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of a Wimpy Kid #2 : Rodrick Rules (Paperback, International Edition) Diary of a Wimpy Kid (윔피키드) 2
제프 키니 지음 / Amulet Books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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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표현, 관용적인 표현으로 영어공부에 좋은 책이다. 형이란 동생을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가? 형과 동생에게 치이는 둘째 Greg에게 감정이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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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개관

해방기는 "상반되는 문학 이념 간의 혼재와 대결의 사건사이며, 운동사적 성격이 우세한 시기였다. 작가들은 좌우익 문학 단체에 가담하거나 조직의 이념과 정체성을 의식하며 글을 쓰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여성 작가들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일부 여성 작가들은 그간의 글쓰기 방식을 버리고 이념과 정치를 소재로 삼아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여성 작가들은 남성 혁명가나 민중을 서사의 중심에 세워 두거나 남성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의 글쓰기 관습에 거리를 두는 복장 도착적 글쓰기는 남성을 혁명의 주체로 승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 중심의 문학장에끼어들면서도 혁명에 대한 비판과 의혹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내는 전략이었다. 해방 정국의 정치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감하고 조직에 대한 내부 고발자의 면모조차 보여 주는 경계인의 글쓰기를 시도한 것이다. - P18

해방기 시사에서 여성 시인의 자리는 매우 척박했다. 1930년대를 대표하던 두 명의 여성 시인 모윤숙과 노천명은 일제 말기에친일의 길을 걸었고, 해방 후에는 친일 행위에 대한 치열한 자기반성 없이 시작 활동을 이어 나갔다. 모윤숙은 친일 시를 쓰던 것과 동일한 어조로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는 공허한 주장으로 목소리를 높였고 노천명은 ‘고독한 나‘를 내세워 현실에서 도피했다. 이렇듯 자기 성찰 대신 기만과 회피의 방식을 택하며 정체성의 혼란을직면하지 못한 이들은 다시 한국전쟁의 격랑에 휘말렸다. 모윤숙은한국전쟁의 경험을 담은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1951)에서 반공주의와 애국주의로 무장한 ‘국가‘와 ‘민족‘을 더욱 강하게 내세웠고, 노천명은 친일 부역 혐의를 청산하고자 몇몇 전쟁시에서 애국의 이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노천명은 「적적한 거리」(1949), 「아름다운 얘기를 하자」(1953) 등을 통해 분단으로 헤어져 볼 수 없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해방이 사실상 분단의 시작이며 민족 회복과 통합이 요원하다는 점을 아프게 환기하는 시편들을발표했다. 친일 부역 행위로 수감되었던 경험을 다룬 「고별」(1951)이나 소박한 행복을 이야기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는 자신의비루함에 대한 진솔한 응시와 현실 초월의 의지를 드러낸다. 다른 - P21

한편으로 시조시인 이영도 역시 「맥령」(1946)에서 노천명의 해방기시와 마찬가지로 해방을 기쁨이기 이전에 또 다른 슬픔으로 포착한다. 해방과 함께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난민처럼 떠도는 동포들에게서 쉽게 치유되지 않는 수난의 시간들을 통감하는 것이다. 드물게도 지하련은 「어느 야속한 동족이 잇서」(1946)에서 식민지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며 사회주의자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 - P22

