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으로서의 작가는 예리하거나 예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실을 예리하고 날카롭게 직시하여 은폐된 진실을 드러낼 것이고, 세상과 자신의 진실을 예민한 촉수로 느낌으로써 시대를 앞서서 감지할 것이다. 그것을 설령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거나 의도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타인의 서사를 통해 자신을 고취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기 좋은 글로 면피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르는 대상을 타자화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사실 이건 그들이 아니라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 - P119

에드거 앨런 포의 「고자질하는 심장」을 밤에 읽다가 □□에 맞추어 □□ 소리가 들리는 부분에서 소름 한 번쯤 돋아 보지 않은 애서가가 있을 텐가. - P143

책은 저자의 경청과 독자의 경청으로 완성된다. - P179

말해야만 하는 일을 말하고 나서 제 삶을 침범당하는 기막힌 사태에 슬퍼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세상과 투쟁해야 하는 사람들. 에세이가 투쟁이 되는 사람들. 자서전이 비명이 되는사람들.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질러야 한다." - P185

소설의 결말을 향해 급하게 달려간 후에 그래서 이게 나에게 무슨 이득을 주느냐고 묻는 것은 죽음을 향해 급하게 달려간 뒤 그래서 삶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 P197

그러나 고독한 이는 모름지기 책을 벗 삼아야 한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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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려던 책을 결코 다 읽고 죽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당장 읽어야 한다. 매일 읽어야 한다. 고요 속에서 읽고 또 읽는다. 이걸 다 읽고 죽어야 한다. - P27

책 읽기는 느린 행위다. 책 읽기는 우리에게 멈춰 서도록 요구한다. - P29

벽돌책을 읽는 데에는 유난히 긴 경청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께는 그 자체로 주장이며 난이도는 그 자체로 방어다. 대개 하드커버로 감싸진 두꺼운 책의 내부로 들어가려면 독자와 저자 모두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방어선을 뚫어야 한다. 뚫고 들어갔다면 긴 미로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노련한 탐험가는 견고하게 세워 놓은 성을 한 자 한 자 탐색하며 완성본에서 거꾸로 설계도를 그려 나간다. 그는 설계도에 그려진 것과 그려지지 않은 것을 들여다본다. - P59

책은 내가 간신히 얻은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안정, 삶, 집 같은 단어이다. - P73

어린 시절에는 뭘 읽는지도 모르고 읽었던 책이 너무나 많고, 그렇게 읽은 책이 없었다면, 그리고 뭔지도 모르고 신나서 떠든 그 이야기들을 친절히 들어 준 어른들이 없었다면 나는 무척 위축되어 아마 책에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어린이는 실컷 읽고 실컷 떠들도록 두어야 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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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인 동시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 ‘희망찬 인생‘은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의 볼모가 된다. 희망은 욕망의 포로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조종하는 벗어나기 어려운 권력이다. - P95

장애인이나 여성이 자기 언어를 지니는 것은 지식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전복적인 행위다. 사회적 약자에게 공부는 취업, 성장 같은 당연한 의미 외에 자신의 삶과 불일치하는 기존의 인식체계에 도전하는 무기가 된다. - P105

당사자의 글쓰기는 혁명의 꽃.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는 당사자는 오래 살 수 없다. 우울증 환자의 자살이 그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증명하는 것은 현실이 투명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인간은 무지와 편견의 보호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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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에게는 칼이 있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칼자루를, 여자‘는 칼날을 쥐고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대화를 시도할수록 우리는 피를 흘릴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패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습니까. - 나혜석 - P9

타자화(他者化)란 "나는 그들과 다르고 그 차이는 내가 규정한다."는, 이른바 ‘조물주 의식‘이다. 이러한 자기 신격화는 민주주의와 예술의 적이다. 윤리적인 글의 핵심은 다루고자 하는 존재(소재)를 타자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남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신을 해방하지 못한다. 실천적이고 진보적인 글은 ‘불쌍한 이’들에 대한 리포트가 아니라 글쓰기 과정에서 재현 주체와 재현 대상의 권력 관계를 규명하고, 다른 관계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 P15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 P16

오늘날 미디어 권력이 일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미디어가 전달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메시지이며, 몸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 P34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최대의 선이 아니라 최소의 잘못이다. - P51

한채윤은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가 신앙 때문이 아니라 이익 집단의 필요에 따른 절박한 정치적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 P68

즉, 개신교가 동성애의 ‘해악‘을 진정 걱정했다면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성장할 때부터 반대했어야 맞다. 관심이 없다가 자신의 문제를 전가할 대상을 찾은 것이다. 동성애는 발견되었다. 동성애 이미지는 사회 통념에 호소하기 쉬운 데다, ‘적‘이 강력할수록 명분도 강해진다. 동성애는 훌륭한 적‘으로 만들어졌다. 적의 구성 원리는 비슷하다. ‘적‘은 내부 비리를 은폐하고 결속시킨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개신교는 동성애자를 ‘좋아하고’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 P69

글쓰기는 다른 삶을 지어내는 노동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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