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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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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때부터 시작된 젠더 디스포리아를 벗어나는데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일상이 연기였다. 내가 되는 길이, 나로 사는 길이 이렇게 어렵다는 걸. 그런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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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이 시작되기전 사진액자에 비친 내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긴 머리가 내 얼굴을 감싸고, 이마가 반들거리는 모습. 저건 누구지? 밀려오는 욕지기. 액션, 사라진다. - P239

나에게 토론토에 있는 인터랙트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처음알려준 것은 마크였고 나 역시 1년 뒤 그곳에 다니게 된다. 그곳에서도 나는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마크가 완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면서, 그럼으로써 나 자신에게도 가능한 한 그만한 공간을 내어 주는 일이었다. 부모님의 성향덕분에 마크는 나보다 훨씬 과잉보호를 받으며 지내는 편이었다. 학교에서도, 일터에서도 마크는 늘 부모님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소외되어 지내면서도 결코 혼자 있을 수는 없는 그런 아이들은 아역배우 세계에 흔히 존재한다. - P242

내가 느끼던 소외감과 외로움이 2000킬로미터나 떨어진 버지니아까지 따라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캐나다에는 쇼핑몰도 없어?" 사촌이 물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 고카트를 생각했다. 따뜻하던 호수도 생각했다. 성이 난 오리들. 해변에서 마신 차가운 펩시콜라. 정말 맛있던 꽁꽁 언 초콜릿 바.
‘어째서 여기선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 여기라고 해서 열네살 ‘톰보이‘가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P251

제시카 옆에 있으면서 나는 변했다. 동네에 퀴어라고는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내 앞에 그녀라는 사람이 나타난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고, 두려움과 수치심을 극복하고 당당히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걷다가 마주칠 때, 파티에서 그 애를 볼 때, 그 애가 쇼핑센터에서 만드는 샌드위치를 먹을 때, 나는 그 애한테반한 것이 아니라 그저 가능성과 가까운 곳에 존재하고 싶었던 거다. 그녀라는 존재가 내 눈에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너무나 큰 의미였다.
지금도 나는 세상을 걸어 다니며 그 일을 생각한다. - P272

이제 와 돌아보면, 나는 그 촬영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갈 걸 미리 눈치 챘어야 했다. 촬영 첫 주, 누군가가 세트장에서 키어시에게찾아와 테이크 사이사이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잘 알겠지만 네가 이 역할을 맡게 된 건 네가 흑인이라는 이유밖에 없어.
내 경우에는 첫 번째 의상 피팅 날에 감이 왔다. 순식간에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더 여성스럽게. 내 눈앞에는 하이힐이며 치마가 펼쳐져 있었는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가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레지던트 의대생들의 이야기인 이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며칠이 흘러가는 동안내가 맡은 배역은 옷을 거의 갈아입지 않는다. 나는 내게 주어진과제를 이해했고 그에 순응할 작정이었지만 그 인물이 하이힐이나치마를 입기에 합당한 이유는 절대 없었다. 나는 고급스러운 블라우스, 달라붙는 청바지, 굽이 달린 부츠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이사안은 해결됐다. 문제는 해결됐다. 그리고 그 문제란,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거였다. - P278

‘내게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아니, 단지 그런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절벽 끝까지, ‘거의‘ 떨어지기 직전까지스스로를 한껏 밀어붙이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가장 최악이던순간에조차, 내 안의 작고 작은 어떤 부분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미약하고, 손에 잡히지조차 않는 가느다란 틈 그리고 그 틈을 통해 모든 것이 쏟아져 들어온다. 순식간에 붙잡아야 한다. 그 안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다.
눈을 감고 걸어 나와.
커밍아웃을 한 뒤, 충격적이게도,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내 삶은 나아졌다. 나는 가슴 주머니에 그 경험을 추천서처럼 넣고 다닌다. ‘이 일을 해냈으니 세상에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 P296

젠장, 여태까지 너무나 많은 유턴을 한 나머지 현기증이 나기억을 잃었던 게 분명했다. 비의 말을 듣는 순간 지난 일들이 플래시백처럼 펼쳐졌다. 나는 친구들에게 질문했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진실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길 거듭했다. 새로운배역으로, 새로운 화보 촬영으로, 새로운 연애로, 새로운 공항으로, 새로운 타이트한 스포츠브라로 옮겨가면서. 나는 이 사실을 똑바로 마주봐야 해. - P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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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내 삶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끊임없는 대화를 주고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 두 가지는 서로 별개라는 것이다. 퀴어로 커밍아웃한 것은 트랜스, 즉 타인의 기대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뒤진화한 나 자신으로 커밍아웃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이런 기억들은 비선형적인 서사를 이루는데, 퀴어함이란 본질적으로 비선형적인 것, 굽어지고 틀어지는 여정들이기 때문이다. 두 발짝 앞으로 나섰다가, 다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 나는 내 삶의많은 부분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아주 조금씩 깎아나가는 한편으로 무너질까 두려워하며 보냈다. 그 과정 역시도 의도적으로 내글에 담았다. 여러 의미에서 이 책은 내가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 P11

