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에서 산 한강 작가의 <흰>.
한편 16호 <유머> 및 봉투. 봉투 문구가 바뀌었네. <인생의 베일>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그리고 민음사 인생일력이 어플로 나와서 구매했다. 매일 필사 중. 오늘의 문장은 <순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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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는 단호함을 넘어서 냉정함이 느껴지는 다윈의 말에 내심 큰 충격을 받았지만 "아...... 그래, 그럼 그렇게 할래?"라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것으로 놀란 기색을 감추었다. 그러고는 곧 다윈은 느끼지 못하는 은밀한 시선으로 찬찬히 다윈을 살폈다. 머리칼에 그늘진 이마, 야윈 뺨, 이곳에 있으면서도 다른데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눈동자...………. 버즈는 오늘에야 비로소 다큐멘터리 해설자에 맞는 다윈의 특성을 알아본 것이 어쩌면 이런 모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까지만 해도마냥 빛이 난 길로만 걷는 소년인줄 알았던 다윈이 겨울을 눈앞에 둔 지금은 그늘에 잠겨 잘 보이지 않게 된 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기가 있는 세계를 둘러보는 관찰자가 돼 있었다. 몸은 여위고 눈빛은 아직 흔들렸지만 단호한 목소리에서만큼은기필코 아버지의 성안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졌다.
버즈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다윈은 지금 애써 어른이 되려 하는 것이다. 아무 씨앗도 날아들지 않는 정체된 하늘과 아직 충분히 영양이 차오르지 않은 마른 토질에서 어떻게 갑자기 그런 변화의 욕구를 싹 틔웠는지는 모르지만, 버즈는 다시 한 번 다윈이 프라임스쿨을 대변할 목소리의 적임자임을 확신했다. 홀로서기 위해 내면에서 조용히 분투를 치르는 소년은 자신이 구현해 내고자 하는 프라임스쿨의 이상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 P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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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 개회식에서 니스는 연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능은 갑자기 품속으로 날아온 한 마리의 새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빛깔로 기쁨을 주지만 언제 또 홀연히 품에서 날아가버릴지 모릅니다. 그 새를 진정한 자기 것으로 길들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하고 반복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새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높은 이상으로 여러분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길들인 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어 무척 영광입니다. 승패를 떠나두기숙사는 모두 승리할 것입니다." - P279

"말도 안 되는 얘기야. 버즈 아저씨나 너에게서 할아버지의 흠결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게 이어진다고 할 수 있겠어?"
"하지만 흔히들 그러잖아. 우리들이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것들은 아버지 세대가 이뤄 낸 영광 덕분이니까, 영광과 함께 흠결도 이어받아야하는게 정당한거라고."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영광과 흠결을 같은 방향에 두는 건 인간의 발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퇴보적인 관점이야. 인간이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전 세대의 영광은 이어지고 흠결은 사라진다고 하는 게 문명의 발달에도 부합되는 것 아니겠어? 모든 인간은 과거에서 유래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인간은 새로운 존재잖아."
이야기를 끝내는 순간 레오가 과장되게 박수를 쳤다.
"내가 프라임스쿨에서 들은 모든 얘기들 중에 제일 감탄이나오는 이야기야. 학생회 애들도 여기서 네 강의를 들었어야 하는건데."
"너무 그러니까 꼭 놀리는 것 같은데?" -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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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로도 만들어진 박지리 작가의 장편소설. 철저히 계급화되어 1지구부터 9지구까지 구획된 지구. 1지구 최고 학교인 프라임스쿨에 다니는 다윈과 프리메라스쿨에 다니는 루미가 30년 전 죽은 루미 삼촌 제이의 죽음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9지구를 찾아가는데…
설국열차가 생각나는 설정이다.

"할아버지랑 아버지도 가끔은 이렇게 안아 보세요. 그러면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거예요. 전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스킨십하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러너는 자기 그림자 옆에 다정하게 붙은 그림자를 흐뭇하면서도 쓸쓸하게 바라보았다.
"별로가 아니라 아예 없을 거다. 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니."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하죠? 그릇끼리 부딪치지않는데 어떻게 서로의 영혼을 느끼겠어요?"
러너는 웃으며 다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다윈은 시인이구나."라고
"바로 이거예요. 저한테 하듯이 아버지에게도 이렇게 해보세요."
러너는 다윈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손으로 다시 손자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글쎄다, 상상이 안 되는구나. 이젠 머리를 쓰다듬어 줄 나이도 지났고."
"하지만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아들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잖아요. 저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인걸요."
"그게 말이다, 나도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아버지와 아들보다는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가 더 쉬운거라는 말이 있더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야." - P75

