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자의 해방을 성의 해방의 문제로 제기한다.
미래에 인간 해방의 핵심을 구성할 것으로서 성 해방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성기 중심적인 성의 해방=프리섹스와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작금의 프리섹스란 남자가 갖고 있는 여자에 대한 차별 의식이 그 뿌리에 있는것으로 자기 눈앞의 성욕만 해결한다면 나중 일이야 내 알 바 아니지 하는 식의 추잡한 표현에 불과하다.
현재 여자에게 성의 해방이 무엇인지 보면, 성을 부정하는 의식 구조에서 자기 해방으로 권력 투쟁을 벌이고, 남자와 만나며 실천적으로 획득하는것이 성의 해방이다. - P306
그래서 전체와 부분의 긴장 관계를 기존 좌파의 개념만으로는 파악할수 없는 것이다. ‘여자라는 것‘에서 비롯된 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즉 스스로의 성과 생식을 따지고 밝히는 가운데, 어떻게 남자와 만날지, 어떻게 권력투쟁을 할지 그 길이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마르크스 용어로 만든 식으로 혁명을 하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여자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니다. 이성과 모순하는 것을 가득 떠안은 여자인 ‘지금 여기 있는 나‘로부터 출발해 그 모순을 드러내며 남자와 권력을 향해 ‘여자의 원한과 설움‘을 내동댕이치며 반격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의 해방 논리, 여자가 여자로 해방하기 위한 논리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여자가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대체 나는 어떠한 여자인가? 이렇게 묻고 또 묻는 가운데 우리의 해방 논리는 깊이를 더할 것이다.
‘여자를 껴안는 남자, 남자한테 안기는 여자‘와 같은 구도가 아니라 ‘여자를 껴안는 남자, 남자를 안는 여자, 즉 안느냐 안기느냐가 아니라 서로 껴안는 ‘껴안다껴안다‘ 관계로 여자와 남자가 만나는 길을 향해 갈 것이다. 그 길은 이성과 욕망이 충돌하는 가운데 엉망으로 있는 여자가 엉망인 채로펼쳐 가야 한다! - P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