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들만 읽기. 본문 핵심이 명료하게 잘 요약되어 있는 듯. 문장도 어렵지 않고 잘 이해되어 좋다.

가부장제와 자본축적. 이 책의 원제
영원한 성장
신자유주의
프레카리아트 - 안정된 직업 없이 저임금·저숙련 노동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계층을 가리키는 단어
가정주부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여성, 식민지, 자연에 대한 폭력과 원시적 축적
성별노동분업과 국제노동분업의 관련성

한국어판 서문

자본주의 하의 가사노동에 대해 논하면서, 나는 노동에 대한 맑스주의 이론 전반에 대해 특히 가사노동에 대해 좀 더 자세하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하게 되었다. 이 연구를통해 정말로 나는 눈을 뜨게 되었다. 맑스도 가사노동에 대해 비슷한식견을 갖고 있었다. 그는 가사노동을 "재생산" 노동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이 노동은 임금노동자의 "생산노동과는 대조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노동이었다. 일부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남성의 임금노동과 동등한 수준에 놓기 위해 "가사노동에 임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나와 다른 이들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자본주의의 계속적인자본축적과정을 위해서는 왜 이런 무급노동이 필수적인지를 연구했다. - P7

여기서 다시 한 번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식민화 사이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볼 수 있다. 이는모두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사실은 누구도 이것을 폭력의 한 형태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세계는 더 이상 1986년의 세계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가 여성, 자연, 국민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야 한다.
중요한 변화는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세계경제가 재편된 것이다. 이는 1980년 초에 일어났다. "신경제는 영국에서 대처 Margaret Thatcher가 처음 도입했다. 뒤이어 레이건Ronald Reagan이 미국에서 같은 일을 했다. 유럽연합도 "신경제"라는 이름의 정책을 적용했다. 오늘날 사실상모든 국가가 신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운용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는 세계적 자유시장이 빈곤을 없애고,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와계급 사이의 불평등을 없앨 것이며, 자본재와 사람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세계를 개방하겠다고 설교한다. 신경제 주창자들은 "신자유주의가 모두를 위해 공정한 경쟁의 장을 창출할 것"이라는 공약을 내놓았다. 신자유주의의 주요 원리는 세계화, 자유화, 사유화, 일반 경쟁이다. 이런 원리는 국가가 자국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고, 이를 이윤을 추구하는 초국적 기업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9

이전보다 요즘 더 많은 이들이 묻는다. 대안은 무엇인가?
이미 1986년, 나는 이런 파괴적 체제에 대한 대안 수립을 시도했다. 나는 이를 자급적 전망subsistence Perspective이라고 불렀다.
이런 전망을 실현하려면 생활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특히 부유한 국가에서는 소비 습관을 완전히 바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여전히 해방이라고 부른다. 소비주의로부터의 해방은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시작하고, 더 나은 세상을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지금도 나는 다른 비전, 좋은 삶을 위한 다른 전망은 없다. 내놓을수 있는 것은 자급적 전망뿐이다. 이 책의 한국어 출판이 이런 미래에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P11

개정판 서문

그러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의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물론 우리 모두는 가부장제가 자본주의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부장제가 일종의 하부구조로 계속 존속하고 있다고만 하면 옳은 것인가?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후진적 관계들을 일소하겠다는 근대성의 위대한 공약이 왜여성문제로만 오면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결국 봉건제는, 적어도 선진 공업화된 세계에서는, 폐지되었다. 그런데, 왜 젠더 사이의 가부장적 관계는 폐지되지 않고 남아 있는가? - P19

이런 폭력은 단순한 봉건적 ‘잔재‘가 아니다. 이런 폭력은 근대적이고 진보적인 자본주의의 피와살이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다. 이는 바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이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처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 아래서 가사노동의 역할을 분석하면서였다. 이 운동은 198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하는 돌봄 노동과 양육이 남성 임금을 보조할 뿐 아니라, 자본의축적에도 기여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게다가 여성을 가정주부로 규정함으로서, 내 방식으로 말하면 ‘가정주부화함으로써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무급 노동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고, 국민총생산에도 기록되지 않으며(Waring 1988), 자연스러운 것, 즉 ‘공짜‘로 여겨졌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가져온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성의 임금노동은남성, 이른바 부양책임자를 보충하는 것으로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 P20

