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_책을 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권위주의, 파시즘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아마도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우리는 민주주의를 모른다. 우리 대부분이 ‘민주주의‘라고 오인하고 있는 대의정부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것이다. 대의제는 과두정치도, 독재도 가져올 수 있지만 민주주의(민중의 자기통치)를 실현할 수는 없다.
18세기 말에 근대국가의 대의제 통치시스템을 기초했던 엘리트들은 이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가져와서 사용한다면 이 형태의 정부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의민주주의‘라는 자가당착의 개념이 만들어졌다(‘선거는 민주주의의 꽃‘ 같은 그릇된 인식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영국 사회운동가 이보 모슬리가 쓴 <민중의 이름으로(녹색평론사)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어쩌면 바로 거기서부터 인류의 거대한 불행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 P4

자유의 핵심은, 루소의 지적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데 있었던 것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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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ch Lady and the Summer Camp Shakedown: Lunch Lady #4 (Paperback) Lunch Lady 5
Jarrett J. Krosoczka / Alfred a Knopf Inc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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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여름 캠프다. 캠프에 나타난 초록 괴물의 정체는… 질투의 무시무시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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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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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는 보존기술로 발생할 수 있는 훼손도 있고, 작가가 쓴 다양한 재료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고, 보존 처리를 둘러싸고 여러 전문가가 몇 년씩 논쟁을 하기도 하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가의 원작을 잘 보존하기 위해 그 원작에 직접 손을 대야하는 보존가라는 직업의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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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 구매는 1권이다. 10월 여성주의책인 <세계 끝의 버섯>
그리고 정기구독하는 <녹색평론 2024년 가을호>.
요즘 운동하느라 책에 관심이 좀 멀어졌네.

같이 찍다보니 두 책의 색감이 비슷하네. 가을가을한 표지.

어제 아침 8시에 나가서 깜짝 놀랐는데 오늘 아침 7시에도 또 깜짝 놀랐다. 이 시간에 러닝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바야흐로 날씨 좋고 마라톤 대회도 많은 날이라 그런가. 뭐 하긴 등산은 5-6시에도 가긴 하지.

런데이 1주차. 달렸다기엔 대부분 걸었지만 1분에서 1분 30초를 뛰는 것도 긴 시간으로 느껴지지만 8주 후엔 30분 달리겠지. 런저씨는 믿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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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9-29 2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런저씨만 믿으세요. 이끌어줄 겁니다. 화이팅!
다음달 읽기도 물론 화이팅!!

햇살과함께 2024-09-30 10:37   좋아요 1 | URL
믿습니다!! ㅎㅎ
다음달 읽기도 기대됩니다!
하루만 지나면 휴일이라니 너무 좋은 월요일이네요 ㅎ

독서괭 2024-09-30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분 뛰는 것도 힘들었던 내가 30분을 달리다니~! 하는 그 순간 진짜 뿌듯합니다 ㅎㅎ 햇살님도 8주 뒤면 그 기분 느끼실 거예요😆

햇살과함께 2024-10-01 08:09   좋아요 1 | URL
오늘 아침도 달리고 왔습니다 헤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가 와서 비 맞으며 뛰니 기분이 너무 좋네요.
 

홍희담 <깃발>
윤정모 <고삐>

박완서_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아뇨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돈이 얼마 없는 상태가 얼마나 좋아요. 난 그걸 알거든요."
"저를 놀리실 셈이군요."
"천만에요. 내가 자랄 때 우리 어머니한테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그 소리였어요. 얘야 우린 돈이 얼마 없단다. 그러면서 교복도 내리 입히고, 내복도 기워 입히고 용돈도 조금밖에 안 주셨죠. 그렇지만 학비를 제때에 못 내거나 밥을 실컷 못 먹거나 할 정도로 궁색한형편은 아니었어요. 얼마 없다는 건 아주 없는 것보다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교육자셨는데 6남매나 되었으니 어머니가 언제나 돈이 얼마 없을 수밖에요. 돈이 얼마 없는 상태는 형제 간에 우애 절제 근면을 배우기에 아주 적절한 상태였나 봐요. 6남매가 다쓸 만하게 되었거든요. 지금 난 남매밖에 안 낳았어요. 남편도 의사니까 아이들은 아쉬운 것 모르고 유복하게 자라죠. 돈이면 다라고하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해 줄 수 없는 게 딱 한 가지 있잖아요. 돈이 얼마 없을 때의 활력 말예요. 그게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알고있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 없이 해 주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거있죠?"
"선생님이 돈이 얼마 없는 상태가 뭐라는 걸 정확하게 이해해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앞으로 잘될 거예요. 잘되길 빌겠어요."
"그래도 재판받을 생각하면 떨려요. 어려서부터 빚보증 서기나 소송 좋아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식의 가정교육을 받아 온탓인지 웬만한 손해라면 당하고 말지 경찰이나 법원 신세 안 지자 주의였는데." - P172

