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름다움이 그리고 정적이 지배했고, 더불어 아름다움 그 자체의 형상을 만들었다. 삶이 떠나 버린 형상이었다. 그것은 기차 창문에서 내다보인, 멀리 떨어져 있는 저녁나절의 연못처럼 고적했다. 저녁 무렵 어슴푸레한 그 연못은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려서 비록 한 번 보였을 뿐이지만 그 고적감을 잃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정적이 침실에서 손을 맞잡았고, 엿보기 좋아하는 바람과 끈적끈적한 바닷바람의 부드러운 코가, 덮개를 씌운 주전자들과 시트에 덮인 의자들 사이를 문지르고 킁킁거리면서 거듭 질문("이 색깔이 바랄까? 부서져 버릴까?")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우리는 계속 남아 있을거라고 대답할 필요가 거의 없는 듯, 그 평화로움과 무심함, 순수히 응집된 공기는 거의 방해받지 않았다. - P210

이십 년 전 유행했을 당시에는 콧노래로 부르고 거기에 맞춰 춤을 췄을 명랑한 노래였지만, 이제 이가 빠지고 보닛을 쓴 가정부에게서 흘러나온 그 노랫소리는 의미가 사라졌고, 짓밟혀도 다시 솟아나는 어리석음과 유머, 고집에서 나온 목소리 같았다. 그래서 몸을 흔들며 먼지를 털고 걸레질을 하면서 그녀는 인생이 하나의 긴 슬픔이자 고통의 연속이라 - P212

고, 일어나서 다시 잠자리에 드는 것이고, 물건들을 꺼냈다가 다시 치우는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녀가 근 칠십 년간 알아온 세상은 편안하거나 안락한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피로에 지쳐 허리가 굽고 말았다. 침대 밑에서 무릎을 꿇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신음하면서, 바닥의 먼지를 쓸면서 그녀는 물었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오래 이 일을 계속할 것인가? 그러나 다시 비틀거리며 일어서서 몸을 세우고는 다시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슬픔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미끄러지는 곁눈질로 입을 벌리고서 거울 속을 바라보았고 아무 이유도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전처럼 절뚝거리며 천천히걸어서 깔개를 집어 들고, 도자기를 내려놓고, 곁눈으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결국 자기에게도 위안이 있는 듯, 실로 자신의 슬픈 노래에 뿌리 깊은 희망이 얽혀 있는 듯. 가령 빨래를 할 때 즐거운 광경들이 틀림없이 떠올랐을 것이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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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pe 훔치다
ravenous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
succulent 즙이 많은

Suddenly Badger said, ‘Doesn‘t this worry you just a tiny bit, Foxy?"
‘Worry me?‘ said Mr Fox. ‘What?"
‘All this... this stealing.‘
Mr Fox stopped digging and stared at Badger as though he had gone completely dotty. ‘My dear old furry frump,‘ he said, ‘do you know anyone in the whole world who wouldn‘t swipe a few chickens if his children were starving to death?" - P58

You must remember no one had eaten a thing for several days. They were ravenous. So for a while there was no conversation at all. There was only the sound of crunching and chewing as the animals attacked the succulent food.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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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공성_백재중

의료 자체에 공공의 개념이 내재되어 있지만 민간 주도의 의료 현실에서 의료공공성을 강조하기 위해 공공의료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다른 선진국에서는 불필요한 또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이다.
공공경찰, 공공소방이라는 용어가 어색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공의료를 강화한다고 할 때 무엇보다도 공공병원 확충의 의미로 사용하는경우가 많다. 그만큼 공공병원 인프라가 취약함을 반영한다.
넓은 의미로 의료공공성 강화는 재정분야에서 공적 부담을 높이는과제,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에서 공공병원을 확대 강화하는 것 그리고민간 의료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 모두를 아우른다. 나아가 의료이용 과정에서 공공성을 높이는 과제까지도 포함한다. - P11

지역공공은행_양준호

기존의 자본주의적 금융이 ‘소유‘와 ‘관리‘의 차원에서 자원을 분배했다면, 지역공공은행은 ‘소유‘와 ‘관리‘ 너머의 ‘관계‘를 중시하는 시민들의 연합, 즉 ‘사회‘가자원을 분배한다. 그 근저에는 지자체의 예산을 네그리 · 하트가 강조하는 ‘공통적인 것(Common)‘으로 간주하는 문제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금융에 대한 새로운 조정 방식이지 않을 수 없다. - P23

