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버지의 폭력적인 환경, 자식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쓰는 게 아니라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 주님이 지켜주신다 - 더 무서운 폭력
아버지가 새로운 기계 작동이나 작업을 지시하면 누가 죽거나 다칠까봐 너무 무섭다. 공포소설을 보는 듯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가 겁난다!!

일주일 후 나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 지원했다. 지원서를 어떻게 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타일러 오빠가 대신 써줬다. 오빠는 엄마가 고안한 엄격한 프로그램에 따라 내가 교육을 받았으며, 그 프로그램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모두 갖추었다는 점을 확신한다고 적었다.
그 지원서에 대한 내 감정은 날마다, 아니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어떨 때는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신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28점을 받도록 한 것이 바로 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내가 합격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은 내가 대학에 지원한 것,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려는 마음을 먹은 데 대해 벌을 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 진학 여부가 어떻게 결론이 나는 나는 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대학이 아니더라도 어디로든 떠날 것이다. 내가 숀 오빠를 엄마가 아니라 병원으로 데리고 간 그 순간 집은 다른 곳으로 변해 버렸다. 그전까지는 집의 어떤 부분을 내가 거부했었지만 이제는 집이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 P239

나는 항상 아버지가 믿는 신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우리 가족이 읍내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은 교회에 가긴 하지만 종교는 같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다. 다른 사람들은 겸양을 <믿었지만> 우리는 겸양을 실천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치유 능력을 <믿었지만)> 우리는 주님의 손에 치유를 맡겼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믿었지만> 우리는 실제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나는 우리 가족만이 진정한 모르몬교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대학, 이 교회 안에서 처음으로 나는 그 간극의 거대함을 실감했다. 나는 그제야 이해가 됐다. 우리 가족과 함께하지 않으면 이방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이었다. 그 사이에는 발을 걸칠 자리가 전혀 없었다. - P254

그 일이 끝날 무렵에야 나는 처음부터 불 보듯 바로 알아차렸어야 할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평등을 향한 대장정에 누군가는 반대했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손에서 자유를 쟁취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우리 오빠를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 오빠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변화가 있었다. 내가 자각의 길에 들어섰고, 오빠, 아버지, 나 자신에 관해 아주 기초적인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건넨 전통에 의해 만들어져 왔지만, 고의적으로 혹은 실수로 그것이 어떤 전통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오직 다른 사람들의 인간성을 빼앗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담론에 목소리를 보태 왔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담론을 확대하고 그편에 서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힘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 전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 P287

찰스는 저녁 식사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 즉시 자기 지프차를 몰고 떠난 후 몇 시간 동안 아무 기별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화를 한 그는 교회에서 만나자고 했다. 벅스피크의 우리 집으로는 오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어둡고 텅빈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지프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가 울고 있었다.
「네가 봤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누가 내게 물어봤다면 나는 찰스가 세상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그에게 증명해 보일 것이다. 내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랑이나 우정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그럴듯하게 거짓말하는 능력이었다. 내가 강하다고 믿을 수 있도록 거짓말하는 능력. 내가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찰스를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 P300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비숍이 말했다.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게 말해 줘야 도움도 줄 수 있어요.」 온화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내게는 그 온화함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고함을 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고함이라도 치면 화가 났을 것이고, 나는 화가 났을 때 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강하다는 느낌 없이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다. - P316

나는 그 돈을 받으면 내가 컨트롤당할 거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돈은 내가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줬다. 아버지 밑에서는 절대 다시 일하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하면서, 처음으로 나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돌이켜 보면, 세금 신고서를 훔치기 위해 갔던 그때가 처음으로 내가 <내 집을 떠나> 벅스피크로 갔던 날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의 집에 침입자 신분으로 들어갔었다. 그것은 심리적 언어에 온 큰 변화였고, 내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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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21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폭력 중 가장 잔인한 것이 가족에 의한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가깝고 나를 보호해줘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내쳐지는거잖아요. 거기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자각조차 하지 못할 때는 더더욱 끔찍하네요. 그런 환경속에서도 그걸 극복하는 이가 있다는게 인간의 대단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우리나라는 수백 년 동안 농업기반을 다져 경쟁력을 높여온 농업선진국에 비해 농업구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방을 추진했기 때문에 농업기반이 붕괴되었다. 그 결과 농가의 농업소득은 2000년 1,090만 원에서 2020년 1,175만 원(추정치)으로 불과 85만 원, 7.8% 상승에 불과했다. 그동안 문민정부 이래로 농업 근대화, 선진화를 위해 적게는 몇십조 원, 많게는 100조 원 이상을 농업에 투입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농가의 농업소득이 제자리라는 것은 농업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P27

