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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인터넷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접하고 성소수자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게 해준 말이 있다. "커밍아웃은 평생 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커밍아웃이 "나는 성소수자입니다" 라고 뻥 터뜨리면 끝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한방에 끝낼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가를 새로 만날 때마다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 세계적인 유명인일지라도 많은 단계를 거쳐서 공개적인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깨닫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 P196

성소수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듯이 부모와 가족에게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성소수자들처럼 성소수자의 가족들에게도 자기 고민을 털어놓을 지지자가 필요하다는 것, 부모도 상처받는 존재이고 완전하지 않다는 것. 이런 걸 생각하게 되니 가족들을 이해하기가 좀 쉬워졌다. - P221

그럼에도 언젠가는 커밍아웃을 할 것이다. 그 고통을 감내할 정도로 커밍아웃에 대한 욕구는 크다. 아직은 용기가 부족하지만 때는 올 것이다. 다가오는 때에 그 고통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변화된 사회 속에서는 성소수자로서의 삶이 ‘성공한 삶‘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보일 수 있도록 말이다. - P246

커밍아웃을 준비하다 보면 마치 심문장에 끌려가는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커밍아웃하려는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말하기 전까진 모르니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고 온갖 질문과 대답을 상상해 본다. 그중의 대부분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질문이다. - P249

"나를 상처 입히는 것은 적의 말이 아니라 친구의 침묵" 이라는 마틴 루터 킹의 말이 뼈저리게 공감되었다.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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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로 사는 것이 선택 가능한 일이라면 이렇게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 환경에서 누가 그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타고났습니다. 타고난 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성소수자로 사는 거지요.
(…) 어머님께서도 아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에는 그냥 안아주세요. 힘들어도 그냥 안아주세요. 놀랍게도 아이들은 커밍아웃했을 때 부모님이 자신을 괴물처럼 여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이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하는데 말이죠.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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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처절하다.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그 지긋지긋한 가족에게,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을까.

폭발로 인해 아버지는 설교자에서 관찰자로 변신했다. 끊임없는 통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목이 화상을 입어서 말하는 것이 힘들어진 아버지는 관찰했고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날마다 그렇게 누워서 입을 다문 채 주변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몇 주 사이에 아버지는 내가 듣는 강의, 내 남자 친구, 내가 여름에 하는 아르바이트 일에 관해 잘 알게 됐다. 몇 년 전에는 내 나이를 다섯 살이나 틀리게 알고 있던 아버지가 말이다. 내가 직접 아버지에게 말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아버지의 붕대를 갈면서 오드리 언니와 내가지나가듯 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버지는 그것들을 기억했다.
여름이 거의 끝나 갈 즈음 아버지가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듣는 강의에 대해 좀 더 듣고 싶구나. 재미있게 들리더라.]
그것은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졌다. - P352

돌이켜 보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한 가지 행동, 더 나은 행동을 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행동을 했다. 그것은 폭발 사고가 난 후 내가 닉을 처음 다시 본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현대 의학을 믿지 않는다, 화상을 집에서만든 연고와 동종 요법으로 치료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무서있다, 아니 무서운 것 이상이었다, 살아 있는 한 불에 탄 살 냄새를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등등을 털어놓는 행동 말이다. 그에게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내 마음을 짓눌러 온 짐을 함께 나눠지고 함께 더 강해질 수도 있었다. 대신 나는 그 짐을 모두 혼자 지겠다고 결정했고, 이미 빈혈과 영양실조에 더해 거미줄이 쳐지기 시작한 닉과의 관계는 점점 더 약해져 갔다. - P355

나는 그 말에 대답하기 전에 잠깐 생각을 해야만 했다. [바람을 받으며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람을 받으며 서 있는 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아서예요.] 내가 말했다. 「바람은 그냥 바람일 뿐이에요. 지상에서 이 정도 바람을 맞고 쓰러지지 않는다면 공중에서도 이 정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아요.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유일한 차이는 머릿속에 있을 뿐이지요.」 - P371

케리 박사에게 그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케임브리지로 돌아올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올 생각을 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수치스러운 순간들이 봇물터지듯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케리 박사에게 할 수는 없었다.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거의 잊고,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현재의 것들에 스며들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에서는 그 대비가 너무 컸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 장엄했다. 차라리 내 기억들이 돌로 쌓아올린 첨탑들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믿기 쉬웠다. - P380