공공재생에너지_한재각

이미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절반가량을 10%의 부유층이 배출하며, 특히 이들이 투자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어내는 거대기업을 통해서 배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중과세는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핵심적인 과제다. 이는 토마 피케티 등의 세계불평등연구소를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의 제안이기도 하다. 여기서 탄소세와 비교하면서 토론해보자. 흔히 탄소세는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는 과세이며, 또한 탄소 배출(혹은 에너지 소비)을 감축하는 방안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이 보여준 것처럼, 탄소세는 부가가치세와 유사한 간접세로서 ‘소득진성‘으로 핵심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 오히려 조세불평등으로 사회적 저항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공공재생에너지의조세 전략은 시민들의 필수적인 에너지 소비에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층과 대기업들의 소득과 이익에 과세를 하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정조준한다. 이런 기후정의세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불필요한 소비를 낳는 핵심적 원인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제이슨 히켈과 같은 탈성장론자의 인식이기도 하다. - P31

공공교통_김상철

일반적으로 ‘public transport‘는 ‘공공교통‘이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이라고 번역한다. 정부의 공식 문서나 법률에 공공교통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둘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보통 ‘공공(公)‘이라고 번역하는 ‘public‘이라는 말은 사회 구성원전체를 위한다는 운영체계의 속성을 드러낸다. 교통서비스는 의식주라는 생존을 위한 기본권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생활로 권리가대될 때 중요하게 고려되는 이동권을 보장할 수단이다.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핵심적 서비스이다. 일반적으로 교통서비스를 정부가제공하는 이유이다. 실제로 해외의 주요 정부나 도시들은 보편적인 교통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교통수단들을 공적으로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교통서비스 앞에 ‘공공‘이라는 말이 붙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교통(mass transport)은 교통서비스의 내용이 아니라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고, ‘집단적 수송‘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개별 교통에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교통서비스는 공공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 P36

즉 오늘날 ‘공공성‘은 기후위기라는 엄중한 현실을 반영해야 하는 것으로, 대중교통 대신 공공교통이라는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부족한 교통부문에서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 및 개혁적인 조치를 도입해야한다는 뜻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행과 자전거를 기존의 대중교통수단과 통합하여 ‘보행-자전거-대중교통‘을 공공교통이라는 큰 틀로 묶는관점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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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하는 탈속성이랄까. 그는 하찮은 일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해요. 그는 개들과 자기 아이들을 사랑하지요. 아이가 여덟이지요. 당신에게는 한 명도 없고요. 전날 밤에 그가 코트 두 개를 입고 내려와서 램지 부인에게 자기 머리카락을 다듬어 달라고 해서는 푸딩 그릇 가득잘라내지 않았던가요? 이 모든 말들이 각다귀 떼처럼 춤추며오르내렸고, 각각 끊어진 말인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탄력적인 그물망 안에서 놀랍게도 모두 통제되었고, 릴리의 마음속에서, 그리고 램지 씨의 마음에 대한 그녀의 깊은 존경을 상징하는 매끈하게 닦인 식탁이 아직도 걸려 있는 배나무 가지들안팎에서 춤추며 오르내렸다. 마침내 그녀의 생각은 점점 더빨리 회전하게 되었고 그 강렬함을 배겨 내지 못해 폭발했다. 그녀는 풀려난 느낌이었다. 가까이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고, 찌르레기 한 떼가 겁에 질려, 앉아 있던 무리에서 솟아오르듯이 소란스레 날아올랐다. - P53

그리고 자신의 명성은 과연 얼마나 오래 남을 것인가? 죽어 가는 영웅도 훗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지를 죽기 전에 궁금해할 수는 있다. 그의 명성은 어쩌면 이천 년간 지속되겠지. 그리고 이천 년이란 무엇인가? (램지 씨는 산울타리를 응시하며 빈정대듯 물었다.) 산 정상에 올라서서 장구한 시대의 긴폐허를 내려다볼 때, 실로 그것이 무엇인가? 구둣발에 걷어차이는 돌멩이도 셰익스피어보다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작은 빛은 그리 환하지 않게 일이 년 정도 빛나다가 그다음에는 좀 더 큰 빛에 삼켜질 테고, 그다음에는 그보다 더 큰 빛에 삼켜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을, 복잡하게 뒤얽힌 나뭇가지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렇다면 결국 세월의 폐허와 별들의 소멸을볼 수 있을 만큼 높이 올라선, 그 가망 없는 선봉대의 지도자를 누가 탓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죽음이 다가와 그의 수족이 뻣뻣이 굳어 움직일 수 없기 전에 그가 마비된 손가락들을 의식적으로 이마에 올리고 어깨를 똑바로 펴서, 구조대가 왔을 때 자기 초소에서 죽은 군인의 훌륭한 풍채를 발견하게 된다면? 램지 씨는 항아리 옆에서 어깨를 쭉 펴고 꼿꼿한 자세로섰다. - P60

