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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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 있는 보존기술로 발생할 수 있는 훼손도 있고, 작가가 쓴 다양한 재료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고, 보존 처리를 둘러싸고 여러 전문가가 몇 년씩 논쟁을 하기도 하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고가의 원작을 잘 보존하기 위해 그 원작에 직접 손을 대야하는 보존가라는 직업의 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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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 구매는 1권이다. 10월 여성주의책인 <세계 끝의 버섯>
그리고 정기구독하는 <녹색평론 2024년 가을호>.
요즘 운동하느라 책에 관심이 좀 멀어졌네.

같이 찍다보니 두 책의 색감이 비슷하네. 가을가을한 표지.

어제 아침 8시에 나가서 깜짝 놀랐는데 오늘 아침 7시에도 또 깜짝 놀랐다. 이 시간에 러닝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바야흐로 날씨 좋고 마라톤 대회도 많은 날이라 그런가. 뭐 하긴 등산은 5-6시에도 가긴 하지.

런데이 1주차. 달렸다기엔 대부분 걸었지만 1분에서 1분 30초를 뛰는 것도 긴 시간으로 느껴지지만 8주 후엔 30분 달리겠지. 런저씨는 믿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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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9-29 2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런저씨만 믿으세요. 이끌어줄 겁니다. 화이팅!
다음달 읽기도 물론 화이팅!!

햇살과함께 2024-09-30 10:37   좋아요 1 | URL
믿습니다!! ㅎㅎ
다음달 읽기도 기대됩니다!
하루만 지나면 휴일이라니 너무 좋은 월요일이네요 ㅎ

독서괭 2024-09-30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분 뛰는 것도 힘들었던 내가 30분을 달리다니~! 하는 그 순간 진짜 뿌듯합니다 ㅎㅎ 햇살님도 8주 뒤면 그 기분 느끼실 거예요😆

햇살과함께 2024-10-01 08:09   좋아요 1 | URL
오늘 아침도 달리고 왔습니다 헤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비가 와서 비 맞으며 뛰니 기분이 너무 좋네요.
 

홍희담 <깃발>
윤정모 <고삐>

박완서_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아뇨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돈이 얼마 없는 상태가 얼마나 좋아요. 난 그걸 알거든요."
"저를 놀리실 셈이군요."
"천만에요. 내가 자랄 때 우리 어머니한테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그 소리였어요. 얘야 우린 돈이 얼마 없단다. 그러면서 교복도 내리 입히고, 내복도 기워 입히고 용돈도 조금밖에 안 주셨죠. 그렇지만 학비를 제때에 못 내거나 밥을 실컷 못 먹거나 할 정도로 궁색한형편은 아니었어요. 얼마 없다는 건 아주 없는 것보다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교육자셨는데 6남매나 되었으니 어머니가 언제나 돈이 얼마 없을 수밖에요. 돈이 얼마 없는 상태는 형제 간에 우애 절제 근면을 배우기에 아주 적절한 상태였나 봐요. 6남매가 다쓸 만하게 되었거든요. 지금 난 남매밖에 안 낳았어요. 남편도 의사니까 아이들은 아쉬운 것 모르고 유복하게 자라죠. 돈이면 다라고하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해 줄 수 없는 게 딱 한 가지 있잖아요. 돈이 얼마 없을 때의 활력 말예요. 그게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알고있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 없이 해 주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거있죠?"
"선생님이 돈이 얼마 없는 상태가 뭐라는 걸 정확하게 이해해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앞으로 잘될 거예요. 잘되길 빌겠어요."
"그래도 재판받을 생각하면 떨려요. 어려서부터 빚보증 서기나 소송 좋아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식의 가정교육을 받아 온탓인지 웬만한 손해라면 당하고 말지 경찰이나 법원 신세 안 지자 주의였는데." - P172

홍희담(1945~)

