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아니, 이 음탕함의 온갖 섬세한 뉘앙스를 이해하려면 지적으로 심오한 성숙의 경지에 이르고 의식의 극단까지 가야 할 것 같군요! 비웃는 거요? 그렇다면 몹시 기쁘군, 나의 농담은, 여러분, 물론 품격도 떨어지고 변덕스럽고 앞뒤도 안 맞는 데다가 자기 불신감마저 가미되어 있소. 하지만 실상 이건 내가 나 자신을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오. 도무지 의식이 발달한 인간이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존경할 수 있겠소? - P35

그저 팔짱을 낀 채 멍하니 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증오하든지, 사랑하든지 해 보라는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모레면, 뻔히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속였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경멸하기 시작할 것이다. 결과적으론, 비누 거품과 관성뿐이다. 오, 여러분, 내가 스스로를 현명한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은 오직 평생 동안 뭐 하나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내가 수다쟁이라고 한들, 우리가 죄다 그렇지만, 설령 백해무익하고 짜증나는 수다쟁이라고 한들 어떤가. 어차피 모든 현명한 인간의 그야말로 유일한 사명이 수다, 즉 머리를 굴려 공소한 잡담을 늘어놓는 데 있다면, 어쩌란 말인가.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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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노인장들, 이 모든 존경받는 노인장들, 백발이 성성하고 향기가 폴폴 나는 모든 노인장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 말을 해 줄 것이다! 온 세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할 테다! 나는 그렇게 말할 권리가 있다, 왜냐면 나도 예순 살까지 살 테니까. 일흔 살까지 살고야 말겠다! 여든살까지도 살겠다……! 잠깐! 잠깐 숨 좀 돌리자…….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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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쩌면 엄지손가락을 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는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엄지손가락은 오직 그 본성에 따라서만 움직일 수 있어. 엄지손가락이 네 손에서 뛰어올라 온 방 안을 만지고 다닐 수는 없어. 너도 역시 전체 속에서 네 자리가 있는 거란다. 너는 소피지만, 신의 몸에 달린 손가락이기도 하지. - P128

스피노자는 오직 하나의 존재만이 철저히 ‘자기 스스로의 원인’으로 완전한 자유 속에서 행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어. 신이나 자연만이 이렇게 자유롭고 필연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사람은 외부의 강제 없이 살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그것은 결코 ‘자유의지‘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야. 우리는 우리 육체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해. 우리의 육체는 연장(물체)이라는 속성의 한 양상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선택‘ 하지 못해.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이 없는 존재야. 영혼은 기계적인 육체 안에 갇혀 있지. - P131

그래. 가장 중요한 경험주의자 혹은 경험철학자는 로크와 버클리, 흄이야. 모두 영국인이지. 17세기의 주도적인 합리주의자들은 프랑스의 데카르트, 네덜란드의 스피노자, 독일의 라이프니츠였어. 그래서 흔히 영국의 경험주의, 대륙의 합리주의로 구분한단다. - P141

‘생성된 모든 존재는 소멸하게 마련이다‘ 흄도 아마 똑같이 말했을 거야. 또 데모크리토스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아. 어쨌든 우리가 알기로 흄은 영혼 불멸이나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모든 철학적 시도를 거부했어. 이 말은 흄이 이 두 가지를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게 아니라, 종교적 신앙을 인간의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이 합리주의로 위장한 거짓이라는 거야. 흄은 기독교도가 아니었지만, 철저한무신론자도 아니었어. 그는 우리가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라고 부르는그런 사람이었지. - P157

그러니까 시간적으로 뒤따라 생기는 사건들 사이에 꼭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야. 철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들이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경고하는 일이야. 특히 성급한 결론은여러 가지 미신을 유발하지. - P164

"아무것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서 두려워요."
"그건 실존적 불안이라고 하는 건데, 새로운 인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일 뿐이야." - P207

