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의 밀당이 제인 오스틴 소설 만큼은 아니지만,

여주의 까칠함이 <제인 에어> 만큼은 아니지만,

부유하고 당당하고 할 말 하는, 종잡을 수 없는 여주를 만났다.

셜리가 셜리로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를 제어하는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에 숙부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셜리를 부유한 가문과 결혼시키려고 난리를 치지만,

셜리는 그런 숙부를 물리친다.

말싸움으로, 기싸움으로 절대 지지 않는다.

결혼으로 귀결되는 마지막 결말은 조금 실망스럽지만,

당시 현실을 고려하여 쓰고 싶은 결말보다 많이 절제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시스터후드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고.

 

첨예한 시대 상황, 국제 정세, 정치적 상황, 계급 갈등, 경제 문제 등을 날카롭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등장인물 각자의 다른 의견, 다른 시선, 갈등을 보여주며, 누구 하나가 영웅시 되지 않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생각과 행동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행동으로 직접 나서는 것은 남성일 수 밖에 없지만, 셜리를 통해 여성도 생각하고 행동할 의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로맨스 소설적 재미는 <제인 에어>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여성 작가가 연애, 결혼, 가정 생활에 국한된 소설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셜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풍성한 해석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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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아무리 그 문제를 놓고 고민해보아도 어떻게 하면 상황이 나아질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 무언가 잘못됐어. 독신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야 해. 지금보다 더 흥미롭고 돈이되는 일을 할 수 있는 더 나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내 말에 불쾌해하실 거라고는생각하지 않아. 내가 불경스럽다거나 참을성이 없다고, 혹은 신심이 깊지 못하다거나 신성을 모독한다고도 생각 안 해.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인간이라면 귀를 막거나무력한 경멸감으로 얼굴을 찌푸릴 슬픔에 대해서도 동정해주신다는 것만이 나의 위안인걸. 무력한 경멸감이라 한 건, 쉽게 치유할 수 없는 이런 불만들에 대해서 사회는 보통 경멸을 무기 삼아 아예 말하지 못하게 막아버리기 때문이야. 이런 경멸은 왜곡된 약점을 덮는 번쩍이는 망토에 불과해. 사람들은 고칠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문제들을 상기시키면 싫어해. 그러면 어쩔 수 없 - P92

이 스스로의 무능함을 절감하거나, 그보다 더 고통스럽게도, 내키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니까. 그게 그들의 안락함을 방해하고 자기만족을 흔들어놓지. 집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노처녀들도 이 세상에서 머물 자리와 직업을 요구하면 안 돼. 그런 요구는 행복하고부유한 자들을 성가시게 하고, 부모들을 성가시게 하니까. 이마을의 딸을 둔 수많은 집안들을 봐. 아미티지가와 버트위슬가, 사이크스가처럼. 그 딸들의 남자 형제들은 하나같이 다 사업을 하거나 직업이 있어. 그들은 할 일이 있다고. 그런데 그들의 여자형제들은 집안일과 바느질 말고는 아무런 일거리가 없어. 무익하게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고. 앞으로의 삶에 더 나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희망도 전혀 없어. 이런 정체된 상태에서 살다 보면 건강이 점점 상하게 되지. 절대로건강할 수가 없어. 생각과 관점도 놀라울 만큼 좁아지고. 그들모두의 원대한 소망이자 유일한 목표는 결혼이지만, 대부분은영원히 결혼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살다 죽을 거야. 그들은 남편감을 낚기 위해 계획을 짜고, 음모를 꾸미고, 옷을 차려입지. 신사들은 그들을 웃음거리로 삼을 뿐, 그들을 원하지는 않아. 아주하찮게 여겨. 남자들은 말하지 난 그들이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어 결혼 시장에 여자가 넘친다고. 아버지들도 똑같이 말하면서, 딸들의 행동을 보면 화를 내. 그러고는딸들에게 집에 있으라고 명령해. 집에서 그들이 무엇을 하기를기대하는 걸까? 물어보면 바느질과 요리를 하라고 대답하겠지. 그들은 딸들이 이런 일을 하기를 바라고, 이런 일만 하기를 바 - P93

라. 만족하면서, 꾸준히, 불평 없이, 한평생을 마치 그 외에는 아무 재능도 없는 것처럼. 그건 아버지들이 딸이 요리하는 음식을먹거나 딸이 만든 옷을 입는 것 외에는 아무 능력도 없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는 신조지. 남자들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들이라고 지치지 않을까? 게다가 지쳤는데도 아무런 위안도 없고, 지쳤다는 티만 살짝 내도 비난을 받는다면, 언젠가는그런 권태가 광기로 끓어오르지 않을까? 한밤에도 시녀들 속에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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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 1
샬럿 브론테 지음, 송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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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셜리는 누구인가 궁금함을 참으며 읽었다. 마침내 276페이지에서 그 이름이 언급되고 280페이지에 현현하였다. 셜리 등장 이전과 이후는 분위기 반전이다. 18장의 질 낮은 사람이야말로 진짜 반전인가. 던 씨나 멀론 씨가 아니라니. 당대 현실의 씁쓸함에도 날카로운 박진감과 통쾌함이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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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6-16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셜리 읽고 계시군요! 😆

햇살과함께 2025-06-16 12:50   좋아요 1 | URL
네 2권 들어갑니다! 셜리가 나온 이후 재밌어지네요.

