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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일본문학 베스트 1
다자이 오사무 지음, 강소정 옮김 / 성림원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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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자 그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소설이다. 그는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여섯째 아들로 바쁜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재학 중에 만난 술집 여급 다나베 시메코와 함께 고시고에 바다에서 첫 자살 시도를 했으나 그만 살아남았다. 이후 다섯 번째 자살 시도를 끝으로 1948년 3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애인 야마자키 토미에와 함께 강에 뛰어든 그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6월 19일, 그의 마흔 번째 생일이 되던 날이었다고 한다.

성림원북스에서는 <인간 실격>을 비롯하여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 <사양>, <달려라 메로스>를 매력적인 일러스트레이션 표지로 출간하였다. 새빨간 배경을 바탕으로 피가 묻은 약지를 입술에 대고 있는 모습이 피폐 웹소설의 치명적인 남주인공처럼 보인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아쿠다카와 류노스케를 존경했으며 생전에 아쿠다카와 상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아쿠다카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등은 일본의 유명작가로 일본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 자주 등장하므로 이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두면 다양한 일본 작품들을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일본의 유명 작가가 대거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문호 스트레이독스>에도 다자이 오사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초년 때보다 좀 나이가 들었을 때의 모습과 유사한듯 하다. <문호 스트레이독스>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이능력자 집단 '무장탐정사'의 일원이며 자살 애호가로 소개된다. 특히 미인과 함께 동반 자살을 하고 싶다고 하며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미남 시인, 작가 계보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긴 하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인간 실격>에서는 특히나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가감없이 나와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어쩜 이렇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자학할 수 있는 것인지 안타까울 정도이다. 


<인간 실격>은 서문부터 심상치 않다. 첫 페이지는 '그 남자'라고 표현된 사람의 사진 석장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유년 시절,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사진으로 많은 여자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인데 다들 알 것이다. 이 시기 대부분의 남자아이가 얼마나 개구쟁이인 데다가 귀엽고 발랄한지. 그러나 그 아이를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라고 말하며 '불쾌한 아이', '쪼글쪼글한 원숭이의 웃음'라고 평한다. 매우 기분 나쁜 듯이 중얼거리면서 송충이라도 털어낼 법한 손놀림으로 냅다 던져버리고 싶은 사진이라니. 두 번째는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시절의 사진, 아주 잘생긴 외모라고 평가하나 피의 무게도 생명의 깊이도 전혀 없는 만들어진 느낌이며 어딘지 모르게 괴이한 불쾌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마지막 사진은 흰머리가 생긴 그가 엄청 지저분한 방의 구석에서 조그만 화로에 양손을 쬐고 있는 모습이다. 앞의 두 사진과 달리 웃지 않고 있으며 '화로에 두 손을 쪼이며 자연스럽게 죽어가는 듯한, 정말 꺼림칙하고 불길한 냄새가 묻어나는 사진'이며 표정 뿐 아니라 아예 아무 특징이 없는 얼굴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매일 거울을 보며, 또는 자신이 찍힌 사진을 보며 항상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다 간 것인지 모르겠다.


'첫 번째 수기'는 요조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첫 문장 부터 이렇게 쓰여 있다.