"가장 먼저 계몽주의자들은 민중이 ‘계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것은 더 나은 사회의 절대적인 근본 조건이라는 거지. 하지만 민중 사이에는 무지와 미신이 팽배했어. 따라서 교육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지. 교육학이 계몽주의 시대에 학문으로 자리 잡은 것도 우연이 아니야." - P216

구주, 마리 올랭프(Gouges, Marie Olympe, 1748~1793), 프랑스의 여성 작가. 프랑스 혁명 중에 특히 사회문제에 관한 수많은 책과 일련의 극작품들을 통해 매우 적극적으로 혁명에 참여함. 몇 안 되는 여권 운동가의 한 사람으로 여성도남성과 같은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791년에 여성 권리 선언을 발표했음. 루이 16세를 옹호하고 로베스피에르를 비판했다는 죄목으로1793년에 처형당함. (라쿠르(L. Lacour), 『현대 여성 운동의 기원』(1900)에서)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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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라는 명칭은 원래 ‘불규칙한 형태의 진주‘를 뜻하는 ‘barroco‘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해. 바로크 예술은 비교적 단순하고 조화로운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과 달리 화려하고 대비가 풍부한 형식을 갖추었어. 17세기의 일반적 특징은 절충할 수 없는 모순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을 표현했다는 거야. 한편에는 삶을 긍정하는 르네상스의 세계관이 남아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는 세계를 부정하고 종교적 은둔 생활을 고집하는 정반대의 극단적 경향이 싹텄단다. 예술에서나 실제 생활에서 화려한 삶의 전개 양상을 볼 수 있는가 하면 동시에 속세를 멀리하는 수도원 운동이 일어났지." - P94

[뜻대로 하세요]라는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는 이런 말을 했어.

온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여자와 남자는 단지 배우일 뿐이다. 그들은 등장했다가 다시 퇴장한다. 어떤 이는 일생동안 7막에 걸쳐 여러 역을 연기한다. - P97

「맥베스」에선 이렇게 말했지.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짧은 순간 무대 위에 있다 사라지는
이를 악물고 두 다리를 벌린, 가엾은 희극 배우.
들려오는 소리는,
웬 바보가 분노에 찬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동화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 P97

‘인생이란 무엇인가? 미친 짓! 인생이란 무엇인가? 텅 빈 물거품! 시는 한낱 그림자일까! 행복이란 드물게 주어진다. 하나의 꿈이 일생이며,
그 꿈들도 하나의 꿈이기에……. - P98

"신은 신이다, 모든 게 덧없더라도, 신은 신이다, 모두가 다 죽는다 해도……." - P99

그리고 데카르트는 소크라테스처럼 이성만이 우리에게 분명한 인식을 줄 수 있다고 확신했어. - P103

근본적으로 모든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얻으려는 철학적 이해라고 할 수 있지. 고대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체계설립자가 있었다면, 중세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기독교 신학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있었어. 이어서 자연과 과학, 신과 인간에 대한 낡은 생각과 새로운 생각이 뒤엉킨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거야. 17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다시 새로운 생각들을 하나의 철학 체계로 묶으려는 시도가 있었지. 그리고 이에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데카르트야. 그는 ‘무엇이 다음 세대에 가장 중요한 철학적 과제인가‘라는 문제에서 출발했어. 데카르트는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지, 곧 우리 인식의 확실성에 관한 문제를 연구했어.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두 번째 중요한 문제는 육체와 영혼의 관계야. 이 두 가지 문제가 이후 150년 동안 철학 토론을 지배했지. - P105

우선 데카르트는, 우리가 어떤 것이 참인지를 명확하고 분명하게 인식할 수 없다면, 어떤 것도 참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어. 그런데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복잡한 문제를 가능한 한 많은 부분으로 나누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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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과서에는 ‘면죄부’ 아니라 ‘면벌부’ 라고.

