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해봤다. 용돈은 거절하면서 몰래 천원씩 훔치는 건 어떤 마음일까. 적은 돈 없어도 티가 나지 않는 돈을 훔칠 때 느끼는 죄책감이 신세를 지면서 느끼는 부채감보다 가벼운 것일까.
신경질적인 마음으로 아이들을 마음 저편에 밀어놓았다가 끌어당겼다가 하고 있으면 반질반질하게 닦인 어둠속에서 귀신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코웃음을 치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망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 P116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법은 누가 알려주는 걸까. 그런 게 체득이 되는 인간들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걸까. 동이 틀 무렵 창가에 어른거리는 고양이 그림자를 눈으로 좋으며 우리는 망했다고 홀로 중얼거렸다. - P198

이호의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쭈그려 앉아 운동화 끈을 묶었다.다.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뭐가."
"누가 내 신발 끈 묶어주는 거요."
나는 멈칫했다.
"어릴 때, 누군가가 묶어줬을 거야. 네가 기억 못할 뿐이지."
나는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요.
"그래."
"그랬으면 좋겠네요."
나는 그럴 거야, 분명히 그랬을 거야, 하고 무언가를 다짐하듯 말했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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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드 포 - 성매매를 지나온 나의 여정
레이첼 모랜 지음, 안서진 옮김 / 안홍사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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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도 성매매가 성폭행, 강간과는 다르다는 허튼소리를 하진 않을 것이다. 성매매의 합법화와 비범죄화를 주장하진 못할 것이다. 아니라면,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 백 번, 천 번 다시 읽어야 한다. 성매매에 대한 순진한 생각을 완전히 깨트리는 책이다. 모랜의 10년의 노고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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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25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러분들의 완독 기록이 줄줄이 올라오네요.
읽기 힘든 책 읽느라 수고하셨고 완독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백자평 너무 좋습니다, 햇살과함께 님!!

햇살과함께 2023-10-25 20:08   좋아요 1 | URL
감사^^ 너무 좋았어요~ 저는 생각보다, 다른 책에 비해 읽기 힘들지 않았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모랜의 글을 풀어내는 빙식에 답답함이 없어서 인 것 같아요. 다만,, 물리적으로 글씨가 작아서 읽기 힘듬…

건수하 2023-10-25 21:13   좋아요 1 | URL
모랜의 글 참 좋았지요. 번역도 좋았던 것 같고요 ^^

독서괭 2023-10-25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햇살과함께 2023-10-25 20:10   좋아요 1 | URL
너무 좋은 책^^ 큰 글자판으로 널리널리 보급 필요합니다 ㅎ

건수하 2023-10-25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햇살과함께님 완독 축하드려요 ^^ 큰글자판 보급 꼭 필요합니다 222

은오 2023-10-26 0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햇살님~ 완독 축하드려요!! 👏👏👏💕
이 책 진짜 많이 읽혔음 좋겠어요. 누가 성매매에 대해 허튼소리 하면 이 책을 내밀 것입니다!!!!!

잠자냥 2023-10-26 06:53   좋아요 2 | URL
늘 갖고다녀야겠네…..

은오 2023-10-26 08:24   좋아요 2 | URL
말이 안통하면.. 무기로 쓰면 좋을텐데 양장이 아니라 아쉽군요ㅜ

햇살과함께 2023-10-26 09: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늘 갖고 다니다 허튼소리에 들이밀도록 포켓북 사이즈로 만들었나 봐요 ㅎㅎ 출판사의 큰 그림!
 

21. 성매매의 보편화
아무에게도 강요받지 않은 나와 같은 여성들은 우리의목소리를 찾아 누군가 강요하지 않았다는 그 말이 아무것도 우리를 강요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사실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강압적인 상황에서 지구상 가장 강력한 강제성은무형으로 존재하는데, 강제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 주먹이나 총, 칼이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건 무척이나 인간적인 어리석음이다. 내 성매매 경험은 강요되었다. ‘자유로운‘ 범주에 속하는 우리들을 강압한 건 삶이다. - P339

성매매를 보편화하려고 이용하는 또 다른 거짓은(현대이전 매우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성매매가 존재하기에 남성들이 지니는 성적인 공격성이 비성매매 여성으로 향하지않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아일랜드 전국 여성 연합 전 대표인 수전 맥케이가 아래와 같이 말하면서 이 신화를 혹평했다.

