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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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첫문장부터 울컥한다.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팟캐스트 <여둘톡>을 얼마전부터 듣기 시작했다. 에피소드 5화에서 이 책을 소개해줘서 마침 집에 책이 있어서 읽기 시작했다.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추억하며 엄마와 함께 한 한국음식을 기억하는 상실과 애도에 관한 책이다.

기사를 검색하다 미셸 자우너 작가가 2024년 현재 한국에서 1년 살기 중인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가족 모두 한국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왔지만 엄마의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병원 신세만 지다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때의 엄마의 말을 기억하며 한국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으로 당연히 알고 있는 한국음식들(죠리퐁, 뻥튀기, 된장찌개, 만두, 삼계탕, 탕수육, 짜장면, 계란찜, 잣죽 등)을 묘사하는 문장이 무척 재미있고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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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빠에게서 전화를 넘겨받았다. 엄마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우리 가족이 다 같이 한국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시에 엄마는 한동안 몸 상태가 그럭저럭 괜찮았고, 의사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지금은 죽어가기보다는 살아가기를 선택할 때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엄마는 자신의 조국과 언니에게 작별인사를 할 기회를 갖고 싶어했다.
"서울엔 네가 아직 못 가본 작은 시장들이 있어." 엄마가 말했다. "광장시장 같은데, 거기선 고릿적부터 아주머니들이 빈대떡이랑 갖가지 전을 부쳐서 팔고 있지."
나는 눈을 감고 눈물이 흐르는 대로 그냥 놔두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서울에서 함께 지내는 모습을 그려보려고 애를 썼다. 녹두 반죽이 기름에 지글지글 지져지고, 고기 패티와 물 - P201

기를 쫙 뺀 굴에서 계란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엄마가 너무 늦기 전에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설명하면서 우리에게 볼 시간이 앞으로 더 많다고 생각했던 모든 장소를 내게 보여주는 모습을 상상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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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H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H는 한아름의 줄임말로, 대충 번역하자면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조기 유학 온 아이들은 고국에서 먹던 갖가지 인스턴트 라면을 사러, 한인 가족들은 설날에 해먹을 떡국 떡을 사러 이곳에 온다. 큼직한 통에 담긴 깐마늘도 여기서만 살 수 있다. 한국 음식을 해 먹는 데 마늘이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주는 곳은 이곳뿐이라는말이다. H마트는 일반 슈퍼마켓 매대 중 달랑 한 칸을 차지하는 ‘세계 전통식품‘ 코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 P9

나의 슬픔은 뜬금없는 순간에 들이닥치기 일쑤다. 나는 욕조에 엄마의 머리카락이 허다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게어떤 기분인지에 대해서는, 5주 동안 날마다 병원에서 밤을지새운 일에 대해서는 태연한 얼굴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H마트에서 낯모르는 아이가 뻥튀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양손에 하나씩 집어드는 모습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다. 원반 모양의 그 앙증맞은 쌀과자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 P12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부아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내가 생판 알지도 못하는 이 한국 노인에게 짜증이 난다. 이 여인은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단사실에 화가 치밀어오른다. 마치 생면부지의 이 여인이 살아남은 것이 내가 엄마를 잃은 것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우리 엄마 나이에도 자기 엄마를 곁에 둘 수 있다는 사실에 골이 난다. 저 노인은 여기서 이렇게 매운 짬뽕을후루룩거리며 먹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은거지? 분명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인생은불공평하고, 때로는 분별없이 남 탓을 해보는 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 P14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H마트에서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사람이 얼마나 될지, 쟁반에 음식을 올려 가져오면서 가족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이 사람들이 여기서 무언가를먹는 것은 음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고 축복을 나누 - P18

고 싶어서일까? 이중에 누가 올해 또는 지난 10년 동안 고향에 못 갔을까? 누가 나처럼 죽을 때까지 영영 못 볼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 P19

우리는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굴에 다쓰여 있다. 저마다 조용히 앉아서 점심을 먹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다 같다.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한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각자제 기숙사 방으로, 교외의 부엌으로 흩어져서, 열심히 장 본것을 부려놓는다. 그리고 이 긴 여정 없이는 만들지 못했을 음식을 살뜰히 재현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트레이더 조 매장에는 없다. H마트는, 아무데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을 여기서는 반드시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인 향기로운 공간이다. - P21