그러나 전후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 여성 문단이 처한 곤경과성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의 정치적 삶과 문학이 일치한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체제 순응적인 여류‘는 사회와 문단의 약자로서 여성 작가들이 선택한 가면 전략으로 볼 필요가 있다. 자기 파괴를 자처하기보다는 가면과 변장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문화변용은 약자의 자기 보호술이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표층 서사와 이면 서사를 겹쳐 보거나 거꾸로 읽는 암호 풀기식 독법조차 불가피하게 요청된다. 또한 소설에서 강신재, 구혜영, 박경리, 손장순, 전병순, 정연희, 한말숙, 한무숙를 비롯해 시에서 김남조, 홍윤숙, 허영자, 그리고 수필 장르에서 언론인 정충량 등까지 작가층이두터운 만큼이나 다양성과 이질성에 주목해 볼 수 있다. 또한 ‘여류명사‘로서 문학적 지분을 챙긴 모윤숙, 장덕조, 최정희 등 기성 여성작가와 달리 친일의 행적이나 노골적인 정치적 부역의 혐의로부터자유로운 신진 여성 작가들이 등장했다는 점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남성 엘리트나 진보적 이념 주체가 1950년대 여성 작가에게 붙여 준 체제 순응적인 "여류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여성 인물과 화자를 알레고리로 보고 여성 작가의 ‘저자성‘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문학은 전후 사회 재건의 과정에서 가부장적 민족의 - P23

경계 바깥으로 내몰린 여성과 이방인의 삶과 존재를 기입하는 거의유일한 장이었다는 점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한다.
H&전후 여성문학의 첫 번째 흐름은 식민해방 한국전쟁의 역사 속에서 죽어 간 희생자를 기억하고 이별과 죽음 등 상실의 아픔을 위무하는 애도 주체로서 여성의 출현이다. - P27

두 번째 흐름은 ‘양공주‘를 단순히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재해석을 요구하고 민족의 경계를 흔드는 하위 주체로 재현한 것이다. - P27

강신재의 해방촌 가는길」(1957), 정연희의 「천 딸라 이야기」(1960), 한말숙의 「별빛 속의계절」(1956), 손장순의 「전신」(1958) 등 여러 작품에서 ‘양공주‘는해방과 전쟁이 만들어 낸 기형이나 변칙으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가부장적 민족 공동체를 심문하는 불온한 하위 주체로 출현한다. - P29

1950년대 여성문학의 세 번째 흐름은 정신병리적인 여성 주체들의 서사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은 가부장적 민족 재건의 정치가 시작되는 결절점이다. 해방은 신여성 기획을 리부트했지만 가족이 민족 재건의 상상적 구심점이 되면서 여성은 ‘가정의 천사‘로 이상화되고 가정 영역에 고립되기 시작했다. - P31

1950년대 여성문학의 네 번째 흐름은 신연애론, 신정조론 등이부상하는 여성사의 퇴행적 국면에서 실존주의적 주체 의식과 여성지식인을 내세운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다. 세계대전 후 유럽의 철학과 문예계를 휩쓴 실존주의는 <사상계>를 비롯한 인문 잡지나 문예지를 통해 번역 · 수입되면서 1950년대 신세대 작가와 비평가들에 의해 폭넓게 받아들여졌다. - P33

마지막으로 산문 영역에서 여성 작가가 이룬 성취 역시 기억되 - P35

어야 할 것이다. 해방기에 여성 기자로 출발해 1950~1960년대 《여원》 등 주요 여성지에서 대표적인 여성 논객으로 활동한 시사평론가 정충량은 남한 사회의 공론장에서 여성 비평가의 부재를 메꾸어주는 존재였다. 「여성의 지위와 현실」(1955)은 양곡 비료 조작 기업 ‘금련‘의 양곡 조작 업무를 정부 직영으로 전환하며 총 6000명에 이르는 거대한 감원에 착수해, 남 직원에 대해서는 감봉, 견책, 근무성적 불량 근무연한제 등 전형 요령을 설정한 데 반해 여직원에 한해서는 무조건 해고를 감행한 사건을 다룬다. 정충량은 이러한 정부의 결정이 헌법에 명시된 인간의 평등권을 외면하고 여성을사회적 희생물로 삼은 사태라고 비판한다. 한국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졸지에 가장이 된 여성이 많았음에도 사회가 여성의 가난과 고통에 대해 무관심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정충량은 본인이 ‘전쟁미망인‘이자 ‘감원 대상‘임을 밝히며 남편 없이 홀로 생계를 꾸려가는여성을 탈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여성‘으로 프레임화하는 사회적 시선에 맞서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유도하고자 했다. - P36

