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구성적 해체
푸코

책머리에

‘재구성적 해체‘란 지식의 재생산에 작용하는 선택과 배제의 차원을 알아내고 그 규칙들을 분석함으로써 현상의 왜곡됨을 인지 가능 - P3

한 대상으로 만들어 이러한 왜곡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그것의 인식론적 근거를 파괴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 전반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기존 현상 너머를 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인식과 방법론은 여성 해방적 전망과 인류학 및 여성학적 방법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 P4

특히 여성 해방 운동은 우리를 억압해온 주체가 정체 분명한 ‘큰 폭군‘만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폭군‘들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밝혀내어왔다. 작은 폭군들은 일상 생활에서, 언어 생활에서, 감정적 생활에서 우리를 지배하며 제도화된 폭군 체제를 더욱 공고히하여가는데 주요 몫을 담당하여왔다. 그들은 남성이며, 때로는 여성이며, 나 - P5

자신으로, 좀체 보이지 않는 형태로 우리 곁에 수만 년 있어온 것이다. 남성과 여성에 관한 논의는 따라서 거대한 인류사의 흐름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주제이면서, 나 자신의 현재에서 시작되는 문제이다. - P6

1장 서론: 여성 해방, 사회과학, 그리고 한국 사회

두번째 여성 운동 역시 그 당시의 활발한 사회적 운동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1960년대에 전개되기 시작한 대중적 여성 해방 운동은 당시의 흑인 중심의 민권 운동 · 학생 운동 · 월남전 반대 운동. 신좌파 운동 및 반문화 운동 등과 함께 자라고 성숙해왔으며, 이들이 제기한 문제 의식은 보다 다양하고 근원적이다. - P19

뉴욕의 급진적 여성 해방주의자의 선언문을 보면 "우리는 자본주의나 다른 어떤 경제 체제가 여성 억압의 근원이라고 보지 않으며, 단순히 경제적 혁명으로 여성 억압이 사라지리라고 믿지 않는다"면서 "남성 우위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기본적인 지배의 형태이다. 모든 다른 종류의 착취와 억압은 이 남성 우위 체제의 단순한 확장일 뿐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은 여성을 위해 충분히 혁명적이지 않다" (Firestone, 1980)고 선언하면서, 여성들에게 자신의 감정적 지적 자원을 개인 남성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여성 해방을 위해 전적으로 사용하기를 촉구한다. 남성은 강간을 포함한 갖가지 직접적·간접적 폭력의 기제를 통하여 여성을 예속시켜왔으며(Brownmiller, 1975), 이러한 남성 지배를 타파하기 위해서 여성들은일차적으로 남성들로부터 완전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만이 서로에게 새로운 자아 정체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레스비어니즘을 여성 자치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삼을 것을 제시하였다
즉 가부장제의 타파는 남성 (남편이나 애인)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낭비하지 않으며, 한편 적극적인 여성 해방주의자를 파트너로 가진레스비언들이 특공부대가 되어 일으키는, 모든 남성에 대한 급진적인 정치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급진적 여성 해방주의자들은 그 급진성과 과격함으로 여성 운동권 내부와 외부에서 적잖은 저항과 반발을 샀으나, 한편 여성 운동이 순수한 여성의 시각에서여성의 체험을 근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매우 급진적인 사회 이론과 실천 체계를 구축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새롭게 평가되고 있다. - P22

미니히는 「우리가 어떻게 여성 해방주의적 학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지구 중심론을 뒤엎은 코페르니쿠스와 인류중심설을 뒤엎은 다윈의 행위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남성 중심의 사고를 뒤엎고 있으며, 우리가 시도하는 변화는 그것들에 못지않게 근본적이고 [기존 체제에] 위태롭고 놀라운 것이다. (Minnich, 1982: 9) - P24