4세기에 로마는 한편으로는 북쪽에서 밀어닥치는 이민족들의 위협과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적인 붕괴의 위협에 직면했어. 33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자신이 흑해 입구에 새로이 건설한 콘스탄티노플로 옮겼지. 이 도시는 이때부터 ‘제2의 로마‘라고 불렸어. 395년에 로마 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었어. 서로마 제국의 수도는 로마였고, 동로마 제국의 수도는 새로 건설된 콘스탄티노플이었지. 410년에 로마는 이민족들의 습격을 받아 약탈당하고 황폐해졌으며, 476년에는 끝내 서로마 제국 전체가 멸망하고 말았지.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인들의 손에 함락될 때까지 유지됐고. - P19

529년은 어떻게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 위를 뒤덮기 시작했는지를 상징하는 해지. 이때부터 수도원은 교습과 명상을 독점하게 되었어. - P20

‘중세‘란 원래 서로 다른 두 시대 사이의 시기를 뜻해. 이 표현은 르네상스 시대에 생겨났어.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중세를 고대 문화와 르네상스 사이에서 유럽을 뒤덮었던 ‘천 년의 암흑기‘로 여겼지. 지금도우리는 권위적이고 경직된 것을 가리켜 ‘중세적‘이라고 하지만 중세를
‘천년의 성장기‘로 간주하는 사람도 많아. - P20

문화사적 관점에서 아랍인들이 고대 헬레니즘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했다는 점이 중요해. 이로 인해 그들은 그리스 학문의 대부분을 물려받았어. 중세 전반에 걸쳐 아랍인들은 수학, 화학, 천문학, 의학과 같은 학문을 이끌어나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지.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고 있지. 몇몇 분야에서는 아랍 문화가 기독교 문화를 훨씬 능가했어. - P23

"그래,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은 아테네의 인본주의와는 다르지만 인간을 두 범주로 나눈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니고 저주와 구원에 대한 성서의 얘기를 따른 거야. 그의 저서 『하느님의 나라(신국론)』를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지." - P29

우린 아우구스티누스가 역사를 철학의 영역에 끌어들인 최초의 철학자라는 점도 기억해야 해. - P30

당시 스페인에는 아랍인들의 영향력이 컸어. 아랍인은 중세 전반에 걸쳐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을 보존했어. 그런데 1200년경 아랍의 학자들이 영주들의 초청을 받아 북이탈리아에 오게 되었어. 이렇게 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많은 책들도 같이 알려지게 되었고, 후에는 그리스어와 아랍어를 라틴어로 번역하기에 이르렀지. 그리고 이건 자연과학적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어. - P32

간단히 말하면 아퀴나스는 중세 초기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을 ‘기독교도화‘ 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도화‘ 했다고 할 수 있지. - P33

"중세의 교회는 남자들이 독점하고 있었어. 그렇다고 여성 사상가가 없었다는 말은 아니야. 여성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이 힐데가르트 폰 빙겐(빙겐의 힐데가르트)이야." - P40

"어차피 그런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할 수 없어."
"어쨌든 우리가 그런 질문을 하는 법도 배운 적이 없잖아." - P45

철학과 과학은 교회 신학에서 점점 더 멀어졌고, 그에 따라 종교 역시 이성과 좀 더 독립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어. - P55

그리고 인간이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면,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해. 모든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 이제 인간의 목표가 되었어. 그 점이 고대의 인문주의와 르네상스의 차이란다. 고대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이 마음의 평안과 중용 그리고 자제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지. - P60

17세기 초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 궤도를 운행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포괄적인 관찰 결과를 발표했어. 그 밖에 행성이 태양에 가장 가까이 있을 때 가장 빨리 움직이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천천히 움직인다는 사실도 입증했지. 케플러를 통해서 비로소 지구가 모든 다른 행성과 똑같은 행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어. 그 외에 우주 어느 곳에서나 똑같은 물리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도 강조했지. - P66

루터는 인간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 꼭 교회나 성직자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 더군다나 하느님의 용서는 교회에 바치는 면죄부 값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거야. - P76

‘오직 성서를 통하여‘라는 구호와 함께 기독교의 ‘기원‘으로 돌아가려했는데, 이건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들이 고대 그리스의 예술과문화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려고 한 것과 같아.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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