이런 노동관계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강제, 즉 순전히 필요성에만 의존해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은 이 체제의 비밀이다. 폭력은 비단 여성의 노동과 몸을 착취할 때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가사와 여성구타에 대한 담론에서 분명해졌다. 폭력은 유럽의 초기 자본가가 외국 영토를정복하고 복속시키고 식민화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런 식민화가 없었다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아메리카의 영토와 사람에 대한 약탈과 강탈이 없었다면, 근대의 노예제가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순조롭게 출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폭력은 맑스가 자본의 원시적 축적이라고부른 과정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맑스는 이런 폭력과 원시적축적이 제대로 된 자본주의보다 앞선 시기의 특징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 식민지, 오늘날 용어로는 개발도상국, 그리고 모든 생명과 생산의 기반이 되는 자연을 대상으로 한폭력과 원시적 축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의 노동이나 식민지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자연 역시 일방적이고 착취적인 방식으로, ‘공짜‘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여성과 식민지를 ‘자연‘으로 취급했다. 여성과 식민지는 ‘자연이 되었다. 그래서 폰 벨호프와 벤홀트-톰센 그리고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분석을 따라, 계속되는 원시적 축적이 근대 자본주의의 비밀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 P21

그들은 또한 제기된 새로운 방법이 도덕적이거나 금욕적인 것이 아니라 해방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덜 해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 혹은 덜 하는 것을 통해 삶의 질과 행복까지도 증진시킬 수 있다는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는 기독교 혹은 개신교 윤리가 세속화된 자본주의 세계관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 ‘해방‘은 일종의 영적 혹은 도덕적 마음 상태, ‘청렴결백‘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으로만 이해되었다. 이런 윤리는 ‘깨끗한 옷 운동(노동조건개선운동)‘과 여러 공정무역 운동들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내가 해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삶‘에 대한 규정을 바꾸는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적·경제적 관계들이다. - P32

대안은 없다는 티나TINA 증후군에 사로잡히는 대신, 하늘에서떨어지는 초인을 기다리거나 기술을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여기며 기다리는 대신, 자급적 삶이라는 대안SITA, Subsistence Is The Alternative[자급이 대안이다]을 가능한 지향점으로라도 검토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P35

초판 서문

모든 여성이 남성에 의해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있다고 말하는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성별 사이에는 서열 구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관계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다른 사회적·국제적 구분도 있다. 이는 페미니스트운동이 계급의 이슈, 혹은 착취적인국제노동분업과 제국주의의 문제를 무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한편, 사회과학자들이 주장했던 ‘여성문제‘는 2차적 모순이며 이데올로기, 상부구조, 혹은 문화의 영역에 속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여성이 놓인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특히 페미니스트운동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폭력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는 더욱 그렇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관계, 다시 말하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와 끝없는 자본축적과 ‘성장‘의 패러다임 사이의 관계,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와 식민지에 대한 착취와 예속의 관계에 대해 풀리지않는 질문이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학술적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일상을 사는 모든 여성에 대한 관심이고, 정치적 목적을 가진 실체인 페미니스트운동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 타당한 답변을 찾지못한다면 페미니스트운동은 자본의 축적이라는 파괴적인 모델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세력에게, 느려지고 있는 ‘성장‘ 과정에 자양분을 주기 위해 여성운동의 활력을 필요로 하는 세력에게 흡수되어 버릴 것이다. - P38

오늘날 여성의 현실을 규정하는 구조적 이데올로기적 체제를 구성하는 것은 가부장제와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자본축적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세계적 차원의 여성운동은 이 체제와, 이것에 얽혀 있는 성별노동분업과 국제노동분업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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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날 먹어봐 - 의료 목적의 식인행위와 사람고기 만두 이야기

12세기 아라비아의 거대한 저잣거리에서는 버려도 아깝지 않을 가방 하나와 돈 보따리를 짊어지고 제대로 찾아가기만 하면 간혹
"밀화인"이라 불리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밀화인이 란 꿀에 함빡 절인 사람의 유해이다. 다른 말로 ‘인간미라 밀과‘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름만 보면 오해하기 쉽겠지만, 꿀에 절인 중동 지방의 일반 밀과와는 달리 이것은 디저트로 쓰이지 않았다. 이 밀 과는 외용약으로 또-이런 말을 해서 유감이지만-내복약으로 쓰 였다. 조제에는 물론 조제자의 노력이 필요했지만, 특이하게도 내용물이 될 사람 자신의 노력이 더 많이 필요했다. - P249

