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마이페이퍼 당선작

첫차를 타고 도착한 그곳에서 - 구단씨
지역마다 첫차의 운행 시간이 다르겠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탔던 첫차는 새벽 6시 반이었다. 그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거의 7시였다. 여름은 그나마 나은데, 시골의 겨울에 7시는 아직 캄캄한 밤이었다. 그래도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고 싶어서, 머리가 따라주지 못하는 공부에 그래도 성의를 보이고 싶어서 일찍 등교하곤 했다. 그때 이후로 새벽 첫차를 탈 일은 없었다. 그저 조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을 뿐, 버스가 조금 밀려도 시간을 꽉 채워서 움직이곤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건, 그 이른 시간에 나만 버스에...

수학적 구조(構造)의 걸작 문학들 - 필리아
영국 시인 워즈워스는 시집 《서곡》에서 수학을 논리적 아름다움의 시(詩)라며 다음과 같이 썼다. “매혹적인 힘 / 마음을 괴롭히는 추상적인 생각 중에서 / 그 심성과 함께, 그래서 혼자 번민에 휩싸여도/ 내게는 특별한 기쁨이 되네 / 높게 세워진 그 명확한 통합 / 아주 우아하게 / 독립된 세계 / 순수한 지성이 빚어낸 세계” 라고. 물론 이 서양의 시인은 그네들 고전시의 전통인 압운과 운율, 강약격 등 제약의 이면에 있는 세기와 패턴을 노래할 수 있었을 터이다. 그렇지만 과연 모든 문학작품들에 이러한 수학적 제약 ...

아픈 부모와 살아가는 일은... - 자목련
부모는 모두 늙는다. 병들고 아프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미안해서 병을 숨긴다. 어떤 부모는 자식에게 당당하게 간병을 요청한다. 초고령 사회에서 늙은 부모를 돌보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아픈 부모를 홀로 간병하고 돌보다 발생한 사건에 놀라지 않는다. 개인의 희생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라는 걸 알지만 뚜렷한 해결 방안은 없다. 가족이 모두 매달려 간병을 하다 지쳐 마지막으로 시설을 선택한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는 경우에 가능한 일이다. 부모만 늙는 게 아니다. 우리는 모두 늙고 간병과 돌봄은 곧 모두에게 닥...

나의 사랑하는 타셴 책장 - 붉은돼지
큰 마음먹고 또 한 권 장만했다. 벨라스케스. 타셴. 큰 마음을 먹은 것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큰마음은 역시 커서 그런지 먹기가 쉽지 않은데, 자주 먹다 보니 위도 스스로 꿀렁꿀렁 커졌는지 예전보다는 먹기가 조금 수월한 것도 같다. 한편으로는 더 이상 먹을 큰마음이 남아있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한 걱정이다. 하여튼 어렵게 큰 마음을 먹고 하나 하나 구입한 타셴 책들이 책장 두 칸을 차지했다. 보고 있으면 흐뭇한 마음이 묵직하다. 램브란트나 라파엘로(다빈치, 라파엘로, 카라바죠는 비닐도 뜯지 못했다.) 같은 것들은 책...

인간과 타자에 대한 철학자의 탁월한 시선 - 초란공
인간과 타자에 대한 철학자의 탁월한 시선-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 어떻게 살 것인가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김상운 옮김 [arte] (2025) 일본의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의 책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을 통독하면서 우선 떠오른 감상은 ‘탁월하다’는 표현입니다. 기억에 남아 있는 내용은 많이 없지만, 저자가 철학자인지라 ‘한가함’과 ‘지루함’이라는 개념부터 정리하고 논의를 시작합니다. 사람이 토끼 사냥을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가 그에게 고되고 때로는 다치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사냥 활동에 나...

책이 제일 재미있다!! - 다락방
퇴근길에는 딱히 머리를 쓰고 싶지도 않고 머리가 써지지도 않아서 주로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 보려고 하는데(그래봤자 겁나 생각하면서 보는듯 -.-), 사실 인기있고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소문이 나도 나는 잘 보게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글로리 라든가 오징어게임이라든가 하는 드라마들 나는 안봤어. 게다가 내가 이걸 한 번 볼까, 하고 재미있게 시작하는 드라마라도 완결까지를 못본다. 이건 도대체 왜그런지 모르다고 늘 생각해왔는데,최근에는 인스타그램에서 몇 번 사이다 씬을 보고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를 보게 됐다. 첫설정...

부조리한 인간 / 알베르 카뮈 - 구름모모
디 에센셜 『정의의 사람들』 중의 에세이 <부조리한 인간>은 흥미롭게 읽은 내용이다. 읽을수록 『시지프 신화』와 에세이 『안과 겉』, 소설 『이방인』을 상기하게 된다. 페이지 여백의 메모들을 확인하면서 작가의 유명한 소설과 에세이를 다시 펼쳐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단한 연결고리가 되면서 철학적 사고의 깊이가 더욱 단단해지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소설 『페스트』의 인물들 중에 죽음을 다르게 받아들인 의사 어머니의 삶을 다시 회상하는 독서릴레이로 이어진다. ​​위대한 소설가는 철학적 소설가라고 『시지프 신화』에...