버스는 초저녁에 도착했다. 덩컨은 내게 케이크 숍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곳은 지하에서 이런저런 공연을 하는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작은 바였다. 나는 주말에 입을 옷가지로 불룩한 배낭을 메고 바를 향해 엘런 스트리트를 걸었다. 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내가 유행에 동떨어진 차림을 한 10대 청소년 같다는 느낌이 확 밀려왔다.
봄이 여름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고 사람들은 윗도리를벗어서 팔에 걸치고 다녔다. 익숙한 근질거림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어떤 야생적인 상태- 낮이 더 길어져 도시를 걷는 일이 아침부터 밤까지 마냥 기분좋기만 한 때, 모든 책임을 저 - P72

길가로 내던진 채 운동화를 신고 텅 빈 거리를 생각 없이 내달리고 싶은 그런 때를 향한 갈망이었다. 하지만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충동을 외면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름방학이, 유유자적한 나날이 내게 더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조만간 뭔가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받아들여야 했다. - P73

가끔씩 나는 부모님이 휴일 파티 때 마시다가남겨둔 술을 빼돌렸다. 마치 화학자처럼 조심조심 이 병 저 병에서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덜어내어, 그걸 탄산음료와 섞어 공원에서 마셨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다니면서 음악을 들었다. 때로는 한 시간 거리를 달려 덱스터저수지나 펀 리지까지 가서, 선창에 앉아 석유처럼 검은 물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 막막하고 황량한 물을, 우리가 우리자신에 대해 얼마나 혼란스러워하는지, 우리가 느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위한 공명판으로 삼았다. 또 어느날에는 스키너 언덕으로 올라가서 우리를 볼모로 붙들고 있는 따분한 도시를 내려다보거나, 24시간 문을 여는 아이홉 식당에 가서 커피와 해시 브라운 감자를 먹었다. 아니면 언젠가우리가 발견한, 끈이 긴 그네가 있는 남의 땅에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 한번은 차를 몰고 공항에 가서 멍하니 터미널을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온 적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그토록 여행하고 싶던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야행성 10대 몇몇은,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외로움과 AOL 채팅 프로그램으로 하나가 됐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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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데모 - 데모하러 간다 아무튼 시리즈 63
정보라 지음 / 위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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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를 따지지 않고 직진하는 씩씩한 데모 생활인 정보라 작가의 국내외를 넘나드는 데모 이야기. 모든 데모는 연결되고 모든 집회는 연대하는 한마음임을. 특히, 전장연의 투쟁과 연대에 존경의 마음을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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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전장연 집회에서 처음 배웠다. 바퀴 달린 가방을 꿀며 보도에서 턱이 없는 곳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널 때나는 턱 없는 거리를 위해 누군가 목숨을 바쳤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않는다. 그런데 살아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당했던 분들은 그토록 온몸을 던져 사회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도록 애쓰고 노력했건만 죽어서도 장애인이라서 그냥 묻히거나 지워졌다.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거리에서 활동했다면 장애인 열사들, 빈민운동열사들은 대학생들이 알지 못하거나 가지 못하는 장소 곳곳에서 인권과 평등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어느 한쪽은 인정받고 다른 한쪽은 그냥 사라져버린다는 것은 진심으로 서럽고 억울한 일이다. - P47

참가자에게 간식과 음료 등을 나누어준 분들이 오소리-소주 부부였다. 그분들은 당연히 나를 모르고 나만 신문기사 등에서 소송 소식을 보면서 응원했기 때문에 혼자 속으로만 무척 반가웠다. 이후 2023년 2월, 동성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소송 2심에서 1심 판결이 뒤집혀 동성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이 인정되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판결문은 동성배우자가 건강보험 등 공식적인 제도에서 피부양자가 될 수 없다는 결정이 "성적 소수자에 대한차별",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고 명시적으로 비판했다. 성소수자와 앨라이 모두 무척 놀라고기뻐했다. 이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은 정말 혁명적인명문이며 일대 사건이다. 이참에 빨리 차별금지법도제정되고 동성혼 법제화도 이루어지고 생활동반자법도 만들어지고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 P65

휠체어를 사용하는 학생이 수강을 했는데 이른 아침 시간 수업인데도 지각 한번 안 하고 아주 성실하게 참여했다. 그런데 폭우가 온다는 예보가 있던 어느 날 그 학생이 수업에 20분 늦었다. 나는 비장애인답게 폭우때문에 교통이 막혀서 늦은 게 아닐까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나의 학생은 제시간에 학교에 도착했다. 그런데 폭우 예보 때문에 건물관리 직원이 입구 앞에 모래주머니를 늘어놓아서(쌓아놓은 것이 아니다) 휠체어가 진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건물 정면으로 돌아가 경사로를 올라가서 2층에 도달해서 (왠지 경사로를 타고 올라가면 2층이 나온다) 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서 마침내 타고내려와 복도를 빙빙 돌아서 강의실에 들어오기까지괴롭고 복잡한 기나긴 20분과 함께 상당한 체력을 공연히 소모해야만 했던 것이다. - P80

