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바로 이게." 빠른 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걸으며 다아시가 외쳤다. "저에 대한 당신의 견해로군요! 바로 이게 저에 대한 당신의 평가고! 그렇게 충분히 설명해 주셔서 고맙군요. 그 평가에 따르면 제 잘못은 참으로 무겁군요! 하지만 어쩌면," 그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 쪽으로돌아서면서 덧붙였다. "당신은 그런 잘못을 눈감아 줄 수있으셨을지도 모르지요. 제가 만일 여러 이유 때문에 진지하게 청혼을 고려할 수 없었다는 걸 솔직히 고백해서 당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만 않았더라도 말입니다. 제가 만일 짐짓 제 심적 갈등을 감추고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제가 이성적으로 따져봐도 깊이 성찰해 봐도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사랑에 입각해 청혼하는 거라고 믿게끔 당 - P272

신의 비위를 맞춰드렸더라면, 이런 신랄한 비난은 안 나왔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저는 어떤 종류의 가식도 혐오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여러 감정에 대해서도 부끄럽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건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당신 집안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기뻐할 거라고 기대할수 있으십니까? 저보다 신분이 확실하게 낮은 사람들과 인척 관계를 맺는다고 춤이라도 출 줄 아셨나요?"
엘리자베스는 그의 말을 듣는 매순간 더욱더 화가 치밀어오르는 느낌이었으나 침착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했다.
"잘못 아셨습니다. 다아시 씨. 좀 더 신사다운 태도를 보이셨더라면 청혼을 거절할 때 미안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의 태도 덕분에 그런 미안함을 안 느껴도되었던 것 말고, 무슨 다른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오해십니다."
그녀는 그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것을 보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가 계속했다.
"당신이 어떤 태도로 청혼을 하셨다 해도 그걸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가 또다시 놀라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억울해하는 표정이 뒤섞인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계속했다. - P273

이제 그녀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다아시를생각하든 위컴을 생각하든 자기가 눈이 멀었고 편파적이었으며 편견에 가득 차고 어리석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행동이 그렇게 한심했다니!" 그녀는 외쳤다. "변별력에 대해서만큼은 자부하고 있던 내가! 다른 건 몰라도똑똑하긴 하다고 자랑스러워하던 내가! 때때로 언니가 너무 너그럽고 솔직하다고 비웃으면서 쓸데없이 남을 의심함으로써 허영심을 만족시켰던 내가! 이제야 깨닫다니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하지만 창피해하는 게 당연하지! 사랑에 빠져 있었다 해도 이보다 더 기막히게 눈이 멀 수는 없었을 거야. 그렇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허영심이었어. 처음 만났을 때 한 사람은 나를 무시해서 기분이 나빴고, - P293

다른 한 사람은 특별한 호감을 표시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난 두 사람에 관해서는 선입관과 무지를 따르고 이성을 쫓아낸 거야. 지금 이 순간까지 난 나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거야."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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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가드너 부인은 엘리자베스가 위컴한테 차였다고 놀리면서 그래도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그녀가 덧붙였다. "킹 양은 어떤 아가씨지? 우리의 친구가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데."
"근데, 외숙모, 결혼에 있어서 돈만 밝히는 것과 신중한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신중함이 끝나는 지점은 어디고 탐욕이 시작되는 지점은 어딘가요? 지난 크리스마스엔 그 사람과 제가 결혼하게 될까 봐 걱정하셨잖아요. 경솔한 일이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겨우 만 파운드의 재산을 가진 아가씨와 결혼하려 한다고 그가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시잖아요."
"킹 양이 어떤 사람인지만 말해 주면 내가 알아서 판단할게."
"상당히 좋은 아가씨일 거예요. 아마. 나쁜 얘기는 못들어봤어요."
"그렇지만 조부의 별세로 그녀가 그만한 재산을 상속받기 전엔 그 사람이 그 아가씨에게 아무런 관심도 안 보였잖아."
"그건 맞아요. 그렇지만 왜 관심을 보였어야 하죠? 제게 돈이 없어서 그이가 제 애정을 구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면, 좋아하지도 않고 저처럼 돈도 없던 여자에게 구애를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 P219