3) 따라서 남성 지배적 체제(가부장제)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있어 출산력을 갖지 못한 남성에 의해 출산력을 가진 여성이통제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출산에 대한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발달이 여성 해방을 가져오리라고 믿은 일부급진적 여성 해방주의자들의 직관이 비록 근시안적이었으나마 문제의 핵심을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여성의 출산자로서의 역할은 또한 여성의 노동자로서의 역할, 그리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창조적인 행위 주체자로서의 역할과 여러 가지 형태로 얽혀져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 사회 전체의 구조가 장기간의 역사를 통해 확고히 세워져왔기 때문에 그들의 낙관적 전망과는 달리 성간의 불평등은 단순한 출산력의 문제로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여성 해방의 열쇠는 각 시대에 따른 성 체계의 특수성을 사회 생활의 총체적 과정과연결시켜 파악해내지 않고는 찾아질 수 없다. - P27

이데올로기 차원의 분석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는 또한 푸코Foucault의 공헌이 주목된다. 푸코는 기존의 ‘국가 기구‘ 중심의또는 ‘지배 계급‘ 중심의 논의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와 보다 포괄적이고 덜 제한적인 시각에서 인간 역사에 나타난 권력 현상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가 다루는 대상은 거대한 기구나 사건이 아니라 이념과 상식이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방식이다. 푸코의 권력 논의의 핵심은 권력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과정 속에 있다는 데 있 - P36

다. 권력은 위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아래에서부터 오는 것으로 모든 사회적 실천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제도적으로(건물 양식으로도) 구현되어 일상 생활을 주도. 규제 · 통제하여온 것이다(Foucault, 1975: 1977). - P37

여기서 우리는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아온 서구 문화나 여성을 지배해온 남성 문화가 현재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제3세계의 문화, 그리고 여성 문화는그 정체성을 확립해가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이는 최근에 일고있는 이러한 논의, 즉 권력과의 연관 속에서 의미 · 상징 · 언어·담화 discourse의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새로운 연구 경향과 결코무관하지 않다. 푸코M. Foucault, 부르디외P. Bourdieu, 하버마스JHabermas, 데리다J. Derrida, 더글라스 M. Douglas 등은 문화 분석을위한 탄탄한 토대를 깔아온 이들로서 그들의 연구는 우선 기존의 전제들 즉(1) 문화는 주관적 현상이며 개인이 내면화시켜 갖고 있는것이다: (2) 문화는 잘 통합된 하나의 패턴이다: (3) 문화는 사회 구 - P38

조의 종속 변수이다는 등의 통념을 깨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Wuthnow, et al., 1984; Bourdieu, 1979). 문화는 언어가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듯이 개인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것은
"집단이 창조해낸 이해와 담화의 양식으로서, 인간들이 자신의 객관적 존재 조건을 해석하고 실현해가는 방법" (Moore, 1981)으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 P39

엄밀히 실천적 지식의 타당성은 세 차원, 즉 (1) 이론적 타당성의 차원: (2) 새로운 이해를 유도하는 차원 inducing enlightenment과 (3)실제적 전략 practical strategy을 다루는 차원에 근거한다(Habermas, 1974: 32~33). 이러한 여러 차원을 구분하지 않고 진행되어온 기존의 성급한 실천 논의는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 첫째로 비판적이론 논의의 형성과 확장은 ‘진리‘에 관련된 것으로 어느 정도의 과학성을 확보해야 한다. 두번째 차원은 역사적 체험을 연결하는 과정으로서 진리에 관한 논의가 적용되고 실험되는 방식을 뜻한다. 이는곧 구체적인 집단내의 자아 성찰적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신뢰할 수 있는 통찰력이 중시된다. 세번째 차원은 적절한 전략의 선택이 문제되는 차원으로 기술적 문제, 구체적 투쟁의 방식과 조직화의 문제를 포함한다. 곧 정치적 적용성의 문제가 평가되는 영역이다.
전통적인 노동 운동 내지 계급 해방 운동에서는 이론적 논의가 주도적이었으며 이 세 차원의 과제가 모두 이론을 체득하고 재구성해 온 엘리트와 당 조직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져온 편이다. 반면 여성해방 운동의 경우는 소규모의 조직이 먼저 형성되어 일상적 체험에 근거한 구체적 투쟁을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벌여왔으나 이론적 논의가 충분히 이를 정리해주지 못한 편이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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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7-07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구성적 해체.
라니 ㅠㅠ 또 용어가 어렵네요 ㅠㅠ 한국인이 쓴 한국책이라 쉬울 줄 알았는데 ㅠㅠ

