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14호 : 특별호 쉼 인문 잡지 한편 14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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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편집자들의 쉬어가기 위한 특별호(?) 그러나 쉴 수 있었을 것 같지 않은 기획이다. 나도 오랫동안 쉼이란 일을 잘 하기 위한 휴식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일을 위한 쉼이 아닌 쉼 자체를 위한 오롯한 쉼을 추구(하려고)한다. 나에게 맞는 쉼을 계속 고민하고 찾아본다. 물론 쉼을 위한 오랜 활동인 독서와 걷기는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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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리샤 힐-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뿌리내리기‘rooting와 ‘옮기기‘shifting

6장 여성, 민족성 그리고 세력화: 횡단의 정치를 위하여

이러한 ‘자의적 종결‘의 도움을 통해 모호해지는 차이들 가운데 하나가계급차이였다. 계급차이는 단순히 (종종 지적되었던) 서구 페미니스트들이대표하는 존재가 대개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여성들이라는 사실과 관련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여성들의 관심사에 대한, 심지어 자기 사회출신 여성들에 대한 매우 특정한 관점을 대표한다. 제3세계 여성을 대표하는 존재는 종종 보다 상류층 출신의 여성들이다. 그리고 식민 이후 사회들에서는 종종 지도층 엘리트 가족 출신이다. 따라서 제1세계와 제3세계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지적된 적은 별로 없지만, 제3세계여성들의 가정에서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가정에서보다 가정 하인을 두는것이 훨씬 더 일반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동시에 서구 중산층 전문가들이종종 종속된 민족이나 이민자 집단체 출신인 오페어au pair [가정에 입주하여집안일을 거들며 언어를 배우는 외국인 유학생, 특히 젊은 여성] 유모, 가정부를 고용하는 실제 사례 역시 증가하고 있다. 민족적 및 국제적 정체성 정치의 고질적 문제는 대표성의 문제이다. 다른 곳에서도 주장했지만(Cainand Yuval-Davis, 1990; 이 책의 4장 논의도 참고), 페미니즘과 기타 공동체운동가들이 이러한 함정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를 자신의구성체의 대표가 아닌 대변인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변인이라 할지라도 이들이 자기 사회의 다른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서 만난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실제로 복수 신분임을 의식해야하는 것은 중요하다. - P215

이 ‘제3의 방법‘은 퍼트리샤 힐-콜린스가 그녀의 책 『흑인 페미니즘 사상_Black Feminism Thought, 1990에 표현한 생각과 일부 일치한다. 이 책에서 그녀는 상이한 집단 구성이 현실을 바라보는 상이한 입장들에 대한 인식의중요성에 대해 논한다. (도나 해러웨이 Donna Haraway가 1988년 그의 연구에서상세히 설명한 ‘입장이론‘standpoint theory이라는 페미니즘 인식론의 관점을 대체로 따르는) 그녀의 분석은 WAF 회원들의 지침이 되어 온 의제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각 집단은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고 자신의 부분적이고 상황적인 지식을 일부 공유한다. 그러나 각 집단이 자신의 진실을 부분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들의 지식은 미완의 상태이다[타당성이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 ……… 부분적이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이 들어 주는 조건이다. 자신의위치를 갖지 못하고 지식을 전송해야 하는 개인과 집단은 위치를 확보한개인과 집단보다 신뢰도가 떨어져 보인다.………… 이러한 인식론적 접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중요하다. (Hill-Collins, 1990: 236) - P232

