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연구자 염운옥의 몸

도대체 불법과 합법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렇게 서류 한 장으로 불법과 합법의 인간이 갈리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UN 인권위원회, 국제노동기구,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불법illegal‘이라는 말을 인간에게 쓰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해요. ‘불법 체류‘ 대신 ‘미등록undocumented‘ 혹은 ‘초과 체류overstayed‘라는 말을 쓰자는거예요.
이주자에게 체류자격은 너무나 중요해요. 체류 자격이 흔들리면 노동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아이 양육을 제대로 할 수 없죠. 아이를 학교에보낼 수도 없거든요. 체류 자격이라는 것은 등록되는 서류잖아요. 이서류를 갖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구분해서 ‘당신의 몸은 오늘까지는 합법이지만 내일부터는 불법이야‘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 걸까요?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요? - P18

여성학자 권김현영의 몸

제가 충격을 받았던 건, 백화점 같은 경우엔 3천여 명 정도 되는 직원들이 있는데요. IMF 이후엔 90퍼센트 정도가 아웃소싱되어서 파견직으로 바뀌게 됩니다. 2700명 정도가 파견직 노동자가 되는 거죠.
백화점에 소속된 게 아니라 입점 매장에서 각각 따로 계약을 맺어 파견직으로 근무하게 하거나, 아니면 백화점 안에서 단기 고용으로 일용직 노동자처럼 활용하면서 백화점 정규직의 지위는 주지 않았죠. 이 파견직 여성 노동자 그룹은 거의 대부분 담배를 피워요. 반면 정규직 여성 300명 중에서는 흡연자가 한 30명, 10퍼센트밖에 안 됐는데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에게 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중 담배 피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한 명도 본 적 없다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승진에 대한 기대가 있고 직장 안에서 인사 평가와 관련된부분을 의식하는 여성들은 사람들과 같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얘기죠. 혹은 담배를 피우지 않거나 그런데 언제 잘릴지 모르는 취약한지위에 있는 여성들은 담배를 굉장히 많이 피워요. 콜센터 같은 경우에는 담배 피우는 시간을 확보해주기도 해요. 그것이 가장 쉽게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여성의 흡연이 완전히 계층화되어 있는 거죠. - P29

작가, 뮤지션 요조의 몸

말랑말랑하게 늙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면서 신념이라는것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 신념을 극단으로 밀고 나가다보면 이게 사람을 딱딱하게 만들고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 같아요.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갖되 그것이 나를 딱딱하게 만들지 않게끔 말랑말랑해지려는 노력을 실천하면서 늙으면 참 좋겠어요. 정치적 입장뿐만 아니라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이 있잖아요. 페미니즘, 환경, 생명, 종교,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너무너무 거대해지고, 강해지고, 유일한 진리처럼 될 때 그것이 또다른 혐오를 낳고 또다른 공격으로 이어지면서 ‘나는 맞고 너는 다 틀려‘ ‘너희는 정의가 아냐‘라는 식으로 더 좁아질 수 있겠더라고요. 저부터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 P43

피디 김영미의 몸

신입 피디 시절, 김영미를 섭외한 적이 있었다. 스튜디오 출연을부탁했는데, 조금 곤란해하는 기색이었지만 끝내 수락했다. 그런데 다리를 절뚝이며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한 상태였다고 했다. 거절하시지 왜 나오셨냐 물으니 그는 이렇게답했다. "어린 피디가 고생하는데, 섭외 물먹으면 안 되잖아요. 이 시절엔 하나씩 성취해보는 게 중요한데."
김영미의 모든 선택과 결정의 근거는 단순하다. ‘나는 저널리스트다‘라는 생각. 그 생각으로 몸이 아파도 인터뷰를 하러 나오고, 멀고도 위험하지만 분쟁지역으로 떠난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단순히 용기가 아니다. 단 하나의 중요한 태도,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낯설고 위험한 곳으로 주저 없이 발을 내딛는 것이다. - P68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의 몸