성매매 여성의 존재가 남성들이 지니는 성적인 공격성을 막는안전밸브라서 다른 여성들을 보호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성폭력 없이 살아야 하는 모든여성의 권리를 무시한다. 성매매를 정기적으로 하는 남성들은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을 자주 더 폭력적으로 대하는 경향이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성매매 여성들을 이용하는 남성들은 여성들을 존중하는 남성들이 아니다. - P341

성매매 경험을 ‘성노동’으로 눈가림하려는 전략과 같고, 둘 다 같은 목적을 공유하니 같은 맥락이다. 이 묘사 뒤에는 분명히 고의적인 의도가 있다. 성매매를 품위와 결합시키려는 의도이고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끄럽지 않아야 용인할 만하기 때문이다. - P347

24. 관계와 섹슈얼리티에 미치는 악영향
저메인 그리어는 1969년도 책『여성, 거세당하다』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단지 반응하고 응대하는 정도에그쳐 왔으며 부자연스럽게 훼손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왔다는 것은 사실이며, 사회적 길들이기가 그 책임이 있다. 어떤 다른 그룹에 속한 여성도 성매매여성만큼 섹슈얼리티의 두 다리가 묶이지 않는다. 섹슈얼리티가 방해받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불리한 조건 속에서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다. - P378

25. 여진
이 여성들의 글쓰기가 나의 글쓰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위안을 받았고 안심이 됐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초반부터 ‘성매매 여성‘이라는 말보다 ‘성매매된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를선호했다. 왜 이 용어가 더 적합하게 느껴졌는지 정확히는몰랐다. 그저 그렇다는 걸 알았다. 이제는 왜 인지 안다. 여성은 오직 다른 사람에 의해서 성매매될 때만 성매매 여성이 될 수 있고 그 누군가를 염두하지 않은 채 성매매 여성만을 언급하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상업 분야에서는 어떨까 생각해본다. 정육업자는 아무도 그의 고기를 사지 않아도 여전히 정육업자인가? 아니다 그는정육업자가 되고 싶은 사람일 뿐이다―그 이상은 아니다. 여성에게 그 명칭이 붙기 위해선 성매매가 되어야만 한다. 성매매 여성이 되기 이전에 구매되어야만 한다. - P401

에필로그
이 책을 쓴 이유 대부분은 이미 설명했지만 한 가지가 남아있다. 아마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불타는 건물을 비유로 들 수 있는데, 불 타는 건물을 빠져 나올 만큼 운이 좋았다면 그 집에 불이 났다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야 옳다. 그래야 그 안에 여전히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희망이 생긴다. - P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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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성매매 여성에게 주도권이 있다는 신화
성매매 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환상에 내 자신이 공모했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창피하고 화가 났지만 더이상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적어도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다. 감정을 왜곡하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진실을 숨겼던 이유를 이해하고 나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성적인 학대는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보편적으로 인정된 사실이다. 혼자 수치스러워하는 건 괴롭다. 공개적으로 수치스러워하는 건 고통스럽다. 주도권이 있는 척하면서 이런 수치스러운 감정들을 숨기고 누그러뜨린다. 성매매 여성들이 주도권을 가진 체하는 주된 목적은 공공연히 당하는 수치를 없던 일처럼 만들려고 함이다. 이렇게 하는 많은 성매매 여성들의 입장을 백분 이해하지만 성매매가 그 진정한 본질에부합되려면 쓰디쓴 진실은 폭로될 필요가 있다. 성매매는 주도권의 부재로 정의된다. - P262

18. 성매매로 인한 상실
남성 다수가 정부 조직을 구성하는 나라들에서는 서구사회 전역으로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성매매 합법화가 시행되고 있다. 이 흐름에 맞서는 여성들의 저항은 어디 있는가? 여성들의 저항이 널리 퍼지지 않은 이유는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상품으로 여겨진 지 너무 오래된 터라 여성들 스스로가 다른 사회 계층에 속하는 여성이 성매매를 제공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약 여성이 다른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이런 대우를 용인한다면, ‘자유주의‘ 또는 다른 이름으로 성매매를 받아들인다면, 그녀 자신이 단지 성매매에 유입될 만한 상황에 놓이지 않아서 성매매와 동떨어졌을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업소의 성구매자들은 그녀의 몸 역시 난폭하게 다루고, 빨고, 일방적인 섹스를 하기 위해 반기며 결혼할 여성을 찾는 남성들은 그녀를 매도할 것이다. 성매매를 용인하면 대중의 시선에 모든 여성이 잠재적인 성매매 여성으로 보이는데, 여성이 업소에서 일하는 데는 오직 두 가지 요건만이 필요해서이다. 하나는 여성을 그곳에 있게 만든 상황(우리 중 누구에게 언제이런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나?)이고, 다른 한 가지는 질이 있다는 사실이며, 모든 여성은 적어도 이 둘 중 하나를 가지고 태어난다. - P279