이 대화의 기본 관점은 퍼트리샤 힐-콜린스의 관점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용어는 다소 다르다. 이탈리아여성들은 ‘뿌리내리기‘rooting와 ‘옮기기‘shifting를 핵심어로 사용했다. 대화의 참여자들은 각기 자신의 구성원권과 정체성 속에 ‘뿌리내리기‘를 가져가지만 동시에 자신을 다른 구성원권과정체성을 지닌 여성들과 나누는 교류의 상황에 놓기 위해 ‘옮기기‘를 시도한다. 이들은 이 형식의 대화를 ‘횡단주의 ‘transversalism라고 불렀다. ‘동질적인 출발점을 가정함으로써 포함이 아닌 배제로 끝나는 ‘보편주의‘, 그리고 ‘차별적인 출발점‘으로 인해 어떤 공통된 이해나 진정한 대화도 전혀 가12능하지 않다고 가정하는 ‘상대주의‘와 차별화하기 위해서였다. - P233

이러한 구성은, 우리가 위에서 논의했듯, 사회 범주와 집단 형성을 동질화·자연화하며, 경계의 이동이나 내부권력의 차이, 이해갈등을 부정한다. 또한 이러한 접근을 통해 문화와 전통이 이질적이고 때로는 갈등을 빚는자원의 축적에서 통일되고 탈역사적이며 변하지 않는 본질로 변형된다.
이러한 종류의 ‘정체성 정치‘의 대안으로 이 책은 ‘횡단의 정치‘가 향후나아갈 길을 제시한다고 제안한다. ‘횡단의 정치‘를 통해, 통일성이나 동질성으로 파악되었던 것은 대화로 대체된다. 대화는 참여하는 이들의 특정 위치설정뿐 아니라, 그러한 위치설정이 ‘미완의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도 인식하게 해준다. 그럼에도 횡단의 정치는 대화에 경계가 없으며 모든이해갈등은 각기 화해 가능하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디 펫먼이지적하듯, "마음에 들거나, 아니면 적어도 견딜 만한 개인적·사회적·정치적 참여가 거의 항상 가능하다" (Pettman, 1992: 157). 횡단 대화의 경계들은 메신저보다는 메시지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 횡단의 정치는 사회적 정체성과 사회적 가치를 차별화하며 앨리슨 애시터가 ‘인식론적 공동체‘ epistemological community라고 한 것(Assiter, 1996: 5장)이 공통의 가치체계를 공유하며 차별적 입장과 정체성을 가로지르며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억압과 차별에 대한 투쟁은 특정 범주에 초점을 둘 수도 있고 대개는 두지만결코 단순히 이 범주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 P236

정의대로라면 우리가 하기 위해 착수한 일들을 결코 완수할 수 없겠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투쟁의 와중에도 어떻게 즐겁게 지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포함하여, 우리의 삶을 어떻게 지탱하고 가끔은 축하도 할 수 있을까이다. 옘마 골드만Emma Goldman이 말했듯, "내가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출 수 없다면, 그것은 나의 혁명이 아니다". 첨예한 인종차별주의와 강요된 정체성, 민족청소, 그리고 국가적 갈등과 전쟁의 상황에서, 이러한 정서는 가끔 너무 피상적이고 어설프다. 그럼에도, 어쩌면 이것은완전히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다. 한 ‘횡단‘의 친구가 내게 보낸 엽서에 인용되었던 짐바브웨의 속담에 나와 있듯, "말할 수 있다면, 노래할 수 있다. 걸을 수 있다면, 춤출 수도 있다!" - P238

