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김동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책을 내면서_김정현
대의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1%를 위해 99%의 희생을 강요한다. 그일을 원만하게 성취하기 위해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평등이라는 환상을 유포하고, 자본주의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내세워서 대중의 동의를 얻는다. 그리하여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된 모든 나라에서 부의 상향 재분배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우리 경우에도 독재자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이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농산물 시장을개방하여 식량안보를 위험에 빠트렸고, 온 국토를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놀이터가 되게 허용하여 국가공동체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훼손해왔으며, 마침내 전례 없는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을 초래했던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도움을 받아 초국적기업들과 글로벌 자본은 야만적인 자본축적에 가속도를 붙였다. 그렇게 반세기 가까이 신자유주의가 독주를 펼친 결과 빈곤은 더욱 깊어지기도 했지만, 자본주의적 가난은 불안감, 수치심 같은 심리적, 정신적 상흔을 동반했기 때문에특별히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기회의 평등‘이라고 하는 수사(修辭)가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가를 누구도 반박할 수 없도록 실증적으로 밝혀냈기 때문에 대중의 환호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 P4
첫째, 시민의회는 파편화된 문화, 양극화된 사회, 고립된 개인이라는문제를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선거대의제에 익숙한 우리는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원리라고 생각하지만, 시민의회는 합의가 민주주의의원칙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다수결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내 편을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헐뜯는 일이 자연히 수반된다. 그러므로 패배한 쪽은 앙심을 품고-극단적인 경우에는 투표과정에 부정이개입되지 않았는가 하고 의심하면서 다음 기회를 벼르게 되는 것이다. 한편,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경쟁이 아닌 토의(숙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모든 참가자는 의견을 개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아도 마음에 앙금이 남지 않는다. "내 의견이 존중받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누군가와 깊이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것은 처음이다." 시민의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 P9
좌담
성한용_저는 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에 특별법 만들어서 전두환·노태우 처벌한 것을 평가하고 싶어요. 우리가 일제 청산도 못 하고 김재규로 인해서 박정희 쿠데타도 제대로 정리를 못 했지만, 그래도 비록 다 집행이 안돼서 효과가 반감되긴 했어도 전두환 쿠데타는 청산을 한 셈이에요. 비상계엄 발표 나자마자 사람들이 곧장 막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즉시 움직였던 배경에는 성공한 쿠데타도 사법처리가 된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 P12
김동춘_저는 민주주의의 공고화(democratic consolidation) 이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 정치학자들이 후발국의 민주화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말인데, 주기적이고 투명한 선거, 평화적 정권교체, 군사정권으로의 역전 불가 등이 가능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죠. 저는 과거사 문제에 오래관여해왔지만 그쪽에서 흔히 쓰는 ‘이행기 정의‘라는 말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군사독재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했다는 말인데, 독재를 경험한 후발국이 서구적 자유민주주의를 제도화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요. 이건 미국의 주류 정치학자들이 그들의 정치이론을 세계에 - P14
설파하기 위해 만든 모델이에요. 저는 한국과 같이 냉전과 분단이 지배하는 나라에 이런 이론은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해왔어요. 무엇보다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이런 근대화론적인 발상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P15
김정현_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우리 정치지도자들에게 결여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번 정부에서 두드러진 모습은 정치가 실종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국민 여론에 호응하거나 야당과 협치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비판자들에 대해선 심지어 언론까지 모조리 소송으로 대응하면서 사법으로 제압해왔지 않습니까. 반정치주의가 극단적인 정치의 사법화라고 해야 할지 이런 형태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 P21
