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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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여성이 처한, 사랑 보다 조건을 따질 수 밖에 없는 현실, 한정 상속이라는 제도적 문제, 계급 차이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스스로의 ‘오만‘과 ‘편견‘을 깨뜨리며 성장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연애소설이라는 플롯으로 섬세하고 감싸고 있다. 역시 오스틴 소설 중 단연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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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불과 4개월 전에 그녀가 거만하게 물리쳐버렸던 청혼이 이제 기쁘고도 고맙게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것을 알면, 그가 얼마나 의기양양해할 것인가 하고! 그가 남자 중에서도 가장 관대한 사람임을 그녀는 의심치 않았으나, 그렇지만 그도 인간인 이상 승리감이야 있을 터.
그녀는 이제 그가 성품에서나 재능에서나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남자임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지력과 성품은 자신의 것과는 다르지만 자신의 온갖 바람을 충족시켰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을 결합이었다. 자신의 편하고 활기 있는 태도로 그의 마음은 부드러워질 것이고 태도는 개선될 것이며, 그의 판단력, 지식, 세상에 대한 식견으로 자신은 매우 소중한 이익을 얻게 될 것이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이런 행복한 결혼을 해서 그들을 찬양하는 무리들에게 결혼의 행복이 진정 무엇인지를 가르쳐줄수 없게 되었다. 이 결합의 가능성을 밀어내면서 이와는 다른 결합이 이들의 가족 사이에서 곧 이루어지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 P427

해설

이런 사실은 영국 특유의 전통적인 상속 제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대륙에서 양반가의 자녀들이 대개 어느 정도 동등한 상속의 권한을 누렸다면, 영국은 장남에게 전 재산을 물려줌으로써 부모 대에서 자식 대로 같은 재산과 지위가 계승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또한 많은 경우 한정 상속이라 하여 재산과 지위의 상속이 집안의 남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도록 상속을 한정시키는 법적 장치가 있었다. 그 결과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전통적으로 군인이나 목사가 되는것이, 넉넉하지는 않으나마 양반의 지위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아울러 한정되어 있지 않은 재산의 상속녀와 결혼하는 정략결혼이 재산과 지위를 얻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또한 장자 상속 및 한정 상속으로 인해 상속 재산이 없는 딸들의 경우에는 결혼만이 재산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결혼을 못한 노처녀는 형제나 친척에게 얹혀살며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거나, 하녀나 다름없는 가정 교사 노릇이 유일한 자립 수단이었다. 이렇게 지위와 재산에 대한 고려로인해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상속 재산을 가진 여자와, 상속 재산이 없는 딸들은 어느 정도의 재산과 지위를 가진 남자와 결혼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상황에서 전통적으로결혼은 개인의 성격이나 사랑을 고려하기보다는 재산과 지위를 우선시하는 정략결혼이 규범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인 중심의 근대 시민 사회로 넘어오면서 이런 규범 - P546

은 많은 개인들에게 질곡으로 느껴지고 결혼 시장에 나선 개인들은 ‘계산이냐 사랑이냐‘라는 어려운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다. 이런 사정은 최소한 재산과 지위를 유지할 수있는 직업의 가능성이 있던 남자들과는 달리, 상속 재산이없고 직업의 가능성이 차단된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다. 결혼 시장에 나선 여성들은 사랑과 무관하게 조건만 괜찮다면 결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 자신도 바로 이런 ‘사랑이냐 조건이냐‘의 불합리한 선택의 국면에서 사랑은 좌절되고, 사랑 없는 조건은 본인이 거부하는 어려운 상황을 직접 체험했고, 그런 체험을 통해 전근대적인 사회 제도와 규범의 불합리성을 뼈저리게 느낀듯하다. 어쨌든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양반 계층의 젊은 남녀 간의 결혼은 더 큰 사회적인 이슈와 무관한 여자들끼리의 수다거리가 아니라,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사회의 핵심적인 가치관의 변동을 읽고 감지할 수 있는 장이며 척도였던 것이다. - P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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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가 제멋대로 구는 꼴이 사람들 눈에 띄어서 우리모두가 입게 될 피해는 어떡하고요. 아니, 벌써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요.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해서는 달리 판단해주시리라 믿어요."
"벌써 피해를 당했다!" 하고 베넷 씨가 되뇌었다. "흠. 네 애인들 가운데 몇 녀석이 걔한테 놀라 달아나버렸니? 우리 리지, 가엾기도 해라! 그렇지만 낙담 마라. 집안에 어리석은 사람이 좀 있다고 친척이 될 수 없네, 하고 나오는 그런 까다로운 청년들이라면 아쉬워할 가치도 없다.
자, 리디아의 어리석음 때문에 물러서버린 시시한 녀석들 명단이나 한번 보자."
"잘못 짚으셨어요. 제가 그런 피해를 받은 적은 없어요. 무슨 특정한 해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미치는 해악을 말하는 거예요. 제멋대로인 데다가 뻔뻔스럽고 내놓고 절제를 우습게 아는 리디아의 성격 때문에 우리 가족의 비중이라든가 평판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요. 죄송하지만, 터놓고 말씀드려야겠어요. 아버지께서 나서서 개의 걷잡을 수 없는 성격을 단속하고, 그런 식으로 남자들을 쫓아다니면서 인생을 보낼 거냐고 타이르지 않으시면, 걔는 곧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질 거예요. 성격은 굳어버릴 것이고, 열여섯 나이에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아주 호(號)가 난 바람둥이가될 거예요. 그것도 천박하기 짝이 없는 최악의 바람둥이 말이에요.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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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바로 이게." 빠른 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걸으며 다아시가 외쳤다. "저에 대한 당신의 견해로군요! 바로 이게 저에 대한 당신의 평가고! 그렇게 충분히 설명해 주셔서 고맙군요. 그 평가에 따르면 제 잘못은 참으로 무겁군요! 하지만 어쩌면," 그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 쪽으로돌아서면서 덧붙였다. "당신은 그런 잘못을 눈감아 줄 수있으셨을지도 모르지요. 제가 만일 여러 이유 때문에 진지하게 청혼을 고려할 수 없었다는 걸 솔직히 고백해서 당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만 않았더라도 말입니다. 제가 만일 짐짓 제 심적 갈등을 감추고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제가 이성적으로 따져봐도 깊이 성찰해 봐도 나무랄데 없이 완벽한 사랑에 입각해 청혼하는 거라고 믿게끔 당 - P272