본명은 홍희윤으로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국문과를 졸업했다. 1971년 소설가 황석영과 결혼해 작가의 꿈을 접고 주부로 살다가 황석영이 연재소설 「장길산」 집필에 전념하고 새로운 문화 운동을 기획하기 위해 1977년 해남으로 내려가자 함께 이주한다. 1978년 광주로 이주한 홍희담은 ‘현대문화연구소‘의 윤한봉과 함께 광주 전남 지역 구속자 가족 모임과 진보적 여성 활동가 그룹을 모아 광주 지역 최초의 민주 여성 단체 ‘송백회‘를 만든다. 2003년 첫 소설집 『깃발을 내면서 "내 소설은 ‘송백회‘ 동지들과 함께 쓴 것"이라고 말한 데서 드러나듯, 홍희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회원들과 함께 투쟁 기금 모금, 대자보 작성, 회보 배포, 깃발 제작, 선전 및 홍보 등을 담당한 여성 활동가로서 시민군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수행한다. 1986년 황석영과 이혼한 이후에도광주에 남아 송백회 동지들과 지내다가 2000년이 되어야 광주를떠나 경기도 광명으로 이주한다.
"광주와 5월은 나를 소설가로 만든 원인이자, 내가 소설가로서 쓰고 싶었던 모든 것"이라는 작가의 소회에서 알 수 있듯 광주에서의 경험은 홍희담 소설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 대표작 「깃발」(1988)은 5·18민주화운동을 노동문학의 맥락에서 형상화한 문제작이다. - P179

김채원(原·1946~)

김채원은 1946년 남양주시 덕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인 파인 김동환, 어머니는 소설가 최정희이고 언니는 소설가 김지원이다. 유년 시절 서울 동숭동으로 이주해 지내다가 한국전쟁기 아버지의 납북 후 피난지인 대구에서 달성초등학교를, 휴전 후에는서울로 돌아와 창경국민학교를 다녔다. 이후 숙명여중을 거쳐 1년휴학 후 이화대학부속중학교,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2년동경 한국초중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지내다가 1975년 언니 김지원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수학했다. 이후 프랑스에서도 유학 생활을 했다. - P183

김채원_겨울의 환

저는 생각했지요. 제가 요새 여자들처럼 호강을 하다가 온 여자도 아니고, 어린 시절부터 막숟가락을 가지고 된장을 뜨러 어둠속 장독대를 다니던 여자이다. 그때부터 죽 밥짓고 반찬하는 일들이 훈련되어 있다. 어머니의 말대로 격식 있는 음식은 못 한다 해도밥 지을 줄도 김치 담글 줄도 모르는 여자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왜 이렇게 숨 쉬기마저 곤란한가. 저는 그만가져온 버선도 속치마도 입지 않고 오로지 살림과 싸우기에만 분투했지요. 이 괴물 같은 살림아,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해보자 라고 들러붙으며 저는 애꿎은 살림 쪽을 원망했습니다.
생일이나 환갑잔치 등으로 하여 친척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그는 항상 눈을 샐쭉하게 뜨고 있었습니다. 친척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스스로 창피해지고 자존심이 상하여 잊고 있던 결혼 당시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가 봅니다.
샐쭉하게 내려앉은 그의 눈꼬리를 보며 저의 마음은 말할 수없이 썰렁해져서 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 울음을 삼키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곤 하였습니다.
제게 돌아올 용기를 직접적으로 부어 준 것은 눈입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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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련_도정

