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TFLEX 것플렉스 두부 스낵 - 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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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다음으로 고소하네. 오트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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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시종의 물음에 다만 한숨만 길게 쉬더니 자기 신세를 한탄할 뿐이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 목숨이 길지 짧을지, 복이 많을지 불행이 많을지는 하늘이 정해 준 운명이니 슬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제 내 신세를 생각하면 불행을 내 스스로 불러온 것이다. 옛말에 ‘하늘이 만든 불행은 피할 수 있어도 자신이 만든 불행은 피할 수 없다‘ 하였다. 누구를 탓하겠느냐. 이제 내 어디로 가고,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겠느냐."
어린 시종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말을 골라 부인을 위로하였다.
"옛날 영웅들과 지조 높은 부인들도 곤욕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니다. 지금 아씨께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밝은 하늘이 내려다보고 굽어살피고 계시지 않습니까. 앞으로 바람이 검은 구름을 몰아내어 해와 달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어찌 잠깐의 불행으로 귀중한 몸을 돌보지 않으십니까." - P91

<사씨남정기》가 쓰인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김만중이 남해에 유배되었을 때로 짐작된다. 홀로 지낼 어머니가 걱정된 김만중은 글 읽기를 즐기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이 뒤에는 다른 의도도 숨겨져 있다.
당시 숙종은 첫 왕비가 죽자 새로운 왕비 인현왕후를 맞이했다. 인현왕후가 왕위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하는 가운데 1688년 숙종이 총애하는 후궁 장씨가 아들을 낳고 이듬해 그 아들을 원자로 삼을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당시집권 세력이었던 서인은 이를 반대하였다. 아직 인현왕후가 젊기에 성급하게 후궁의 소생을 원자로 정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숙종은 서인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끝내 장 씨의 소생을 원자로 책봉하고 장 씨의 지위를 희빈으로 높였다. 줄곧 반대하던 서인 세력은 결국 파직되거나 유배 보내졌다. 결국 인현왕후는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장희빈이 왕비의 자리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서인 세력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던 김만중 또한 유배를 가게된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사씨남정기》의 등장인물을 당시의 실제 인물과 연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총명함과 판단력을 잃었던 유연수는 숙종을, 현숙한 정실부인이었으나 쫓겨나게 된 사정옥은 인현왕후를, 첩으로 들어와 아들을 낳았으나 사정을 쫓아내려고 갖은 악행을 저지른 교채란은 장희빈을 떠올리게한다. 당시 사람들도 이 소설을 읽고 우리와 같은 것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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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역사의 정치 딕테 시리즈 3
조앤 스콧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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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모음집이라 역시 어렵다. 특히, 최다 인용 횟수를 기록 중이라는 2장 젠더는 너무나 어렵다. 4부 평등과 차이가 가장 좋았다. 그나마 알쏭달송한 와중에도 물음표를 던지면서도 이해가능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장이었다.


평등과 차이를 대립적으로 보는 프레임을 벗어나고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것. 우리가 당연시하는 범주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특정 역사적 맥락에서 살피는 것. 이분법적 구조를 거부하고 의문을 던지는 것.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러저러한 독서에 집중하지 못한 핑계들만 가득한 요즘. 그나저나 산불이 빨리 잡혀야 할 텐데 걱정이다.



평등과 차이가 이분법적으로 대립할 경우 선택은 불가능해진다. 평등을 선택하면, 차이가 그것에 대립된다는 관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차이를 선택하면, 평등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바로 이 장의 시작 부분에 인용된 루스 밀크맨이 말한 딜레마다. 페미니스트들은 "차이"를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차이"는 우리가 고안해 낸 가장 창의적인 분석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등도 포기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민주적인 정치 체계의 원칙과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한은 말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운동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기존 범주들 안에서만 주장을 펼치도록 제한한다거나, 페미니즘의 정치적 논쟁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닌 이분법으로 특징짓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차의 개념을 인정하고 그것을 활용하면서도 평등을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은 이중적이다. , 평등을 차이의 대립항으로 제시함으로써 구축된 권력관계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적 선택의 이분법적 구조를 거부하는 것이다.
평등론 대 차이론은 페미니즘 정치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그런 대립은 두 용어 사이의 관계를 잘못 재현하고 있다. 평등이란, 권리의 정치이론- 배제된 집단들이 정의를 요구하는 근거의 맥락에서 보면 특정목적을 위해 혹은 특정 맥락에서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 P299