햇살과함께 2024-07-08 09:44   좋아요 0 | URL
서문과 1장에서 한국 얘기 들어가기 전에 서구 여성해방 운동 개괄과 사회과학 분석방법론에 대해 설명하다 보니 좀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푸코. 페미니즘 책마다 언급되는 푸코. 언젠가 푸코도 읽어야 하네요. 2장부터 한국 얘기 본격 시작되면 나을 것 같습니다~
 

샌디턴

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헤이우드 양, 번스가 메리에게 쓴 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 정말이지, 대단한 비장미가 있죠! 감수성이라면 번스예요. 몽고메리에게는 시의 불꽃이 있고, 워즈워스에게는 시의 영혼이 있어요. 캠벨은 <희망의 기쁨>에서 감각의 극치를 보여주죠. 예를 들어 ‘천사의 방문처럼 드물고 드문드문‘ 같은 구절 말이에요. 이보다 더 저항할 수 없고, 마음을 녹이는 구절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정말이지 깊고 숭고하지요? 하지만 번스는, 헤이우드 양,
최고예요. 스콧의 단점이라면 열정이 없다는 거죠. 부드럽고, 우아하고, 묘사에 능하지만 힘이 약해요. 저는 여성의 매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사람을 경멸합니다. 물론 가끔씩 감정의 섬광이 번쩍할 때도 있죠. 예를 들어 아까 말한 ‘아! 편안한 나날의 여인이여∙∙∙∙∙∙‘ 같은 것 말이에요. 하지만 번스는 언제나 불같아요. 그의 영혼은 사랑스런 여인이 모셔진 제단이에요. 그의 가슴에는 그 여인에게 바치는 영원한 향불이 피워져있어요."
"번스의 시는 저도 여러 편 읽었고, 또 좋아해요." 말할 틈이 생기자 샬럿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시와 시인을 - P235

완전히 분리할 정도로 시적이지 못해요. 번스의 부정한 행실이 시 감상을 방해하죠. 시인이 느낀 사랑의 진실성을 믿기 어려우니까 시에서 표현된 사랑의 진정성도 믿지 못하겠어요. 그사람은 사랑을 느끼고, 시로 표현하고, 그러고는 잊어버렸죠."
"아! 아니, 아니죠." 에드워드 경은 무아지경에 빠진 듯 소리쳤다. "그 사람은 열정과 진실로 충만해요! 워낙 천재인 데다 감수성이 뛰어나다 보니 실수도 했죠.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있나요? 그렇게 고결한 천재에게 일반인의 비굴함을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비난이고 가짜 철학이에요. 남자의 가슴속에 들끓는 열정에서 솟아난 재능의 광휘는 산문적 삶이 요구하는 예절에 부합하지 않을지 몰라요. 가없는 열정의 지고한 충동에서 터져 나온 남자의 말과 시, 그리고 그의 행위는, 사랑스러운 헤이우드 양 당신은, 아니, 이 세상 어느 여성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을 겁니다."
그의 말은 매우 유려했다. 하지만 샬럿의 생각으로는 별로 도덕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자신에 대한 이상한 찬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진중하게 대답했다. "저는 그런 건 잘 몰라요. 정말 날씨가 좋네요. 남풍이 부는 것 같아요."
"헤이우드 양의 관심을 끌다니, 참 행복한 바람이네요."
그녀는 그가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과 함께 걸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 브레러턴 양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두 번의 초조한 듯한 그의 곁눈질에서 샬럿은 그것을 읽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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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ro가 복수형이라고요? 묻지 말라지만 묻고 싶네. 왜요??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 구분, 그 명사에 대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고?
어디 그뿐이랴, 명사의 복수형 규칙 불규칙도 ‘느낌’을 가져야겠지.

