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처절하다.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그 지긋지긋한 가족에게,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을까.

폭발로 인해 아버지는 설교자에서 관찰자로 변신했다. 끊임없는 통증 때문이기도 했지만 목이 화상을 입어서 말하는 것이 힘들어진 아버지는 관찰했고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날마다 그렇게 누워서 입을 다문 채 주변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몇 주 사이에 아버지는 내가 듣는 강의, 내 남자 친구, 내가 여름에 하는 아르바이트 일에 관해 잘 알게 됐다. 몇 년 전에는 내 나이를 다섯 살이나 틀리게 알고 있던 아버지가 말이다. 내가 직접 아버지에게 말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아버지의 붕대를 갈면서 오드리 언니와 내가지나가듯 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아버지는 그것들을 기억했다. 여름이 거의 끝나 갈 즈음 아버지가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듣는 강의에 대해 좀 더 듣고 싶구나. 재미있게 들리더라.] 그것은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졌다. - P352
돌이켜 보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한 가지 행동, 더 나은 행동을 할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행동을 했다. 그것은 폭발 사고가 난 후 내가 닉을 처음 다시 본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그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우리 가족은 현대 의학을 믿지 않는다, 화상을 집에서만든 연고와 동종 요법으로 치료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무서있다, 아니 무서운 것 이상이었다, 살아 있는 한 불에 탄 살 냄새를 절대로 잊지 못할 것 같다…… 등등을 털어놓는 행동 말이다. 그에게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내 마음을 짓눌러 온 짐을 함께 나눠지고 함께 더 강해질 수도 있었다. 대신 나는 그 짐을 모두 혼자 지겠다고 결정했고, 이미 빈혈과 영양실조에 더해 거미줄이 쳐지기 시작한 닉과의 관계는 점점 더 약해져 갔다. - P355
나는 그 말에 대답하기 전에 잠깐 생각을 해야만 했다. [바람을 받으며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람을 받으며 서 있는 것에 관해 생각하지 않아서예요.] 내가 말했다. 「바람은 그냥 바람일 뿐이에요. 지상에서 이 정도 바람을 맞고 쓰러지지 않는다면 공중에서도 이 정도 바람에 쓰러지지 않아요.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유일한 차이는 머릿속에 있을 뿐이지요.」 - P371
케리 박사에게 그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케임브리지로 돌아올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올 생각을 하면 내 인생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수치스러운 순간들이 봇물터지듯 함께 떠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케리 박사에게 할 수는 없었다. 브리검 영 대학교에서는 그런 것을 거의 잊고,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현재의 것들에 스며들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에서는 그 대비가 너무 컸고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 장엄했다. 차라리 내 기억들이 돌로 쌓아올린 첨탑들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믿기 쉬웠다. - P380
내가 가난했고, 무지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한 치의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수치심의 뿌리가 어디였는지 깨달았다. 내가 대리석으로 지어진 콘세르바토리에서 공부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외교관이 아니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이고, 엄마가 그런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사람이어서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내 수치심은 철컥철컥 돌아가는 전단기의 칼날로부터 나를 밀어 내는 대신, 오히려 그쪽으로 나를 밀어 넣는 아버지를 가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수치심은 내가 바닥에 엎드려서 목을 눌리고 있는데도 바로 옆방에서 엄마가 눈과 귀를 막고, 그 순간 내 엄마가 내 엄마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었다. - P424
나는 숀 오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어떻게 오빠를 잃게 됐고, 어떻게 나머지 가족들을 모두 잃게 됐는지. 그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냥 내려놓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영원히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야.] 내가 말했다. [내가 고칠 수 있어.] [네가 이렇게 많이 변한 것도 재미있지만, 그렇게 변했는데도 열일곱살 때랑 하는 말이 똑같은 것도 재미있다.] 찰스가 말했다. - P462
자신의 현실 — 나와 언니가 함께 알고 있던 현실 — 을 아버지의 현실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언니가 느꼈을 안도감 말이다. 그렇게 적은 대가만 지불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언니는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언니가 한 선택을 두고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같은 선택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순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노력, 몇 년 동안 해온 모든 공부는 바로 이 특권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준 것 이상의 진실을 보고 경험하고, 그 진실들을 사용해 내 정신을 구축할 수 있는 특권, 나는 수많은 생각과 수많은 역사와 수많은 시각들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스스로 자신을 창조할 수 있는능력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믿게 됐다. 지금 굴복한다는 것은 단순히 언쟁에 한번 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것은 내 정신의 소유권을 잃는다는 의미였다. 이것이 내게 요구되는 대가였다. 이제 이해가 됐다. 아버지가 내게서 쫓고자 하는 것은 악마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 P471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 P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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