"제 생각엔 백작의 차남이라면 그 어느 쪽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게 없으실 것 같은데요. 자,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자기 부정과 의존의 생활에 대해 도대체 뭘 알고계시는지? 돈이 없어 가고 싶은 곳에 못 가보신 적이 있으시나요? 아니면 갖고 싶었는데 못 가지신 게 있거나?"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제가 그런 곤란을 많이 겪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좀 더 중대사에선 돈이 없어서 고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장남이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상대방이 재산을 가진 여성이 아니라면 그렇겠지요. 실제로 그런 분들은 대개 재산을 가진 여성을 좋아하는 것같기도 하고요."
"소비 습관도 우리를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만들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 같은 처지의 사람이면서 돈 문제를 웬만큼 고려하지 않고서도 결혼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않습니다."
‘이건,‘ 엘리자베스가 생각했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일까? 그리고 그 생각에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백작의 차남은 보통 값이 얼마쯤인데요? 장남이 아주 병약하지 않다면, 5만 파운드 이상은 요구하지 않을 거로 봅니다만."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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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 상속이라는 문제

"허영이나 오만 같은 것 말씀이군요."
"맞았어요. 허영은 진짜 결점입니다. 그러나 오만은・・・・・・ 진정으로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라면 늘 그것을 잘 통제하기 마련이고, 그건 오만이라기보다 자긍심이라고 해야하겠지요."
엘리자베스는 미소를 감추기 위해 돌아섰다.
"다아시 씨에 대한 검토가 끝나신 것 같은데요." 빙리 양이 말했다. "제발 좀 결과를 가르쳐주세요."
"검토 결과 저는 다아시 씨에게는 아무런 결점도 없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다아시 씨 스스로도 감추지 않고 인정하고 계시고요." - P84

그들의 호기심을 부추겨 잠시 동안 즐거움을 누린 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한 달 전쯤 이런 편지를 받았거든. 그리고 보름 전쯤 답장을 보냈지. 내 보기엔사안이 다소 미묘한 것인 데다가, 빠른 회답을 요하는 것이기도 했거든. 내 친척인 콜린스 씨가 보낸 편진데, 그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내가 죽는 즉시 당신과 아이들을 모두 이 집에서 쫓아낼 수도 있잖소."
"아이고, 여보!" 그의 아내가 외쳤다. "그 얘기라면 저는 도저히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요. 제발 그 가증스러운 사람에 대해선 말도 꺼내지 마세요. 세상에 당신의재산을 당신 자식을 빼놓고 한정 상속시켜야 하는 것보다더 가혹한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만일 당신이라면 틀림 - P89

없이 벌써 무슨 수를 썼을 거예요."
인제인과 엘리자베스가 어머니에게 한정 상속의 성격상 무슨 수를 쓰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해 주려고 시도했다. 전에도 종종 그런 시도를 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베넷 부인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문제였다. 따라서 그녀는 다섯 명의 딸을 가진 가족에게서 재산을 빼앗아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물려주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지에 대해 계속해서 원망을 늘어놓았다. - P90

그러나 다과를 나눌 시간이 되었을 때에는 그 정도 재미로 충분하다 싶었으므로, 베넷 씨는 선선히 손님을 다시응접실로 인도했다. 그리고 다과가 끝나자 역시 선선히 그에게 숙녀들을 위해 책을 읽어달라고 청했다. 콜린스 씨는선뜻 그 청을 받아들였고, 그에게 책 한 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그 책을 보는 순간 놀라 물러서며(어느 모로보나 순회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틀림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소설은 읽지 않는다며 양해를 구했다. 키티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고, 리디아는 놀라움의 탄성을 질렀다. 다른책들이 건네졌고, 약간의 심사숙고 끝에 그는 포다이스의설교집 (James Fordyce의 『젊은 여성을 위한 설교』(1766) 옮긴이)을 골랐다. 리디아는 그가 책을 펼쳐들자 곧 하품을했고, 그가 대단히 단조롭고도 엄숙한 목소리로 채 세 쪽도다 읽기 전에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낭독을 중단시켰다. - P99