여성은 머리 없는 살덩이라고 느끼는 것이 강간 문화의 아주 밑바 - P79

닥에 깔린 의식이죠. 고기를 집어먹듯 여성의 몸을 만지고, ‘그냥 만진 것뿐인데‘라며 그게 성폭력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성과의 성관계를 ‘먹다‘라고 표현하고요. 남의 살을 함부로 대하는게 습관이 된 상황이에요. 문화화된 차별이 정말 무섭죠. 그래서 우리는 정말 ‘말하는 몸‘이 되어야 해요. 내 몸 세포 하나하나에 차별이배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툭 나와요. 저도예외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없이 다짐하고 스스로 주의하려고 노력하지만, 저도 이 문화 속에서 차별을 공기처럼 마시고 밥먹듯이 먹으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조심하기에 좋아요. ‘나는 절대 그런 말을 할 리 없고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위험하죠. 우리가 차별적인 언어들을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는 게 서로 조심하도록 만들더라고요. - P80

기타리스트 반향기의 몸

머리를 그냥 한번 밀어보고 싶었어요. 짧은 머리는 워낙 많이 해서 정상성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20대가 가기 전에 삭발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어차피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니까 별생각없이 밀었죠.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또 밀고 싶어져서 한 번 더 밀었더니, 이번엔 아빠가 막……… 저를 안 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좀 놀라기도 했는데, 저는 "그런 이유로 안 볼 사람이면 아예 안 보는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사과를 받아냈습니다. - P87

생리중단시술 경험자 임의 몸, 제의 몸

서랍에서 생리대를 꺼내서 여봐란듯이 들고 가는 것, 여성 휴가를 쓰는 것, 그냥 몸이 안좋다고 말하기보다 ‘생리통 때문에 몸이 안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생리 가시화를 위한 나의 작은 노력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생리를 멈추는 시도를 한 여성들이 있다. 피임 시술을 통한 것인데 목적이 ‘생리 중단‘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몸에 장치를 삽입하는 게 마냥 가벼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고작 생리 때문에 그런 시술을 해?"라고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나는 생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솔깃하게들렸다. 이 고통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선택지가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생리를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리도 내 생활의 일부인데 왜 나는 그것을 사랑하지 못할까. 생리 자체가 초래하는 불편과 고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생리하는 채로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에 속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리할 때 들어가는 비용, 시간, 에너지가 아깝고, 그 때문에 어느 정도는 경쟁선상에서 뒤처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렇다면 나의 고통과 불편을 줄이는 선택지를 통해 이 사회에 맞춰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생리중단시술은 여성의 생리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사회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타협이기도 하다. 저항과 타협, 우리는 그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 P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요함, 잔잔함, 단순함에서 이야기와 삶, 경이와 기쁨 (때론 슬픔)을 찾아내는 자연의 이야기꾼 메리 올리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문. 산문과 시. 오드리 로드가 <시스터 아웃사이더>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워즈워스
랄프 왈도 에머슨
너대니얼 호손 <주홍 글씨> <일곱 박공의 집> [젊은 굿맨 브라운]
헤밍웨이의 「두 개의 심장을 가진 큰 강」

프로빈스타운
김연수 소설가

서문

나는 언제 어디서나 산문보다는 시를 쓰게 된다. 하지만 산문은 산문 나름의, 시는 시 나름의 힘을 갖고 있다. 산문은 용감하게, 그리고 대개는 차분히 흐르며 서서히 감정을 드러낸다. 모든 인물, 모든 생각이 우리의 관심을 자극하여 결국복잡성이 자산이 되고 우리는 그 저변과 이면의 전체적인 문화를 느끼기 시작한다. 시는 그보다 덜 조심스럽고, 시의 목소리는 홀로 남는다. 그것은 살과 뼈를 지닌 목소리로 스르르 미끄러져 둑을 뛰어넘어 아무 강으로나 들어가 예리한 날로 작디작은 얼음 조각에 착지한다. 산문 작업과 시 작업은 심장박동 속도가 다르다. 둘 중 하나가 나머지 것보다 느낌이 더 좋다. 어떤 걸까? 나는 장시간 산문을 쓰면 작업의 무게를 느낀다. 하지만 시 작업은 그 말 자체가 오류다. 다른 노동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시는 성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창조된 느낌만큼 전달된느낌도 강하다. - P13

흐름

이날 물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는 내내, 다른 많은 날들에도 그랬듯이 작은 노래 하나가 내 마음에 흐른다. 음악적이라 노 - P26

래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냥 말들이다. 이상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하나의 생각이다. 사실 그런 오후에 그런 생각을 안 한다면, 머리와 몸에 그런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면 얼마나 이상한일인가. 그 말들은 이렇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난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세상에 주어야 할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걸까? - P27