예수님과 십자가 등의 그림을 그리면서 "야 내가 그린 예수님 끝내주지 않냐!"라고 외치며 서로 그림 실력을 자랑하는 중이었고 그 뒤에 수녀님들이 앉아서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신부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예수님‘과 ‘끝내준다‘가 한 문장에 같이 들어갈 수 있는 단어들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 어쨌든 신부님들은 대략 남자고등학교 동창회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며 왁자지껄하게그림을 그리면서 즐거워했고 나는 안심하며 도로 서명을 받으러 갔다. 나중에 지나가면서 보니까 아까예수님 끝내준다고 외치던 신부님들이 십자가와 노란 리본 목걸이를 걸고 ‘세월호 동조단식‘ 몸자보를입고 정자세로 엄숙하게 앉아 있어서 좀 웃겼다. - P100

내가 데모하러 다니지 않았다면 세월호 농성장에서 동조 단식 천막 앞에 서 있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배너도 못 보았을 것이고, 나에게도 노조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며, 대학강사가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서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불안정한 직종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그냥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교수가 되겠지 하고 지금도 꾸역꾸역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가 해고 상태인지 고용된 상태인지, 해고당했다면 언제 해고당했는지 본인도 모르는 직업이라니. 그래서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이라든가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해고 피해를 토로하면서 해고 일자와 해고 통보를 받은 정황을 명확히 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부러웠다. - P129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학교 측에보고하기 위해서 일종의 채증을 하는 것이다. 학과 사무실에서 항상 보던 조교인데 이제 학교 측을 위해서 학내 집회를 염탐하러 오고 사진도 찍으니 해고 강사들은 배신감을 토로하며 분노했다. 그런데 몇 달 지나지 않아 학교 측이 이 전업 행정조교들을 전부 해고했다. 그래서 해고당한 조교들이 대학노조에 가입하고 해고당한 강사들과 함께 싸우게 되었다. 이러니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것이다. 노동자가 사측 편들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사측이 보기에 노동자는 그냥 소모품이다. 저 사람을 염탐하면 내가 안 잘리는 게 아니다. 다 함께 맞서서 부당해고라는 현실을 뒤집어엎지 않으면 언제든 누구든 해고당할 수 있다. - P131

차헌호 지회장은 "투쟁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 P133

그러면 불법취업이 된다. 유학생 중에 가끔 한국 음식점등에서 암암리에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취업기록은 없고 임금은 현금으로 받았다. 한국에서라면대학생이 학교 앞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은그냥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과 친구 등의 인적 자본과 사회경제적 자본을 본국에 다 두고 외국에 나온 상태에서 먹고살기 위해 똑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면 ‘불법 인간‘이 된다. 나는 독신이라서 혼자버티면서 주 20시간만 일하고 학교가 주는 굶어 죽지않을 정도의 푼돈을 받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가족이있으면, 특히 어린아이가 있으면 돈 벌 방법을 궁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대회에 가서 "불법 인간은 없다"는 구호나 현수막을 볼 때마다 나의 ‘외국인 노동자 시절‘을 생각했다. 불법체류나 불법취업은어감처럼 그렇게 무시무시한 범죄가 아니다. 먹고살려고 하다 보면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하는 일이란 한국인이 원하지 않는 종류의 일이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 와서단번에 재벌기업 회장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거나한국인의 재산과 권리를 빼앗아 풍요롭게 사는 게 아니다. - P142

‘자유주의적 - 인본주의적 유토피아‘를 믿는 사람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 유토피아가 이루어질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꼭 내 눈앞에서 이상향을 보는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어쨌든 더 좋은 앞날을 위해서 계속 노력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 성평등, 여성해방, 장애해방, 노동해방, 인권존중, 세계평화를 외치는 많은 동지들이 그런 완벽한 세상이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 소리치고 행진하고 파업하고 농성하고 투쟁한다. 그렇게 투쟁하면 자기만 괴롭고 연행당할지도 모르고 구속당할지도 모르고 몇십억의 손배소가 걸 - P168

릴지도 모르는데도 어쨌든 싸운다. 왜냐하면 그것이더 좋은 세상을 향해 하다 못해 반의 반 걸음이라도나아가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전반적으로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데모해도 크게 불이익이 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퇴직했으므로 이제 더 잘릴 직장도 없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에 있는 내가 행진이라도 한 번 더 하고 구호라도 한 번 더 외치고 집회를 할 때 머릿수라도 하나 더 채우면 나와 동지들이원하는 세상이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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