"다아시 씨, 언젠가 당신이 용서를 잘 못하는 성격이라고, 일단 화가 나면 안 누그러지는 성격이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는데요, 그렇다면 화를 낼 때는 아주 신중하게 내시는 거겠죠?"
"물론입니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결코 편견에 눈이 어두워지지 않도록 하시고요?"
"그러기를 바랍니다만."
"자신의 견해를 절대 바꾸지 않는 사람들은 처음에 판단을 잘해야 할 특별한 의무가 있지요."
"어떤 의도로 이런 질문을 하시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 P135

베넷 부인이 벨로 하인을 불러 엘리자베스 양을 모셔오라고 했다.
"어서 오너라. 얘야." 그녀가 나타나자 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중요한 일로 너를 불렀다. 콜린스 씨가 네게 청혼한 걸로 아는데 그게 사실이냐?" 엘리자베스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좋다. 그런데 그 청혼을 거절했단 말이지?"
"그랬어요, 아버지."
"좋다. 이제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네 어머니께서는 네가 그 청혼을 수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신다. 그렇지 않소, 여보?"
"그럼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신 저 애를 보지 않겠어요."
"아주 불행한 선택이 네 앞에 놓여 있다. 엘리자베스. 오늘 이후로 너는 부모 중 한 사람과 남남이 되어야 한다. 네가 콜린스 씨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너를 다시는 안 볼 것이고, 만일 네가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한다면내가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가 시작과는 딴판으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문제를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베넷부인은 엄청나게 실망을 했다. - P161

콜린스 씨는 똑똑한 사람도, 함께 있기에 즐거운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지루했고,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도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그녀는 남편을 갖게 될 것이었다. 남자나 혼인 관계 그 자체를 중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혼은언제나 그녀의 목표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었고, 결혼이 가져다줄 행복 여부가 아무리 불확실하다 해도 결혼만이 가장 좋은 가난 예방책임이 분명했다. 이제 마침내 그 예방책을 손에 넣은 것이니 스물일곱의 나이에 한 번도 예뻐본 적이 없는 여자로서는, 이번만큼은 정말 운이 좋았다고 느꼈다. 이번 일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누구보다도 소중한 친구인 엘리자베스 베넷이 경악할 거라는 사실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놀랄 것이고 그녀를 나무랄 것이었다. 그렇다고 결심이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마음에 상처를 받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자기가 직접 엘리자베스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로 마음먹고 콜린스 씨에게 저녁 식사 시간에 롱본에 돌아가더라도 베넷 집안 어느 누구에게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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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지다: 사람의 됨됨이가 가볍지 않고 점잖아서 무게가 있다.
오만과 허영의 차이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 P9

베넷 씨는 대꾸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들어오는지 알고 싶지 않아요?" 부인은 조바심을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말하고 싶은가 본데, 못 들어줄 거야 없소이다."
이 정도 반응이면 충분했다. - P10

지적인 능력에서는 다아시가 더 뛰어났다. 빙리도 결코 부족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아시는 총명했다. 동시에 그는 콧대 높고, 드레지고, 까다로웠으며, 매너가 훌륭하기는 했지만 친근감을 주지는 않았다. - P26

"다음번에는, 리지야."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너라면, 그딴 인간하고는 춤을 안 출 거다."
"그 사람과는 절대 춤 같은 거 안 출 테니까 염려 놓으세요, 엄마."
"다른 경우와는 달리, 그분이 오만한 게 나한테는 그렇게 거슬리지 않아." 하고 샬럿이 말했다. "그럴 만한 근거가 있으니까. 가문이며 재산, 모든 것을 다 갖춘, 그렇게훌륭한 젊은이가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잖아. 이런 표현을 써도 좋다면, 그분은 오만할권리가 있어."
"그건 맞는 말이야." 엘리자베스가 말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만 않았더라면, 나도 그사람의 오만을 쉽게 용서할 수 있을 거야."
"오만은, 내가 보기에는 가장 흔한 결함이야." 메리가 자신의 깊은 사고력을 뽐내며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바로 미루어 볼 때,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 P31