「주노」가 성공을 거두자 영화계 사람들은 내게 내가 퀴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야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한테 해가 될거라고, 내게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고, 그게 최선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래서 나는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했다. 사진촬영을 했다. 폴라를 비밀로 간직했다. 그러면서 우울증과 쓰러질 정도로 심각한 공황발작에 시달렸다. 나는 거의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몸속에 못이 가득 든 것처럼 무감각했고 조용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고통이 얼마만큼 큰지조차 표현할 수 없었다. 특히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적어도 남들이 그렇게들 말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나는내가 느끼는 감정이 과한 거라고, 내가 감사할 줄 모른다고 스스로를 비난했다. 아프다고, 꼼짝도 할 수 없다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기에는 죄책감이 너무 컸다. - P28

내가 나를 알게 된 건 네 살 때였다. 핼리팩스 시내, 퍼블릭가든 건너편 사우스파크 스트리트에 있는 YMCA 유치원에 다니던시절이었다. 짙은 색 벽돌로 되어 있던 건물 외벽은 이후에 철거한뒤 재건되었다.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애초부터 알았다. 의식적으로 안 게 아니라,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였다. 그 감각은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그리고 선명한 기억 중 하나다. - P35

아버지는 나와 단둘이 있을 때와 온 가족이 있을 때 참 다른사람이었다.
"린다와 네가 물에 빠지면 나는 널 구할 거다." 아버지는 남몰래 내게 말하곤 했다. "린다는 내 평생의 사랑이 아니야. 너야말로내 평생의 사랑이지." 그건 비밀이었다. 아버지가 대놓고 비밀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는데, 린다 곁에 있을 때는 에너지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에게는 둘만의 노래인 루스 브라운의 참견하지 마Ain‘t Nobody‘s Business」가 있었다. 나를 학교에 태워다 줄 때면 아버지는 이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부르곤 했다.
린다 곁에 있을 때 그런 ‘사랑‘은 증발해버렸다. 말투도, 몸짓도, 표정도 변했다. 마치 두 사람이 하나로 뭉쳐 작당이라도 한 것같은 차갑고 냉랭한 태도에 내 눈길은 절로 바닥을 향했다. 린다는 사람들 앞에서 내게 못되게 굴었고 둘만 있을 땐 더더욱 못되게굴었다. 나는 아버지와 나만의 비밀을 잘 숨겼다. - P67

전문 배우가 되는 동시에 쇼핑몰에서 "녀석, 고맙다."라는 말을 듣는 시절도 끝이 났다. 배역을 위해 머리를 기르고, 신체의 변화를 목전에 두었던 나는 세트장에 있는 시스 남자아이들을 빤히바라보곤 했다. 칼라 달린 셔츠, 멜빵, 반바지에 타이츠는 입지 않은 아이들. 머리에는 리본이 아닌 뉴스보이 모자를 쓴 아이들.
왜 나는 저 모습이 아니지? 나는 저들처럼 움직이고, 저들처럼 연기하는데.
어린아이 시절부터 시작되어 대상포진처럼 골수에 깃들어 있던 괴로운 느낌이 예고도 없이 닥쳐와 온몸에 퍼지며 내 신경을 노출했다.
어머핏 포니를 촬영하는 동안 나는 젠더 디스포리아에 시달렸다. 풀로 붙인 것처럼 딱 달라붙던 타이츠도, 하늘하늘 날리던 드레스도 빌어먹을 리본은 어머니가 내 머리카락에 꽂아 주던 머리핀처럼 해소되지 않는, 내면화된 울화를 자극했다. - P75

아버지를 용서하기는 그만큼 쉽지 않았다. 당장 토론토로 가서네 엉덩이를 걷어차 주마. 자기 자식이 보호를 필요로 했을 때, 자기자식이 사랑을 필요로 했을 때, 그는 폭력을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미성년자인 내가 겁도 없이 성인 남자와 인터넷으로 교류했다는이유로 노여워했다. 그 순간에 내게 돌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순간에 내게 안전과 사랑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영영 그런 것을 얻을 날은 없지 않을까? 아버지의 그 한마디 말은 그 남자의 위협보다, 그의 집착보다, 내 팔을 훑던 그의 손가락보다 내 몸속에 더욱오래 머물렀다. - P89

