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어린아이들의 가슴속에도 내 가슴속에 감춰져 있던 것과 같은 정도로 감춰져 있다면 나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어렸을 때 나 자신이 유달리 괴상한 아이였다고 의심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이들의 수많은 침묵을 설명해 주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본 그대로 미스 해비셤네 집을 설명한다면 어른들한테 이해받지 못할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미스 해비셤 역시 - P123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비록 그 부인이나에게 완전히 불가사의한 존재이긴 했지만, 내가 (미스 에스텔러는 말할 것도 없고) 만약 그녀를 실제 있는 그대로 조 부인 앞에고찰 대상으로 끌어다놓는다면 그것에는 뭔가 비열하고 배반자같은 면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결과, 나는 가능한 한 말을 적게 했고, 그 때문에 얼굴을 부엌 벽에 사정없이 뭉개야 했던 것이다. - P124

그날은 나에게 잊지 못할 중대한 날이었다. 그날은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느 누구의 인생이든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에서 어느 선택된 하루가 빠져 버렸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인생의 진로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라. 이 글을 읽는 그대 독자여, 잠시 멈추고생각해 보라. 철과 금, 가시와 꽃으로 된, 현재의 그 긴 쇠사슬이당신에게 결코 묶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느 잊지 못할중대한 날에 그 첫 고리가 형성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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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파란 두 눈이 약간 축축해졌다. 그는 먼저 한쪽 눈을, 그리고 이어 다른 쪽 눈을 차례로 비볐는데, 부지깽이 끝의 둥근손잡이로 아주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게 비벼대는 희한한 방식이었다.
"그 후 혼자 여기서 사는 게 외롭기만 했단다." 조는 말했다. "그러다 마침 네 누날 알게 되었지. 그런데 말이다. 핍." 조는 마치 내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단호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네 누난 풍채가 훌륭한 여자란다." - P90

"반면에 난 주도자가 아니란다." 조는 나를 응시하던 시선을 풀고 다시 구레나룻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이다, 핍. 그런데 이보게, 이건 내가 자네한테 아주 진지하게 말하고 싶은 거라네. 난 불쌍한 우리 어머니에게서, 고되게 노예처럼 일만 하면서 정직한 마음에 상처만 입고 평생 하루도마음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그런 여자의 모습을 너무나 뼈저리게 보았단다. 그래서 여자에게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잘못을 저지르는 걸 끔찍이 두려워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잘못을 해서 내가 좀 불편하게 사는 것이 둘 중에 그래도 낫겠다고 생각했지. 물론 핍, 괴로움을 당하는 게나 혼자라면 얼마나 좋겠니. 이보게, 자네가 ‘따끔이‘한테 얻어맞는 일이 없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모든 걸 내가 대신 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그런 건 오르락내리락 평평한 인생사의 기복처럼 어쩔 수 없는 거란다. 핍. 그래서 난 네가 그런 부족한 점들을 잘 참고 넘어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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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로 빠져나왔을 때는 안개가 더욱더 짙어져 있었다. 그래서 내가 주변의 모든 사물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모든 사물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것 같았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었다. 들판의 출입문과 도랑과 강둑 들이 안갯속에서 내 앞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다른 사람의 돼지고기 파이를 훔쳐 가는 소년이다! 잡아라!"하고 있는 힘껏 또렷하게 소리치는 것처럼 여겨졌다. 풀을 뜯는소들도 똑같이 갑작스럽게 내 앞에 불쑥 나타났는데, 콧구멍으로 김을 뿜으면서 커다란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모습이 마치 "어이, 꼬마 도둑놈!" 하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중에는 목에 장식용 넥타이 모양의 하얀 반점이 있는 검은 수소가 양심에 찔려 예민해진 나에게 그 모습은 어딘지 꼭 목사님 같은 인상을주었다. 한 마리 있었는데, 그 소는 아주 완고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았을 뿐만 아니라, 빙 둘러 돌아가려는 나를 따라 자신의 무뚝뚝한 머리를 함께 돌리면서 몹시 책망하는 듯한 태도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울먹이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아저씨! 내가 먹으려고 훔친 것이 아니에요!" 하고 소에게 말했다. 그러자 소는 머리를 수그리며 코에서 한 줄기 콧김을 뿜어 내더니,
양 뒷다리를 한 번 높이 내지른 다음 꼬리를 휙 한 차례 휘젓고는 사라졌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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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제국주의와 남성성> 목차를 보니 6장에 <위대한 유산>을 통한 영국 신사되기에 대한 내용이 있네. 디킨스 전작 읽기도 해야하니 6장 읽기 전에 읽으려고 올해의 첫 책으로 주문했다. 쿠폰 쓰려 쫀득하갱 팥데이도 같이 구매.

이 책은 고등학교 때 축약본으로 읽었다. 축약본의 문제는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고 완역본을 읽을 생각이 안든다는 것(읽을 책은 많으니 ㅠㅠ).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소설도 대부분은 축약본을 읽어서 다시 읽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시리즈를 사줄 때도 축약본 완역본 고민이 있었지만 안 읽는 것 보단 낫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구매헸다.