제가 어미라서 이러는 건 아니지요. 제인이 겨우 열다섯 살일 때 런던에 사는 제 남동생 가드너네 집에한 신사가 머물렀었는데 제인한테 완전히 반해서 제 올케는 그분이 우리 식구가 그 집에서 떠나오기 전에 제인한테청혼을 할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렇지만 실제로청혼을 하지는 않았지요. 아마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겠죠. 그렇지만 그분이 제인에 대해서 시를 몇 편 지었었는데, 참 멋진 것들이었어요."
"그리고 그 시들과 더불어 그분의 사랑도 끝났죠." 엘리자베스가 참다 못해 말했다. "같은 방식으로 사랑이 끝나버린 예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가 사랑을 몰아내는데 효과적이라는 걸 누가 처음 발견했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항상 시가 사랑의 양식(糧食)이라고 생각해 왔는데요." 다아시가 말했다.
"훌륭하고 굳건하며 건강한 사랑의 경우에는 그럴 수 있겠지요. 원래 강한 사랑이라면 무엇이든 흡수해서 살찔 수 - P65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단지 얄팍하고 일시적인 기분일 뿐이라면, 훌륭한 소네트를 한 편 짓고 나면 모조리 고갈되고 마는 게 당연하겠지요."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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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치 도약을 위해서_이헌석

혹자들은 기후정치가 이미 ‘오염된 표현‘이며, 현실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대중적인 투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가 진보진영만의 표현이 아닌 것처럼, 기후정치도 기후정의 진영만의 ‘신줏단지‘가 아니다. 기후정치는 혹여 잡티가 튈까 애지중지 모시는귀중품이 아니라, 오히려 거대 양당 기후정치의 한계를 비판하며 싸워야 하는 마당이다. 이번 총선은 국회의원 선거 사상 처음으로 기후위기를 중심으로 작은 마당이 벌어졌으나, 사전에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기후정의 진영과 진보정당이 철저히 패배한 선거였다. 기후정치 마당을만든 것은 기후정의운동 진영이었으나, 정작 마당을 만든 이들이 그 공간을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정치적 중립에서 정치참여 운동으로
여기서 하나 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최근 급격히 변화된 정치지형이다.
시민단체 등을 통해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대변형 운동이 최근 급격히 직접적인 정치참여 운동으로 바뀌고 있다. 그 대표적인 지표가 정당가입률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정당가입률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 P121

홍세화 선생이 지은 삶_오창익

홍세화 선생이 돌아가셨다. 2024년 4월 18일. 봄꽃 좋은 날이 그의기일이 되었다. 이름은 세계(世界) 평화(平和)에서 한 자씩 따서 세화(世和)라 지었지만, 참혹한 전쟁은 어머니와 동생을 앗아갔다. 가난했던성장과정도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20년 넘게 프랑스에서 난민으로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살았다.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다. - P125

장발장은행은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비참한 감옥행을 막아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레미제라블>의장발장이 과잉 형벌의 대명사가 되었듯,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가는사람들도 과잉 형벌의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범죄자여서 또는죄질이 나쁜 범죄자여서 감옥에 보내는 것은 그렇다 치자. 그렇지만 징역형을 선고할 만큼 나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 그저 기초질서 위반행위쯤 되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선고받은 벌금형 때문에 감옥에 가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감옥에 가면 생계 박탈, 가정 파괴 등 후유증도심각하지만, 무엇보다 돈이 없어서 감옥에 끌려왔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렇게 매년 감옥에 가는 사람이 4~5만 명이나 된다는 것을 알고서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 - P127

선생의 일관된 태도는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회의(懷疑)하자, 항상의문을 품자"는 다짐과 짝하는 태도였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어떻게 하는 게 나 자신과 이웃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일인지 돌이켜보자는 거다. 어릴 적 외할아버지가 해줬던 좋은 말씀을삶의 원동력을 삼았던 거다. 외할아버지는 늘 "착한 사람은 항상 손해본다. 그렇지만 너는 착한 사람이 되어라", "제삼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항상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해라"는 등의 깨우침을 주었다고 했다. 외할아버지의 지혜로운 말씀을 늘 기억하며 혹시 자신이 놓친 것은 없는지,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처지는 어떤지 등을 계속 살폈던 것이다. 물론 끊임없는 긴장이 필요한 일이다.
홍세화 선생은 ‘짓다‘는 동사를 곱씹곤 했다. 의식주, 곧 입고 먹고자는 일을 목적어로 하는 ‘짓다‘는 우리의 생존을 가능하게 한다는 거다. 그렇다. 우리는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도 짓는다. 선생은 의식주처럼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것도 잘 지어야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어떤 존재로, 어떤 사람으로 지을 것인가라고 강조했다. 나 자신을 짓는 과정에서 환경이나 조건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자신을 좀더 아름다운 존재로, 더 바람직한 인간이 되게 만드는 과정은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거다. 나를 짓는 과정은 전적으로 내 몫이기에 선생은 부단히 자신을 제대로 짓기 위해 노력했다. - P230