옮긴이 후기

"모든 정체성은 차이와 교차하며 구성된다." - 스튜어트 홀 - P262

페미니즘 운동은 특정 기획을 위해 이에 관련된 여러 페미니즘들과, 그리고 다른 여러 정체성 기반 이론들과 협의해야 한다. 유발-데이비스의 제더와 민족 연구가 주목하려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90년대 이전의 페미니즘이 가부장제 아래서의 여성의 억압이나 남녀의 성차라는 공통의 주제에 주목하면서 여성들 안에서의 또는 남성들 안에서의 차이를 고려하지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저자는 국가 내지 민족이라는 현실공간에서의 젠더문제를 검토한다. 실천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의 자리를 일반화된 사회가아닌, 법과 정책을 통해 의무와 책임, 권리를 갖는 특정 위치를 개인에게 설정하는 국가 또는 민족으로 규정하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국가내지는 민족공동체의 한 구성원인 여성은 남성 구성원들과 차별적 위치에있을 뿐 아니라 다른 여성들과도 차별화된 위치에 있을 수 있다. 젠더 말고도 계급이나, 출신지역, 출신 국가, 연령대와 같이 이미 집단체에서 차별이발생하는 범주들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속한 국가가 다른국가들과의 관계 속에 자리한 위치도 국가들마다 차별적이며 헤게모니를지닌 문화와 종교가 상이하기 때문에 젠더 문제가 국가 집단체 안에서 논의되고 명료화되는 방식도 국가마다 다르다. 따라서 페미니즘이 여성의 억압에 대항하는 ‘모든‘ 여성들의 연대를 주장할 때, 우선적인 과제는 연대에참여하는 구성원들이 자리하는 위치의 차이와 특수성을 고려하는 차별 없는 경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 P264

결국 영어의 nation은 사실 하나의 지역 즉 영토를 상정하고 이 땅 안이나밖에 살고 있는 다른 문화와 언어, 종교를 지닌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키므로 우리말의 ‘민족‘으로 옮길 때 주의할 필요가 있다. nation의 어원인 라틴어의 ‘natio‘가 부족이나 출생을 뜻하면서 당시 이방 민족을 나타냈고,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문화, 종교,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서의 - P267

민족을 뜻하는 어근인 ‘ethni/o‘ 역시 의미는 민족이지만 그리스 밖의 민족을 가리켰는데, 이후 영어나 불어에서 이 단어들이 사용될 때도 ‘다름‘의흔적이 남아 있다. 옷차림이나 외모가 에스닉ethnic하다고 할 때 그 의도가찬사이든 비하이든 이 표현에는 그 공간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화자와다른차림과 외모라는 함의가 있다. 반면 우리가 ‘민족‘이라고 할 때, ‘민족‘은 한민족에서처럼 우리이기도 하고 따라서 nation의 번역으로서의 ‘민족‘은 현재 우리말의 ‘민족‘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구분, 배제, 배타의가능성을 갖고 사용된다는 점에서 어감은 다르다. 영어에서 한 공동체의구성원을 분류할 때 인종race이나 출신국가/민족(nation 또는 nationality)보다 더 많이 사용되는 출신민족(ethnicity 또는 ethnic origin)을 우리말로옮기기 어려운 것도 우리말이 지닌 ‘민족‘의 쓰임과 이 단어의 쓰임이 잘 들어맞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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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 외삼촌

숲을 가꾸는 아스트로프 의사 선생

아스트로프 이탄을 연로로 쓰고, 돌로 헛간을 지으면 되잖아. 뭐, 필요하다면 숲을 벌목할 수도 있어. 하지만 무엇 때문에 숲을 파괴하려는 거지? 러시아의 숲은 도끼 때문에 찢겨져나가고, 엄청난 수의 나무가 죽어가고 있어요. 길짐승과 날짐승의 집은 황폐화되고, 하천은 말라가고 있고, 기막힌 풍경은 돌이킬 수 없이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게으른 인간이 몸을 숙여 땅에서 땔감을 주워 올릴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엘레나 안드레예브나에게) 그렇지 않습니까, 부인? 이렇게 아름다운 걸난로에서 태워버리고, 창조할 수 없는 것을 파괴하는 것은 무분별한 야만인이나 하는 짓이에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증가시키려고 인간은 이성과 창조력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은 창조가 아니라, 파괴만 일삼아 왔습니다. 숲은 점점줄어들고, 강은 말라가고, 야생동물은 사라지고, 기후는 망가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나날이 대지는 점점 더 빈곤하고 추해지고 있는 겁니다. (보이니쓰키에게) 자넨 나를 빈정거리는 눈 - P485