2장 명사
명사는 언어의 마술 주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류만은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의 구분이다.
어떤 명사들은 셀 수 있다.
one hat, two dogs, three days, four friends...
셀 수 있는 명사는 하나 이상을 말할 때는 복수형을 취한다(하나 이하도 마찬가지다. zero는 영어에서 복수형을 취한다. 왜 그런지 나에게 묻지 말기를!). 어떤 명사들은 셀 수 없다.
air, fire, love... - P59

위의 연습문제로 보건대, 모든 사물을 다 셀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셀 수없는 명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 둘, 셋・・・ 하고 셀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후에 셀 수 있는 명사와 셀 수 없는 명사를 구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명사에 대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 셀수 있는 명사를 알아내기는 쉬울 테니까 셀 수 없는 명사를 알아내는 방법을 살펴보자. 셀 수 없는 명사에는 세 가지가 있다. 바로 질량명사, 집합명사, 추상명사가 그것이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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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7-06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zero‘가 복수형이라고 하나요?

‘zero‘는 뒤에 뭐가 오는지에 따라 단수/복수로 되는 것 같은데요..

“After the fire, I had zero chickens left”

“While baking a cake, I spilled zero flour.”

출처
https://www.reddit.com/r/EnglishLearning/comments/194s644/is_it_zero_plural_noun_or_zero_singular_noun_like/?rdt=65088

[Zero, as in the non-number represented by the digits ‘0‘ is the correct way to refer to the number and noun as a singular. Zeros/zeroes are plural.]
출처
https://www.grammarflex.com/whats-the-plural-of-zero/#google_vignette

햇살과함께 2024-07-07 16:24   좋아요 0 | URL
아 여기서는 셀 수 있는 명사 앞에 붙는 zero에 대한 설명이라 젤소민아님의 첫번째 예문에 대한 설명입니다. zero chicken이 아니라 zero chickens라는 거죠~
 

양창모, 강원도 왕진의사 <아픔이 마주하는 세계에서>
마을진료소, 이웃복지사
선례 없음이란 결국 의지 없음을 뜻했다.

의대 정원 확대에 가려진 이야기_김연희

한국의 의사 직군은 ‘이중의 격차‘ 속에 놓여 있다. 첫 번째는 의사 직군과 사회의 다른 직군 사이의 소득 격차이다. 30년 가까이 의사 공급은 고정돼 있지만 의료시장에 돈이 몰리며 의사 직군의 임금은 독보적으로 높아졌다. 이렇게 의료시장으로 몰려간 돈은 의사 직군 내에 또다시 격차를 만들어냈다. 건강보험공단이 공급자단체와 수가(의료 가격)를 계약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가격통제를 받는 급여 영역은 수익 상승이 비교적 완만하다. 국민 생명에 꼭 필요한 필수의료 과목이 대부분여기에 속한다.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와 흉부외과, 신경외과 같은 곳들이다. 반면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건강과 미용시술을 향한 욕구가 커지면서 의료시장으로 몰린 돈은 병의원이 임의로가격을 정할 수 있는 비급여 영역으로 흘러갔다.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같은 전통적인 비급여 시장에 더해, 손실보험의 활성화로 통증의학과처럼 새로운 비급여 시장 역시 빠르게 확장되었다. - P59

의대 증원을 둘러싼 논쟁은 ‘총량‘과 ‘배치‘의 문제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총량은 절대적 의사 수 부족, 배치는 의료계 내 잘못된 자원배분을 의미한다.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은데 배치가 잘못되었을 뿐"이라는 것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오래된 주장이다. 그 원인으로 늘 저수가를 꼽는다. 건강보험이 소아청소년과나 흉부외과 같은필수의료에 쳐주는 수가가 낮아서 전공의들이 선택하지 않는 기피과가된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시절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며 진료비나수술비의 수가가 낮게 책정됐고 의사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일종의 박리다매인 ‘3분 진료‘ 관행이 굳어졌다는 것은 한국 의료계의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나 건보 수가에서 진료비와 수술비는 낮지만 검사비는 원가보다높게 책정돼 있다는 점," 이런 수가 구조를 이용해 의료계에서 검사를남발해왔다는 점, 또 잘못된 자원 배분을 바로잡으려면 비급여로 큰 소득을 올리는 분야의 수익 역시 재조정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의사들은언급하지 않는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내놓은 필수의료 개혁패키지에서 손실보험제도를 손보겠다는 방안을 두고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의대 증원 못지않게 극렬한 반대의견이 형성되었다. - P61