최정희

희는 1906년 함경북도 성진군에서 한의사 집안의 장녀로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첩 살림으로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와 중앙보육학교를 어렵게 마쳤다. 신여성 예술가를 꿈꾸어 ‘학생극예술좌‘에 참여하고, 이때 만난 사회주의 예술가 김유영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둔 채 이혼했다. 조혼한 아내가 있는 김동환과의 사이에서 소설가 김지원, 김채원을 낳지만 ‘등록되지 않은 아내‘로, 또 남편이북에 피랍되자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모가장으로 평온함과는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다른 한편으로 최정희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카멜레온처럼 입장을 바꾸며 권력에 순응한 대표적인 여성 명사이다. 1934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사건으로 옥살이를 했지만 전시 체제가 형성되자 친일 행위에 나섰고, 한국전쟁기에는 공군종군작가단 창공구락부에서 활동하며 우익 이데올로그를 자처했다.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소설협회 대표위원 등을 지냈을 만큼 한국문학사에서 최정희는 살아 있는 문학권력이었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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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의 에너지는 끌처럼 작용한다. 하지만 표면의 오염물을 긁어낼 때 흔히 사용하는 물리적·화학적인 방법이 가지고 있는단점이 없다. 강한 공기압이나 수압은 먼지를 털어 내면서 그 아래에 있는 작품의 연약한 표면까지 훼손할 우려가 있다. 또 화학약품이나 유기용제를 사용하면 제거해야 하는 부분보다 더 넓은 영역을침범하거나 반응시간을 조절하기 힘들다. 레이저는 아주 가는 정돈된 빛으로 강약을 조절하기 때문에 섬세한 작업에서부터 넓은 면적까지 작업의 강도와 범위를 조절할 수 있다. 작업자에게도 안전하다. 다만 사람의 눈에 직접 쓰이게 되면 각막에 손상이 일어날 수 있어서, 눈만 잘 보호한다면 작업자에게도 아무런 위험이 없다. 작업후에는 환경에 해로운 어떤 것도 남기지 않는다. 레이저가 미술품의 클리닝에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선별적 공격성과 장치의 안전성 때문이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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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그래서 이 책에서 미술복원과 보존과학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질문들, ‘미술관 전시실의 조명은 왜 컴컴한지‘, ‘미술관은 온도와습도 조절에 유난히 민감한지‘, ‘몇백 년 된 그림을 어떻게 아직도 볼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 모두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또 오늘날과학 기술이 미술품의 보존과 분석을 위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이 과정에서 어떤 특이점을 가지는지, 미술복원가가 보존 처리기술뿐만이 아니라 보존가로서 윤리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까지도 다양한 작품들과 예술가들에게서 그 예를 찾아보려고 했다. 이 시도가 독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 P6

테세우스의 배라고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나무판자 몇 개를 바꾸면 테세우스의 배가 아닌가?
사물이 변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새롭게 복원한 숭례문은 언제의 숭례문인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모나리자는 정녕 다빈치가 500년 전에그렸던 그림과 똑같을까?

원래 경계를 명확하게 나누기 힘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빨강과 주황의 구분은 모호하고 새것과 헌것의 구분도 애매하다. 요즘에는 예술가와 과학자의 구분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니 무엇이미술이고 아닌지조차 대답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무엇을 보존해야하고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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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숙(1933~)

소정 강인숙은 1933년 함경남도 갑산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거쳐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배우자는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이며 두 사람은 대학에서 만났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하였고 수필가, 번역가, 문학평론가로 활동했으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2001년에는 이어령과 강인숙의 이름한 자씩 넣어서 만든 영인문학관을 개관하고 현재 관장으로 있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세대로 일본어 독해가 가능했으며 불문학을부전공으로 하는 등 외국어에 농통했다. 「자연주의를 중심으로 한김동인 연구」(석사학위논문, 1964), 「자연주의 연구: 불·일한 삼국대비론」(박사학위논문, 1985)을 필두로 한국 자연주의 문학 연구에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 - P205