완벽한 날들

셸리(Percy Bysshe Shelley, 조지 고든 바이런, 존 키츠와 함께 영국의 낭만주의3대 시인으로 불린다)가 몽블랑에 대해, 그 무시무시한 풍경과 끊임없이 재배열하고 다듬는 바람들에 대해 많은 작품들을 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자신은 거기서 안전한 거리를 두고 있어서 펜은 잉크가 마르지 않고 종이는 젖지 않고 정신은 사색에 몰두할 수 있었다. 흥분의 옹호자들도 있지만, 나는 2년 전인가 3년 전 여름에 베닝턴의 토네이도를 놓친 걸 애석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때 (보도에 의하면) 하늘은 섬뜩한 초록으로 변하고 숲과 길가 나무들이 전장의 병사들처럼 쓰러졌다고 한다.
문제는, 삶에서든 글쓰기에 있어서든 이야기가 필요하다는것이다. 그리고 혹독한 날씨는 이야기의 완벽한 원천이다. 폭풍우 때 우리는 무언가 해야만 한다. 어디론가 가야만 하고,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기쁨을 느낀다. 역경, 심지어 비극도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스승이 된다. - P61

호손의 <낡은 목사관의 이끼>

호손은 악과 그 부하들이라고 할 수 있는 무기력, 의심, 절망, 지독한 야심 등 양심이 성취한 것을 파괴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적 나약함과 허영에 관한 최고의 상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주요 주제는 악의 다양한 얼굴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호손은 세일럼의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집만 - P92

거기 있었던 게 아니라 그의 고조부 윌리엄 해손은 세일럼의거리에서 앤 콜먼과 네 명의 퀘이커 교도들에게 매질을 하도록명령했고, 증조부 존 해손은 세일럼의 치안판사로서 마녀들을재판했다. 이러한 역사의 검은 그림자는 19세기에까지 닿아 너새니얼 호손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의 선조들이 삶 속에서 실천했던 청교도적 전통은 그에게 숙고와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거기서 나온 소설이 『주홍글씨』와 『일곱 박공의 집』이다.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단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격동적인 「젊은 굿맨 브라운」 역시 그 역사의 무시무시한 장막에서 나왔다. 이 작품에서는 영혼이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왜 함락되는지 밝혀내기 위해 그 역사의 그림자를 집어넣는다. 젊은 굿맨 브라운은 모종의 볼일을 보러 숲으로 떠난다. 우리는 그게 어떤여행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가 그동안 믿었던 사람들과 사물들이 거짓으로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비참한 불안감에 시달리는걸 느낀다. 존재를 뒤흔드는 불안감. - P93

호손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가볍고 사랑스러운 목소리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 한다. 그의 이야기들이 잠시 숨을 돌리고아 있을 수 있는 건 그런 감미로운 글로 가상의 배경을 만들어내는 능력 덕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글에서는 이야기의 진전이 약하거나 뻔할 때가 많고 인물들의 묘사도 충분치 못하다. 하지만 배경은 세세한 내용까지 깊고 풍부하게 묘사된다. 헨리제임스는 호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 어느 것도 함축적이기엔 너무 하찮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런 양식은 호손이나 19세기의 전유물이 아니다. 포의 일부 작품들도 이렇게 그늘지고 경치와 배경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러한 묘사가 이야기전개 못지않은 비중을 지닌다. 고자질하는 심장」과 「검은 고양이」그리고 저승과 진자가 거기 속한다. 헤밍웨이의 「두 개의 - P96

심장을 가진 큰 강」도 그런 예다. 한 남자가 낚시를 가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배경을 이루는 잎사귀 하나, 잔물결 하나가 작품의 의미, 무게, 사실성에 보탬이 된다. 우리 시대엔 더 복잡한 플롯(혹은 플롯들)이 전개되고 배경은 대부분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는, 더 활기찬·형태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그런 다름은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니며 독자들이 고전이라는 매력적인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 수용해야 할 차이점 중 하나일 뿐이다. - P97


아침 산책

감사를 뜻하는 말들은 많다.
그저 속삭일 수밖에 없는 말들.
아니면 노래할 수밖에 없는 말들.
딱새는 울음으로 감사를 전한다.
뱀은 뱅글뱅글 돌고
비버는 연못 위에서
꼬리를 친다.
솔숲의 사슴은 발을 구른다.
황금방울새는 눈부시게 빛나며 날아오른다.
사람은, 가끔, 말러의 곡을 흥얼거린다.
아니면 떡갈나무 고목을 끌어안는다.
아니면 예쁜 연필과 공책을 꺼내
감동의 말들, 키스의 말들을 적는다. - P128