으로 바라보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자네한텐 대수롭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리고 사실 이것은 별난 짓일 수도 있어. 그러나 벌목으로부터 내가 구한 농부들의 숲을 지나갈 때나, 혹은 내두 손으로 심은 어린 숲이 사각사각 하는 소리를 내는 걸 들을때면 기후도 어느 정도 내 수중에 있으며, 또 천년 후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나도 거기에 다소 기여했을 것이란 사실을 의식하게 되지. 자작나무를 심고, 나중에 그것이 푸르러져서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볼 때면, 내 영혼은 자긍심으로 충만해지곤 해. 그래서 나는...... (쟁반에 보드카 잔을 가져온 일꾼을 보고 나서) 하지만...... (마신다) 가야겠어. 아마 이 모든 게 결국은 별난 것이겠지. 안녕히 계세요! (집 쪽으로 걸어간다) - P486

보이니쓰키 이제 비가 지나가면 자연의 모든 것은 원기를 되찾고가볍게 숨을 쉴 테죠. 우레 비로도 나 혼자만이 원기를 회복하지못합니다. 내 인생은 돌이킬 수 없이 상실되었다는 생각이 낮이고 밤이고 간에 집 귀신처럼 나를 질식시키고 있어요. 과거는 없다. 그것은 하잘것없는 것들에 어리석게 소모되었고, 현재는 나의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겁이 납니다. 바로 그것이 나의 인생이고 사랑입니다. 그것들을 어디로 보내야 합니까? 그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멍으로 떨어진 햇살처럼 나의 감정은 헛되이죽어가고 있으며, 나 자신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 P495

보이니쓰키 (소냐에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얘야, 몹시괴롭구나!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네가 알아준다면!
소냐 어떻게 하겠어요. 살아야죠!

사이.

바냐 외삼촌, 우리 살도록 해요. 길고도 긴 숱한 낮과 기나긴 밤들을 살아나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디도록 해요. 휴식이란 걸 모른 채 지금도 늙어서도 다른사람들을 위해 일해요. 그러다가 우리의 시간이 오면 공손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내세에서 말하도록 해요. 우리가 얼마나 괴로웠고, 얼마나 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슬펐는지 말이에요. 그러면 하느님이 우릴 가엾게 여기실 테고, 저와 외삼촌, 사랑하는외삼촌은 밝고 아름다우며 우아한 삶을 보고 우리는 쉬게 될 거예요. 지금 우리의 불행을 감동과 미소로 뒤돌아보면서 우린 쉬게 될 거예요. 전 믿어요. 외삼촌. 뜨겁고 열렬하게 믿어요.………….(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그의 두 손에 놓는다. 지친 목소리로) 우린 쉬게 될 거예요!

텔레긴이 나직하게 기타를 연주한다.

우린 쉬게 될 거예요! 우리는 천사들의 소리를 듣고, 온통 다이아몬드로 뒤덮인 하늘을 볼 것이며, 지상의 모든 악과 우리의 모든 고통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자비 속으로 가라앉는보게 될 거예요. 그러면 우리 인생은 애무처럼 고요하고 부드러우며 달콤해질 거예요. 저는 믿어요. 믿습니다....... (손수건으로 그의 눈물을 닦아준다) 불쌍하고 또 불쌍한 바냐 외삼촌. 울 - P545

고 계시군요....... (눈물을 글썽이며) 외삼촌은 인생에서 즐거운일이라곤 모르셨죠. 하지만 기다려 보세요. 바냐 외삼촌. 기다려요....... 우린 쉬게 될 거예요....... (그를 끌어안는다) 우린 쉬게될 거예요!

야경꾼이 딱따기를 친다. 텔레긴이 나직하게 기타를 연주한다. 마리야 바실리예브나는 팸플릿 여백에 메모를 한다. 마리나는 양말을 뜨고 있다.