강인숙_여류문학의 새 지표

라블레의 시대부터 이미 여인들은 심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국적과 시대를 초월하여 대부분의 여류 작가들이 걸어간 길이다. 전기한 안방 중심의 문학은 동시에 심리 묘사의 문학이기도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류 작가들도 거의 다 이 양면을 구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할 만한 작가는 강신재 씨와 한무숙(韓戊淑)씨 같은 작가다.
《바바리 코우트》 《젊은 느티나무》의 작가 강신재 씨는 단편소 - P210

설이라는 제한된 그릇 속에 선명한 심리의 투시도를 그려 넣는 명수다.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심리의 앰비밸런스를 묘사하는 씨의 수법은 유니크하다. 작자의 의도를 위하여 작중인물에게 무리를 시키는 일이 없다. 씨는 그저 한 폭의 그림을 그릴 뿐이다. 거기에 주석을 붙이거나 설명을 하는 일이 없다. 씨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미묘한 분위기와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잊혀지지 않는것은 이런 부담이 없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월훈(月暈)》 《떠나는 날》의 작가 한무숙 씨는 강 씨와는 또 다른 심리소설의 일면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씨에게서 특히 기억해야할 작품은 《감정이 있는 심연(深淵)》이다. 그 작품에서 씨는 여지껏평면에 그쳤던 심리 추구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 주었다.
섹스 콤플렉스, 길트 콤플렉스를 다룬 이 작품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내적 갈등을 취급한 한말숙 씨의 《상처》와 함께 인간 심리의 심층을 파고들어 간 그 노고만으로도 치하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두 작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의도를 형상화시키는 일에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앞으로 이 두 작품은 심리소설의나아갈 길의 한 이정표가 되어 줄 것이다. - P211

또 사실 사회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이 여류 작가의 결정적인약점이었기도 했다. 그렇다고 사회적인 면에 관심을 가진 작가가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프로문학이 성행하던 시기에 작품 활동을 하던 박화성(朴花城), 최정희(崔貞熙) 양 씨의 초기 작품이 이미사회에 대한 관심을 보여 주었고, 강경애(愛)씨의 《지하촌》 같은 작품도 같은 계열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전기한 풍속의 묘사나 심리 추구의 문학에 비기면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약세에 놓여 있었으며, 자칫하면단절되기 쉬운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들어가서 박경리(朴景利) 씨가 나오면서이 분야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불신시대》 《암흑시대》 등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씨는 이미 이방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 P212

금년도의 여류문학상을 탄 손장순씨의 한국인>도사회에 대한 짙은 관심을 표명한 작품이다. 손 씨는 박 씨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적, 경제적인 분야에까지 그 관심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같은 사회소설이라도 여류 작가의 경우는 시발점이 언제나 안방과 직결되어 있다. 전쟁을 시장과 결부시킨 그 착상법부터 특이하다. 이념의 싸움터(戰場전장)를 생활의 싸움터(市場시장)와연결시킨 것은 씨의 공적이다.
비록 그것이 홍사중 씨의 말대로 『비좁은 시각으로 하여 전쟁을 개인의 생활 속에 충분히 용해시키지 못한 채 그저 하나의 배경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할지라도손씨의 경우도 역시 《한국인>이라는 거대한 문제가 안방과 연결되어 있다. 연결되어 있는 것뿐 아니라 그쪽의 비중이 너무 무거워져 버렸다. 사회적인 것에 대한 관심의 폭에 비해 안방적인 요소가승했다는 것은 양씨(兩氏)가 여류 작가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케 하는 자료가 된다. - P213

