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역사가 산으로 간다: 등산 문학

산 정상에 오르는 등반의 매력도 언어적 비유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영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들은 높은 것 또는 높이 올라가는 것을 권세 또는 미덕과연결시킨다. 행복의 절정(on top of the world), 능력의 최고조(at the height ofone‘s ability), 상승가도(on the way up), 영혼 고양 체험(peak experience), 경력의 절정기(peak of a career), 출세(rising and moving up in the world), 출세주의자(social climber), 신분 상승(upward mobility), 고결한 성자와 저열한 악당(high-minded saints and lowly rascals), 상류층과 하류층 (the upper and the lowerclasses)이 그런 예다. 기독교적 우주관에서 천국은 위에 있고 지옥은 밑에있으며, 단테가 그리는 연옥은 원뿔 모양의 산이다 - P224

소로도 그 점에 주목했다.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산은 그 모습을 바꾼다. 산의 형태는 오직 하나뿐이지만, 산의 모습은 무한히 많다." 산의 형태를 포착하려면 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일본의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北)의 유명한 판화 연작 「후가쿠 36경(三十六景)」을 보면, 서른여섯 장 중 서른다섯 장에는 후지 산이 가까이에 크게 나오든 멀리 작게나오든 완벽한 원뿔형으로 나온다. 후지 산의 익숙한 형태가 도시와 길과 땅과 바다에 방향성과 연속성을 부여하면서 장면에 통일성을 주는 그림들이다. 나머지 한 장은 참배자들이 후지 산을 올라가는 그림인데, 여기서는 그 통일성을 부여하던 형상이 사라진다. 좋아보이면 가까이 가게되지만 가까이 가면 좋아보였던 모습이 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입을 맞추려고 얼굴을 가까이 대면 그 사람의 얼굴이 한눈에 보이지 않게된다. 호쿠사이의 후지 산 참배자들 판화에서도 매끄러운 원뿔형이던 후지산은 발에 밟히는 험한 바위가 되어 하늘을 가려버린다. 산의 객관적형태가 주관적 경험 속으로 흩어지면서 산에 올라간다는 것의 의미도 함께 흩어지는 것 같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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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두 발이 감상에 빠지면: 보행 문학

특별히 보행을 다룬 최초의 수필은 해즐릿이 1821년에 쓴 「길을 떠나며(On Going a Journey)」이다. ‘자연 속‘을 걷는 것의 기준, 그리고 이후에 따라올 보행 문학의 기준을 마련한 글이다. 이 글의 서두에 따르면 "세상에서 제일 기분 좋은 일 가운데 하나는 길을 떠나는 것인데, 나로 말하자면 혼자 떠나는 것을 좋아한다." 걸을 때 혼자인 편이 좋은 이유는 "자연이라는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 책의 의미를 번역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고, "나는 내 막연한 상념이 민들레 솜털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지 그 상념이 논쟁의 가시덤불에 엉켜 붙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행과 사유의 관계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글이다. 그렇지만 해즐릿이 자연이라는 책 속에서 정말혼자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짧은 글은 베르길리우스, 셰익스피어, 밀턴(John Milton), 드라이든(John Dryden), 그레이, 쿠퍼, 스턴, 콜리지, 워즈워스가 쓴 책들, 그리고 요한계시록까지 인용하고 있다. 웨일스를 여행했던 날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풍경 묘사 속에 여행 전날 밤에 읽은 루소의 『신엘로이즈』가 섞이고, 여행을 하면서 콜리지의 풍경시를 읊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이 글에 인용되는 책들은 자연 속을 걷는 것의 이상, 곧 생각과 인용과 풍경이 어우러지는 기분 좋은 경험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해즐릿 역시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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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에세이&
백수린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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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다 라는 카피처럼 소외된 산동네의 많은 불편함에도 그만의 삶의 우선순위에 따라 이웃과 반려견과 함께하는 작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백수린 작가의 다정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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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공동주택에서만 살았던 내게 이 동네에서의 생활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산다는 행위가 관념이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것들, 물질성이랄지 육체성을 가진것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곳에서는 눈이 오면 허리가 아플 때까지 집 앞의 골목을 쓸어야 하고(겨울마다서울에는 눈이 얼마나 자주 오는지!) 1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정화조 청소업체를 직접 불러 나의 배설물 냄새를 맡아야 한다. 벽의 페인트가 벗겨지면 다시 칠해야 하고, 문고리가 고장나거나 방충망에 구멍이 나면 임시방편으로라도 어떻게든 수리를 해야 하며, 외벽의 갈라진 틈을 타고제법 무성히 자라는 잡초들을 때마다 내 손으로 뽑아야 한 - P13