내가 보기에 평등과 차이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대개의 경우 당연시하는 범주들 - 역사, 여성, 남성, 평등, 차이와 같은 정치 이론의 용어들 그 자체 -을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 용어들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발생하고 사용된 특정 역사적 맥락을 살펴봐야 하며, 문화적·정치적·시간적 산물로서 이 용어들을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일한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것이 보편적 주체에 대한 허구이며 그 보편성은 암묵적 차별, 주변화, 배제의 과정을 통해 획득되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성을 역사에 포함할 수 없다. 바꿔 말하자면, 남성man은 한 번도 진정으로 보편적 형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남성의 보편타당성을 확립한 것은 차이화를 통해 이루어진 배제의 과정들이었다. 이전과 다른, 더 비판적인 역사학을 위해서는 우선 남성의 보편타당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과정의 한 측면은 "남성과 대립되는 특징, 특성, 역할을 부과함으로써 "여성"을 정의해 온 것과 연관돼 있다. 수많은 여성사에서 역사가들이 기록해 온 그 차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 것이지 여성의 성에 내재하는 어떤 본질적 속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성의 경험" 또는 "여성 문화"는 오로지 남성적 보편성과 대비되는 여성의 독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회적 삶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개념들이다. 차이화 과정의 다른 한 측면은 평등과 차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것과 연관된다. 평등이 절대적으로 실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평등은 특정 차이에 대한 배제가 특정 맥락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유예된 것이라고 보는 게 차라리 맞다. 역사적으로 시기에 따라 어떤 차이는 다른 차이보다 더 문제가 되었다. – P338~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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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3-26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를 가로막는 핑계들이 요즘은 너무 현실적이죠 ㅠㅠㅠㅠ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는 아직 좀 많이 남아있사옵니다!

햇살과함께 2025-03-26 17:14   좋아요 0 | URL
산불까지 말이에요. ㅠㅠ
뒷 부분이 앞 부분보단 읽기 수월했습니다~ 화이팅!

다락방 2025-03-26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도 진도가 너무 안나갑니다.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햇살과함께 2025-03-26 17: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진도 안 나가서 3주 이상 붙잡고 있었네요.
뒷 부분은 좀 빨리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독서괭 2025-03-26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도 오늘 4부 들어갔는데 그나마 잘 읽히더라고요 ㅎㅎ

햇살과함께 2025-03-26 17:16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괭님도 많이 읽으셨네요. 저도 4부가 그나마 ㅎㅎ

건수하 2025-03-26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2부 들어갑니다…. 😅

햇살과함께 2025-03-27 09:05   좋아요 0 | URL
1부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화이팅!
 

평등과 차이

4부 8장

밀크맨이 조심스럽게 정식화한 내용은 평등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향임을 함축하지만, 그녀는 또한 차이를 전적으로 거부하고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만, 그것이 어느 쪽인지가 문제다. 밀크맨의 양가적 태도는 법이론가인 마사미노우가 다른 맥락에서 "차이의 딜레마"라고 부른 것의 일례다. 종속 집단에 관해 이야기할 때 차이를 무시한다면 "잘못된 중립성을 방치하게"되며, 차이에 집중하면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강조하게 될 수 있다고 미노우는 지적한다. "차이에 집중하는 것이나 무시하는 것 모두 차이를 재창조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차이의 딜레마다."" 미노우에 따르면,
평등과 차이가 서로 대립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등 차이에 대해 새로운방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분법적 한 쌍이 영원불변의 진리인 - P292

것처럼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는 대신, 우리는 평등과 차이가 양분된 한 쌍이 되는 일 그 자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기존 정치적 담론의 용어들을 유지하는 대신, 그 용어들을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개념들이 특정 의미들을 제한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이해한 후에야 우리는 그 개념들을 활용할 수 있다. - P293