전혜린_목마른 계절 - 이십 대와 삼십 대의 중간 지점에서

이런 공동의 인식에의 정열과 탐욕스러운 지식욕이 그때의 나와 주혜를 무섭게 굳게 맺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의기억을 주혜와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지상의 양식」을 읽고 나서 우리는 그 속에 있는 한 귀절 「나타나엘이여, 우리는 비를 받아들이자」에 감동해서 폭우 속을 우산 없이 걸어 다녔다.
이 버릇은 많이 완화된 채 아직도 나에게 남겨져 있다.
또 마르땡·듀·가아르"의 「회색·노오트」를 읽고는 주혜와 나는 당장에 회색 노오트를 교환하기로 하여 매일 한 사람이 집에 가 - P224

져가서 일기를 쓰고 다음 날 그 노오트를 상대방의 책상 속에 넣고있었다. 이 노오트를 우리는 몇 년이나 교환했었다. 그 당시 그 노오트와 주혜는 나의 전 생활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주헤도 작가를 지망하고 있었다. 재능에 대한 정당한 회의를, 어린 연령과 또 열렬한 지식욕이 가려 덮고 있었다. 하늘은 넓었고 우리는 얼마든지 날을 수 있다고 믿었다.
문학, 철학, 어학(영·독·불·한문·한글)에 대한 광적일 정도로열렬한 지식욕과 열성, 그리고 주혜와의 모든 것을 초월한 가장 순수한 가장 관념적인 사랑으로 완전히 일관되어 있었던 나의 여학교시절은 확실히 아직도 미래에 대해서 꿈을 그릴 여백이 얼마든지남아 있었던 동화의 나라와 현실 사이의 완충지대이기도 했었다.

내가 미쳐 생각하지도 못했던 가장 이외의 方向방향으로
어느새 자기가 형성된 것을 발견했다. - P225

정연희_정점

지영은 견딜 수 없어지자 영은의 머리를 떠다 밀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집 안을 향하여 걷다 말고 영아의 목소리에 발길을 돌렸다.
「어머니는 밤낮 기다리는 여자 같죠? 어머니는 뭔가 밤낮 기다려요. 이제까지의 생애가 기다림 하나뿐인 것같이 생각될 때가 있어요. 행복이 아니면 차라리 커다란 불행을 기다리는 여자 같아요. 또 어머니에게 행복의 뜻이란 평범한 거에요」
「허! 그 녀석 또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한수의 말에 영아는
「궤변이 아니래두요. 두고 보세요」
그렇게 조용하게 말하면서 지영을 돌아본다.
영아의 얼굴은 달빛에 젖어 있었다. 아까는 노을 속에서 생겨난 생명 같았던 그의 얼굴이 지금은 달빛 속에서 생겨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P268

박시정_날개 소리

가령 <멋있는 여자>라고 말해야 할 것을 <맛있는 여자>라고 발음했다느니, <살이 많다>고 말할 것을 <고기가 많다>고 말했다느니, 그런 한국말 수업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또한 누이동생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귀꼬리에 구멍을 뚫었다느니, 어젯밤에 고양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먀암, 먀암 했다느니, 우리네에겐 하나도 중요한 얘깃거리가 아니었다. 얼핏 생각해 보면 그러한 대화는 시간낭비 같다. 나는 이런 따위 대화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나는다시 불안해졌다. 그러나 생 전체를 하나의 도너스라고 가정한 후, 구멍이 안 뚫린 부분이 밝은 생이고 뚫린 부분을 슬프고 쓰고 아픈부분이라고 한다면, 구태여 슬프고 쓰고 아픈 부분만 응시하고 괴로와할 까닭이 어디 있는가. 아무런 해결도 있을 수 없고 자기 발전에 저해마저 주는 짓을 할 필요가 있을까. 도너스의 안 뚫린 부분만바라보고 아이들처럼 곱고 순진한 얘기들, 그리고 재미있는 얘기들만 하려 노력한다면, 그것은 자기 밖의 생활일지는 모르지만 아픈응시는 아니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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