2014년의 커밍아웃은 선택했다기보다는 하지 않을 수 없어서한 것이었지만, 맞다, 그건 내가 나 자신을 위해 한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노출되고 취약해지는일이 잇따랐다 한들, 커밍아웃은 그 모든 걸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걸음이었다. 나는 숨어서 고통받느니 살아 있으면서 고통을 느끼고 싶었다. 어깨를 활짝 펴고, 심장을 환히 드러낸 채, 나는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방식으로, 손을 잡고세상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공허함이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익숙한 낮은 목소리. 그 속삭임은 여전히 선명하게 내 귓가에 맴돌았다. - P111

수줍어하던 나는 점점 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갔다. 벌써 그녀가 나를 아끼고, 지켜 주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졌고, 그럼에도 어른 행세는 전혀 하지 않았다.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그렇지만우리의 친밀함은 그 영화를 촬영한 경험이 열아홉 살의 내 자아에미친 영향을 아주 약간 완화해 준 데 그쳤다.
「아메리칸 크라임은 1965년 인디애나주 역사상 한 명의 희생자가 겪은 최고 수위의 학대를 경험한 열여섯 살 소녀 실비아 리킨스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다. 잔인한 영화지만 실화의 끔찍함에비하면 자제한 편이다. 나는 실비아 역을 맡게 되었다. - P123

내가 맡은 배역들은 나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러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연기란 다른 인간의 경험을 탐구하는일이다. 공감하고,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자 바라는 마음으로, 감정이 솟구쳐 오르기를 기다리는, 결코 끝나지 않는 연습이다. 눈을 감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깊은 절망이 내게 닥쳐왔다. 실비아는 어떻게 그토록 오래 버틴 걸까? 어떻게 포기해버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고문이란 사람을 끝까지 끌고 갔다가 다시 끌어당기는 일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는 것이리라. - P127

촬영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특히 더 힘든 날이면 키너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돌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테킬라를 마시고 키너의 집 벽난로 앞에 앉았다. 음악을 크게 틀어 두고, 알 수 없는 커다란 모험을 앞둔 채 춤을 추고 또 췄다. 우리가 만나게 된 계기인 이 영화에서는 키너가 나를 살해한다. 실제 세계에서 키너는 내 하나뿐인 구원자였다. - P129

비록 그 배역을 맡게 되리라는 걸 스크린 테스트 전부터 넌지시 알고 있었음에도, 배역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기뻐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 가슴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인물을 연기하게 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꿈꾸던 배역에 캐스팅된 것이다.
애초의 계획대로라면 스크린 테스트가 끝나고 두 달 뒤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결국 촬영이 밀렸고, 회복할 시간이 생겼으니 내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자기억제는 여전했지만 음식을 먹는게 훨씬 더 편해졌고 일은 내게 도움을 주었다. 주노 세트장에 있으면 치유받는 기분이었고, 고문의 장면들이 나를 집까지 따라오지도 않았고, 나는 내 몸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나게 나아졌다. 그 어떤 의미도 없다는 기분으로 지내다가, 드디어 무언가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우울감이 나를 껍데기만 남기고 빨아들여 버렸는데말이다. - P135

내 옷은 내 허벅지에, 가슴에, 거머리처럼, 1990년대에 유행하던슬랩 팔찌처럼 철썩 달라붙었다. 여성스러운 옷을 입었을 때 마치내가 기적 같은 승리라도 거두었다는 듯 환해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내 얼굴은 일그러졌다. 내가 칸 영화제에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프리미어 시사회를 위해 몸에 딱 붙는 금빛드레스를 차려입었을 때 기뻐하던 얼굴들을 앞으로도 영영 잊지못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예쁘잖아."
울 "그냥 게임을 한다고 생각해."
나 개인의 삶에서 하고 있는 연기가 이미 나를 숨 막히게 하고 있는데 스크린에서도 연기를 한다는 것은 너무 큰 압박이었다. - P156

할리우드의 바탕은 퀴어함을 지렛대처럼 활용하는 데 있다. 필요한 순간에는 치워버리고, 이익이 될 때는 끄집어내면서 자기들끼리 뿌듯해하는 것이다. 할리우드는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때늦게, 한참 뒤처져 반응하고 따라간다. 할리우드라는 깊숙한 벽장은수많은 비밀을 묻어 버리고 그것이 불러오는 결과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내가 퀴어라는 것 때문에 벌을 받는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대놓고 학대하면서도 보호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뒤틀린 체계에서 잔혹성은 보편적이며 평범하게 보이고, 이를 해소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리어 이상해 보인다." 꼭읽어 볼 만한 책인 세라 슐먼Sarah Schulman의 『끈끈한 유대감: 가족 내의 호모포비아와 그 결과 Ties That Bind: Familial Homophobia and ItsConsequence』에 나오는 구절이다. - P163