이 분야를 취재하며 ‘보건의료제도의 세 주체‘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국민건강보험으로 대변되는 ‘정부‘, 의료기관·의료인 등 ‘공급자‘ 그리고 ‘이용자‘, 즉 일반시민, 이렇게 세 주체가 보건의료제도를 지탱하는 기반이라는 의미이다. 보건의료는 복잡하고 전문성이 높아 의료인만의 영역이라고 여겨왔는데 이 개념을 접했을 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생각해보면 치료는 인체와 의료에 대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의 - P63

역할이지만, 보건의료제도는 한국사회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사회보장제도 가운데 하나이다. 사회 구성원이 동참하고 공동체가 함께 가꾸어야 할 공적 시스템인 것이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큰 신뢰를 받으며 시민의 건강 수준을 높여왔던 성공적인 제도가 일대도전을 맞고 있다. 의대 정원으로 촉발된 의료 개혁은 의사집단이 아니라우리 모두의 일이다. - P64

바깥 없는 몸, 관계 없는 의료_김태우

브뤼노 라투르는 근대 이후의 시대가 규정하는 분리의 체계에 주목하였다." 과학과 정치, 자연과 인간의 영역을 나누는 것은 근대라는 시대에 헌법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었다고 주장한다. 근대 이후의 시대를 규정하는 분리의 헌법은 몸에도 가해진다. 몸과 몸 밖을 분리하는방식으로 드러난다. 근대라는 시대는 ‘순수하게 하기‘를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그것은 경계를 나누는 대상들의 순수성을 만드는 담론과 실천 - P70

을 통해 근대 헌법에 종사하는 작업이다. 생의학은 몸에 대한 ‘순수하게 하기‘를 담당하는 대표적 지식과 실천의 체계다. 생의학은 몸의 내부에시선을 돌리면서 몸의 수준에서 ‘순수하게 하기‘를 완수한다. 몸의 내부의 부분과 그 부분의 더 내밀한 부분에 시선을 던지면서 ‘순수하게 하기‘를 실천한다.
이러한 ‘순수하게 하기‘의 내부 보기가 추동하는 시선의 방향성에 의해 몸 외부와의 관계는 차단된다. 수많은 발암물질이 도처에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몸 내부로 집착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미세먼지들이 자욱한 공기를 마시고, 미세플라스틱이 부유하는 물을 마시고,
항생제 투여된 고기를 먹고, 농약 묻은 야채를 먹고, 화학약품으로 숙성시킨 과일을 먹으면서도 우리는 내부로 집착된 시선을 지속한다. 살벌한 경쟁의 기업문화 속 스트레스가 만연한 직장을 다니고, 휴식하고 운동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365일 자영업장을 운영하면서,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으로 가시화되는 상황에서도 몸 내부로 향하는 강력한 시선의 방향성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다시 나누어진 부분의 내부를 바라보는 시선의 관성을 멈추지 못한다. 발암물질, 미세플라스틱이 이미 하이브리드된 몸인데, 의료는 자꾸 이 몸의 순수성을 말한다. 지금의 의료에서 몸과 몸 밖의 관계성은 무시된다. ‘관계‘ 없는 의료가 지금의 의료를 특징짓는다. 그리고 어느 날 찾아간 병원에서 질책의 말을 듣는다.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하셨어요." - P71

기록 갱신이 일상이 된 최고기온의 여름에서 "열기는 새로운 코비4)드"로 작동한다. 강력한 열기 속에 실내에 머물라는 재난문자가 수시로 터진다. 이것은 열기에 의한 격리(lockdown)이다. 에어컨이라는 취약한 보호막으로 지키고 있는 실내도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 에어컨이가동되지 않을 때를 상정한 재난 예측 연구들은, 격리도 유효하지 않 - P72