다윈은 프라임스쿨을 둘러싼 자연에서 위안을 얻었다. 자신 있게 제출한 리포트에서 기대보다 못한 결과를 얻어 낙담한 날이면 혼자기숙사 부근의 오솔길을 걷곤 했다. 흔들림 없이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과 외부의 도움 없이도 나날이 무성해지는 풀, 땅에 떨어진 뭔가를 열심히 모으는 작은 곤충들을 지나치다 보면, 자연이라고 불리는 모든 존재가 자신의 운명에 맡겨진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에 이르게 되었다. 인간만이 힘든 운명을 떠안은 게 아니었다. 혼자 애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자연의 그런 조화로움을 느끼고 나면 상심했던 마음도천천히 회복되어 갔다.
길은 걸음만이 아니라 생각도 함께 이끌었다. 걷고 걸어 길이 끝에 다다를 즈음이면 교수님이 지적한 부족함이 무엇인지 알것 같았고, "기대가 크기 때문에"라는 충고 속에 깃든 애정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산책을 통해 얻은 또 다른 의미 있는 발견은 인류가 얻은 모든 진리가 결국엔 자연에서 온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어느 오후, 산책을 하던 다윈은 문득 과학과 수학, 철학, 문학, 종교, 예술에서 이루어진 근본적인 성취가 모두 이렇게 하늘과 땅과 나무를 바라보는 행위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학자도 화가도 어느 날 이렇게 똑같이 자연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 자신이 바라본 자연을 전혀 다른 기호로 역사에 남겼다. - P87

다윈의 지적은 물론 합당했다. 그러나 이미 수없이 자문해 본 낡은 질문이었다. 질문만 하고 답을 찾지 않는다면 인간은 영원히 미궁속을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루미는 사진들을 게임 카드처럼 손에 쥐며 말했다.
"맞아, 이건 성공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패야. 확률만을 따진다면 당연히 실패할 확률이 높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래도 게임을 할 수 있는 패가 아직 남아 있다는 거야. 존재와 비존재는 단순히 많고 적음의 차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아예 다른 차원의 일이잖아. 희박하지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가능성이 생길수있는거니까."
루미는 자신을 응시하는 다윈의 시선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다윈 너와 나도 어쩌면 이 사진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가능성으로 이곳에 온 거 아니야? 생각해 봐, 얼마 전까지 너랑 내가 9지구로 가는 기차를 함께 탈거라는 상상을 해본적 있는지. 하지만 우린 지금 그러고 있잖아. 왜냐면 우리가 추도식에서 말없이 스쳐 지나갔던 순간마다 오늘 이렇게 만날 수 있는 희박한 가능성은 늘 존재했으니까."
루미는 다윈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알 수 없었다. 어떤 남자애들은 단순히 여자의 의견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지고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레오처럼 자존심 강한 프라임 보이라면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다윈은 아무 말이 없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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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정원을 나가는 길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새 세기는 19세기였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새 보금자리는 그래스미어라는 작은 호반 마을 끝자락의 한 오두막집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이미 짐작했겠지만, 이 기운찬 남매는 윌리엄즈워스(William Wordsworth)와 도로시 워즈워스(Dorothy Wordsworth)였다. - P136

두 사람이 북부 잉글랜드의 페나인 산맥을 걸어서 넘었다는 것, 그리고그 전에도, 그 후로도 또 다른 여러 곳을 걸었다는 것은 참 특별한 일이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특별한 일이었는지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걸어서 여행한 사람은 전에도 있었다. 더 먼 길도 있었고 더 험한 길도있었다. 영국 시골 지역에서 가장 험한 풍경들(산맥, 벼랑, 황야, 폭풍, 바다, 그리고 폭포)이 경탄의 대상이 된 것은 이 시인 남매가 태어나기 거의 30년전부터였다. 프랑스와 스위스에서도 등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중이었다. 누군가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정인 몽블랑 정상에 처음 오른 것은 19세기가 시작되기 14년 전이었다. 많은 평자들은 워즈워스와 그의동행들이 보행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그 무엇으로 만들었고, 이로써수많은 일들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제1세대 낭만주의자들이 보행 그 자체를 위한 보행, 즉 자연 속을 걷는 즐거움의 계보를 만들었다는것, 이로써 문화적 행위로서의 보행과 예술적 경험으로서의 보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 P137