그러나 이 구매자들이 여성들의 아버지, 오빠, 남동생, 남편, 아들, 그리고 파트너임을 감안해봤을 때 일반적으로 어떻게 남성과 여성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칠까? 구매자 자신 또한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는데, 이는 기록되지도 검토되지도 않은 거대한 상실이다. - P280

사과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라고 궁금해하는 태도를 접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용서를 구해야 사과이고, 사과가 받아들여져야 용서이므로, 그 둘은 붙어 있어 용서나 사과 중 하나가 없이 다른 하나가 있을 수 없으며, 용서를 구하는 사람이 느끼는 깊은 뉘우침과 전적으로 책임을 수용하는 태도 없이 용서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 P288

19. 성매매에 대한 오해
남성이 가하는 성적,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학대를 페미니스트의 권리로서의 ‘자유‘로 추구하며 실천하는 여성들은 여성 평등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창하는 페미니즘의기본 전제를 이해하지 않는(혹은 이해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결정에 있어신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넘어선 환경으로 인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진정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누리기 위한 필수 조건들이 성매매 경험 내에 존재하지 않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 필수 조건들은 성매매를 무심히 보는 시각에도, 살아낸 경험 안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P306

20. 합법화와 비범죄화
아일랜드에서 성매매 업소 운영은 불법이지만 성매매업소 출입은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울하리만큼 가부장적인 이 세상의 구조를 또 다른 방식으로 드러냈다. 아일랜드 성매매 여성들은 이 사실에 대해 오랫동안 분개했다. - P311

비범죄화와 합법화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한다는 개념은 성매매의 또 다른 신화이며, 특히나 위험하다. 호주에서 성매매를 합법화한 이래 인신매매된 여성의 수가 폭증했는데, 예를 들어 약 10여 년 전에 인신매매된 여성 5백 명이 시드니에서 일하고 있다고 기록된 바 있고, 이는 아마도 실제보다 아주 적게 잡은 수치였을 것이다. 오늘날의 인신매매 통계는 심기 불편한 측정값을 준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2백5십만 명의 사람들이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고 추정되고, 그 중 120만 명이 어린이라고한다. 인신매매 피해자의 43퍼센트가 ‘강요된 성착취‘에 이용되고, 이들 피해자의 98퍼센트가 젊은 여성과 여자아이들이다. - P314

성매매 관련 입법에 있어 오랫동안 훌륭하게 처신한 내가 알고 있는 단 하나의 나라는 스웨덴이다. 법 전문가이자 활동가 구닐라 에크버그가 성매매에 대한 스웨덴 정부의 태도를 아주 분명하게 피력한다.

스웨덴에서는 여성과 소녀 들을 위한 법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의 원리들을 견지하길 요구하는 사회라면 여성과 어린이, 그중 대부분인 소녀들이 사고 팔리며, 남성에 의해 성적으로 착취될 수 있는 상품이라는 생각을 거부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존재 중에서도 구별된 계층으로서의 여성, 특히 경제적, 인종적으로 주변화된 여성과 소녀들이 이러한 장치들 그리고 지난 50년 동안 발전해온 국제 인권 조약들에 명시된 보편적 인권 존엄성 보호에서도 마찬가지로 제외됨을 용인하게 된다.
-구닐라 에크버그, 『성구매를 금지하는 스웨덴 법』 - P315

성매매 합법화를 관철하려는 성매매 옹호론자들은 전략적으로 성매매 경험 자체를 인권이나 시민권으로 포장하려고 하는데, 예상대로 인권과 시민권을 부인하는 행위는전 세계적으로 극히 꺼려지는 행위이기에 성매매 옹호론자들이 계속해서 주장하며, 단단히 붙잡고 놓치 않을 전략이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학대는 권리가 아니다. 인간권, 시민권 혹은 그 어떤 권리도 아니다. 어떤 그룹이라도 학대를 특정한 사람의 권리라고 포장하여 주장한다면 자신들이 지지하는 바로 그 학대될 ‘권리‘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분명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면 시민권과 인권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그토록 적극적으로 오염시키고 왜곡하는 걸로 봐서개념으로서의 시민권과 인권의 존엄성 또한 유념하지 않음이 명백하다. -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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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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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었을지, 이 책을 쓰기 위해 또 얼마나 힘들게 그 과정을 복기했을지. 읽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티끌이겠지만, 오해하지 않기 위해 읽겠습니다. 잘 읽겠습니다.
(그런데 왜 알라딘 작가 소개에 영문 이름은 아직도 Ellen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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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0-21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햇살과함께 2023-10-21 20:56   좋아요 0 | URL
ㅋㅋㅋ 감사. 안바뀌면 따로 수정요청할까봐요

알라딘고객센터 2023-11-16 1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고객님.

말씀하신 저자명 수정하였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햇살과함께 2023-11-16 21:54   좋아요 0 | URL
네~ 확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