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고무적인 반응 운운하면서 그녀가 자기 속마음을 안다고, 그의 관심을 받아들이고 (한마디로) 결혼할 뜻이 있다고 생각했다니! 가문에서나 정신에서 그녀와 대등하다고 생각했다니! 그녀의 친구를 얕잡아 보고,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경우에는 소소한 차이에도 그렇게 훤하면서 자기보다 높은 신분의경우에는 분수도 모르고 그녀를 넘봐 놓고 주제넘은 짓이라 생각도 안 드는 지경이라니! 정말 언짢았다.
재능과 정신의 품격에서 자기가 그녀보다 엄청나게 열등한 것을 깨닫기를 그에게 기대한다면 아마도 부당한 처사일 것이다. 바로 대등하지 않다 보니까 차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재산과 지위에서만큼은 그녀가 훨씬 월등함을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은가. 우드하우스 집안은 유서 깊은 가문의 방계로 여러 세대에 걸쳐 하트필드에 거주해 왔다는 사실, 이에 비해 엘튼 집안은 그 존재가 없다는 사실만큼은 알아야 했다. 하트필드 소유의 토지는 나머지 하이베리 전부가 속한 돈웰애비의 부동산에 대면 한 모퉁이에 불과할 만큼 얼마 안 됐지만, 토지 이외 자산에서 나오는 재산은 상당해서 다른 모든 중요한 점에서는 돈웰애비에 처진다고 하면 섭섭할 정도였다. 우드하우스 집안은 오래전부터 이웃들의 높은 평판을 얻었지만, 엘튼 씨가 여기 온 지는 불과 이태도 되지않았다. - P200

최초의 잘못이자 최악의 잘못은 바로 그녀 자신의 몫이었다. 애당초 멀쩡한 두 사람을 엮어 주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어리석고 잘못된 일이었다. 그것은 너무 무모한 처사, 지나친 참견이고, 심각하게 대해야 할 일을 가볍게 여기고 담박해야 마땅한 일을 잔꾀로 어찌해 보려 한 처사였다. 그녀는 근심과 부끄러움에 휩싸이며 이제 다시는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실제로 내가 자꾸 뭐라고 하는 바람에 불쌍한 해리엇이 이 남자한테 마음을 많이 주게 된 거야."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만 아니었으면 그 사람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지도 몰라. 그리고 상대방도 마음이 있다고 내가 장담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두고 희망을 품는 일은 분명 없었을 거야. 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소박하고 겸손한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애니까 말이야.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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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런 생각이 불현듯 스치던데, 에마. 그리고 처제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면, 이제는 한 번쯤 고려해 보는편이 좋을 거야."
"엘튼 씨가 저를 사랑한다고요! 말도 안 돼요!"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그렇지만 그런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고 그에 따라 처신을 해야 할 듯한데. 처제의 태도가 그 사람한테는 고무적으로 여겨질 거야. 친구로서 하는 말이야, 에마. 한번 주변을 돌아보고 자신의 행동과 의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거야."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완전히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엘튼 씨와 저는 아주 좋은 친구 사이고 그 이상은 아니에요." 그러고는 계속 걸어갔는데, 상황을 부분적으로만 아는 탓에 빚어지는 착각과 판단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늘저지르게 마련인 엉뚱한 실수를 생각하니 우습기도 했고, 자기를 눈이 멀어 아무것도 몰라서 조언이 필요한 사람처럼 치부하는 형부한테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은 말이 없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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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그녀는 소리쳤다. "그 사람, 어찌되든 일단 한번 찔러는 보자고 작심했나 보군. 할 수만 있다면 결혼으로 격을 높여 볼 작정인 게야."
"편지 읽어 보실래요?" 해리엇이 소리쳤다. "그러세요. 아가씨도 읽어 보시면 좋겠어요."
에마는 불감청고소원이었다. 편지를 읽으며 그녀는 놀랐다. 편지의 문체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문법적 오류가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만한 문장이라면 신사라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을 정도였다. 언어는 소박하긴 하지만 탄탄하고 가식이 없고, 거기 담긴 감정도 글쓴이의 품격을 말해 주기에 충분했다. 짧은 편지지만, 양식과 따뜻한 애정과 너그러운 마음씨와 반듯한 예의와 심지어는 섬세한 감정까지 담겨있었다. 에마가 편지를 앞에 놓고 잠시 침묵하는 사이 해리엇은 옆에 지키고 서서 "저, 저." 해 대며 에마의 의견을 조바심치며 기다리다가 결국은 "그만하면 잘 쓴 건가요? 아님 너무 짧은가요?" 하는 말을 덧붙이고 말았다. - P76