……아라비아에서는 70~80세 되는 노인들이 다른 사람들을 구 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몸을 바치기도 한다. 이들은 늘 목욕하고,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꿀만 섭취한다. 한 달이 지나면 그는 꿀만 배설 하게 되고(대· 소변이 모두 완전히 꿀이다) 그 뒤 사망한다. 동료들은 그를 꿀로 가득 채운 석관에 재워놓고 봉인한 후, 겉에다 몇 년 몇 월 인지를 표시한다. 100년이 지나면 봉인을 뗀다. 밀과가 만들어져 있 는데, 사지가 부러지거나 상처가 났을 때 치료약으로 이용한다. 소 량을 내복하면 즉시 증상이 가신다. - P250

타박상이나 기침, 소화불량, 복부 가스팽만 등과 같은 가벼운 병 증은 며칠이면 저절로 사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의 효력에 대 한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쉽게 짐작이 간다. 용법이나 용량을 정 확히 따진 투약실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바람을 타고 떠도는 소문 에 근거했다. ‘편도선염에 걸린 피터슨 부인에게 똥을 좀 드렸더니 이젠 괜찮아졌대요.‘
104년 동안 의사들 사이에 베스트셀러 참고서 자리를 지켜온 《머 크 매뉴얼)의 편집자 로버트 버크로우에게, 효력이 전혀 입증되지 않은 기상천외한 의약품들이 어떻게 생겨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 게 말했다.
"어느 실험에서 25~40퍼센트의 사람들이 설탕으로 만든 알약이 진통효과가 있다고 응답했지요. 이런 결과를 두고 볼 때, 일부 그런 치료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약으로 쓰이게 됐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겁니다."
그는 또 "평균적인 병증의 평균적인 환자가 평균적인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을 때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한" 것도 1920년대에 들어 서고부터였다고 덧붙였다. - P257

사체를 재료로 만든 약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요리문 화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대체로 자신이 무엇에 익숙해져 있는가에 달려 있다. 골수로 류머티즘을 치료하고 땀으로 연주창을 치료하는 것은 예를 들어 인간의 성장호르몬으로 왜소증을 치료하는 행위보 다 심하지도 잔인하지도 않다. 우리는 사람의 피를 다른 사람의 몸 에 주입하는 것에는 전혀 혐오감을 품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몸을 담그는 것은 생각만 해도 소름끼쳐 한다. 귀지를 약으로 쓰던 옛날 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본초강목》의 1976년도 영문판을 편집한 버너드 리드는 다 음과 같이 지적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활성원소와 호르몬 • 비타민, 질병에 대한 독 특한 치료제를 찾아 온갖 종류의 동물조직을 조사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아드레날린, 인슐린, 에스트론, 월경독 등의 발견으로 볼 때, 대상이 주는 불쾌감을 극복해야만 가치 있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 P258

실험에 착수한 우리는 돈을 각출하여, 시립 시체보관소에서 사체를 샀다. 병들어 죽거나 늙어 죽지 않고 폭력에 의해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골랐다. 이렇게 우리는 두 달 동안 사람고기만을 먹으며 지 냈고, 다들 더 건강해졌다.

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회고록 《내 예술, 내 인생》에서 위와 같이 적고 있다. 그는 어느 파리 모피상인이 자기 고양이에게 고양이 고 기를 먹여 고양이 모피가 더 질겨지고 윤기 나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는 1904년에 함께 해부학을(당시 미술학도들에게 해부학 공부는 필수였다) 공부하던 동료 몇몇과 함께 그 효과를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리베라가 이 이야기를 꾸며냈을 수도 있다. 하 지만 현대에 와서도 인간을 약재로 사용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가 되기 때문에 소개한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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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숙_파주

도대체 뭘 했어요? ......정호가요.
현철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몰라요.
현철은 짧게 말했다. 그런 것은 이제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듯한 말투였다.
……모르겠네요. 그냥 매일 그 속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말할 수 없을 만큼 괴롭혔으니까. 아니, 이미 죽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저 새끼 전역하면 진짜다 끝이다. 생각하면서 버티고. 근데 진짜 끝이더라고요. 허무하게. 허무해서 더 화가 나더라고요. 사실 이제 와서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 그런 생각도 해요. 근데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넘어가면 나는 다음번에 또 이렇게 넘어가겠구나, 하는 생각. 앞으로 계속 이렇게 피하기만 한다고 상상하니까 내 다음이 무서워지고, 내가 무서워지고. 무서워지니까 또 밉미치게 밉고. 이해 안 되겠지만 그래서 그랬어요. 전역하고 나서 매일 생각했어요. 목 조르는 생각, 칼로 찌르는 생각. 그런데 막상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렇게 골라내다보니 이렇게 시시해진 것도 같고. 그땐 진짜 죽이고 싶었는데. 어떤 사람한테는 삼 년이 어저께 같아요. 그 생각에 묶여서 시간이 안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현철이 나에게 물었다.
근데, 결혼하실 겁니까?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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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머리만 하나 있으면 돼 - 참수와 회생, 그리고 인간의 머리이식

