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녀는 소리쳤다. "그 사람, 어찌되든 일단 한번 찔러는 보자고 작심했나 보군. 할 수만 있다면 결혼으로 격을 높여 볼 작정인 게야."
"편지 읽어 보실래요?" 해리엇이 소리쳤다. "그러세요. 아가씨도 읽어 보시면 좋겠어요."
에마는 불감청고소원이었다. 편지를 읽으며 그녀는 놀랐다. 편지의 문체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이다. 문법적 오류가 하나도 없을 뿐 아니라 그만한 문장이라면 신사라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을 정도였다. 언어는 소박하긴 하지만 탄탄하고 가식이 없고, 거기 담긴 감정도 글쓴이의 품격을 말해 주기에 충분했다. 짧은 편지지만, 양식과 따뜻한 애정과 너그러운 마음씨와 반듯한 예의와 심지어는 섬세한 감정까지 담겨있었다. 에마가 편지를 앞에 놓고 잠시 침묵하는 사이 해리엇은 옆에 지키고 서서 "저, 저." 해 대며 에마의 의견을 조바심치며 기다리다가 결국은 "그만하면 잘 쓴 건가요? 아님 너무 짧은가요?" 하는 말을 덧붙이고 말았다. - P76

그때는 우월감 따위는 전혀 없었소. 이제 우월감이 생겼다면, 당신이 만들어준 거요. 당신은 해리엇 스미스에게 전혀 친구가 아니었소,
에마. 로버트 마틴은 그 아가씨가 자기한테 마음이 있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절대 그렇게까지 나가지는 않았을 거요. 내가그 사람을 잘 알아요. 정말 진솔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이기적인 열정만 믿고 여자한테 청혼할 남자가 아니오. 그리고 자만심이라면, 내가 아는 어떤 남자보다도 거리가 멀어요. 상대도 고무적으로 나온 것이 틀림없소."
에마로서는 이런 주장에는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 편이 가장 편했고, 그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다시 내세우는 쪽을 택했다. - P95

에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아무렇지도 않고 평온한 척하려 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정말로 불편해져 그가 어서가 주기를 무척 바랐다. 그녀는 자기가 한 일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여성의 권리와 세련된 매너라는 문제에선 자기의 판단이 그보다 더 낫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그렇지만 또 그의 판단 - P98

력 일반에 대한 존중심이 습관처럼 되어 있는 터에 이렇게 대놓고 질책을 받기는 싫었다. 화가 난 그를 마주보고 앉아 있는것도 매우 불편했다. 이렇게 불쾌한 침묵 속에 몇 분이 흘렀다. 단 한 번 에마 편에서 날씨 이야기를 꺼내 보았지만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생각에 골똘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마침내 이런 말로 나타났다.
"로버트 마틴은 잃은 것이 크게 없소.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말이오. 그리고 머지않아 그렇게 되기를 바라오. 해리엇에 대해서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든 혼자 아는 게 좋겠지. 그렇지만 당신이 인연을 맺어 주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당신도 공공연히 인정하는 바이니까, 당신한테 어떤 생각과 계획, 전망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고. 친구로서 하나만 귀띔해 주겠는데, 만일 염두에 둔 상대가 엘튼이라면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말 거요."
에마는 웃으며 부인했다. 그가 계속 말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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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07-11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감청고소원이었다.... 번역이 참 예스럽네요. 영국 소설에 저런 한자성어라니... @_@

햇살과함께 2024-07-11 22:52   좋아요 0 | URL
그죠 그죠~~ 저도 이 생뚱맞음은 뭐지 하고 ㅋㅋㅋㅋ
 

"예쁘다고요! 아름답다고 하셔야죠. 전체적으로 볼 때 에마보다 더 완벽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갖춘 사람을 상상할 수 있으세요? 용모나 자태나."
"상상이라면 잘 모르겠습니다만, 에마보다 제 마음에 더 드는 용모나 자태는 거의 본 적이 없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저야 오랜 친구니 팔이 안으로 굽는 거겠지요!"
"그런 눈매라니! 진짜 담갈색 눈동자에 아주 반짝거리지요! 뚜렷한 이목구비에 시원스러운 표정에, 안색은 또 어떻고요! 아! 발그레한 볼에 건강미가 넘치잖아요. 키와 체격도 딱알맞고, 자세도 탄탄하고 곧지요. 발그레한 볼뿐만 아니라 태도, 고갯짓, 시선에서도 건강이 넘쳐흘러요. 어린아이를 두고 ‘건강의 초상(肖像)‘이라고 할 때가 가끔 있는데, 에마를 보면전 늘 성숙한 건강의 완벽한 초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돼요. 정말 사랑스러움 그 자체예요. 나이틀리 씨, 그렇지 않나요?"
"외모에 대해서는 저도 전혀 흠잡을 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그가 대답했다. "부인이 묘사하신 그대로라고 생각해요. 저도 보고 있으면 즐겁고요. 그리고 이런 칭찬도 보태겠습니다. 에마가 외모에는 허영심이 없다고요.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를 감안하면, 외모에는 거의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에마의 허영심은 다른 쪽에 있어요. 웨스턴 부인, 에마가 해리엇 스미스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거슬리는 제 마음이나 결국두 사람 모두에게 해가 될 것이라는 제 우려는 부인께서 뭐라고 하셔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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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 우키요에를 따라 일본 에도 시대를 거닐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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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하면 춘화만 상상하는 불순한 독자. 풍경화도 매력적이다. 후지산 그림이 특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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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대명사
대명사는 전표다

concept 7 인칭대명사만 있으면 혼란을 초래하기 쉬우므로 3인칭대명사가 가리키는 명사를 먼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요약하면 영어에서는 1인칭대명사(I)와 2인칭대명사(you)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바꾸어 쓸 명사를 먼저 밝혀주어야 할 필요가 없다. 1인칭 복수형인 we도 함께 이야기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누구인지 분명히 드러나므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밝히기 위해 먼저명사를 제시해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1인칭대명사와 2인칭대명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호칭이나 직함으로 이를1200대신하는 경우가 흔하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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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하라주쿠에 있는 오타 기념 미술관