김동춘_맞아요. 극우세력이 동원하는 담론이 미국에서 인종주의라면한국에선 반공주의입니다. 반북·반공이 이들의 문화적 자원이죠. 그걸깰 방법은, 지적하신 대로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서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 체험하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고, 또 역사교육도 필요합니다. 저는 어디서나 10% 인구는 파시스트 혹은 왕조시대의 사고를 갖고 있다고 봐요. 그리고 복음주의 기독교인처럼 맹목적이고 제도정치나 현실정치에 무지한 사람들이 10% 있어요. 즉 20% 정도는 민주교육을 받았더라도 어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서 모든 일을 일거에 해결하기를 바라고, 만사를 선악의 구도로 봅니다. - P24
김정현_앞에서 김동춘 선생님께서 신자유주의 세계를 지배해온 우익세력에게 자본주의가 초래한 난국을 헤쳐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 분열을 부추기고 폭력에 의존해서 권력을 유지한다고 하셨는데, 좀더 설명해주시겠어요? 김동춘_오늘의 세계체제라고 하는 건 결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타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민주주의로 적절하게 제어해온 것입니다. 거칠게 말해서1원 1표제로는 체제가 붕괴하게 생겼으니까 자본가들이 일정 정도 양보를 한 것이지요. 가장 진보적인 형태가 사민주의 복지국가라면 군사독재는 가장 퇴영적 모습입니다. 그런데 1991년 사회주의 붕괴 이후 민주주의와 타협할 필요가 없어지자 자본주의의 고삐가 풀려버린 거예요. 그렇게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폭주가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나타나고 복지국가가 붕괴합니다. 제조업 기반을 포기하고 양극화가 극심해진 건 어설픈 복지국가였던 영국과 미국이고, 그 정도로는 안 망가져도 세계화 여파로 이주노동자들이 밀려들자 유럽에서도 극우세력이 등장합니다. 사민당, 노동당도 몰락하거나 우경화됐죠. 이렇게 최근 - P26
한 20년 사이에 이른바 선진국들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징후들이나타났는데 좀 극단적 형태가 미국, 영국, 브라질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신자유주의체제를 이끌어가는 보수세력들은 안정적 노동시장에서밀려난 사회적 약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인종주의, 이주민 혐오를 부추기는 거예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원망이정치권이 아닌 이주자들을 향하게 만들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것이죠. 미국 트럼프, 브라질 볼소나로, 프랑스 르펜, 독일을위한대안(AfD) 또 오스트리아, 스웨덴에서도 극단적 정치세력이 부상하고 있어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타협이 깨졌는데, 조직노동이 해체되니까민주주의를 뒷받침할 세력이 사라졌고, 좌파, 진보세력이 무력화되고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니까 중도에 있던 사람들과 노동세력이 오른쪽으로 가서 우익이 독주를 하다가 자멸의 과정에 접어든 것이죠. 기만적이긴 했으나 지난 세기에 미국이 저개발국에 경제적 수혜를준 건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냉전이 무너지자 그 정책도 버리기 시작했고 노골적으로 나타난 게 트럼프주의입니다. 이제 미국의 헤게모니가작동하지 않는데 중국은 미국 정도의 대항적 패권은 만들어내지 못한상태에서 중국도 시진핑의 국가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현재는 사실상 ‘글로벌 우익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안 없는 글로벌우익체제의 한국적 현상이 윤석열 방식이라고 봐야죠. - P27
하승수_해법은 정치의 다양성 확보, 다당제를 통해 저마다 의제를 가지고 경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이 내란 같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면 당분간 상대편은 거저먹을 수 있는 거대 양당 구조가 문제예요. 극우 정치세력의 부상을 막기 위해서도 다당제가 필요합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사실상 극우세력이 주도권을 갖고 있잖아요. 두 개 거대정당 중에서 하나가 사실상 극우라는 사실은, 유럽 다당제 국가들에서제일 오른편에 극우 정당이 존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더욱이 민주당도 보수 내지 중도라고 할 수 있으니까, 진보적 입장에서불평등이나 기후위기 같은 문제에 대한 해법이 나오기 어려운 거예요. 그러나 다당제 구조라면 민주당보다 진보적이거나 생태적인 정당을 찍거나, 혹은 지역정당에 투표할 사람들이 있거든요. 또 저는 한국에선신자유주의와 맞물린 수도권 일극 집중이라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모든 권력과 자본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비수도권지역이 소외당하고, 농촌이 마치 수도권 도시지역의 식민지처럼 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도권 일극 집중에서 벗어나는 일이 지금필요한 전환의 핵심인 것 같은데, 이 문제도 거대 양당에선 논의조차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 현실의 다급한 여러 문제를 풀려면 다당제정치구조는 필수적입니다.
성한용_민주주의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라는 걸 눈치채기 시작한게 저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항상 불안한 건 당연한 거예요. 이번 기회에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학습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말씀드렸듯이 저는 반정치주의의 극복이 가장중요하다고 봅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정 - P39
치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도 정치인데, 정치라고 하면더럽고 피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요. 반정치주의를 유포시키는 분단체제 기득권 세력들과의 전쟁에 저는 남은 힘을보태고 싶습니다. 촛불·응원봉 시민들도 국회나 정당을 백안시하지 마시고 정치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 함께해주시면 좋겠다는 당부를 드리고 싶어요. - P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