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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자신보다! 그래, 그 심정 이해해. 언니처럼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더 이상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안 생기겠지."
"정말 그래.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린 결혼해야만 해.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어.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야 친구 몇 명 있고 가끔 열리는 즐거운 무도회에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하지만 아버지에겐 우리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 가난하고 나이 든 데다 비웃음까지 산다면 서글픈 일이겠지. 난 퍼비스를 잃었어. 그렇긴 하지만, 첫사랑과 맺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아. 퍼비스가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남자를 뿌리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난 퍼넬러피를 절대 용서 못 해."
에마는 잠자코 수긍했다. - P115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을 모시는 행복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제 말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직접 몰아도 아무 문제 없을 정도예요. 언니분들은모두 제 말이 얼마나 얌전한지 알고 있지요. 설령 경마장을 달린다고 해도 그분들은 저를 전적으로 신뢰할 겁니다. 제발 저를 믿어보세요." 그가 목소리를 낮춰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은 아주 안전하답니다. 위험한 건 저뿐이에요."
이 모든 말에도 불구하고 에마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 P149

"승마가 숙녀들에게 얼마나 어울리는지 안다면 누구나 하고싶어 할 겁니다. 왓슨 양, 일단 하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돈은 곧 생겨요."
"경께서는 우리 여자들이 늘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바로 그 점이 오랫동안 남자와 여자 간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지점이죠. 하지만 그건 차치하더라도, 여자들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있지 않겠어요. 오스본 경, 여성이 근검절약하면 꽤 많은 돈을 모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절약해도 적은 수입을 큰 수입으로 바꿀 수는 없어요."
오스본 경은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말투가 훈계조이거나 냉소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물론, 상냥하기 그지없는 말투에도 무언가 진지함이 담겨 있어 그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는 딱딱하고 거침없던 조금 전과 달리 꽤 예의 바르게 배려하는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난생 처음 여성을 즐겁게 해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여성에게, 그러니까 에마 같은 상황의 여성에게 어떻게 대해야할지 생각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지금껏 그는 분별심이나 좋은 성격을 원한 적이 없기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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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6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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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소설로는 처음 읽은 책.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소설이라 길래 난해할까 지루할까 걱정했는데, 걱정은 기우였다. 지루함 없이 각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에 감탄했다. 내가 살아가는 생활이 곧 이렇지 않나? 누군가와 대화하면서도 머리 속으론 딴 생각을 하거나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도 주변 사람이나 사물에 신경 쓰거나 사람과 사물을 멀찍이 바라보며 혼자 생각하거나 멍때리거나 누군가가 다가오는 걸 피하거나 못 본 척하거나 누군가가 툭툭 던지는 얄미운 말에 마음속으로만 화를 내거나 못 들은 척하거나. 내가 매일을 살아가는 방식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내 머리 속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을 읽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램지 부인처럼 가족과 친지와 이웃의 갈등과 차이와 불화를 품을 사랑과 아량과 인내는 다행히 없다. 짝을 맺어주려는 욕구도.


릴리의 원망이, 릴리의 그리움이, “램지 부인!” “램지 부인!을 외쳐 부르는 그녀의 (내면의) 목소리가 책을 덮고도 귓가에 울린다.


버지니아 울프, 역시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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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7-06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등대로응 처음으로 읽었는데 울프에 홀딱 빠졌습니다. 저는 특히 2장인가 중간 막간부분 세월이 휙휙 지나가는데서 전울이 일더라구요. 그 뒤로 델러웨이 부인과 올랜도 읽었지만 아직은 등대로가 제일 좋았네요

햇살과함께 2024-07-06 19:41   좋아요 1 | URL
저도 쓰진 못했지만 그 부분 좋았어요. 집 관리하는 노부인의 늙음과 집의 늙어감이 겹치며 세월의 흐름을 이렇게 짧은 글로 빠르게 처리하다니요. 올랜도 읽기 힘들다고 들어서 잘 읽을 수 있을지…저도 뭐가 젤 좋을지 궁금하네요!

바람돌이 2024-07-06 21:17   좋아요 1 | URL
등대로 읽으셨는데 올랜도도 뭐 비슷해요. 술술 넘어가지야ㅠ않지만 음미하면서 읽는 맛이 있어요
 

지금은 아무리 겸손해졌다 해도 그렇게 거만하게 굴다니 그를 용서할 순 없어. 이렇게 화해했으니 바로 떠날지, 아니면 벌로 그 사람과 결혼해서 평생 괴롭힐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건 너무 가혹한 조치니까 신중하게 결정해야겠지. 현재 여러 가지 계획 사이에서 고민 중이야. 계획은 아주 많아. 또한 삼촌에게 하소연한 행동에 대해 프레더리카를엄하게 벌주려고 해. 딸의 호소를 그렇게 냉큼 받아들인 레지널드나 그의 다른 행동도 벌주어야 하고, 제임스 경이 떠난 후 - P79

의기양양한 표정과 태도로 으스댄 동서도 괴롭혀야지. 레지널드와 화해하느라, 그 불운한 제임스 경을 구할 수 없었으니까. 다시 말해 이 며칠 동안 내가 받은 굴욕을 내가 직접 보상받을거야. 이 모든 것을 만회하려고 몇 가지 계획을 세웠어. 곧 런던으로 떠날 생각이야. 나머지 내 결정이 무엇이든, 아마 계획대로 될 거야. 내 목적이 뭐든, 런던은 항상 마음먹은 계획을실천하기에 최적의 장소니까. 어쨌거나 열 주 동안 처칠에 처박혀 고생했으니 약간 방탕하게 런던 사교계에서 놀면서 보상받아야지. - P80

난 아직도 가끔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야. 레지널드의 연로한 부친이 돌아가신다면 망설이지 않겠지. 하지만 늙은 레지널드 경의 변덕에 의존하는 상태는 내 자유로운 영혼에 어울리지 않아. 내가 결혼을 연기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변명거리는 지금도 충분해. 미망인이 된 지 채 10개월도 안 됐으니까 말이야.
맨워링에게는 이런 속내를 전혀 비치지 않았어. 그 사람한테는 레지널드가 그냥 흔한 연애 상대라고 얼버무렸지. 그랬더니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아.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숙소가 아주 맘에 들어.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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