부끄러움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요조는 어릴 때부터 허약해서 자주 몸져 눕고, '공복'이라는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배고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그저 타고난 아부 실력을 발휘해 '그러는 척' 했다. 가족 식사를 하는 시간이 가장 고역이었는데 어둑어둑한 방에서 열 명 남짓한 가족이 각자의 밥상을 보며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항상 으스스하다고 느꼈다. 먹고 싶지 않아도 말없이 밥알을 씹으면서 고개를 숙인 채 집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영혼들에게 기도를 하는 일종의 의식처럼 여겨졌다니... 그는 항상 지옥에 있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사람이 훨씬 더 평안해 보였다. 다른 사람이 지닌 괴로움의 성질이나 정도가 전혀 짐작되지 않아 혼자 특이한 사람이라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그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다름아닌 '개그', 그에게는 이것이 인간에 대한 마지막 구애였다. 겉으로 다른 이들을 끊임없이 웃기고자 하면서 어느새 진실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아이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항상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조적이지만 웃기는 이야기, 그 특유의 분위기가 솔직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유머라는 것이 이렇게 개발되어 발전된 것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지 않은가. 다른 사람에게 받은 물건이 아무리 취향이 아니더라도 거부하지 못하고,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못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에 몸부림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을 고백하는 소설들을 '글'이라는 형태로 쓰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속고 속이면서, 맑고 밝고 쾌활하게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가는 자신감을 가진 듯한 사람을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런 기술을 배울 수도 없었다는 그는 밤마다 인간의 삶과 대립했다고 말한다. 두 번째 수기에서는 자신의 '개그 연기'를 간파한 다케이치와의 이야기를 한다. 다케이치는 모딜리아니의 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 여인의 누드화를 보고 '지옥의 말'같다고 감상을 표현한다. 


"나도 이런 괴물 그림을 그리고 싶어."라고 하는 말을 듣고 그는 생각한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훨씬 더 무서운 요괴를 두 눈으로 확실히 보고 싶어하는 심리, 신경질적이고 쉽게 겁을 먹는 사람일수록 폭풍우보다 강력한 것을 바라는 심리. 아아, 이 많은 화가들은 인간이라는 괴물에 당하고, 위협받고 끝끝내 환영을 믿다가 대낮의 자연 속에서 또렷이 요괴를 보게 된 거구나.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를 죽어가는 듯한, 꺼림칙한 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가 하면 또 이세상 사람들 전부를 '인간이라는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 세상을 편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 삶을 꾸려가지 못해 여러 난항을 겪고 학업을 포기한 후 술집을 전전한다. 그러다 술집에서 만난 여성과 함께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어 혼자 살아남아 취조를 받는다. <인간 실격>에는 항상 그의 옆을 서성이는 여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세상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바닥의 바닥으로 가라앉는 그의 모습이 자조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애정을 갈구하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가치 없고 불쾌한 이라고 칭한다. 만약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인간 실격>은 꼭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당시 일본의 격동기를 살아가며 온 몸으로 불안해하는 청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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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플라이트
줄리 클라크 지음, 김지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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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그림과 함께 나온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 그리고 샛노란 알약 하나를 잡고 있는 손과 돈더미. 뉴욕타임스, USA투데이,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라스트 플라이트>는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새빨간 제목은 꼭 핏물이 번진 것처럼 보인다.


용기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 모든 여성들에게 바친다는 <라스트 플라이트>,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에 나오는 문구가 쓰여 있다. 네 절망과 내 절망이 모여 이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일까?


<라스트 플라이트>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의미심장한 문구가 나온다. 


뉴욕 존 F.케네디 국제공항...

추락 당일.


이 책에서 비행기가 결국 추락할 예정인 걸까? 비행기 추락을 계획했지만 무산되는 이야기일까?


'나'로 지칭되는 어떤 이가 공항 터미널에서 어떤 여자를 찾는다. 그 여자에 대해서 아는 것은 딱 세 가지. 이름, 생김새 그리고 아침에 푸에르토리코행 항공편을 예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려고 온 사람들을 살펴보며 꼭 그들이 오늘 죽을 것처럼 예상하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데, '나'는 비행기를 추락시키려는 걸까? 타겟인 여자를 찾았다. 도망자들이 늘 앞쪽이 아니라 뒤쪽을 신경쓴다는 것까지 잘 알고 있는 '나'는 아무렇지 않게 여자의 앞쪽에 줄을 서려고 한다. 여자가 곧 사라진 사람들 중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는 '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 책은 두 여자주인공 클레어와 이바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먼저 클레어의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정계에서 케네디가 다음으로 유명한 쿡 가문, 클레어는 로리 쿡의 아내로 살아가고 있다. 클레어는 엷은 화장으로 감춘 목 아래쪽 멍을 가리기 위해 스카프를 만지작 거린다. 다니엘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의 직원 다니엘에게 어디를 가야 하는지 미리 말한다. 클레어가 사전에 공지된 일정을 소홀히 여기면 다니엘은 이 일을 반드시 남편에게 보고한다. 로리는 상원의원 출마를 앞두고 클레어에게 언행을 조심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쿡재단>은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클레어의 평화는 지키지 못한 듯 하다. 로리에게 고용되어 충성하는 모든 사람들은 클레어를 감시하고 보고한다.