내가 가난했고, 무지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한 치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수치심의 뿌리가 어디였는지 깨달았다. 내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콘세르바토리에서 공부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외교관이 아니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이고, 엄마가 그런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이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전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 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목을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 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 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 P424

나는 숀 오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어떻게 오빠를 잃게 됐고, 어떻게 나머지 가족들을 모두 잃게 됐는지. 그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냥 내려놓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영원히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야.] 내가 말했다. [내가 고칠 수 있어.]
[네가 이렇게 많이 변한 것도 재미있지만, 그렇게 변했는데도 열일곱살 때랑 하는 말이 똑같은 것도 재미있다.] 찰스가 말했다. - P462

자신의 현실 — 나와 언니가 함께 알고 있던 현실 — 을 아버지의 현실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언니가 느꼈을 안도감 말이다. 그렇게 적은 대가만 지불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언니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언니가 한 선택을 두고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순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노력, 몇 년 동안 해온 모든 공부는 바로 이 특권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준 것 이상의 진실을 보고 경험하고, 그 진실들을 사용해 내 정신을 구축할 수 있는 특권, 나는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역사와 수많은 시각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능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믿게 됐다.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내게 요구되는 대가였다. 이제 이해가 됐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 P471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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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읽으면 안되겠어:;; 눈물 콧물...

혐오세력들이 성소수자들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다 좋은데, 내 눈에만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떤 존재를 향해 그 정체성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은 그 자체로 차별과 배제입니다. 혐오세력들이 성소수자의 ‘비가시화‘(invisibility)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커밍아웃은 스스로의 존재를 ‘가시화’ (visibility)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어떤 소수자 집단이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상태에서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커밍아웃은 그 자체로 가장 급진적이고 적극적인 권리 주장이자 평등의 요구입니다. 평등하게 존중받는 인격적 주체로서 살아가겠다는 선언입니다. - P5

커밍아웃은 하나의 사건이기보다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커밍아웃을 하기까지의 과정, 커밍아웃하는 순간, 커밍아웃 이후의 여러 반응들까지 모두 커밍아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래서 커밍아웃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성소수자 문제에 상당 부분 다가설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 P8

나는 이제 딸의 성적지향 자체가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동성애가 선택가능하다면 누가 이렇게 혐오받는 삶을 선택하겠는가? 자신의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알게 되었을 때 당사자나 가족이 괴로워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차별과 혐오 발언은 당사자들과 가족들을 아프게 한다. 이제야 나는 젠더교육이 없는 한국교육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 P60

신분제 폐지, 어린이노동 금지, 인종 차별 반대, 여성참정권 운동, 장애인 차별 반대 등 수많은 인류의 투쟁을 기억한다. 당시에는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로 비쳤지만, 차별받는 당사자와 지지자들의 연대로 인류는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성소수자 차별 반대운동이 다음 차례라고 생각한다. 함께하는 이웃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모이기를, 그래서 내 아이도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꿈꾼다. - P61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7년 1월호에 따르면 "성정체성이 일반적으로 유아기 때 명확해지는 반면 매력을 느끼거나 사랑에 빠지는 대상과 관련 있는 성적지향은 더 늦게 확립된다. 조사에 따르면 성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성적지향 역시 바뀔 수 없다"고 한다. - P84

단 한순간에 소외와 혐오에 대하여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딸이 엄마에게 설명하려 애썼던 것이 무엇인지 느껴졌다. 자기가 왜 자유롭지 못한지, 생활과 연애를 분리하여 살라고 하는 건 정체성을 숨기며 살라는 건데, 그것이 어떻게 분리의 문제인지, 자신의 존재 자체인데……. 엄마는 자신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다고 항변하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깨달았다. 나의 오만이었다. 부당해고의 억울함 따위는 저 멀리 내던져두고 나는 빨리 내 딸 린이 보고 싶었다. 엄마가 미안했다고, 너 혼자서 온통 불편한 공간에서 생존투쟁을 하게 했다고, 이제야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 P122

나는 지금도 민중총궐기 측에서 2016년 11월 11일에 내놓은 사과문(「민중총궐기투쟁본부 "다양성 · 평등성 지키겠다" 지난 촛불집회 여혐발언 사과」, 『경향신문』 2016. 11. 12)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나 다른 분야에서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성차별과 성정체성, 특히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본다. 이 경우에도 이들을 설득할 유일한 무기는 그들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하는 것이리라.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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