도쿄에 갈 때마다 나는 꼭 간다의 고서점 거리와 오타 기념 미술관에 간다. 도쿄 하라주쿠에 있는 오타 기념 미술관은 우키요에 소장과 전시로 유명한 곳이다. 2000년 봄, 친구와 함께 처음 일본 구경을 갔을 때 여기서 처음으로 실물 우키요에 판화를 봤다. 그때 전시되었던 우키요에는 19세기 중반 이후에 제작된 것들로, 일본 역사 속의 전투를 묘사한 판화와 서양미술의 영향을 받은 풍경 판화였다.
사실 그전까지는 가쓰시카 호쿠사이나 우타가와 히로시게 같은 우키요에 대가들의 작품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에서 본 것이 거의 전부였다. 모네와 드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되면서 참고도판으로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유럽인의 입맛대로 고른 우키요에와 달리 일본 문화의 맥락 안에서 본 우키요에는 현란하다 못해 요사스러웠고, 이러한 매력에 사로잡힌 나는 언젠가 우키요에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리라고 마음먹었다. - P4

우키요에는 ‘도에‘ 즉 ‘에도 그림‘이라고 불리곤 했다. 그 별명대로 우키요에는 에도 시대1603~1867에 ‘에도‘에서 제작된 풍속화이다. 에도는 일본의 수도였던 옛 도쿄를 가리키는 말이면서 동시에 에도가 일본의 수도였던 시대 자체를 가리킨다. 에도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키요에 또한 에도라는 어휘에 시·공간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우키요에의 연원은 에도 시대 이전의 전통적인 회화, 풍속화 형식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키요에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아는 모습으로 정착된 것은 에도 시대가 개막한 이후이다. 같은 시기에 교토와 오사카 등지에서도 에도의 우키요에와 비슷한 그림과 판화가 제작되었지만 이는 부분적이고 예외적인 현상이다.
우키요에는 에도라는 이름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면서 함께 쇠멸했다. - P12

시각적인 자료가 요즘처럼 풍부하지 않았던 당시에 풍경 판화는 요즘으로따지면 영화 이상의 만족감을 사람들에게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풍경을 담은 우키요에는 여행을 떠나지 못한 이들이 여행을 꿈꾸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히로시게의 풍경화가 제작 당시부터 지금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화면에 담긴 서정성 때문이다. 이는 비. 안개 • 눈. 달빛 따위의기상 현상을 그림 속에 능숙하게 담아 낸 데서 연유했다. 그의 판화에서 기후는 화면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 P155

그런데 19세기 중반에 ‘자포니슴Japonisme‘ 이라는 말이 등장했고 제2차 세계대전 후로는 자포니슴이 자포네즈리를 거의 밀어내다시피 했다. 한국어로 옮기자면 둘 다 ‘일본 취미‘일 뿐이지만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자포네즈리와 자포니슴이 애초부터 포괄하는 범위가 달랐다며 이 둘을 애써 구별하려 한다. 이를테면, 자포네즈리는 일본적인 소재 자체가 주는 이국적인 느낌에 대한 관심, 호기심을 가리킨다고 한다. [8-1] 이에 반해 자포니즘은 기본적으로 이국의 신기한 문물과 분위기에 대한 끌림을 바탕에 깔고 있기는 해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일본 미술의 조형 원리, 미의식 그리고 세계관에까지 관심사를 확장시켜서 서구의 예술 언어 속에 녹여 흡수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자면 한 예술가의 작품세계에서도 자포네즈리와 자포니슴을 구분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90는 한눈에 봐도 그가 우키요에의 매력에 사로잡혔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가친구이자 화상인 「탕기 영감의 초상」1887을 그리면서 배경에 우키요에를잔뜩 집어넣은 것이나 히로시게의 『명소 에도 100경』 시리즈를 유화로 모사한 것은 자포네즈리의 전형적인 예이다.[8-2]. [8-3] 반면에 그가 우키요에의영향을 받아 강렬한 색채와 평평한 색면을 거침없이 사용하게 된 것, 우키요에에서 영향 받은 구도를 보여준 것 등이 자포니슴의 예가 된다. - P184

우키요에가 수용된 양상은 ‘일본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흥미로운생각을 이끌어낸다. 일본적인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강력한 힘으로 당시의서구 문화를 사로잡았지만 정작 그 실체가 무엇인지 파헤치기 시작하면 분명한 실체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갓 접한 일본의 문물에 혼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고 오스카와일드는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여러분이 일본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러분은 미술에서보는 그런 일본인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여러분은 일본 미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셈이다. 일본인이란 특정 화가들이 공들여 만든 자각적인 창조물이다.………… 사실 일본 전체가 순수한 발명품인 것이다. 그와 같은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실재하지 않는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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