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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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파란 돌>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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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하기

마라톤에서 달리고 싶다면 윌리엄 제임스를 연구해 보라. 기술이나 훈련은 조금 뒤에 익혀도 상관없다. 조급하게 굴지 않아도 곧적당한 마라톤화를 구할 것이며,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떻게 연습하고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것들보다 먼저 깨쳐야 하는 것은 완주할 수 있다는 것, 당신이든 그 어떤 누구든 완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다음에는 완주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완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쳐야 한다. 언뜻 아무리 어려워 보이더라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면 즐겁고도 행복하게 그 일을 할 수 있는길이 여러 가지가 있다. - P333

나이 많은 마라토너라면 다들 그 사실을 안다. 우리는 보스턴에서 그걸 배웠다. 단테의 생각을 이어받은 시인 테니슨은 율리시스가 다음과 같이 읊었다고 했는데, 그건 우리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지난날, 대지와 천공을 누비던 기력은 이제 우리의 것이 아니로되 우리는 여전히 우리로다. 세월과 운명은 우리를 쇠약하게 하였으나 분투하겠다는, 반드시 찾고야 말겠다는, 내 손에 넣겠다는 의지만은 더없이 강하도다.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만은." - P339

명상하기

하지만 달릴 때는 내 몸이 나를 도와준다. 달릴 때 나는 최대로 집중하고 완벽한 내 모습을 찾는데,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런험을 하지 못한다. 정신적이건 육체적이건 영적이건 그만큼 잘해낼 다른 방법이 내겐 없다. 내 생각과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키는 육체를 통해 나는 온전해진다고 느끼고 만족하게 된다. 나는정신보다는 몸을 통한 경험이 훨씬 더 온전하다고 생각한다.
몸과 정신을 나누고 그 한쪽을 통해 이런 완벽함을 얻는 것은불가능하기 때문에 나는 계속 달리며 사랑과 미움 너머에 존재하는 진실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철학자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역설을 받아들인다. 온전한 나를 발견하려면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들로부터 멀어져야만 한다는 역설을 - P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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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하기

앞장서서 달리는 선수의 뒤를 쫓아갈 때, 나는 속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마음을 놓지 못하고 내가 달리는 속도가 어떤지따져 보고 분석할 필요가 없다. 남은 거리에 대해서도, 시합에 대해서도 이기거나 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런 걱정일랑 앞에서 달리는 선수가 할 테니까. 그 선수는 다른 사 - P284

람들의 엔진이나 마찬가지다. 경기의 모든 것은 그가 짊어지고있으니 나는 그저 그에게 맞추기만 하면 된다. 앞장선 선수를 이용하라. 그리하여 나는 달리기 속으로만, 그 리듬 속으로만, 그음률 속으로만 빠져들게 된다. 내 마음과 생각은 고요해진다.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일랑은 모두 내 몸에서 사라져 버리고, 몇 년의 연습을 통해 배우고 익혔던 바로 그 방식대로 몸이 움직이게 된다. - P285

그러므로 가장 잘 달릴 수 있는 길은 명확하다. 당신을 위해 속도를 유지해 줄 사람을 찾아라.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의 뒤에 서서속도를 고정한 채,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달려라. 그러다 보면모두들 자신만이 생각하고 있는 마지막 승부처가 나올 것이다. - P287

승리하기

겨울 달리기는 낙원에서 달리는 것이며 봄 달리기는 에덴동산이다. 늦여름의 달리기는 우리에게 약속의 땅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을 달리기를 통해 우리는 천국을 만나게 될 테니까. - P290

지구력이란 마지막 순간에 전력으로 질주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력은 처음 달려 나갈 때부터 필요하다. 앞으로 넘어야 할 언덕길이 6마일 정도 남은 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옆길로 빠질까 고민할 때부터 지구력은 필요하다. 아직 결승점에 들어가려면40분은 더 달려야 하는데, 벌써부터 그 어느 때보다 심한 아픔이밀려온다고 생각할 때부터 지구력은 필요하다. 운이 좋은 건, 나이가 들수록 지구력이 떨어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악마를 붙잡고 씨름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나 자신을 붙잡고 씨름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겠다. 대개 나 자신을 이겨 낼 때, 나는 다른 사람도 이겨 낸다.
두 번 정도 앞질러야 하는 성가신 일만 빼면, 첫 출전자들은 다루기 쉽다. 왜 두 번 앞질러야 하느냐면, 일단 첫 출전자들을 앞지르면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자신을 추월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갑자기 전력 질주를 해서 나를 다시 앞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두 번째로 추월을 당하고 나면 자신이 노인 하나를 이기지 못할 만큼 준비가 덜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는 나를 따라잡을 생각을 포기한다. - P307