위안

그런 때 나는 그 물의 몸체들을 생각하며 마음의 방랑을 떠난다. 나는 기쁨과 생산적인 찬미로 나를 가득 채웠던 사건, 시간, 생물체 들을 100가지쯤 댈 수 있다. 체험! 체험! 비, 나무들, 그런 모든 것들과의 체험은 내게 위안과 겸허함, 세상의 모든산에 묻힌 모든 금과도 바꿀 수 없는 일체감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처음엔 단순한 기쁨만을 느끼다가 생각을 하고 신념을 갖게 되었다. 세상이 제공하는 그런 아름다움에는 위대한 의미가있으리란 신념. 그리하여 나는 세상이 사실적일 뿐 아니라 상징적이기도 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밀과 백합이 자라는 것처럼 확실하게, 세상은 우리에게 고결한 꿈을 준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날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참을성 있는 초록 얼굴을 가진 거북을 만날때마다. 매가 날아가며 내는 금속성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연못에서 노는 수달들을 지켜볼 때마다. 나는 피와 뼈로 이루어진 존재지만 특별한 체험과 생각에 의한 신념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신념들을 빚어내는 건 세상에서의 시간(거칠든 온화하든 충분히 친밀하고, 시적이고, 꿈같고, 단호하고, 사납고, 애정 깊고, 삶을 빚어내는)이다.
아침이 가까워지면서 빗줄기가 약해졌다. 나는 옷을 입고 서둘러 세상으로 나갔다. - P133

옮긴이의 말_민승남
존재의 온전한 기쁨

메리 올리버는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시 「기러기 Wild Geese」가 실려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작품집이 정식으로 번역, 소개되긴 이 책이 처음이다. - P1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내면서/정말로 중요한 일_김정현

노골적인 군사적 침략이라는 모습을 한 식민주의시대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구조조정과 조건부 차관, 불평등한 무역협정이 식민주의의 도구가아니라면 무엇일까. 선진국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난민문제도 따지고 보면 (테러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실은 바로 그들 자신, 북반구 주민들의 제국주의적 삶의 방식이 초래한 수많은 비극 중의 하나인 것이다. 고 권정생 선생은 이라크전쟁 때 우리가 파병을 안할 수 있으려면 자동차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단지 우리 경제가 석유에 깊이중독돼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선생은강대국들의 부(富)가 약소민족들의 피눈물과, 자연의 파괴와 약탈로써이뤄진 것이라는 사실을 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내가 타고 가는 승용차 기름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다고 느낀다면 평화의 길은 멀지 않을것"이라는 말 속에는, 식민지-제국주의-군국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석유문명, 우리 삶의 방식과 문화를 조금도 바꾸지 않고서 평화를 바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근원적인 통찰이 담겨 있다. - P5

오늘날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예를 들어서,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테지만, 그러나 지구 저편에 있는 숲이 벌목될 때가슴이 미어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감정은 기억(직접경험)에서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그 비슷한 울분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예를 들어서, 오랜 세월 동안 함께해온 뒷동산의 은행나무를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감수성의 한계를 가진 인간은 자신이 친숙하게 알고있는 장소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유추하여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세계의 도시화율이 55%라는 사실은 (2050년이 되면 70%에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전 세계 과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더이상 어떤 장소에도 귀속돼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실에 경제논리가 다른 모든 가치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 더해지면, 망실되는 목숨붙이들이 얼마가 되든지 개발의 가차 없는 행군을 막아설 장애물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현재 정부수입의 3분의 1이 석유에서 나오고 있는데도불구하고 에콰도르 국민 60%가 개발보다 보존을 선택했다는 사실은다른 무엇보다도 이 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장소를 내밀하게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관찰자로 머물러서는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다. 적극적으로 아끼고 보살피고, 스스로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일이며, 무엇이정말 필요한 일인지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는 자세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 P9

더 좋은 경쟁논리 대신 반전의 시대정신을_조형근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에 나선 것이 2001년이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싸우고 또 싸웠다. 그 처절한 싸움의 결과 2022년 1월, 드디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장애인들이기뻐했다. 그런데 살펴보니 예산 편성을 의무화하지 않았다. 실행 의지가 진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장애인들이 분노한 이유다. 물론 장애인이분노한다고 해서 시민이 겪는 불편이 당연하지는 않다. 마찬가지로 장 - P35