다. 주거하는 이와 관리하는 이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재화로 인식되는아파트와 달리, 이 동네에서 집은 삶의 공간이다. 동네에서의 하루하루는 집이든 인간이든 간에 만물이 시간과 함께서서히 마모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육체적인 노동과시간 그리고 정성을 쏟는 돌봄을 통해서만 우리가 모든 종류의 소멸을 가까스로 지연할 수 있을 뿐이라는 진실을 내게 알려준다. 그리고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감으로 각인되는 기억들의 중첩 때문이라는 사실도. - P14

공장식 축산업이 환경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고 동 - P71

물의 권리를 침해하는지 고발하는 책을 쓴 소설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그의 다음 저서『우리가 날씨다』, 송은주 옮김, 민음사 2020에서,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송은주 옮김, 민음사 2011를 출간하고 난 이후에도 꽤 여러번 공장식 축산으로생산된 고기가 들어간 글로벌 기업의 햄버거를 사 먹은 적이 있다고 고백하는 대목을 읽으며 나는 큰 위안을 얻었다. 나는 그가 환경과 동물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도 불구하고 댤걀이나 치즈 같은 것들에 대한 욕구를 끝내 포기할 수 없어 너무나도 부끄럽다고 고백을 하는 사람이라 그의 글을 조금 더 신뢰하게 되었다.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이 여러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고매일매일 흔들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쪽으로 흐른다. 나는우리가 어딘가로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궤적은 일정한 보폭으로 이루어진 단호한 행진의 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갔다 멈추고 심지어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는 춤의 스텝을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만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고. - P72

사람들이 그토록 서투른 말들을 건네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르빌뢰르의 문장을 읽으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 앞에서 제대로 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죽음은 너무나도 커다란상실이자 슬픔이고, 그것을 담기에 언어라는 그릇은 언제나 너무나도 작다. - P130

사회가 어떻게 노인을 타자화해왔는가에 대해 깊이사유한 시몬 드 보부아르는 60대에 접어들어 쓴 노년에 관한 책「노년, 홍상희·박혜영 옮김, 책세상 2002에서, 일찍이 우리는 노인을 타자로 여기기 때문에 ‘노화‘, 즉 ‘나 자신‘이며 동시에스스로가 ‘타자‘가 되는 이 낯선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이 듦이 우리에게 선물해주는 가장 가치 있는 축복은 젊은 시절 우리의눈을 가리는 허상과 숭배를 치워버리고 우리가 진정성에가닿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도 적었다. 몇해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노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내게명료하게 다가왔지만 그것이 축복이라는 말은 연기처럼흐릿하기만 했다. 지금 나는 늙는 것이 헐벗어가는 과정이아니라 우리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거짓 욕망들로부터자유로워지고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과정이라는 걸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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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거리 헤매기 - 버지니아 울프 산문집 쏜살 문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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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을 사러 간다는 핑계로 외출하여 런던 거리를 헤매자. 울프를 따라 중고서점에 들러 연필을 사자. 햄릿을 읽자.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보고 여기 저기 쏘다니고 사람들과 건물들과 자연을 관찰하자. 집안의 천사도 함께 죽이고.
첫 꼭지인 표제작과 마지막 꼭지인 [여성의 직업]이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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