홍희담(1945~)

본명은 홍희윤으로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국문과를 졸업했다. 1971년 소설가 황석영과 결혼해 작가의 꿈을 접고 주부로 살다가 황석영이 연재소설 「장길산」 집필에 전념하고 새로운 문화 운동을 기획하기 위해 1977년 해남으로 내려가자 함께 이주한다. 1978년 광주로 이주한 홍희담은 ‘현대문화연구소‘의 윤한봉과 함께 광주 전남 지역 구속자 가족 모임과 진보적 여성 활동가 그룹을 모아 광주 지역 최초의 민주 여성 단체 ‘송백회‘를 만든다. 2003년 첫 소설집 『깃발을 내면서 "내 소설은 ‘송백회‘ 동지들과 함께 쓴 것"이라고 말한 데서 드러나듯, 홍희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회원들과 함께 투쟁 기금 모금, 대자보 작성, 회보 배포, 깃발 제작, 선전 및 홍보 등을 담당한 여성 활동가로서 시민군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수행한다. 1986년 황석영과 이혼한 이후에도광주에 남아 송백회 동지들과 지내다가 2000년이 되어야 광주를떠나 경기도 광명으로 이주한다.
"광주와 5월은 나를 소설가로 만든 원인이자, 내가 소설가로서 쓰고 싶었던 모든 것"이라는 작가의 소회에서 알 수 있듯 광주에서의 경험은 홍희담 소설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 대표작 「깃발」(1988)은 5·18민주화운동을 노동문학의 맥락에서 형상화한 문제작이다. - P179

김채원(原·1946~)

김채원은 1946년 남양주시 덕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인 파인 김동환, 어머니는 소설가 최정희이고 언니는 소설가 김지원이다. 유년 시절 서울 동숭동으로 이주해 지내다가 한국전쟁기 아버지의 납북 후 피난지인 대구에서 달성초등학교를, 휴전 후에는서울로 돌아와 창경국민학교를 다녔다. 이후 숙명여중을 거쳐 1년휴학 후 이화대학부속중학교,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2년동경 한국초중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지내다가 1975년 언니 김지원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수학했다. 이후 프랑스에서도 유학 생활을 했다. - P183

김채원_겨울의 환

저는 생각했지요. 제가 요새 여자들처럼 호강을 하다가 온 여자도 아니고, 어린 시절부터 막숟가락을 가지고 된장을 뜨러 어둠속 장독대를 다니던 여자이다. 그때부터 죽 밥짓고 반찬하는 일들이 훈련되어 있다. 어머니의 말대로 격식 있는 음식은 못 한다 해도밥 지을 줄도 김치 담글 줄도 모르는 여자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왜 이렇게 숨 쉬기마저 곤란한가. 저는 그만가져온 버선도 속치마도 입지 않고 오로지 살림과 싸우기에만 분투했지요. 이 괴물 같은 살림아,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해보자 라고 들러붙으며 저는 애꿎은 살림 쪽을 원망했습니다.
생일이나 환갑잔치 등으로 하여 친척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그는 항상 눈을 샐쭉하게 뜨고 있었습니다. 친척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스스로 창피해지고 자존심이 상하여 잊고 있던 결혼 당시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가 봅니다.
샐쭉하게 내려앉은 그의 눈꼬리를 보며 저의 마음은 말할 수없이 썰렁해져서 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 울음을 삼키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곤 하였습니다.
제게 돌아올 용기를 직접적으로 부어 준 것은 눈입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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