불안감은 사라질 줄 몰랐다. 무언가가 나를 자꾸만 짓눌렀고,
공황발작 때문에 도저히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운전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 날들도 많았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아무런 의욕이 없었으며, 바라는 것도 없었다. 처음으로 제대로된 심리치료사에게 나를 데리고 가서 삶을 구하는 조언을 얻게 해준 건 매니저였다.
"진짜 당신을 드러낼 수 있는 장소로 가야 해요." 스물세 살에만난 새로운 심리치료사가 말했다.
"안 돼요, 그건 불가능해요." 나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내 퀴어다운 걸음걸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다.
젠더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너무 뜨거워서 건드릴 수도 없는 주제였으니까. 내가 젠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게 되기까지, 내가 나 자신에게 충분히 귀를 기울이게 될 수 있기까지 이로부터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 극한에 몰린 나머지 더는 선택지가 없어질 때까지. 길 위의 마지막 갈림길에 놓일 때까지.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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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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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었을지, 이 책을 쓰기 위해 또 얼마나 힘들게 그 과정을 복기했을지. 읽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티끌이겠지만, 오해하지 않기 위해 읽겠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그런데 왜 알라딘 작가 소개에 영문 이름은 아직도 Ellen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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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0-21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햇살과함께 2023-10-21 20:56   좋아요 0 | URL
ㅋㅋㅋ 감사. 안바뀌면 따로 수정요청할까봐요

알라딘고객센터 2023-11-16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고객님.

말씀하신 저자명 수정하였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 2023-11-16 21:54   좋아요 0 | URL
네~ 확인 감사합니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벡델이 운동을 좋아하여 여러 운동을 즐기는 이야기인가 보다 했다. 전작들과 달리 깨끗한 흰색 표지에 화사한 색감으로.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운동이든, 그림 작업이든, 명상이든 녹초가 될 때까지 극한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내면을 찾아가는 벡델의 여정을 10년 단위의 연대기 순으로 보여주는 그래픽 노블이다.


벡델의 내면 찾기 여정은 <펀 홈>에서부터 시작된다. 첫 책 <펀 홈>이 동성애자였으나 평생 커밍아웃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대한,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면, 두번째 책 <당신 엄마 맞아?>는 동성애자인 남편과 평생 살아온 엄마에 대한, 벡델 자신의 심리상담과 어우러진 엄마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번째 책인 <초인적 힘의 비밀>은 벡델 자신의 내면과 육체에 오롯이 중심을 둔 이야기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초인적 힘의 비밀>이 그래픽 노블의 측면에서 두 권의 전작과 다른 점은, 전작은 흑백 바탕에 단색의 채색(1편은 탁한 푸른 빛, 2년은 탁한 자주 빛)을 음영의 차이만으로 표현하여 책의 색감 자체가 어둠 속에 웅크린 심리를 묘사한 것 같다면, 이 책은 알록달록한 화려한 채색으로 표현하여 내용의 무거움을 상쇄하고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내지를 보면 덱벨과 동성 결혼한 배우자인 화가 홀리 래 테일러가 채색 협업을 했다고 언급되어 있다(이 책 마지막에 등장하는 연인이다). 벡델이 내면을 찾아가는 작업을 통해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픽 노블이 줄 수 있는 글과 그림, 색채의 조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책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작가들이 언급되어 있다. <펀 홈>에서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작가들(제임스 조이스, 알베르 까뮈, 스콧 피츠제럴드, 마르셀 푸르스트, 오스카 와일드 등)과 그들의 책이, <당신 엄마 맞아?>에서는 벡델이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읽는 정신분석 관련 책들과 버지니아 울프, 실비아 플라즈, 에이드리언 리치, 베티 프리단 등 여성작가 책이 연결되어 있다. <초인적 힘의 비밀>에는 윌리엄 워즈워스와 여동생 도로시 월즈워스와 새무얼 테일러 콜리지의 관계(얼마 전에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집 안의 천사 죽이기>에도 언급), 랄프 왈도 에머슨과 마거릿 풀러(수전 손택의 희곡,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에 나온 반가운 이름)의 관계, 잭 케루악과 윌리엄 버로스 등의 우정인 듯, 우정을 초월한 듯한 관계들이 언급되어 있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벡델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 관련 책을 좀 더 읽어봐야 하겠다.


벡델은 운동으로 마치 스스로에게 벌을 주는 것 같다. 무엇이 이렇게 벡델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벡델은 내면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 육체를 지치게 하는 것일까.


벡델은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라고 묻는 연인에게 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라고 망설이며 말한다.


그러나, 점차 깨닫는다.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것. 변화는 앞으로 나가간다는 뜻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본질적으로 한 곳을 향하지. 무덤.’이라고


'초월할 것은 초월할 것이 있다는 생각 뿐이야.'


'마침내 이해했어'


'무덤으로 향한다는 사실!'



벡델 3부작은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1권부터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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