지역의 자치, 왜 중요한가_로라 로스

낸시 프레이저가지적했듯이, 정치적 행위는 단지 ‘사회적 보호‘(좌파)나 ‘자유‘(우) 같은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인간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즉 보통사람들이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가되는 것을 뜻한다(여기서 ‘정치‘는 공동체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이다). - P135

따라서 다음 세 가지를 사회운동의 중심적 요소로 두는 일은 반드시필요하다. 첫째, 약자들을 돌보는 일은 사회화돼야 한다. 이것은 여성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남성들도 그들의 삶 속에 보살피는 활동을 포함시킴으로써 남성화된 방식의 삶과 정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일은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다. 정치적 행위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행복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들이있어야 한다. 셋째로, 변화를 위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도 그 프로젝트 내용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어떤 식으로 결정이 이루어지고, 일이 수행되고, 해야 할 일들이 분배되고 있는지, 그리고 활동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 대화하고 교류하고 있는지 모두 중요하다. 가부장적이고 수직적인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긴급성이나 효율성 때문에 이 원칙이 뒷전으로 밀려선 안된다. 물론 지역 단위라고해서 이런 일들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실현될 가능성은 훨씬 크다. (김정현 옮김) - P141

정의로운 산림보호지역 확대를 논의할 때_오충현

금년 봄, 사과값이 상승하면서 드디어 기후변화 문제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이 문제가 기후변화라기보다는단순한 농산물 유통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사과 산지로 유명한 곳은 대구이다. 1897년 미국인 선교사들이 대구 주변에 사과나무를 심고 주민들에게 보급한 것이 대구 사과가유명해지기 시작한 배경이라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 대구는 우리나라 사과 생산량의 80%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대구지역 사과 생산량은 크게 줄었다. 최근에는 사과 산지가 북상하여충주나 포천 지역이 주요 사과 산지가 되었다. - P143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이와 같은 인간활동의 결론은 인간 멸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멸종되지 않고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전자와 생물종, 서식처를 다양하게 유지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그는 권하였다. 이런 권유를 기반으로 1992년 생물다양성 조약이 체결되었다.
생물다양성 조약 체결 이후 전지구적으로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다양한 활동을 진행했지만 WWF 보고와 같이 아직도 생물종 감소는 지속되고 있다. 2020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와 ‘생물다양성 과학기구(IPBES)‘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이라고 하는 공동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보전이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생물다양성 손실과 기후변화를 동시에 해결하고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해법으로 ‘자연기반해법‘을 제시하였다. - P146

자연기반해법이란 현존하는 자연자산을 최대한 잘 관리하고, 부족한부분은 더욱 확충해서 관리하는 방법을 통해 기후변화 문제와 같은 환경문제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 P147

자연과 노동에서 배운다_천종현 최하정 한종태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나치가 유대인 강제수용소 입구에내걸었던 표어는 원래 실현될 수 없는 거였는데 우리 또한 그랬다. 비닐하우스 안이라 춥지는 않았지만 노동은 힘겨웠고 한미리스쿨로 돌아와 야간 수업을 할 때는 졸음이 몰려오곤 했다. 대학이나 MBC저널리즘스쿨에서 몇 시간 강연을 듣고 귀가하던 때와는 비교가 안되는 강행군이었다. - P152

장 대표는 몇 번이고 중간 크기의 ‘중과‘가 맛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들 선물용으로 ‘대과‘를 선호한다. 그래서 겨우내 잘라둔 가지가 봄에 다시 나도 잘라버린다. 굵은 가지는 계속 큰 열매를 맺고, 작은 가지는잘려 나가는 모습에서 괜스레 취업을 준비하는 처지가 떠올라 위축된다. 작고 못난 열매도 음료가 되고 잼이 되는데…. 육지로 가는 제주 월동무는 규격을 벗어나면 크건 작건 밭에 버려진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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