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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도둑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19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중세 영국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역사 추리 소설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당시 중세 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영국의 정세는 어떻게 변화했으며 그에 따른 사람들의 삶은 어땠는지 등등을 상세히 알 수 있다. 치밀한 배경 설명과 함께 당시 역사가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녹아 있어 실제 중세 영국 시대를 엿보는 느낌을 준다. 동시에 주인공 캐드펠 수사와 함께 사건을 파헤치는 스릴감, 독자 나름의 추리를 해보는 재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는 등장 인물들에 대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작가 엘리스 피터스는 애거사 크리스티를 뛰어 넘는 추리 소설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움베르트 에코가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집필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추리 소설 시리즈인데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 아쉬웠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런데 30주년 기념으로 다시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개정판이 나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21권, 마지막 편이 출간되었다. 아무래도 유럽 역사, 영국 역사에 대한 상세한 지식과 영어 실력 없이는 원서로 읽기 힘든 작품이다 보니 많은 팬들이 환호하지 않았을까 싶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펼치면 모든 책에는 지도가 나와 있다. 바로 중세 웨일스, 슈롭서와 웨일스 국경지대, 슈롭셔주 슈루즈베리,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지도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지명과 위치를 제대로 알아둬야 소설의 흐름, 정치 상황을 이해하기 편하다. 작가는 실제로 영국의 슈롭셔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 실존하기 때문에 책을 읽고 영국에 갈 기회가 있다면, 이곳을 찾아가 보는 것도 뜻깊은 여행이 될 것 같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19권의 제목은 『성스러운 도둑 The Holy Thief』이다. 여전히 소설 속에서 영국 땅은 모드 여왕과 스티븐 왕의 내전으로 어지러운 상황이다. 소설 속에 당시 영국 상황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자세히 되어 있어,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프롤로그에 언급된 '제프리 드 맨더빌'은 스티븐 왕에서 런던탑을 관리했으나 모드 황후 측으로 돌아서서 많은 재산과 땅을 차지했다가, 다시 석방된 스티븐 왕에게 런던탑 권한과 토지를 몰수당한 귀족이다. 제프리는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는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이를 공격해왔고, 이제 스티븐 왕을 공격했다. 싸움의 명수인 제프리에게 스티븐 왕 측에서 급히 쌓아 올린 성들은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케임브리지 북동쪽 버웰의 튼튼한 요새때문에 제프리는 군대의 보급선을 차단당하고 만다. 그는 성 주위를 돌며 요새를 함락시킬 방법을 찾다가 8월의 찌는 더위를 참지 못하고 투구와 쇠사슬 갑옷을 벗어던졌다. 성의 수비를 하던 평범한 궁수가 쏜 화살이 때마침 머리를 맞고 만 제프리, 어이없게도 이 상처로 인해 열병으로 죽고 만다. 문제는 제프리가 교회로부터 파문당한 뒤 사면을 받지 못해 시신조차 제대로 묻힐 수 없다는 교회법에서 시작된다. 부하들은 어떻게든 제프리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램지 수도원을 포함하여 제프리가 앗아간 교회 재산들을 되돌려주겠다는 포고령을 발표했고, 램지 수도원 원장인 월터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월터는 램지 수도원의 부원장과 다른 수사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폐허가 되어 버린 램지 수도원을 되살리기 위해 애쓴다.
램지 수도원에서는 성소를 재건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두 명의 사자를 보낸다. 그 중에 한 명은 견습 과정을 밟고 있는 투틸로, 다른 한 명은 램지 수도원의 부원장인 헤를루인이었다. 헤를루인은 수도원의 지원을 요청하면서 램지 수도원의 수사였으나 세속으로 돌아간 설리엔을 찾아 설득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캐드펠은 어쩐지 그에게 그다지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두 사람은 캐드펠 수사와 함께 설리엔의 집을 찾아가고, 점점 쇠약해지고 있는 설리엔의 어머니 도나타를 만난다. 그곳에서 도나타는 젊은 청년이 가진 투틸로라는 이름에서 음악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본다. 설리엔이 램지 수도원을 위해 목재를 제공하는 대신 도나타는 투틸로가 곁에 머물러주길 바란다. 투틸로도 내심 그걸 바라는 모양, 캐드필은 투틸로가 어디서 어떻게 음악을 배울 수 있었는지 그의 내력을 내심 궁금해한다. 마침 이 지역을 방문한 음유시인들이 투틸로의 노래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함께 연습하기를 바란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머물던 시기, 슈루즈베리에 엄청난 비가 계속해서 내린다. 어쩌다 한번씩 일어나는 홍수가 때마침 일어나 강물이 범람하고 다들 소중한 물건들을 옮기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비가 그치고 나니 성 위니프리드의 성골함(전작을 읽은 이들은 여기에 얽힌 사연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이 사라지고 유일한 목격자는 살해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캐드펠 수사는 얽히고 얽힌 인연과 사건을 모두 풀어낼 수 있을까?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여느 추리소설처럼 항상 살인사건이 일어나지만, 캐드펠 수사와 여러 인물들의 따뜻한 마음, 인연과 운명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소설을 읽고 나면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깨닫고 씁쓸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심 흐뭇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직까지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오래도록 사랑하는 것이라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