이에 따르면, 차이는 실제적이고 근본적이기때문에 시어즈의 고용에서 나타난 통계적 격차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은 (그것이 아무리 역사적·문화적으로 생산된 것이라 할지라도) 단순히 "자연적인" 차이를 인정한 것으로 재정의되었다. 이는 레이건의 보수주의 논리와 잘 어울렸다. 불평등을 대신해 차이가 평등의 반대말이 되면서 차이는 불평등을 설명하고 정당화했다. 이 판결은 문학 연구자 나오미쇼어가 다른 맥락에서 설명한 "차이를 본질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자연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 P298

평등과 차이가 이분법적으로 대립할 경우 선택은 불가능해진다. 평등을 선택하면, 차이가 그것에 대립된다는 관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차이를 선택하면, 평등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바로 이 장의 시작 부분에 인용된 루스 밀크맨이 말한 딜레마다. 페미니스트들은 "차이"를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차이"는 우리가고안해 낸 가장 창의적인 분석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등도 포기할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민주적인 정치 체계의 원칙과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한은 말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운동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기존 범주들 안에서만 주장을 펼치도록 제한한다거나, 페미니즘의 정치적 논쟁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닌 이분법으로 특징짓는다는 것은 말도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차의 개념을 인정하고 그것을 활용하면서도 평등을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은 이중적이다. 즉, 평등을 차이의 대립항으로 제시함으로써 구축된 권력관계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적 선택의 이분법적 구조를 거부하는 것이다.
평등론 대 차이론은 페미니즘 정치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그런 대립은 두 용어 사이의 관계를 잘못 재현하고 있다. 평등이란, 권리의 정치이론- 배제된 집단들이 정의를 요구하는 근거의 맥락에서 보면 특정목적을 위해 혹은 특정 맥락에서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 P299

만약 개인들이나 집단들이 단일하거나 서로 똑같다면 평등을 요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평등을 특정한 차이에 대한 의도적 무관심으로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 P300

그래서 평등과 차이를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것에는 이중의 효과가있다. 그것은 평등이라는 정치적 개념과 차이가 오랫동안 관련을 맺어 왔음을 부인하며, 동일성만이 평등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토대라고 암시한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을 대단히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한다. 이 같은대립을 통해 구축된 담론적 조건에서 논쟁하는 한, 우리는 여성이 모든 면에서 남성과 같아질 수 없으므로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현재의 보수적 전제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유일한대안은 평등을 차이와 대립시키기를 거부하고 계속 차이를 주장하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 정체성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차이, 그런 정체성들을고정하려는 시도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으로서의 차이, 차이의 작동을 반복된 예시를 통해 보여주는 작업으로서의 역사, 평등 그 자체를 의미하는차이를 주장하자는 것이다. - P303

페미니즘의 역사와 정치 전략은 차이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면서도차이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분법적 차이를 다분법적 차이들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댈 곳이 모두에게 좋은 다원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차이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규범적으로 구성된 그대로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포용하는 데서 찾을 수는 없다. 대신 비판적 페미니즘 관점은 항상 두 가지 행동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는, 범주를통해 설정된 차이들의 작동에 대한 체계적 비판, 그것이 만들어 내는 배제와포함의 유형들 - 그 위계의 폭로, 그리고 그 궁극적인 "진실성"에대한 거부이다. 그렇지만 이런 거부가 동일성 혹은 유사성을 내포하는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것이 두 번째 움직임인데) 차이들에 근거한 평등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여기서 차이들이라는 것은 모든 고정된 이분법적 대립항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하고, 방해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동일성이 평등의 필수 조건이라는 정치적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는데, 권력은 차이를 토대로 구축되며 따라서 권력에 대한 도전도 그 차이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페미니스트들(그리고 역사가들)이라면 이를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 P306

9장

내가 보기에 평등과 차이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사고의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대개의 경우 당연시하는 범주들 - 역사, 여성, 남성, 평등, 차이와 같은 정치 이론의 용어들 그 자체 - 을 비판적으로분석해야 한다. 이 용어들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할 것이 아니라 - P338