우린 쉬게 될 거예요! - P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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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_김정현

문제는 이렇게 의료에 대한 수요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데 기후위기에 진지하게 대응하고자 한다면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반드시 축소돼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항공부문과 비교하면 갑절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의료산업은 화석연료에 대단히 무겁게 의존하고있는 것이다. 제약회사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약품들, 병원에서 한번쓰고 버리는 일회용품들, 의료적 처치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거의 모든 도구가 석유를 원료로 한 것이다. 냉난방과 냉장 설비도 전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지만 갈수록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진단, 검사, 수술 관련 기계장비들의 전력수요도 무시할 수 없이 크다. - P3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운동은 공허하고 쉽게좌절될 가능성이 크다. 독일의 언어학자 우베 푀르크센은 환원주의적사고방식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현실과 동떨어진 언어를 ‘플라스틱 언어‘라고 부른다. 그는 전문가나 기술자, 정치가, 미래학자들이 구체적인 장소와 연결될 수 없는, 실체가 불분명한 언어들을 조합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대중은 혼란에 빠지고,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것처럼 우리의창의성과 상상력이 납작하게 뭉개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기후변화‘나 ‘6차 대멸종‘ 같은 용어들은 어떨까. 그 위협적인 내용의 무게에 맞게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의료기술의 발달이 임상적, 사회적, 문화적 의인성(醫因性) 질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과 똑같은 원리로, 기후운동이 전문화되어가는 만큼 대중은 자율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기후운동의 전문성 역시 근본적으로 환원주의적, 기계론적, 산업적 사고방식과 훈련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악을 악으로 타도할 수는 없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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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포트노이의 불평>
베르톨로 브레히트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

5장 젠더화된 군대, 젠더화된 전쟁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전쟁이 지금과 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앤서니 기든스는 주장한다(Giddens, 1989: 346~347). 그러한 사회는 체계적이고 오랜무력 갈등과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잉여가치를 충분히 생산하지 못하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성이 수렵 채집의, 국가 없는 사회에서 발생했으리라는 가정에 기초하여, 군대와 전쟁 안에서 젠더에 따른분업은 자연화되었다. 존 케이시 John Casey는 이렇게 주장했다.

남성들은 무사역할을 위해 선택되었다. 성과 관련된 경제적·생리적 차이로 인해 남성들은 동물 사냥꾼으로 선택되기 쉬웠고, 그로 인해 인간 사냥꾼으로 선택되기도 쉬웠다. (Kazi, 1993: 15에서 인용)

더욱이 크리스 나이트가 주장한바, 남성들은 함께 연대하여 사냥꾼과투사로서의 역할을 개발하여 세력화하고 피의 형제애를 여성의 월경혈에담긴 마법의 힘을 막아낼 방패로 삼았다! (Knight, 1991)
위와 같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 장의 주장은 군대와 전쟁이 결코 ‘남성지대‘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항상 일정한 역할을 완수해 왔다. - P170

이것이 말하고 있는 바는 군대 참여와 시민권 사이에 반드시 직접적인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 안에서 누군가의 권리와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군 참여 여부가 아니라 어떤 능력을, 그리고 시민 권력의원천이 될 어떤 대안을 지니고 있는가이다. 가끔은 집단들이 군 징집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이들의 사회적·정치적 저항력의 증대를 보여 주는 기호가 되기도 한다. - P177

필립 로스 Philip Roth의 유명한 소설, 『포트노이의 불평 Portnoy‘s Complaint에서 유태계 미국인인 주인공이 늘 성적으로 흥분해 있다가 이스라엘 여군과 성관계를 맺으려 하는 순간 성적으로 무능해졌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군 경험이 ‘소년을 남자로 만든다‘고 할 때, 여성성은 이런 이미지에 쉽게 편입되지 못한다. 잭 콕Jack Cock은 아파르트헤이트와 싸운 남아공 내전시 양쪽 군대의 군 여성들을 연구했는데, 남아공 군대에서 남성 군사들의 훈련 중 여성 증오와 동성애 혐오가 만연했었다고 기술했다. "수행 못한 -기준에 못 미치는- 신병들은 종종 ‘호모새끼들"이란 딱지가 붙고, ‘엄마한테 가서 계집애들하고 놀라’는 말을 들었다" (WREI, 1992: 65). 샌드라 길버트가 기술한 바에 따르면, 1차대전 당시 군 여성 간호사들은 구원의 천사로 그려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여자 간호사들은 남자의 죽음을 보면 홍분할까?"라는 식의) 못하는 게 없어 보이면서도 악의적인 이미지들로 떠올려졌다. - P184