전신이식과 관련한 학문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화이트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심장이 뛰는 사체의 머리를 잘라내고 거기에 다른 머리를 끼워 붙이려는 사람들은 기증자의 동의라고 하는 커다란 장애물을 해결해야 한다. 신체에서 떼어낸 장기 하나는 비인격적이고 비개인적이다. 장기기증으로 얻는 인도주의적 이익이 장기적출에 따르는 슬픈 감정보다 크다. 우리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체이식은 다른 문제이다. 낯선 사람 한 명의 건강을 회복 시키기 위해 온전한 신체 하나를 전부 기증할 유족이 있을까?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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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현진_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두 사람은 잘못된 동작의 예시로 늘 뽑혔다. 둘의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총체적으로 문제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몸에 힘을 빼지 못하는 일이었다. 힘을 빼야 하지만...... 그렇다고 힘을 다 빼면 안 되고...... 이게 대체무슨 말인가. 희주는 잘못된 답이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는 느낌을 받았다. 힘을 빼는 거면 빼는 거고, 주는 거면 주는 거지. 그게바로 균형이라고 강사는 말했다. 남들은 어떻게 이런 균형을 어렵지 않게 잡을까. 희주는 너무 몸에 힘을 주지 않아서 혼이 났다가. 곧바로 너무 많은 힘을 주어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반면 주호는 자기가 지금 힘을 주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지못했다. 분명 힘을 뺐다고 생각했는데 강사가 소리쳤다. 이렇게몸에 잔뜩 힘을 주면 어떡해요! 또 주호가 이번엔 몸에 힘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강사가 말했다. 아예 몸에 힘을 빼면 안 된다 했잖아요. 코어 잡고 중심은 안 흔들려야지! 주호는 자신의 몸이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고장난 기계처럼 오작동하고있는 자신의 몸은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부족하면 연습을 해야죠" - P86

김기태_보편 교양

땀과 열기와 웃음 속에서 곽은 "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가방을 품에 안았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속 ‘늙은 교수‘를 떠올린 날이 있었다. 현실과 괴리된, 정체된, 그래서 화자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고 해설되는 이미지. 그 늙은 교수는 적어도 ‘노트를 끼고‘ 강의에 출석하며 밤마다육첩방에서 시를 쓰는 성실한 제자를 두었다. 나는 늙지도 않았고 교수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늙지도 않았고, 부분의 판단은 유보했다. - P114

냉소는 독이었지만 적당히 쓰면 자기 연민을 경계하는 데에 유용했다. 머그잔에는 『노인과 바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 P115

있는 꿈도 없는듯 주머니에 쑤셔넣고 문제집을 푸는 게 과거의 입시라면, 없는꿈도 있는 듯 만들어서 스토리텔링을 하는 게 지금의 입시였다. 곽은 경쟁은 여전히 경쟁이며 선택은 기만이 아닌지 의심하기도했다. 그러나 학생 주체가 자신의 결정에 따라 배우고 성장할 가능성이 마련되긴 했다는, 그런 원론적인 차원에서 새 교육정책을 얼마간 환영했다. - P117

‘수업 첫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 아니다. 그러나 수업 마지막날의 수강생은 교사의 책임이다.‘
3월이 지나며 곽은 수업중에 창밖을 자주 보게 되었다. - P122

지적 호기심은커녕 생에 호기심을 잃은 듯한 학생들을 깨우다 지친 날, 사실 주체성이란 드문 자질이 아닌지,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영위하려는 꿈과 끼가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믿음은 미신이 아닌지 의심했다. "인간은 굴종을 원해" 운운했던 영화 속 파시스트 악당들을 떠올리며자신이 그런 의심을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꼈다. 한번은 종료령도 듣지 못하고 잠든 채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웠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봤을 거라 짐작하며 어제 무엇을 했길래 이렇게 자느냐고 물었다. 학생은 짜증내는 기색 없이 입가의 침을 훔치며 겸연쩍게 말했다.
"늦게까지 배달을 해서.. 죄송합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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