만일 그가 그녀를 절대적으로 믿는다면, 그 무엇도 그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깊은 곳에 스스로를 파묻더라도, 아무리 높은 곳에 오르더라도, 단 한 순간도 그는 그녀 없이 홀로 있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감싸 주고 보호해 줄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그녀에게는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겉껍데기조차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고, 다 써 버렸다. - P64

책 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녀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오거스터스 카마이클 씨가 발을 끌며 지나가고 있었다. 바로 지금, 고통스럽게도 인간관계의 불완전함, 가장 완벽한 관계에도 흠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진실에대한 본능적 갈구 탓에 진실을 직시하려 하지만 견딜 수 없던바로 그 순간에, 고통스럽게도 자신의 무가치함이 입증되었다고 느끼고 이런저런 거짓과 과장 탓에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에, 고양된 기분의 여파로 이처럼 비참하게 초조해진 바로 이 순간에, 카마이클 씨는 노란슬리퍼를 신고 발을 질질 끌며 지나가고 있었고, 내면의 어떤악마적 충동으로 그녀는 지나가는 그를 소리쳐 부를 수밖에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세요, 카마이클 씨?"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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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등산' 책 검색하다 찾은 책. 등산하는 여자들에 대한 에세이인가 했는데 등산하는 여자들에 대한 연작 단편소설집이다. 마루후쿠 백화점에서 일하는 입사동기 여성직원 3명의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그들이 등산 중 마주치는 사람들이 각자 주인공인 단편들이 연계되어 나온다. 매 단편마다 새로운 산에 오르면서.

 

처음 산에 오르는 사람도, 과거에 등산 동아리나 산악회 활동을 하다 오랜만에 산을 오르는 사람도 있다.

마운틴 걸유행 따라 오르는 사람도, 가족에게 자신의 능력(체력?)을 인정받고 싶은 사람도, 그냥 문득 산이 오르고 싶은 사람도, 고민을 안고 산을 찾는 사람도, 옛 추억과 함께 산을 오르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새로운 우정을 찾고, 누군가는 새로운 사랑을 찾고, 가족애를 발견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을 마주치게 되는 산.

 

산은 생각을 하기에 딱 좋다동행이 있어도 말없이 한 줄로 걷고 있으면 자기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그때 마음속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자기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으면 인생도 자기 발로 나아가야만 한다고일상생활에서는 외면하던 문제와 똑바로 마주 봐야 할듯한 느낌이 든다이 발로 정상에 도착하면 가슴속에도 빛이 비쳐드는 것 아닐까 하는 기대가 가는 길을 격려해준다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과 마주 보면서 걷는 것이 등산이라 생각했다. - P361


 

잔잔하고 슴슴한 평양냉면 같은 소설이다. 이른 아침 고요히, 다소 힘겹게 산을 오르는 사람의 뒷모습이 풍경과 함께 보이는 듯 하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기준에 따른 100대 명산이 있는데, 일본에도 역시 100대 명산이 있다. 우리나라 산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해발 2000 미터, 3000미터가 넘는 산들이라니. 뉴질랜드 남섬과 북섬의 트레킹 코스가 배경인 단편도 있다. 유명한 밀포드 트레킹도. 등산이나 트레킹을 위한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미스터리 소설로 유명한 작가라는데 처음 들어보았다. 미스터리 대표작도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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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06-28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표작은 단연코 <고백>이죠!
첫 문장부터 뇌리에 탁 박히는.. ^^ 사회파 미스터리에 능하지만
미미여사와는 결이 다른 작가랍니다~~

햇살과함께 2024-06-28 16:17   좋아요 0 | URL
네~ 고백 읽어보겠습니다.
미미여사는 화차만 읽어보았는데 영화도 소설도 좋았어요! 결이 다르다니 궁금합니다~

라로 2024-06-29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 100대 명산이 있다고요!! 참 들었어요!! 그나저나 소설보다 진짜 등산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면 읽고 싶은데 말이죠. 😅

햇살과함께 2024-06-29 15:07   좋아요 1 | URL
블랙야크 100대 명산이 어플로 인증할 수 있어서 젤 유명하고요~ 산림청이나 월간 산 잡지 100대 명산도 있고요! 여성등산가들이 쓴 등산에세이도 많아요 <아무튼, 산>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