오늘 출근길엔 재밌는 디킨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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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1-08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위대한 유산 읽다가 울었어요 ㅜㅜ

햇살과함께 2025-01-08 23:34   좋아요 0 | URL
올리버 트위스트도 그렇고, 위대한 유산의 핍도 그렇고 너무 슬퍼요.
몇 페이지 읽지 않았는데 탈옥수한테 협박 당하고, 누나한테 얻어맞고 구박 당하고 ㅠㅠ.
디킨스 작가님 아이들을 왜 이렇게 불쌍하게 만드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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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딜락, 미로, 기억 궁전, 신곡

5장 미로와 캐딜락: 상징으로 걸어 들어가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길은 그곳의 풍경을 지나는 가장 좋은 방법에 - P116

대한 앞사람의 해석이다.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먼저 간 사람의 해석을받아들인다는 것, 학자나 탐정이나 순례자처럼 먼저 간 사람의 뒤를 밟는다는 것이다.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중요한 일을 똑같이 따라한다는 것이다. 같은 공간을 같은 방식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같은 생각을 하는 방법, 같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따라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행동을 흉내내는 연기가 아니라, 그 누군가의 영혼을 닮기 위한 노력이다. 순례가 다른 모든 보행과 다른 점은 이렇게 반복과 모방을 강조한다는 데 있다. 신을 닮기란 불가능하지만, 신이 걸어간길을 똑같이 걸어가는 일은 가능하다. 예수가 인류의 실족(Fall)을 대속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 발을 헛디디고 진땀을 흘리고 상처입고 세 번 넘어지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길14처에서다. 하지만 이 14처가 어느 성당에서나, 아니, 아무 데서나 볼 수있는 일련의 그림이 되면서, 신도들이 따라가는 것은 이제 수난의 장소가 아니라 수난 이야기가 되었다. 성당에 그려진 14처는 신도들이 예루살렘으로 걸어 들어가는 통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속으로들어가는 통로이다. - P117

미로가 기독교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언제나 모종의 여정을 상징한다. 통과의례의 여정 또는 죽음과 부활의 여정을 상징할 때도 있고, 구원의 여정 또는 구혼의 여정을 상징할 때도 있다. 그저 여정의 복잡함(길을 찾아가는 어려움, 길을 깨닫기까지의 어려움)을 상징할 때도 있는 것 같다. 고대 그리스의 문헌에는 미로가 많이 등장한다. 크레타 섬에 미노타우로스가 갇혀 있었다는 전설의 미로가 존재했던 적은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쓰는 동전에는 크레타 미로의 형상이 찍혀 있다. 실제로 발견 - P120

된 미로들도 있다. 사르데냐에는 바위 미로가 있고, 애리조나 남부와 캘리포니아에는 돌사막 미로가 있다. 로마인들의 모자이크 미로도 발견되었다. 스칸디나비아에는 땅에 돌을 놓아 만든 유명한 미로가 500개가량 있다.(20세기까지 어부들이 출항하기 전에 미로를 걸으면 고기가 많이 잡히고 순풍이 분다는 믿음이 있었다.) 잉글랜드에는 잔디 미로가 있다. 미로는 젊은이들이 에로틱한 놀이를 즐기는 장소였다. (예컨대 여자가 중앙에 가 있으면 남자가 여자를 향해서 달렸다. 미로의 굽이굽이 도는 길은 구애의 복잡함을 상징했다.) 잉글랜드에서 훨씬 더 유명한 미로로는 르네상스 정원의 미로를 후대에 귀족적 형태로 변형한 산울타리 미로가 있다. 미로에 대한 글을 쓴 많은 저자들은 미궁(maze)과 미로(labyrinth)를 구별하면서 대부분의 정원 미로를 미궁(maze)에 넣는다.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혼란스럽게 만드는것이 미궁의 목적인 반면에, 미로(labyrinth)의 길은 하나뿐이라서, 누구든 계속 걷다 보면 중앙의 낙원에 도달할 수 있고, 돌아서서 걷다 보면 들어갔던 곳으로 나올 수 있다. 미궁이 분명한 목적지가 없는 자유의지의 혼란스러움을 뜻하는 반면에 미로는 구원으로 가는 확고한 여정을 뜻한다는 것도 미로와 미궁의 차이다. - P121

이제는 책이 기억 궁전 대신 정보 저장소가 되었지만, 아직 책에는기억 궁전의 몇 가지 패턴이 간직돼 있다. 길이 책을 닮을 수 있듯, 책도 길을 닮을 수 있다는 뜻이다. 길을 닮은 책은 걷기라는 ‘읽기‘를 통해 세계를 그려나간다. 단테의 신곡은 그 최고의 예다. 영혼이 죽어서 가게 되 - P130

는 세 장소를 여행하면서 베르길리우스라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일종의 저승 여행기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단테는 여행자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멋진 장면과 흥미로운 인물을 하나하나 짚고 넘어간다. 예이츠는이 걸작이 실은 기억 궁전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실제로 이 책은 지형지물을 대단히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곡의 여러 판본에 저승의 지도가 포함돼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곡을 여행기(『신곡보다 먼저 나오거나 늦게 나온 무수한글들을 포함하는 방대한 장르)로 볼 수도 있다. 등장인물이 걸어가는 길이 곧이야기의 길이 되는 것은 『신곡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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