단발머리 2025-06-16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비닐을 안 벗긴 1인입니다.
햇살과함께님 재미있게 읽으시니 저도 그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5-06-16 22:18   좋아요 1 | URL
어서어서 벗기시고 케이스에서 빼두세요. 그래야 읽습니다 ㅎㅎ
 

열여덟 살에는 이런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에게 미소 짓고 내일의 행복을 약속하는 희망을 의심 없이 믿는다. 사랑이 길 잃은천사처럼 우리 문가를 배회하면, 당장 맞이하여 환영하고 포옹한다. 사랑의 화살통은 보지 못한다. 사랑의 화살이 우리를 꿰뚫을 때, 그 상처는 새로운 생명의 흥분처럼 느껴진다. 독에 대한두려움은 전혀 없고, 의사가 뽑아낼 수 없는 미늘은 없다. 그 위험스러운 열정때로는 고통의 극치이며 많은 이들에게는 내내고통일 뿐이지만을 완전무결한 선이라고 믿어버린다. 다시말해서 열여덟 살에야 비로소 경험이라는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겸허하게 만들고 압도적이며, 끝없이 고통스럽게 이어지지 - P140

만 정화해주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경험의 가르침을 배우게 된다.
아, 경험이여! 그대만큼 피폐하고 얼어붙은 얼굴을 한 스승은없다. 그렇게 검은 망토를 걸친 이도 없고, 그렇게 무거운 지팡이를 든 이도 없다. 경험은 거침없는 손길로 초심자를 그의 임무쪽으로 엄격하게 끌어당겨, 저항 한번 못하고 배우도록 위엄 있게 강요한다. 삶의 황야에서 안전한 길을 발견하려면 그대의 지시대로 따르는 길밖에는 없다. 그것 없이는 비틀대고 헤매게 될것이다. 금지된 땅에 침입하고, 무시무시한 내리막길을 구르게될 것이다. 내 - P141

‘아마 나는 70세까지 살겠지. 내가 아는 한 나는 건강해 살아야 할 날이 내 앞에 반세기는 더 남아 있을지도 몰라. 그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나와 무덤 사이에 펼쳐진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그녀는 곰곰이 생각했다. - P248

그는 자신의 동의는 너무 무거운 것이라 서둘러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헬스턴은 마치 여성의 교활한 술수가 작용하고 있으며, 속치마 속의 무언가가 너무많은 영향력과 중요성을 비밀스럽게 얻으려 하는 것일까 우려하듯이 경계심과 의심 섞인 표정으로 주변을 날카롭게 둘러보았다. 셜리는 그 표정을 보았고, 이해했다.
그녀가 무심하게 말했다. "이 계획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대강의 윤곽일 뿐입니다. 제안일 뿐이지요. 여기 신사분들께서규칙을 만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기묘한 미소를 지으며 탁자 위로 몸을 구부려 곧바로 필통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종이 한 장과 새 펜을꺼내고 탁자로 안락의자를 끌어온 다음, 헬스턴 씨에게 손을 내밀어 거기 앉아달라고 청했다. 잠시 동안 그는 약간 굳어서 구릿빛 이마에 이상하게 주름을 잡고 서 있었다. 마침내 그가 중얼거렸다.
"음-당신은 내 아내도 딸도 아니지요. 그러니 이번만큼은 당신이 인도하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나는 내가 따르기로 한 겁니다. 당신의 여자다운 작은 계책은 내 눈을가리지 못해요."
"오!" 셜리가 펜을 잉크에 적셔 그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신부님은 오늘은 저를 킬더 대장으로 봐주셔야 해요. 이건 신사들의 일이지요-당신과 저의 일이에요, 박사님(그녀는 신부를그렇게 불렀다). 저기 숙녀분들은 우리의 부관들일 뿐이랍니다. 우리가 일을 다 매듭지을 때까지는 입을 다물고 있을 겁니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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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상도 버전의 애린 왕자와 전북 버전의 에린 왕자에 이어 강원도 버전의 언나 왕자. ‘햐, 이 지랄두(28p)’. 강원도와 연관된 표현으로 의역된 부분들도 눈에 뛴다. ‘머이 갱포 앞바다에서 쥬부타고 놀더 거 삼척으루 떠내래 가는 그 보덤 훨씬 쓸쓸허구 애롭더라니’(11p). 충청도, 제주도 버전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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