이런 로리의 눈을 피해 만나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으니 바로 체육관에서 만나는 '페트라'이다. 클레어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펜실베이니아의 귀족 학교에 다녔는데 러시아 출신 마피아 딸인 페트라와 니코가 항상 다른 아이들로부터 클레어를 지켜주었다. 2년 전 우연히 체육관에서 마주치게 된 페트라, 오직 페트라 앞에서만 클레어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어느 날 페트라는 클레어의 멍 자국을 보고 남편과 헤어지라고 말한다. 클레어 또한 과거에는 로리와 이혼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남편의 폭력으로 소송이 유리한 쪽으로 진행될 거라 생각하고 대학 시절 친구의 집에 도피했으나 그 친구의 남편이 로리의 친구였다. 로리는 클레어가 우울증을 앓고 있어 정신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하며 클레어를 데려갔고, 클레어는 그 날 집으로 끌려가서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았다. 말을 듣지 않으면 진짜 정신병원에 넣어버리겠다는 위협을 들었고, 로리는 쿡 집안의 전통과 명예를 위해 '이혼'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은 로리가 쿡 집안의 아들답게 진보적이고 모범적이라 믿었고, 클레어가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로리와 과거 사랑을 나눴다던 '매기 모레티'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남편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을 찾아내지 못하는 곳으로 숨는 것' 뿐이라고 말하는 클레어. 대체 매기 모레티는 누구이며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그리고 클레어는 이 지옥 속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페트라와 몇 년에 걸쳐 실종 계획을 세운 클레어는 마침내 모든 준비를 끝내고 비행기를 예약한다. 클레어는 로리가 '매기 모레티'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를 회상한다. 로리와 매기는 연인이었고 둘이 크게 다툰 날 로리가 차를 몰고 맨해튼으로 향했고, 그날 밤 집에서는 화재가 났고 매기는 계단 아래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로리가 매기 모레티에게 느꼈던 감정을 자신에게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클레어, 과연 그날 밤의 진실은 무엇일까?


클레어는 체육관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낸 것을 추궁하는 로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잠자리에 든다. 로리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몰래 로리의 컴퓨터 하드를 복사한다. 만약의 경우 협상의 카드로 쓰기 위해서, 이 과정이 어찌나 두근거리는지. 클레어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듯이 다시 로리의 옆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나는 분명 클레어가 아니고 안락한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것 뿐인데 클레어에 이입이 되어 심장이 쫄깃해진다. 


탈출할 순간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로리가 출장을 떠날 장소를 바꿨다고 가사도우미 직원인 콘스탄스가 클레어의 여행 가방을 정리한다. 존 F.케네디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을 이용해 푸에르토리코로 가게 된 클레어, 로리는 클레어 대신 디트로이트로 향했고 탈출을 위해 계획했던 소포가 로리에게 가 버렸다. 이바는 안절부절 못하는 클레어를 발견한다, 꼭 자기처럼 어딘가로 도망가 사라지고 싶어하는 여자. 이 둘은 서로의 비행기표를 바꾸기로 결정한다.