에우리피데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 페넬로페
무라카미 하루키의 광팬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이 보여주는 ‘능청스러운 진지함’ 때문이다.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는 ‘연극사 2‘ 강의를 같이 듣는 미도리를 대신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녀의 아버지를 간병한다. 처음 만난 미도리의 아버지에게 와타나베는 부담감과 서먹함을 없애려고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날씨 얘기로 시작해 ’연극사 2‘에서 배우고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대해 설명해준다. [에우리피데스 아세요?그 사람 연극의 특징은 이것저것 마구 뒤엉켜 꼼...

1945년 조선, 떠나가고 떠나오는 사람들. 현재진행형의 이야기 - 거리의화가
4월에 읽었던 <조선을 떠나며>, 얼마 전 읽은 <다시 조선으로>를 더 들여다보고 싶어 주말 동안 그 과정을 짧게나마 진행했다. 더 깊이 읽고자 하면 미주에 있는 참고 사항을 확인해보며 정리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기엔 시간상 제약이 크니 최소한 꼭 보아야 할 기사나 영상 위주로 체크를 해둔 상태였다. <다시 조선으로>를 한 번 더 읽었다. 초독 때도 간단하게 내용을 적으면서 읽기는 했는데 재독 때도 열심히 적어가면서 읽었다(역시나 놓쳤던 내용이 이다지도 많은지). 읽으면서 두...

“어이, 자유에 미친 친구. 권력에 빌붙어 살진 말게.” - cyrus
서울 독서 모임<수레바퀴와 불꽃>[15번째 선정 도서] 피에르 다르도, 크리스티앙 라발, 피에르 소베트르, 오 게강정기헌 옮김《내전, 대중 혐오, 법치: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원더박스2024년 2025년 5월 17일 토요일오전 10시~오후 1시장소: 컬처플렉스 더숲(노원구 상계동) <생각이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를 돌리고 책에 불꽃을 피운 독자들> 서한용(진행, 발제, 참여, 간식)김지용(서평)이진범(발제, 참여)보람(발제)최해성(발제, 참여, 북클럽투르기 · 윤색...

나는 살기로 했다 - 단발머리
『처단』을 읽었다. 잭 리처는 항상 나의 여름템, 정확히는 휴가템인데 근자에는 여름휴가를 가지 못하고 있고, 올해도 어려울 듯해서 나 홀로 휴가다 생각하고 즐겁게 읽었다. ​나는 잭 리처를 좋아하고, 꾸준히 리처를 읽고 있지만, 이번 책에서는 같이 일하는 여성과의 침대씬에서 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니깐, 같이 일하는 여성과의 썸씽이 싫었다는 게 아니라, 아니라! 이렇게 뭐든 쉬운가, 이 사람에게는 뭐가 이렇게 쉬운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즐거움과 기쁨, 특히 그게 인간관계에 대한 것일 ...

희망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선물입니다. - scott
이른 새벽 교황의 선종 소식을 접한 로렌스 추기경은 바티칸 수도원을 지나 황급히 교황이 머물던 숙소로 간다.세계 각지에서 갑작스런 교황의 선종 소식을 들은 추기경들은 애도를 할 새도 없이 교황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어떻게 낼 것 인가를 두고 머리를 맞대고 교황청은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준비에 들어간다.새로운 권력의 선출을 위한 작업을 시작한 교황청은 로렌스 추기경을 콘클라베 선거 단장으로 추대 하고 로렌스는 교황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뒤로 한 채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선거 ‘콘클라베’를 빠르게 추진한다. 누런 ...

놓을 수 있는 마음 - Sarah
요즘 경기침체라고 아우성이다. 식당마저 줄어들고 커피숍 매장 수마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도 예외가 없다. 좋은 일로 바빴으면 좋겠는데 문제만 터지니 때떄로 한숨이 나온다. 10년 넘게 한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이런 위기감은 처음이다. 과연 내가 1년 뒤까지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이가 어린 직원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많고 또래인 회계 직원은 경리 구하는 곳 많으니 괜찮다 한다. 하지만 어느 새 꽉찬 나이, 아직도 챙겨야 할 게 많은 초등학생 쌍둥이들, 편찮으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나무 아래 홀로 존재하지 않기 - blanca
작가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 사안에 공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민감한 일이다. 자칫 논란에 휩싸이거나 공격을 받게 된다. 어느 입장을 취하든 상대편 진영에서는 비판할 거리가 된다.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해 작가가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의무는 없다. 작품으로서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작품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폭력이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게 과연 정치만의 문제일까? 오에 겐자부로는 대표적인 반전주의자다. 어떤 명분의 폭력도 혐오한다. 일본의 패전 후 학교에서 도...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 - 그레이스
이 책에는 루쉰의 첫 번째 소설집 『납함(吶喊)』과 두 번째 소설집 『방황(彷徨)』이 담겨 있다. ‘납함(吶喊)’은 ‘적진을 향하여 돌진할 때 군사가 일제히 고함을 지름’을 뜻한다. 그는 이 소설집 「자서(自序)」에서 젊은 시절 “자신이 가졌던 적막한 비애”를 잊을 수가 없고 그 적막함을 젊은이들에게 전염시키고 싶지 않기에 “몇 마디 더듬거리는 고함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적고 있다. 소설집을 펴내는 이유다. 신해혁명의 실패는 루쉰에게 대단히 깊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광인일기」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