그러므로 군에서의 여성의 신분을 전시/비전시, 전방/후방이라는 이분법의 언저리에서 구성한다는 것은 사회 내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데올 - P188

로기적으로 구성한 결과에 더 가깝지 전투임무에 여성을 편입시키는 데 있어서 발생하는 객관적 어려움을 근거로 고려한 결정의 반영은 아니다. 어떤 남성 특유의 근육이 미사일이나 폭탄을 발사하기 위해 버튼을 누를 수있는 자격요건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위 남성적 가치가 최고로 간주된다든가, ‘객관적‘이고, 비감정적이고, 비도덕적인 사고를 고수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경멸적으로 ‘겁쟁이‘wimp 아니면 ‘계집애 같은 놈‘pussy이라 꼬리표를 붙이는 젠더 담론이 미국 국가안보정책 담론에 만연해 있음을 캐롤라인 콘은 북미 핵방위 지식인들과 안보업무분석가들의 회의에서 현장 업무를 통해 발견했다(Cohn, 1993:227~246). - P189

하지만 걸프전은 미군 병사들에게는 이라크인들다른 편에서 전쟁에 참여했던 병사들과 민간인들 모두. 뿐만 아니라 다른 전쟁의 미군 병사들에 비해서도 아주 다른 경험이었다. 미국이 걸프전 참여를 그토록 열망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라크에서 베트남 전쟁의 승리를 얻고 싶어서였다는 말도 있다(Boose, 1993). 그러나 사담 후세인은 전후에도 이라크를계속 지배했고, 구 유고슬라비아와 소말리아 등지에서 미국을 비롯한 다른나토군과 유엔군들의 개입도 서툴고 무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한 흥미로운 - P194

연구에 따르면, 2차대전 중의 폭격기 경험과 걸프전 당시의 폭격기 경험을비교했을 때, 2차대전 조종사들의 지배적 감정이 공포였다면, 걸프전의 조종사들은 전자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듯 신났었다고 한다(Boose, 1993).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차이를 생산했던 것은 정교한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콘이 연구했듯 국가안보의 담론이기도 하다(Cohn, 1993). 이는 유도 미사일이 자신이 예정한 목표물을 맞출 수 있다는, 오락실 게임처럼 이 목표물의 정확한 위치는 충분히 알고 있다는, 그리고 이 모두가사람이라기보다는 공격대상에 관한 것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줬다. 실제로공식 담론은 폭격당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에 대해 말했다. - P195

남성을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라 보는 본질주의적 구성은 민족주의군사주의 신화와 잘 맞아 떨어진다. 즉, 남자들은 ‘여성과 아이들을 위해 싸운다(Enloe, 1990)는 ‘보호받는 이-보호하는 이‘의 신화(Stiehm, 1989)가 바로 그것이다. 주디스 스팀Judith Stiehm 같은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신화를 허무는 최선의 방법은 여성들이 남성과 똑같은 기반 위에서 군에 참 - P201

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여러 독일 페미니스트들과 같은 이들은 여성의 군 편입을 반대하기도 한다(Seifert, 1995). 버지니아 울프 이래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계속해서 남성이 여성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이에 대한 지지와 정당화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예로, 이스라엘에는 1982년 레바논 전쟁 중에 ‘침묵에 반대하는 어머니들 Mothers Against Silence이라는 이름으로 결성된 단체가 있는데, 이들은 자기 아들들을 전쟁에 보내서 자기가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고 동의하지도 않은 점령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시키는 국가에 더 이상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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