그를 잘 알고 있는 기철은 먼저 "당"을 조직하게 된 이유부터자상히 설명을 하면서,
「자넨 어찌 생각할지 모르나, 정치란 다르이. 지하에나 해외에 있는 동무들을 제쳐 두고, 어떻게 함부로 당을 맨드느냐고 할지 모르나, 그러나 이 동무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일은 해야 되겠고, 어떻건담, 조직을 해야지. 이리하여 일할 토대를 닥고 지반을 맨드러 놓는 것이, 그 동무들을 위해서도 우리들의 떳떳한 도리가 아니겠느냐 말일세」 하고, 말을 끊었다
기철은 조금도 꿀릴 데가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뭔지 그저 퀭해서, 이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야릇하게도이 「동무」란 말이 새삼스럽게 비위에 와 부딪친다. 참 히한한 말이었다. 어제까지 고루거각에서 별별 짓을 다 허든 사람도 오늘 이 말한마디만 쓰고, 손을 잡고 보면, 그만 피차간 "일등 공산주의자"가 되고 마는 판이니, 대체 이 말의 조화ㅅ속을 알 길이 없다기보다도, 십년 이십 년, 몽땅 팽개쳤든 이 말을, 이제 신주처럼 들고 나와, 꼭무슨 험집에 고약이나 부치듯, 철석 올려 부치고는, 용케도 넹큼 넹큼 불러 대는 그 염체나 배심을 도통 칭양할 길이 없었다. 물론 그는 십 년 전에 맛나나 십 년 후에 맛나나, 비록 말로 표현하지 못할경우라도, 눈이 먼저, 맛나면 꼭 "동무"라고 부르는 몇 사람의 선배와 친구를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부르는 「동무」는 조금도 이렇지가 않었다. 그렇기에 열 번 대하면 열 번, 그는 뭔지 가슴이 철석하곤 하였든 것이다. - P163

한무숙_허물어진 환상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남편에게 씨워진 『애국자』의 광영도, 영희의 가책을 덜지는 못했다. 다만 한 가지 혁구 씨에게 그것을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에 영희자신이 겪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무서운 고초와 위협 그 한 가지가 남편에 대한 속죄라기보다, 자신의양심을 위하여 다소의 위안이 되었다. 동시에 뜻하지 않았던 사건의 낙착에, 놀랐을 혁구에게 대한 영희의 침묵은, 자학적(自虐的)이기는 하나, 일종의 복수심에서 나온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영희의 남편은 해방 후 삼 년 만에, 급성 복막념으로 세상을떠난 것이었으나, 긴 회오는, 깊은 상처같이 가슴에 남았다. 하이보ㅡㄹ이 왔다. 영희의 권에 겊을 들기는 하였으나, 혁구 씨는 한모금 마셨을 뿐, 또 겉봉을 써 간다.
남이 시킨다고, 천진으로 그것에만 골돌하는 폐인이 된 혁명가-그는 『고문을 너무 받아, 천치가 된 것』이 아니고, 의미를 잃어버린 자기 존재에 걸려 넘어진 것 같았다.
한숨에 드리켠 하이보 - ㄹ이 뜨겁게 자신의 혈관을 달리는것을 깨달으며, 영희는 아프도록, 이 폐인에게 가까움을 느낀다.
두 사람은 다 같이, 정신이 허물어진 사람이었고, 그 허물어진 일각에서 맺어진 사이었기에- - P195

강신재_안개

성혜는 끝이 모즈러진 호미와 꼬챙이를 하나 찾아 들고서 뒤꼍으로 나갔다. 흙을 긁어 올리고 발로 밟고 몸은 그대로 움지기면서도 성혜의 마음은 어덴가 먼 데로 나르고 있었다. 막연한 생각 속을 더듬으면서. 재미나게 일을 할 줄 모르는 것은 성혜의 쓸쓸한 버릇이었다. 어째서인지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에게는 무엇을 생각하거나 쓰거나 하는 외의 대개의 일은 흥미에서보다도 필요에서 하여졌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하여 주위의 모든 것을 깨끗하고 쓸모 있게간직하고 될 수 있으면 개량하고 윤택히 하고 이런 곳에 삶의 즐거움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거기에 비하면 추상적인 감정의조각구름 따위에는 결국 아무 의의도 없을런지 모른다. 성혜는 이렇게도 생각해 본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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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에 걸린 체육 선생님들을 깨우는 기발한 방법! 최면을 어떻게 걸었는지는 내용이 없어서 궁금하네. 아이들 상상에 맡김?!

I think Coach Birkby is hypnotized. 최면에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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