애인이 겪어온 평생의 불편도 당연하지 않다. 당연하지 않은 사실들에대해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시민의 불편과 장애인의 불편이 원래 대립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의 장애인 예산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분의 1에 그친다. 평균만큼만 써도세상이 달라지고 좋아진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평생 시설에 갇히지않아도 되고, 세상을 다니며 다른 이들과 함께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 한국은 못하는 게 아니다. 안하는 것이다. - P36

비용절감, 효율화의 욕망에서 두 진영의 엘리트와 핵심 지지층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 계열 정당의 핵심 지지층은 능력주의경쟁을 이겨낸 자신감 넘치는 고학력 상위 중산층으로 점차 채워졌다. 자기 진영이 보수진영보다 더 유능하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운영할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엘리트들이 효율화를 외치며 노동시장의이중구조화를 방치하거나 심지어 심화시켰다. 우리 시대 노동의 비극은 일부 재벌, 보수세력이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어낸 것이라고만 볼 수 없다. 우리도 효율적으로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고 이편에서 목청을 높인 이들, 그들에게 박수를 친 우리의 욕망이 있었다. 우리 안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고서 이 모욕적인 신분제를 극복할 수없다. - P40

이윽고 영국의 좌파사상가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말을 소개한다. "사다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다. 당신은 사다리를 혼자 올라간다. 그 결과 노동계급과 공동체의 연대감은 약화되고, 위계라는 독을 달게 만든다."
신자유주의의 강화 탓에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겼으니 그 사다리를다시 이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소위 진보 개혁진영의 상식이 되어 있다. 하지만 사다리의 논리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심각한 불평등 문제를능력에 따른 개인의 사회적 이동가능성이라는 문제로 대체한다. 사다리를 타고 오를 기회가 잘 제공되기만 한다면 불평등 자체는 아무리 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오를 수 있는 ‘기회의 사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누가 그 기회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을까?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 모두 경쟁의 논리다. 신자유주의의 시대정신이 바로거기서 숨 쉬고 있다. 함께 돕고 기대자는 연대의 정신은 거기 없다. - P41

뉴미디어 시대의 언론과 정치권력_전홍기혜

증오를 극복하는 증오는 없다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대중은 어리석은 우중이 아니다. 한상원 충북대 교수는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은 몰라서가 아니라 원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왜 진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탈 - P49

진실(post-truth)‘을 선택하는가? 반지성주의를 탓하고 비난하고 이에대한 반증을 들이밀기 전에 이들에게 사실, 현실은 어떤 상태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존 신념을 강화하는 쪽으로 작동하는 ‘필터버블‘이나 ‘확증편향‘은 진실을 뒷받침하는 증거의 부족이나 부재에 있지 않다.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을 차단하고 토론을 거부하는 이런 선택적 또는적극적 반지성주의는 "공론장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 등 기존 사회에 확산한 차별적 의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한 교수는 지적한다(<한겨레>, 2023년 10월 23일). - P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스터 아웃사이더 딕테 시리즈 1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박미선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이며, 아들/딸을 키운 어머니이자 백인 여성 배우자와 함께 산, 시인이며 교육자, 연설가, 활동가인 영원한 아웃사이더. 어느 누가 그녀만큼 차이와 분노와 교차성과 관계에 대한 통찰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성, 인종, 계급, 나이에 의한 차이의 복합성을 흡수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4-01-08 0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벌써요….!!! 😲 👍👍👍

햇살과함께 2024-01-08 18:01   좋아요 0 | URL
이거 한 번 잡으면 술술 잘 읽혀요!!
오드리 로드 멋진 시스터입니당!!

다락방 2024-01-08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엄청 열심히 독서하시네요, 햇살과함께 님. 제가 자극받고 갑니다!! 부릉부릉-

햇살과함께 2024-01-08 18:02   좋아요 0 | URL
제가 이번 주말부터는 주말에 시간이 없을 예정이라,,,
공포의 권력 어쩌죠 ㅎㅎ 화..화이팅!!

은오 2024-01-09 0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100자평이 올라오다니요?! 전 어제 시작했습니다. 뒤따라갈게요 햇살님!!!!! 😍
햇살님 100자평 읽으니까 기대가 더 커집니다. >.<

햇살과함께 2024-01-09 18:33   좋아요 2 | URL
은오님 빨리 읽어주세요 리뷰 기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