은 새로운 코비드의 강력함을 말하고 있다. 만연하는 기록 갱신의 열기를 걸어 잠근 문이 막아주지는 못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내부로 향한 시선을 돌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료 개혁이다. 기후재난의 시대가 경각으로 임박한 상황에서 의대증원의 문제보다 시급한 것은, ‘순수하게 하기‘의 몸과 그 내부 보기를통해서만은 건강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의료인의 적정 숫자보다 그 의료인이 다루는 몸이 어떤 몸인가에 대한 논의가더 시급하다. 의대 증원 논쟁이 역사적인 이유는 국가와 의료의 연결로결성된 권위적인 체계에서 수동적 몸으로 남은 근현대 몸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과 기후의 문제를 함께 논의해야 하는 역사의 문턱에 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 P73

농촌 돌봄의 기발한 대안 두 가지_양창모

"이분들이 왜 병원을 찾아가야 하지? 의료진이 찾아오면 안되나?" 노인들에게 써준 수많은 진료의뢰서가 결국 의사에게 가 닿지 않은 채 버려졌다는 걸 알았을 때 든 생각이다. 시골 동네마다 있는 마을회관에서한두 달에 한 번이라도 의사가 찾아오는 마을진료소를 개설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인구 30만의 도농복합 도시라면 대략 서너 팀의 의료진만있어도 웬만한 시골 마을은 빠지지 않고 방문할 수 있다.
좋은 기획이라 생각해서 추진했지만 결국 행정의 벽에 부딪혔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의료법이다. 의료법 제33조 1항에는 의료기관으로 허가되지 않은 공간, 예를 들면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는 진료행위를 하지 못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관계 공무원은 이 1항을 인용하며 마을진료소 설치가 어렵다고 했다. 난감했다. 관련 법을 찾아봤다. 1항이 명시되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예외 규정도 있다. 예를 들면 예외규정 3호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공익상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요청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않고도 진료행위를 할 수있게 되어 있다. 시장이 공익상 마을진료소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설치가 가능한 것이다.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도 하고 관계 기관에 항의도했으나 이제까지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어처 - P76

구니가 없었다. 선례가 없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선례를 만든 사례, 즉원격의료를 허용한 디지털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은 원격의료를 금지한다. 하지만 정부는 규제특구라는구실로 이를 허용했다. 수백억의 지원금도 풀었다. 강원도에서만 적어도 100개의 방문진료팀을 만들 수 있는 돈이다. 선례 없음이란 결국 의지 없음을 뜻했다.
만들어내는 주어가 정당이든 시장이든 도의회든 상관없이 이 모든시행착오에도 마을진료소는 결국 만들어질 것이다. 주어가 누가 됐든시골의 노인들은,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매일 옆에서 함께 경험하는 사람들은 그 문장을 완성해낼 것이다. 드러난 사회적 고통은 수없이 고쳐쓰더라도 결국 주어를 찾아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노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 주어를 찾고 싶을 뿐이다. - P77

돌봄에서 중요한 것은 역할이 아니라 관계이다. 어떤 역할도 관계를 대신할 수 없다. 멀리 시내에서 온 요양보호사보다 마을에 함께 살고있는 이웃복지사가 훨씬 중요한 이유이다. 요양보호사에게 대상자는자신의 서비스가 필요한 익명의 개인이지만 이웃복지사에게 대상자는 - P78

마을사람이다. 요양보호사에게는 자신의 대상자가 누구를 만나고 이웃들과 어떤 도움을 주고받는지, 건강을 위협하는 중대한 일이 발생했을때 누구에게 연락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웃복지사에게는 중요하고 이미 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는 돌봄의 구성원이 아니지만 이웃복지사는 서비스 시작 전부터 이미 이웃 돌봄의 구성원이다. 의사인 나는 황 할머니무릎에 관절주사를 놓고 돌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최 이웃복지사는요가를 통해 할머니 무릎 관절의 힘을 근본적으로 길러주면서도 함께운동할 친구를 불러온다. 함께 있는 사람이고 떠나지 않는 사람이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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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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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삶과 작품이 잘 어우러진 재미난 글이다. 특히, 처음 보는 매력적인 작품이나 화가의 인생(리커버 표지 그림의 크뢰위에르나 와이어스, 묀스테드, 앙소르 등)에 대해 알게 되어 더 좋았다. 빛과 색채의 실험에 열정적이었던 터너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색채의 시작>이 원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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