<라스트 플라이트>는 정말 매력있는 소설이다.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순식간에 클레어의 입장이 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손에 식은땀을 흘리며 제발 그녀가 이 지옥같은 생활과 악마같은 남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로리가 그녀를 주적할 수 없기를 바라게 된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이바의 입장에도 몰입된다. 이 둘의 시점이 왔다갔다 하는데, 위화감 없이 이 두 여성들의 입장에 빨려들어간다. <라스트 플라이트>의 두 주인공들이 지옥같은 삶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들을 지옥에 빠뜨린 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거기다 프롤로그에 등장한 알 수 없는 '나'는 비행기가 추락한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쫄깃해지는 심장을 부여잡고 읽게 만드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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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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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정보의 바다. 그러나 문제는 좋은 방향과 나쁜 방향으로 모든 정보가 떠돌아다닌다. 우리는 이제 인터넷 검색을 통해 궁금한 정보를 쉽게 찾고 전문가와의 상담도 훨씬 쉬워졌으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전세계의 온갖 나쁜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운이 나쁜 경우 또는 어떤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행동할 경우 사진, 동영상 등을 찍혀 협박을 당하거나 전세계의 모든 사람이 수치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심각한 경우 성범죄 피해자가 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영상 때문에 고통받다가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본 것>, 부제는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에는 2021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선정된 소설로, 소셜 미디어의 유해 콘텐츠를 검토하고 삭제하는 일을 맡게 된 사람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본 것>에 나오는 소셜 미디어의 어두운 모습은 그 무엇을 상상하든 우리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다. 앞서 내가 말한 영상들은 물론이고 이들은 매일같이 동물 학대, 자해, 혐오, 폭력 등을 가감없이 봐야 한다. 수없이 많은 인간의 잔인함과 잔혹함에 여과없이 노출된 사람들은 직장에서도 여러가지 학대를 받는다.

주인공 케일리가 입사한 회사 '헥사'는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영상들을 감수하는 곳이다. 여기서 헥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콘텐츠 감수자'로서 일하였고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이들은 점점 피폐해진다. 학대 당하는 개, 나치식 경례, 칼로 자해하는 소녀 등은 이들이 수없이 접하는 전형적인 영상이었다. 심지어 소송에 임하는 변호사가 아무렇지 않게 물어볼 정도로 말이다. 


헥사는 케일리가 입사 면접을 볼 때부터 심상치 않은 곳이었다. 구인 광고에는 기껏해야 '품질 보증 관리자'라고 적혀 있었고 케일리는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20퍼센트 높은 시급에 홀려 지원한다. 실제로 거기서 하게 될 일은 영향력 있는 미디어 대기업을 위한 '콘텐츠 평가'라는 설명을 들었고 어떤 경우에도 그 대기업 회사명을 언급해도 안 된다는 권고를 받는다. 


헥사에 지원한 이들은 플랫폼, 자회사 사용자, 봇에 의해 '유해'라고 보고된 게시물과 영상을 검수하는 일을 맡게 되었고 연수 첫 날 감수팀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적힌 안내서를 받는다. 그런데 이 가이드라인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모든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다-유해 게시물

모든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다-게시 가능


무슬림은 여성이나 동성애자, 이성애자처럼 '보호 카테고리'에 속하기 때문에 첫 번째 문장은 유해한 것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는 보호 카테고리가 아닐뿐더러, 무슬림이 유해한 용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이해할 수 없는 게시 가능 콘텐츠는 다양하다.


창문 밖으로 고양이를 내던지는 사람의 동영상은 학대행위가 아니면 업로드 가능

침대에서 키스하는 동영상은 성기나 여성의 유두만 보이지 않으면 가능, 단 남성의 유두는 보여도 괜찮음

질 안의 음경을 손으로 그린 그림은 가능

외음부를 디지털로 그린 그림 금지

벌거벗은 아이의 이미지는 뉴스 관련 자료면 가능, 홀로코스트와 관련되면 금지

소아 성도착자에 대한 살인 협방 게시 가능, 정치인에 대한 살인 협박 게시 불가능


연수 마지막 날 이들은 연수 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영상이 게시 가능한지 금지인지 판단하는 시험을 받아야 했다. 성인 여자가 더러운 길바닥에 아기를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자 소년 둘이 아기에게 돌을 던지는 영상, 여성의 유두가 노출된 영상, 몸에 불이 붙은 남자의 영상을 비롯하여 심지어 어떤 남자가 로트바일러 개를 성폭행하는 영상까지 봐야 했다. 