잃어버리기

어느 날 경기를 마친 뒤, 나는 먼저 뜨거운 욕조에 아픈 다리를 풀어 놓았다. 그런 다음 절룩거리며 침대에가 온몸을 쭉 펴고 누워서 편한 자세를 만끽했다. 아래층에서는 여섯째 아들인 존이 농구 게임을 지켜보는 가족들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왜 저렇게 끙끙대면서도 늘 달리기를 하는 걸까?"
2층에서 나는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왜 이 괴로움을 겪는 걸까? 십중팔구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 너머로 자신의 육체를 밀어붙여야 하는 마라톤이라는 경기를 우리는 왜하는 것일까? - P311

"고통과 죄악과 죽음은 정직하게 마주했을 때 극복할 수 있을뿐, 그렇지 않다면 그 고리를 끊을 수는 없다"고 윌리엄 제임스는 썼다. 진정으로 멋진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 대우주를 통해 자신의 소명을 알고자 한다면, 행복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정신과 의사인 빅터 프랭클도 이 ‘인간 존재의 비극적인 세 요소‘를 대면할 것을 주장한 사람이다. 지나간 일에 대한 우리의 죄책감, 지금 겪는 고통 그리고 앞으로 찾아올 죽음. 두 사람 모두이 세 요소는 무시하거나 회피할 수 없으니 똑바로 지켜보면서 이겨 내라고 경고했다. - P320

경험하기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 있다가, 또 무엇 때문에달리기 시작한 것일까? 이런 이상 열기는 어디서 비롯했을까? 왜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달리기 시작하는 것일까?
그 답은 내 경우에 비춰 말할 수 있을 텐데, 나마저도 이유가시시때때로 변한다. 그러므로 요즘 내가 달리기를 하면서 깨달은것들을 말해 보겠다. 그 다음에 왜 마라톤을 하게 됐는지 설명할수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계속 마라톤에 빠져들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마라톤을 한번만 뛰어 보는 러너는 없다. 러너는 몇 번이고 마라톤을 완주한다. 러너들은 완벽한 파도를 찾아 나서는 서퍼들과 비슷하다.
내가 왜 달리기 시작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그만이다. 그 다음에는 저절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새롭게 태어날 수있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더 달리고 싶었다. - P328

그 답은 벽에 있다. 마라톤의 벽이란 32킬로미터 지점에서 부딪히게 되는 심리적 장벽을 뜻한다. 마라톤을 완주해 본 러너들은 이 벽이 나타나는 순간이 진정한 반환점이며, 이제 지난 32킬로미터만큼이나 힘든 10킬로미터가 남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말 32킬로미터 지점부터 진정한 마라톤이 시작된다. 거기에 벽이 있기 때문이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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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_조연정

한강의 시는 삶을 관통하는 불꽃 같은 고통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실제적인 원인을 제시해주지 않는다.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며, 나무의 잎사귀를 들여다보며, 얼굴에 내리쬐는 햇빛과 마주하며 인간이 수시로 영혼의 아픔을느낀다면 그것은 왜일까.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와 달리, 그리고 한곳에 붙박여 있는 나무와 달리 인간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은 새에게도나무에게도 없는 언어를 가졌다. 언어와 더불어 인간은 영혼의 존재가 되었다. 한강의 시를 읽는 우리는 이제 언어와 영혼을 동의어로 취급해야 한다. 육체를 피 흘리게 함으로써 세계와 불화하는 무구한 영혼의 존재를 증명했듯, 한강의 시는 다른 한 편에서 일상의 언어를 피 흘리게 함으로써 침묵으로부터 최초의 언어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순간을 복원해내려고 한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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