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H마트는 아시아 식재료를 전문으로 파는 슈퍼마켓 체인이다. H는 한아름의 줄임말로, 대충 번역하자면 "두 팔로 감싸안을 만큼"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 조기 유학 온 아이들은 고국에서 먹던 갖가지 인스턴트 라면을 사러, 한인 가족들은 설날에 해먹을 떡국 떡을 사러 이곳에 온다. 큼직한 통에 담긴 깐마늘도 여기서만 살 수 있다. 한국 음식을 해 먹는 데 마늘이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를 제대로 알아주는 곳은 이곳뿐이라는말이다. H마트는 일반 슈퍼마켓 매대 중 달랑 한 칸을 차지하는 ‘세계 전통식품‘ 코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준다. - P9
나의 슬픔은 뜬금없는 순간에 들이닥치기 일쑤다. 나는 욕조에 엄마의 머리카락이 허다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게어떤 기분인지에 대해서는, 5주 동안 날마다 병원에서 밤을지새운 일에 대해서는 태연한 얼굴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H마트에서 낯모르는 아이가 뻥튀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양손에 하나씩 집어드는 모습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다. 원반 모양의 그 앙증맞은 쌀과자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 P12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부아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내가 생판 알지도 못하는 이 한국 노인에게 짜증이 난다. 이 여인은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단사실에 화가 치밀어오른다. 마치 생면부지의 이 여인이 살아남은 것이 내가 엄마를 잃은 것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처럼. 누군가는 우리 엄마 나이에도 자기 엄마를 곁에 둘 수 있다는 사실에 골이 난다. 저 노인은 여기서 이렇게 매운 짬뽕을후루룩거리며 먹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은거지? 분명 다른 사람들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까. 인생은불공평하고, 때로는 분별없이 남 탓을 해보는 게 아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때도 있으니까. - P14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H마트에서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사람이 얼마나 될지, 쟁반에 음식을 올려 가져오면서 가족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이 사람들이 여기서 무언가를먹는 것은 음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고 축복을 나누 - P18
고 싶어서일까? 이중에 누가 올해 또는 지난 10년 동안 고향에 못 갔을까? 누가 나처럼 죽을 때까지 영영 못 볼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 P19
우리는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굴에 다쓰여 있다. 저마다 조용히 앉아서 점심을 먹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다 같다.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한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각자제 기숙사 방으로, 교외의 부엌으로 흩어져서, 열심히 장 본것을 부려놓는다. 그리고 이 긴 여정 없이는 만들지 못했을 음식을 살뜰히 재현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트레이더 조 매장에는 없다. H마트는, 아무데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을 여기서는 반드시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인 향기로운 공간이다. - P21
버스는 초저녁에 도착했다. 덩컨은 내게 케이크 숍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곳은 지하에서 이런저런 공연을 하는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작은 바였다. 나는 주말에 입을 옷가지로 불룩한 배낭을 메고 바를 향해 엘런 스트리트를 걸었다. 걸음을 떼기가 무섭게 내가 유행에 동떨어진 차림을 한 10대 청소년 같다는 느낌이 확 밀려왔다. 봄이 여름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고 사람들은 윗도리를벗어서 팔에 걸치고 다녔다. 익숙한 근질거림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어떤 야생적인 상태- 낮이 더 길어져 도시를 걷는 일이 아침부터 밤까지 마냥 기분좋기만 한 때, 모든 책임을 저 - P72
길가로 내던진 채 운동화를 신고 텅 빈 거리를 생각 없이 내달리고 싶은 그런 때를 향한 갈망이었다. 하지만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충동을 외면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름방학이, 유유자적한 나날이 내게 더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조만간 뭔가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받아들여야 했다. - P73
가끔씩 나는 부모님이 휴일 파티 때 마시다가남겨둔 술을 빼돌렸다. 마치 화학자처럼 조심조심 이 병 저 병에서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덜어내어, 그걸 탄산음료와 섞어 공원에서 마셨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차를 몰고 정처 없이 다니면서 음악을 들었다. 때로는 한 시간 거리를 달려 덱스터저수지나 펀 리지까지 가서, 선창에 앉아 석유처럼 검은 물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 막막하고 황량한 물을, 우리가 우리자신에 대해 얼마나 혼란스러워하는지, 우리가 느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위한 공명판으로 삼았다. 또 어느날에는 스키너 언덕으로 올라가서 우리를 볼모로 붙들고 있는 따분한 도시를 내려다보거나, 24시간 문을 여는 아이홉 식당에 가서 커피와 해시 브라운 감자를 먹었다. 아니면 언젠가우리가 발견한, 끈이 긴 그네가 있는 남의 땅에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 한번은 차를 몰고 공항에 가서 멍하니 터미널을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온 적도 있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그토록 여행하고 싶던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야행성 10대 몇몇은,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외로움과 AOL 채팅 프로그램으로 하나가 됐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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