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읽으면 안되겠어:;; 눈물 콧물...

혐오세력들이 성소수자들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다 좋은데, 내 눈에만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어떤 존재를 향해 그 정체성을 드러내지 말라는 것은 그 자체로 차별과 배제입니다. 혐오세력들이 성소수자의 ‘비가시화‘(invisibility)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커밍아웃은 스스로의 존재를 ‘가시화’ (visibility)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어떤 소수자 집단이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상태에서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는 없습니다. 그래서 커밍아웃은 그 자체로 가장 급진적이고 적극적인 권리 주장이자 평등의 요구입니다. 평등하게 존중받는 인격적 주체로서 살아가겠다는 선언입니다. - P5

커밍아웃은 하나의 사건이기보다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커밍아웃을 하기까지의 과정, 커밍아웃하는 순간, 커밍아웃 이후의 여러 반응들까지 모두 커밍아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래서 커밍아웃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성소수자 문제에 상당 부분 다가설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 P8

나는 이제 딸의 성적지향 자체가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동성애가 선택가능하다면 누가 이렇게 혐오받는 삶을 선택하겠는가? 자신의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을 알게 되었을 때 당사자나 가족이 괴로워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사회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함께 차별과 혐오 발언은 당사자들과 가족들을 아프게 한다. 이제야 나는 젠더교육이 없는 한국교육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 P60

신분제 폐지, 어린이노동 금지, 인종 차별 반대, 여성참정권 운동, 장애인 차별 반대 등 수많은 인류의 투쟁을 기억한다. 당시에는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로 비쳤지만, 차별받는 당사자와 지지자들의 연대로 인류는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성소수자 차별 반대운동이 다음 차례라고 생각한다. 함께하는 이웃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모이기를, 그래서 내 아이도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꿈꾼다. - P61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7년 1월호에 따르면 "성정체성이 일반적으로 유아기 때 명확해지는 반면 매력을 느끼거나 사랑에 빠지는 대상과 관련 있는 성적지향은 더 늦게 확립된다. 조사에 따르면 성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성적지향 역시 바뀔 수 없다"고 한다. - P84

단 한순간에 소외와 혐오에 대하여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딸이 엄마에게 설명하려 애썼던 것이 무엇인지 느껴졌다. 자기가 왜 자유롭지 못한지, 생활과 연애를 분리하여 살라고 하는 건 정체성을 숨기며 살라는 건데, 그것이 어떻게 분리의 문제인지, 자신의 존재 자체인데……. 엄마는 자신을 인정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전혀 이해를 못 하고 있다고 항변하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깨달았다. 나의 오만이었다. 부당해고의 억울함 따위는 저 멀리 내던져두고 나는 빨리 내 딸 린이 보고 싶었다. 엄마가 미안했다고, 너 혼자서 온통 불편한 공간에서 생존투쟁을 하게 했다고, 이제야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 P122

나는 지금도 민중총궐기 측에서 2016년 11월 11일에 내놓은 사과문(「민중총궐기투쟁본부 "다양성 · 평등성 지키겠다" 지난 촛불집회 여혐발언 사과」, 『경향신문』 2016. 11. 12)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나 다른 분야에서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성차별과 성정체성, 특히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본다. 이 경우에도 이들을 설득할 유일한 무기는 그들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하는 것이리라.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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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버지의 폭력적인 환경, 자식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쓰는 게 아니라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 주님이 지켜주신다 - 더 무서운 폭력
아버지가 새로운 기계 작동이나 작업을 지시하면 누가 죽거나 다칠까봐 너무 무섭다. 공포소설을 보는 듯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가 겁난다!!

일주일 후 나는 브리검 영 대학교에 지원했다. 지원서를 어떻게 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타일러 오빠가 대신 써줬다. 오빠는 엄마가 고안한 엄격한 프로그램에 따라 내가 교육을 받았으며, 그 프로그램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모두 갖추었다는 점을 확신한다고 적었다.
그 지원서에 대한 내 감정은 날마다, 아니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어떨 때는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신의 뜻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28점을 받도록 한 것이 바로 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내가 합격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은 내가 대학에 지원한 것, 가족들을 버리고 떠나려는 마음을 먹은 데 대해 벌을 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 진학 여부가 어떻게 결론이 나는 나는 집을 떠날 생각이었다. 대학이 아니더라도 어디로든 떠날 것이다. 내가 숀 오빠를 엄마가 아니라 병원으로 데리고 간 그 순간 집은 다른 곳으로 변해 버렸다. 그전까지는 집의 어떤 부분을 내가 거부했었지만 이제는 집이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 P239

나는 항상 아버지가 믿는 신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우리 가족이 읍내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은 교회에 가긴 하지만 종교는 같지 않다는 것을 의식했다. 다른 사람들은 겸양을 <믿었지만> 우리는 겸양을 실천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치유 능력을 <믿었지만)> 우리는 주님의 손에 치유를 맡겼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믿었지만> 우리는 실제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나는 우리 가족만이 진정한 모르몬교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대학, 이 교회 안에서 처음으로 나는 그 간극의 거대함을 실감했다. 나는 그제야 이해가 됐다. 우리 가족과 함께하지 않으면 이방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이었다. 그 사이에는 발을 걸칠 자리가 전혀 없었다. - P254