이 외에도 케일리를 포함한 동료들은 게시물 평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정확하지 않으면 압박을 받았다. 이들은  휴식시간이 고작 두 번 뿐이었으며 개중 하나는 칠 분밖에 되지 않아 화장실에 줄을 서느라 시간을 다 써야했고 하루에 500개 이상의 위반 게시물을 처리하고 정확도가 90퍼센트 밑으로 내려가면 심각한 경고를 받았다. 정확도가 계속 오르지 않으면 해고되었으며 다리를 펴고 싶어 책상을 떠나면 타이머가 작동하는 곳이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나머지 동료들은 점점 자해를 하거나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겪은 케일리는 소송에 참여하기보다는 그저 이 일을 흘려보내고 잊고 싶어한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일상을 유지하며 자신의 빚을 변제하고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자신의 경험을 변호사에게 서술한다. 이 점이 더욱 마음 아프고 소름 끼친다. 회사는 이들을 그저 하나의 부품으로 대하고,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었던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처참히 망가지기 시작한다.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 <우리가 본 것>은 그 동안 우리가 외면해 왔던 소셜 미디어의 큰 문제이다. 저자는 이를 케일리의 목소리로 담담하기 그지없게 서술하고 있으나 독자들은 모든 페이지를 읽을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언제든 겪을 수 있는 또는 이미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본 것>는 그 어떤 스릴러, 공포 소설보다 소름 돋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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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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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은 <백설공주 살인 사건>, <야행관람차> 등의 미스터리 소설로 잘 알려진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이다. 미스터리 스릴러물, 특히 일본풍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사람의 심리를 파고들고 잘 짜여진 판에, 각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씩 드러나는 비밀들과 생각지 못했던 반전. 미나토 가나에는 여기에 각 인물들의 '결핍'이 돋보인다. 이번 소설 <일몰>도 독자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일몰>은 살인사건과 연관된 다른 추리소설과 달리 굉장히 잔잔하면서 마음시린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세베 가오리의 엄마는 딸이 특별한 아이이길 원했다. 유치원을 들어가기도 전에 구구단과 100년 치 달력을 달달 외우고 다니는 마사다카나 한 번 본 악보를 외워 피아노를 연주하는 치호처럼. 엄마는 가오리의 학습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마다 그녀를 베란다로 내 쫓았다. 학대가 아니라 훈육이라고, 가오리와 엄마 두 사람 다 말하지만 엄연히 학대였다. 어느 추운 날 평소처럼 베란다로 내쫓긴 가오리는 옆 집 베란다와 자신의 집 베란다를 가르는 칸막이 쪽으로 몸을 피한다. 두려움과 추위에 떨던 그녀는 칸막이 사이의 틈으로 작고 하얀 손을 발견한다. 가는 손가락에 더럽고 어쩡쩡한 손톱, 그녀처럼 쫓겨난 아이라고 추측한다. 둘은 손 만으로 서로에게 위안을 얻고, 가오리가 베란다로 쫓겨날 때마다 그 손의 주인도 베란다에 있다. 가오리는 나중에 옆집 모녀를 만나게 되면서 그 손이 귀엽고 예쁜 사라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평범한 나날이 계속 이어지던 중, 아빠의 시신이 바다에서 발견되고 가오리는 할머니의 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백설공주 살인 사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일몰>에서도 자극적인 사건으로 소설 전반을 지탱한다. 잘 나가는 피아니스트 언니를 둔 탓에 항상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가이 치히로는 무명의 각본가이다. 적당히 괜찮은 평을 받은 한 작품 이후로는 제대로 착수한 시나리오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신예 스타 감동 '하세베 가오리'로부터 차기작 각본을 써 달라는 의뢰를 맡는다. 하세베 가오리 역시 가이 치이로와 마찬가지로 '사사즈카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이 치이로를 언니로 착각하여 작품을 같이 하자는 메일을 보낸 듯 했다.