그것들이 발생하고 사용된 특정 역사적 맥락을 살펴봐야 하며, 문화적·정치적·시간적 산물로서 이 용어들을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일한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것이 보편적 주체에 대한 허구이며 그 보편성은 암묵적차별, 주변화, 배제의 과정을 통해 획득되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성을 역사에 포함할 수 없다. 바꿔 말하자면, 남성man은 한 번도진정으로 보편적 형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남성의 보편타당성을 확립한것은 차이화를 통해 이루어진 배제의 과정들이었다. 이전과 다른, 더 비판적인 역사학을 위해서는 우선 남성의 보편타당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과정의 한 측면은 "남성과 대립되는 특징, 특성, 역할을 부과함으로써 "여성"을 정의해 온 것과 연관돼 있다. 수많은 여성사에서 역사가들이기록해 온 그 차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 것이지 여성의 성에 내재하는 어떤 본질적 속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성의 경험" 또는 "여성 문화"는 오로지 남성적 보편성과 대비되는 여성의 독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회적 삶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개념들이다. 차이화 과정의 다른 한 측면은 평등과 차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것과 연관된다. 평등이 절대적으로실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평등은 특정 차이에 대한 배제가 특정 맥락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유예된 것이라고 보는게 차라리 맞다. 역사적으로 시기에 따라 어떤 차이는 다른 차이보다 더 문제가 되었다. - P339

10장

적극적 차별 수정 정책은 추상적 개인과 개인의 보편성이라는 허구를 전제로 삼았다. 그것은 법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격차, 개인의권리와 그들이 어떤 집단에 소속돼 있다고 추정됨으로써 주어지는 한계사이의 격차를 메우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배제의 문제를 끝내기 위해 포용은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는데, 이는 참으로까다로운 과제였다. "적극적"affirmative이라는 단어는 문제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을 의미했다. 즉, 개인을 인정하기 위해서 스스로 집단의 구 - P361

성원으로 정체화해야 했고, 차별을 뒤엎기 위해서 (다른-긍정적인 목적을 품고) 차별을 실행해야만 했다. 연방정부가 적극적 차별 수정 정책을 확립하는 과정에 일어났던 언쟁은 이런 차별적 관행을 뒤엎는 개념적 틀을세우는 일이 상당히 어려웠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 P362

옮긴이 후기

이 책은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지식 체계와 권력의 관계를 파헤치며 얽힌 의미를 풀어내는 스콧의 작업은 기존에 통용되는 ‘이해‘의 방식에 끊임없이 개입해 들어온다. 깊이 파고들어 세심히 읽어 내는 과정에서다양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해결 불가능한 모순과 모호함, 불안정과 불안으로 이끌 것이며, 그 통찰 자체가 변화의 가능성과 그 시작을 보여 줄 것이라고 스콧은 말한다. 명료하게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과 그 질문이 만들어 내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기에 스콧은 역사정치 등 기존의 지식 체계에, 그리고 페미니즘에 지속적인 ‘질문‘을 던진다. 책을 읽는 동안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고 계속 질문이 떠오른다면, 그야말로 대성공이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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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5-03-26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하신 건가요!! 너무 멋지시다... 축하드립니다~~

햇살과함께 2025-03-26 10:18   좋아요 0 | URL
어제 밤 졸면서 마무리.. 곱씹어 보아야 할 책인데 소화를 못시키고.. 어려워요 ㅠ
 

E러닝(Easy Running)

위의 사항을 정리하면 E러닝의 효과는 부상에 대한 내성을 키우고, 심근을 강화하고,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을 개선하며, 근섬유를 러닝에 유리한성질로 바꾸어 간다는 것인데 효과는 그뿐만이 아니다. E러닝의 지속시간을 늘리면 자신감도 생긴다(게다가 달리는 거리나 시간은 E러닝 쪽이훨씬 늘리기 쉽다). 달리고자 마음먹으면 장시간도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훈련에서는 멘탈의 면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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