19바뀌었다. 크리스토퍼 허시(Christopher Hussey)는 스토 저택(휘그당의 정치적 수도)이 정치를 정원 건축으로 옮겨놓았다고 말한다. "양식화된 설계가 느슨해지면서, 정원의 자연이 그 시대의 인본주의와 한편이 되었고,절도 있는 자유에 대한 신념과 한편이 되었고, 자연스러운 것들에 대한존중과 한편이 되었다. 또한 사람 한 명이든 나무 한 그루든 개체에 대한믿음과 한편이 되었으며, 정치가의 독재든 원예가의 독재든 독재에 대한혐오와 한편이 되었다." 그 시대의 훌륭한 조경 건축가 대부분이 이정원에서 일했고, 수많은 훌륭한 시인들과 작가들이 이 저택을 방문했다. 스토 정원은 한 번 고쳐질 때마다 수십 에이커씩 주변 토지를 합병하면서 계속 확장되었다. 어느 정원 역사가가 요약하듯 "30년 사이에 그의 취향은 계단식 잔디밭, 조각상, 직선로의 규칙적 배치를 선호하는 취향에서 […] 삼차원의 풍경화로, 이상적 자연을 창조하고 싶어 하는 취향으로 바뀌었다." - P151

한때 견고한 요새의 일부로 설계되었던 귀족계급의 정원이 바깥세상과의 경계를 서서히 없애나갔다. 정원이 세상 속으로 녹아들어갔다는것에서 알 수 있듯, 그 무렵 잉글랜드는 과거에 비하면 많이 안전해진 곳 - P153

이었다.(서유럽의 여러 지역들도 잉글랜드만큼은 아니었지만 마찬가지로 안전해졌고, 영국 정원의 유행도 곧 시작되었다). 잉글랜드에서 길이 좋아지고 노상 범죄가 줄어들고 여행 경비가 저렴해지는 ‘교통 혁명‘이 일어난 것은 대략1770년 이후였다. 여행의 성격 그 자체를 바꾸어놓은 변화였다. 18세기중엽 이전의 여행기들에는 중요한 종교적, 문화적 랜드마크 사이의 길에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다. 그런데 18세기 중엽 이후에는 완전히 새로운방식의 여행이 생겨났다. 성지순례나 실용적 여정에서 가는 길은 고생스러움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길이 감상의 대상이 되면서 여행 그 자체가모종의 목적이 되었다. 정원 산책의 연장이 되었다고 할까. 여행길의 경험 그 자체가 목적지로의 도착을 대신해서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자연 전체가 목적지였으니, 이렇게 감상이 가능한 세상, 정원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한 세상에서는 출발이 곧 도착이었다. 보행이취미가 된 지는 오래였지만, 여행이 취미의 대열에 합류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걷는 여행 그 자체가 자연을 감상하는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확산되고 느린 여행 자체가 미덕으로 자리 잡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가난한 시인이 여동생과 함께 눈의 즐거움과 두 다리의 즐거움을위해 설원 크로스컨트리를 감행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P154

그림 같은 풍경의 강조나, 자연 관광의 등장은 자연 취향의 탄생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일 같지만, 이것들은 모두 18세기의 산물이다. 시인 토머스 그레이(Thomas Gray)는 1769년에 레이크 지방을 여행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로부터 2년 전에 처음으로관광객이 이 지역의 자연을 감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레이 역시 이지역의 자연 감상 기록을 남겼다. 18세기 말에 관광지로 자리 잡은 레이크 지방이 여전히 관광지로 남아 있는 것은 실제로 길핀과 워즈워스와나폴레옹 덕분이다. 예전이었으면 해외로 나갔을 영국 여행자들이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전쟁의 혼란 탓에 자국 관광을 시작한 것이다. 관광지까지의 이동 수단은 처음에는 마차였고 나중에는 기차였다.(더 나중에는자동차와 비행기였다.) 여행안내서를 읽고, 자연을 둘러보고, 기념품을 사는 패턴이었다. 관광지에서의 이동 수단은 보행이었다. 처음에 보행은 최고의 전망을 찾기 위한 부수적 이동 수단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기가바뀔 무렵에는 보행 중심의 관광 상품이 생겨났고, 도보 여행이니 등산이니 하는 것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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