신의 비위를 맞춰드렸더라면, 이런 신랄한 비난은 안 나왔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저는 어떤 종류의 가식도 혐오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여러 감정에 대해서도 부끄럽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건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당신 집안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기뻐할 거라고 기대할수 있으십니까? 저보다 신분이 확실하게 낮은 사람들과 인척 관계를 맺는다고 춤이라도 출 줄 아셨나요?"
엘리자베스는 그의 말을 듣는 매순간 더욱더 화가 치밀어오르는 느낌이었으나 침착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말했다.
"잘못 아셨습니다. 다아시 씨. 좀 더 신사다운 태도를 보이셨더라면 청혼을 거절할 때 미안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의 태도 덕분에 그런 미안함을 안 느껴도되었던 것 말고, 무슨 다른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하신다면 오해십니다."
그녀는 그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것을 보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가 계속했다.
"당신이 어떤 태도로 청혼을 하셨다 해도 그걸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가 또다시 놀라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억울해하는 표정이 뒤섞인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계속했다. - P273

이제 그녀는 자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다아시를생각하든 위컴을 생각하든 자기가 눈이 멀었고 편파적이었으며 편견에 가득 차고 어리석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행동이 그렇게 한심했다니!" 그녀는 외쳤다. "변별력에 대해서만큼은 자부하고 있던 내가! 다른 건 몰라도똑똑하긴 하다고 자랑스러워하던 내가! 때때로 언니가 너무 너그럽고 솔직하다고 비웃으면서 쓸데없이 남을 의심함으로써 허영심을 만족시켰던 내가! 이제야 깨닫다니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하지만 창피해하는 게 당연하지! 사랑에 빠져 있었다 해도 이보다 더 기막히게 눈이 멀 수는 없었을 거야. 그렇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허영심이었어. 처음 만났을 때 한 사람은 나를 무시해서 기분이 나빴고, - P293

다른 한 사람은 특별한 호감을 표시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난 두 사람에 관해서는 선입관과 무지를 따르고 이성을 쫓아낸 거야. 지금 이 순간까지 난 나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거야."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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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가드너 부인은 엘리자베스가 위컴한테 차였다고 놀리면서 그래도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그녀가 덧붙였다. "킹 양은 어떤 아가씨지? 우리의 친구가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은데."
"근데, 외숙모, 결혼에 있어서 돈만 밝히는 것과 신중한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신중함이 끝나는 지점은 어디고 탐욕이 시작되는 지점은 어딘가요? 지난 크리스마스엔 그 사람과 제가 결혼하게 될까 봐 걱정하셨잖아요. 경솔한 일이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겨우 만 파운드의 재산을 가진 아가씨와 결혼하려 한다고 그가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하시잖아요."
"킹 양이 어떤 사람인지만 말해 주면 내가 알아서 판단할게."
"상당히 좋은 아가씨일 거예요. 아마. 나쁜 얘기는 못들어봤어요."
"그렇지만 조부의 별세로 그녀가 그만한 재산을 상속받기 전엔 그 사람이 그 아가씨에게 아무런 관심도 안 보였잖아."
"그건 맞아요. 그렇지만 왜 관심을 보였어야 하죠? 제게 돈이 없어서 그이가 제 애정을 구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면, 좋아하지도 않고 저처럼 돈도 없던 여자에게 구애를 할 이유가 어디 있어요?" - P219

"제 생각엔 백작의 차남이라면 그 어느 쪽에 대해서 그다지 아는 게 없으실 것 같은데요. 자,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자기 부정과 의존의 생활에 대해 도대체 뭘 알고계시는지? 돈이 없어 가고 싶은 곳에 못 가보신 적이 있으시나요? 아니면 갖고 싶었는데 못 가지신 게 있거나?"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제가 그런 곤란을 많이 겪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좀 더 중대사에선 돈이 없어서 고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장남이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상대방이 재산을 가진 여성이 아니라면 그렇겠지요. 실제로 그런 분들은 대개 재산을 가진 여성을 좋아하는 것같기도 하고요."
"소비 습관도 우리를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만들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 같은 처지의 사람이면서 돈 문제를 웬만큼 고려하지 않고서도 결혼할 여유가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않습니다."
‘이건,‘ 엘리자베스가 생각했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일까? 그리고 그 생각에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백작의 차남은 보통 값이 얼마쯤인데요? 장남이 아주 병약하지 않다면, 5만 파운드 이상은 요구하지 않을 거로 봅니다만." -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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