하세베 가오리가 작품으로 만드려는 소재는 바로 15년 전에 일어난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이었다. 어느 가족의 은둔형 외톨이 장남이 자신의 여동생을 저택에서 칼로 찔러 죽인 후 방화해 부모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이다. 사사즈카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부모를 잃고 언니마저 교통 사고로 보낸 가이 치히로는 하세베 가오리가 숨기고 있는 사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그 사건은 사사즈카초 뿐 아니라 전 일본을 경악에 빠뜨렸고, 하세베 가오리가 그녀를 콕 집어 의뢰한 이유가 있는 듯 하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그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사사즈카초로 돌아가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듣는다.

우리는 <일몰>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목덜미에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두 여성이 조사하며 인터뷰한 사람들은 모두 '사사즈카초 일가족 살해 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어 작가들이 사사즈카초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초등학생들에게 접근하기도했다. 사사즈카초 가족 중 살인을 저지른 그 오빠는 전부터 위험한 사람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사라는 에인절 걸스 오디션에 합격하여 얼마 후면 졸업하고 도쿄로 갈 참이었으나 그 오빠는 중학교부터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등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다수다. 이상한 것은 나중에 사라가 에인절 걸스 오디션에 합격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진 것, 사라가 허언증이 있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하지만 더 큰 사건이 일본에 터지는 바람에 묻히고 만다.



감독은 이 사건에서 실제의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를 살해한 오빠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사라는 살해되었어야 하는지 등을 알리고 싶다고 한다. 주변인들이 떠드는 말로만 사라가 규정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듯. 도대체 가오리는 무슨 사연을 가지고 있길래 이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고 싶어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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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삭제 완역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현대지성 클래식 37
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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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프랑켄슈타인-sf장르의 시초, 여성 작가 메리 셀리의 파격적인 소설





한국에서는 좀처럼 기지개를 못 펴고 있긴 하지만 21세기에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장르는 바로 SF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열광하는 마블 시리즈를 비롯하여 수많은 과학 영화들, 애니메이션, 소설, 드라마 시리즈 등에서 SF는 커다란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상하게 한국 작가들이 쓴 SF작품은 지지부진한 편이지만, SF의 영역을 좀 더 확장하자면 요새 웹소설, 웹툰에서 유행하는 헌터물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이런 SF 장르는 어디로부터 시작되었을까? 놀랍게도 우리가 어릴 때 많이 읽었던 <프랑켄슈타인>을 그 시초로 본다. 


프랑켄슈타인의 줄거리를 간략히 말하자면, 천재 과학자인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사람의 시체를 사용하여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 그러나 실험의 결과는 그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키가 약 2.5미터에 달하는 사악한 괴물이 탄생하고 만 것이다. 심지어 이 악마는 자신의 신부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며 빅토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 


어릴 때 읽었던 프랑켄슈타인은 상대적으로 쉬운 버전으로 각색이 되었던 것 같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은 <프랑켄슈타인>은 생각보다 더 어렵고 심오한 책이었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지인들과 나눈 과학적 이야기 뿐 아니라, 그가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하는 과정과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괴물을 만들고 난 이후의 깊은 고뇌 등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이런 작품을 무려 19세의 나이로 출간했다니 여러 모로 놀라울 뿐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는 '메리 셸리'라는 여성인데 자신을 거의 방치하는 아버지 밑에서 책을 읽고 아버지와 아버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독학한 지식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와 교육 수준, 그리고 남자들이 독점하고 있던 문학계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후세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었고 아직도 다양한 방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많은 훌륭한 작품이 그러하듯이 <프랑켄슈타인>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부제처럼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의 관점, 신의 영역에 도전하여 새로운 생명의 창조자가 되고 싶었던 인간의 욕망, 주인의 손을 벗어나고자 하는 괴물의 열망,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발생한 비극 등 독자에게 다양하고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과학기술이 발전한 지금 <프랑켄슈타인>은 현대인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고뇌를 불러 일으킨다. 현재 곳곳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진행 중이고 인간은 여러가지 윤리문제에 직면해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우리가 경계해야하는 일들,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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