그 일이 끝날 무렵에야 나는 처음부터 불 보듯 바로 알아차렸어야 할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평등을 향한 대장정에 누군가는 반대했을 거라는 사실 말이다.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누군가의 손에서 자유를 쟁취해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우리 오빠를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절대 오빠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변화가 있었다. 내가 자각의 길에 들어섰고, 오빠, 아버지, 나 자신에 관해 아주 기초적인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건넨 전통에 의해 만들어져 왔지만, 고의적으로 혹은 실수로 그것이 어떤 전통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오직 다른 사람들의 인간성을 빼앗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담론에 목소리를 보태 왔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 담론을 확대하고 그편에 서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힘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 전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 P287

찰스는 저녁 식사가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 즉시 자기 지프차를 몰고 떠난 후 몇 시간 동안 아무 기별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전화를 한 그는 교회에서 만나자고 했다. 벅스피크의 우리 집으로는 오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어둡고 텅빈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지프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가 울고 있었다.
「네가 봤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이 아니야.」 내가 말했다.
누가 내게 물어봤다면 나는 찰스가 세상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그에게 증명해 보일 것이다. 내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랑이나 우정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그럴듯하게 거짓말하는 능력이었다. 내가 강하다고 믿을 수 있도록 거짓말하는 능력. 내가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찰스를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 P300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어요.」 비숍이 말했다.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게 말해 줘야 도움도 줄 수 있어요.」 온화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내게는 그 온화함이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고함을 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고함이라도 치면 화가 났을 것이고, 나는 화가 났을 때 강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강하다는 느낌 없이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했다. - P316

나는 그 돈을 받으면 내가 컨트롤당할 거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돈은 내가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줬다. 아버지 밑에서는 절대 다시 일하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하면서, 처음으로 나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돌이켜 보면, 세금 신고서를 훔치기 위해 갔던 그때가 처음으로 내가 <내 집을 떠나> 벅스피크로 갔던 날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의 집에 침입자 신분으로 들어갔었다. 그것은 심리적 언어에 온 큰 변화였고, 내가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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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21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의 폭력 중 가장 잔인한 것이 가족에 의한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가깝고 나를 보호해줘야 하는 사람들에게서 내쳐지는거잖아요. 거기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자각조차 하지 못할 때는 더더욱 끔찍하네요. 그런 환경속에서도 그걸 극복하는 이가 있다는게 인간의 대단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우리나라는 수백 년 동안 농업기반을 다져 경쟁력을 높여온 농업선진국에 비해 농업구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방을 추진했기 때문에 농업기반이 붕괴되었다. 그 결과 농가의 농업소득은 2000년 1,090만 원에서 2020년 1,175만 원(추정치)으로 불과 85만 원, 7.8% 상승에 불과했다. 그동안 문민정부 이래로 농업 근대화, 선진화를 위해 적게는 몇십조 원, 많게는 100조 원 이상을 농업에 투입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농가의 농업소득이 제자리라는 것은 농업정책의 실패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P27

전국에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건설된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이전해인구를 분산시킨다는 이론은 대기업을 키워 그 성과를 중소기업과 일반국민에게 나눈다는 이론, 이른바 낙수효과를 말하는 것인데 이 이론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게 경제학계의 정설이 되고 있다. - P29

농촌에 적정한 인구가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산업자본에 의한 농촌의 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부르기 때문이다. 농촌에 사람이없게 되면 난개발과 공해시설들이 쉽게 들어설 수 있다. 무분별한 개발로 우량한 농지들이 잠식되고 공해시설의 난립으로 농촌환경이 파괴된다면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현재 우리 농촌은 대규모 축산(가공)단지가 들어서고, 쓰레기(폐기물) 매립지가 들어서고,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들어와 몸살을 앓고 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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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쓰는 책상에 앉아 나를 버리고 떠난 오빠를 흉내 내면서 모르몬 사상의 한 분파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보낸 그 긴긴 시간들 말이다.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참고 읽어 내는 그 끈기야말로 내가 익힌 기술의 핵심이었다. - P109

나는 아직도 오빠가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 내가 이해한 한 가지는 내가 나 자신을 믿어도 된다는 것, 내 안에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선지자가 자기 안에 가지고 있던 그 무언가는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스스로 타고난 본연의 가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가치라는 사실 말이다. - P193

오빠가 일어서며 말했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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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의 씨는 이미 뿌려졌다. 그 씨앗을 기르는 데는 시간과 지루함 말고는 다른 것이 필요 없었다. 라디에이터에서 구리를 빼내거나, 쇠뭉치를 한 500번째쯤 통에 던져 넣다가도 문득 타일러 오빠가 공부하고 있을 교실을 상상하곤 했다. 폐철 처리장에서 보내는 죽을 듯이 지루한 시간이 쌓일수록 내 관심은 점점 더 커졌고, 결국 어느 날 정말 괴상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학교에 다녀야겠다는 기상천외한 생각 말이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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