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교과서에는 ‘면죄부’ 아니라 ‘면벌부’ 라고.

4세기에 로마는 한편으로는 북쪽에서 밀어닥치는 이민족들의 위협과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적인 붕괴의 위협에 직면했어. 33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자신이 흑해 입구에 새로이 건설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지. 이 도시는 이때부터 ‘제2의 로마‘라고 불렸어. 395년에 로마 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었어. 서로마 제국의 수도는 로마였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는 새로 건설된 콘스탄티노플이었지. 410년에 로마는 이민족들의 습격을 받아 약탈당하고 황폐해졌으며, 476년에는 끝내 서로마 제국 전체가 멸망하고 말았지.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인들의 손에 함락될 때까지 유지됐고. - P19
529년은 어떻게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 위를 뒤덮기 시작했는지를 상징하는 해지. 이때부터 수도원은 교습과 명상을 독점하게 되었어. - P20
‘중세‘란 원래 서로 다른 두 시대 사이의 시기를 뜻해. 이 표현은 르네상스 시대에 생겨났어.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중세를 고대 문화와 르네상스 사이에서 유럽을 뒤덮었던 ‘천 년의 암흑기‘로 여겼지. 지금도우리는 권위적이고 경직된 것을 가리켜 ‘중세적‘이라고 하지만 중세를 ‘천년의 성장기‘로 간주하는 사람도 많아. - P20
문화사적 관점에서 아랍인들이 고대 헬레니즘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다는 점이 중요해. 이로 인해 그들은 그리스 학문의 대부분을 물려받았어. 중세 전반에 걸쳐 아랍인들은 수학, 화학, 천문학, 의학과 같은 학문을 이끌어나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지.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고 있지. 몇몇 분야에서는 아랍 문화가 기독교 문화를 훨씬 능가했어. - P23
"그래,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아테네의 인본주의와는 다르지만 인간을 두 범주로 나눈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니고 저주와 구원에 대한 성서의 얘기를 따른 거야. 그의 저서 『하느님의 나라(신국론)』를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지." - P29
우린 아우구스티누스가 역사를 철학의 영역에 끌어들인 최초의 철학자라는 점도 기억해야 해. - P30
당시 스페인에는 아랍인들의 영향력이 컸어. 아랍인은 중세 전반에 걸쳐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을 보존했어. 그런데 1200년경 아랍의 학자들이 영주들의 초청을 받아 북이탈리아에 오게 되었어. 이렇게 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많은 책들도 같이 알려지게 되었고, 후에는 그리스어와 아랍어를 라틴어로 번역하기에 이르렀지. 그리고 이건 자연과학적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어. - P32
간단히 말하면 아퀴나스는 중세 초기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을 ‘기독교도화‘ 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도화‘ 했다고 할 수 있지. - P33
"중세의 교회는 남자들이 독점하고 있었어. 그렇다고 여성 사상가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야. 여성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이 힐데가르트 폰 빙겐(빙겐의 힐데가르트)이야." - P40
"어차피 그런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어." "어쨌든 우리가 그런 질문을 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잖아." - P45
철학과 과학은 교회 신학에서 점점 더 멀어졌고, 그에 따라 종교 역시 이성과 좀 더 독립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어. - P55
그리고 인간이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면,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해. 모든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 이제 인간의 목표가 되었어. 그 점이 고대의 인문주의와 르네상스의 차이란다. 고대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이 마음의 평안과 중용 그리고 자제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지. - P60
17세기 초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궤도를 운행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포괄적인 관찰 결과를 발표했어. 그 밖에 행성이 태양에 가장 가까이 있을 때 가장 빨리 움직이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천천히 움직인다는 사실도 입증했지. 케플러를 통해서 비로소 지구가 모든 다른 행성과 똑같은 행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어. 그 외에 우주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도 강조했지. - P66
루터는 인간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 꼭 교회나 성직자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 더군다나 하느님의 용서는 교회에 바치는 면죄부 값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 P76
‘오직 성서를 통하여‘라는 구호와 함께 기독교의 ‘기원‘으로 돌아가려했는데, 이건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이 고대 그리스의 예술과문화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한 것과 같아.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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