그때는 우월감 따위는 전혀 없었소. 이제 우월감이 생겼다면, 당신이 만들어준 거요. 당신은 해리엇 스미스에게 전혀 친구가 아니었소,
에마. 로버트 마틴은 그 아가씨가 자기한테 마음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절대 그렇게까지 나가지는 않았을 거요. 내가그 사람을 잘 알아요. 정말 진솔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이기적인 열정만 믿고 여자한테 청혼할 남자가 아니오. 그리고 자만심이라면, 내가 아는 어떤 남자보다도 거리가 멀어요. 상대도 고무적으로 나온 것이 틀림없소."
에마로서는 이런 주장에는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 편이 가장 편했고, 그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다시 내세우는 쪽을 택했다. - P95

에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아무렇지도 않고 평온한 척하려 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정말로 불편해져 그가 어서가 주기를 무척 바랐다. 그녀는 자기가 한 일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여성의 권리와 세련된 매너라는 문제에선 자기의 판단이 그보다 더 낫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그렇지만 또 그의 판단 - P98

력 일반에 대한 존중심이 습관처럼 되어 있는 터에 이렇게 대놓고 질책을 받기는 싫었다. 화가 난 그를 마주보고 앉아 있는것도 매우 불편했다. 이렇게 불쾌한 침묵 속에 몇 분이 흘렀다. 단 한 번 에마 편에서 날씨 이야기를 꺼내 보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생각에 골똘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침내 이런 말로 나타났다.
"로버트 마틴은 잃은 것이 크게 없소.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말이오. 그리고 머지않아 그렇게 되기를 바라오. 해리엇에 대해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든 혼자 아는 게 좋겠지. 그렇지만 당신이 인연을 맺어 주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당신도 공공연히 인정하는 바이니까, 당신한테 어떤 생각과 계획, 전망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고. 친구로서 하나만 귀띔해 주겠는데, 만일 염두에 둔 상대가 엘튼이라면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말 거요."
에마는 웃으며 부인했다. 그가 계속 말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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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7-11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감청고소원이었다.... 번역이 참 예스럽네요. 영국 소설에 저런 한자성어라니... @_@

햇살과함께 2024-07-11 22:52   좋아요 0 | URL
그죠 그죠~~ 저도 이 생뚱맞음은 뭐지 하고 ㅋㅋㅋㅋ
 

"예쁘다고요! 아름답다고 하셔야죠. 전체적으로 볼 때 에마보다 더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을 상상할 수 있으세요? 용모나 자태나."
"상상이라면 잘 모르겠습니다만, 에마보다 제 마음에 더 드는 용모나 자태는 거의 본 적이 없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저야 오랜 친구니 팔이 안으로 굽는 거겠지요!"
"그런 눈매라니! 진짜 담갈색 눈동자에 아주 반짝거리지요! 뚜렷한 이목구비에 시원스러운 표정에, 안색은 또 어떻고요! 아! 발그레한 볼에 건강미가 넘치잖아요. 키와 체격도 딱알맞고, 자세도 탄탄하고 곧지요. 발그레한 볼뿐만 아니라 태도, 고갯짓, 시선에서도 건강이 넘쳐흘러요. 어린아이를 두고 ‘건강의 초상(肖像)‘이라고 할 때가 가끔 있는데, 에마를 보면전 늘 성숙한 건강의 완벽한 초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돼요. 정말 사랑스러움 그 자체예요. 나이틀리 씨, 그렇지 않나요?"
"외모에 대해서는 저도 전혀 흠잡을 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그가 대답했다. "부인이 묘사하신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저도 보고 있으면 즐겁고요. 그리고 이런 칭찬도 보태겠습니다. 에마가 외모에는 허영심이 없다고요.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를 감안하면, 외모에는 거의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에마의 허영심은 다른 쪽에 있어요. 웨스턴 부인, 에마가 해리엇 스미스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거슬리는 제 마음이나 결국두 사람 모두에게 해가 될 것이라는 제 우려는 부인께서 뭐라고 하셔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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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 우키요에를 따라 일본 에도 시대를 거닐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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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하면 춘화만 상상하는 불순한 독자. 풍경화도 매력적이다. 후지산 그림이 특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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