해야할 거 같습니다. 설령 그것이 좋은 욕망이라도 조심해야 할 거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욕망에 사로잡혀서 자신과 인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 사람들은 욕망에 사로잡혀 괴로움을 겪었겠지만요.
반야의 지혜를 완성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공하다, 실체가 아니다,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체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괴로움을 없앨 수 있다는 겁니다. -p78
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모든 것이 서로 이어져 있고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거기에 대한 판단에서 오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깐 이성적으로 이해하면 자동적인 감정적 반응들을 많이 억제 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화가 나는 행동을 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인과와 연기로 얽혀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껏 살아온 인생과 환경이 지금 그 사람이 화가 나는 행동을 하도록 한 것이고,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한 것입니다. 개가 짖는 것을 보고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개는 원래 낯선 사람을 보면 짖는 게 당연한 것이니까요. 왜 나를 보고 짖어, 감히 나한테. 이렇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쁨과 하나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그 감정과 하나가 돼 있습니다. (중략)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로부터 몸을 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합니다. -p81
역시 또 단지를 걸어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는 그 감정과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고 좋아보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과 거리를 두는 것은 왠지 아쉬워 보입니다. 너무 어른스럽다고 할까요? 기쁨과 하나과 되는 것이 기쁨을 알아차리고 거리를 두는 것보다 더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진 않을까요? 어린아이들처럼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위와 탐욕은 다릅니다. 참으로 자유로운 행위라면 언제라도 그것을 멈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p112
저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행위' 와 '탐욕'이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그것을 멈출 수 있다면 자유롭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자유롭지 않은 상태겠지요. 그래서 그것이 나쁜가요? 자유로운 것이 꼭 좋은 건가요?
자신을 받아들일 때 이런저런 조건을 붙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라고 긍정하는 주문이 필요합니다. -p171
무슨 말씀이고 의미인지는 잘 알겠는데, 그래도 좀 과한 거 같습니다. 실제로 부족한 것이 있는데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라고 긍정하는 것은 너무 이상주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자신의 부족한 점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책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이 떠오르면 책의 저자나 부처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부처님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비판적인 부분들만 적긴 했지만 좋았던 부분들이 훨씬 많은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