전국에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건설된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이전해인구를 분산시킨다는 이론은 대기업을 키워 그 성과를 중소기업과 일반국민에게 나눈다는 이론, 이른바 낙수효과를 말하는 것인데 이 이론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게 경제학계의 정설이 되고 있다. - P29

농촌에 적정한 인구가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산업자본에 의한 농촌의 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부르기 때문이다. 농촌에 사람이없게 되면 난개발과 공해시설들이 쉽게 들어설 수 있다. 무분별한 개발로 우량한 농지들이 잠식되고 공해시설의 난립으로 농촌환경이 파괴된다면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현재 우리 농촌은 대규모 축산(가공)단지가 들어서고, 쓰레기(폐기물) 매립지가 들어서고,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들어와 몸살을 앓고 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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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쓰는 책상에 앉아 나를 버리고 떠난 오빠를 흉내 내면서 모르몬 사상의 한 분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보낸 그 긴긴 시간들 말이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참고 읽어 내는 그 끈기야말로 내가 익힌 기술의 핵심이었다. - P109

나는 아직도 오빠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 내가 이해한 한 가지는 내가 나 자신을 믿어도 된다는 것, 내 안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선지자가 자기 안에 가지고 있던 그 무언가는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스스로 타고난 본연의 가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가치라는 사실 말이다. - P193

오빠가 일어서며 말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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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의 씨는 이미 뿌려졌다. 그 씨앗을 기르는 데는 시간과 지루함 말고는 다른 것이 필요 없었다. 라디에이터에서 구리를 빼내거나, 쇠뭉치를 한 500번째쯤 통에 던져 넣다가도 문득 타일러 오빠가 공부하고 있을 교실을 상상하곤 했다. 폐철 처리장에서 보내는 죽을 듯이 지루한 시간이 쌓일수록 내 관심은 점점 더 커졌고, 결국 어느 날 정말 괴상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학교에 다녀야겠다는 기상천외한 생각 말이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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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이사회는 2018년 9월 28일에 <농민·농촌노동자 권리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은 소농이 먹거리 공급을 담당하고 농업생산기반을 유지하며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공헌을 높이 평가한다. 소농이야말로 식량보장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모든 유엔 회원국에게 농민과 농촌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할 것을 요구한다. - P18

그는 나아가 ‘존엄성, 자급, 연대‘를 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식품협정을제시했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식사를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제36항). 자급을 지역자치, 즉 지역사회가 자신의 식품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자치를 중심으로 파악했다. 여기에는 존중과 배려 그리고 경청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자급이란 자율, 조화, 공존과 존중이다. 자급을 이루는 실질은 지역이다. 자급이 농업통상 정책에서도 관철되어야 할 기본 원칙임을 강조했다. 이윤과 끝없는 성장을 기초로 하는 경제가 아니라 수평적 협력에 선 연대경제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인권 중심의 새로운 식품협정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땅, 농업노동 그리고 이주민의 세 가지 요소를 담아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 P19

2012년 10월 31일의 <네이처〉는 인류가 배출하는 탄소의 3분의 1이 질소비료에서 식품 보관과 포장에 이르는 세계 식품체계에서 유래한다고 분석했다. 농업에서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은 기후위기 대응에서 핵심적인 전략이다. 농업은 유일하게 대기의 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 P22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의 주체는 지역의 소농이다. 땅심을 북돋고, 논밭 농사와 상호 순환하는 축산을 유지하고, 지역사회 먹을거리체계를 지탱하는 원천은 소동이다. 미국 농무부가 지원하는 다국적 농기업은 할수 없다. 그러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통상은 소농의 자치를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힘은 무역이 아니라 소농이 중심이 된 지역사회 자치에 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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