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춥다 (2024.2.23.)

― 순천 〈책방사진관〉



  저더러 “안 춥냐?”고 묻는 말을 겨우내 듣노라면, 어느새 “안 덥냐?”고 묻는 말을 듣는 여름을 맞이합니다. “옷이 없냐?”고 묻는 분도 많습니다. 어느 분은 “품위유지비가 안 들어서 좋겠네요?” 하고 묻습니다. 이런 말도 저런 얘기도 으레 그분 스스로 돌아볼 대목입니다. 겨울은 추워야 즐거운 철이되, 추위란 마음이 시릴 적에 느끼는 결입니다. 여름은 더워야 신나는 철이되, 굳이 볕길을 꺼릴 까닭이 없이 듬뿍듬뿍 받아들일 나날입니다.


  마음에 스스로 담는 말에 따라서 마음이 바뀝니다. 춥거나 싫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기에 추울 뿐이고, 싫은 일을 자꾸 마주합니다. 어떤 삶이건 누구나 짓게 마련이기에 어떤 말이든 하면 되지만, 마음에 담을 말부터 맑게 돌보는 오늘 하루를 누리기에 스스로 빛날 수 있습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장만하러 순천마실을 한 김에 〈책방사진관〉을 찾아갑니다. 길그림으로는 가까운 듯싶어도 얼추 70km에 이르는 길이고, 버스를 서너 벌 갈아타며, 가는길만 3시간 40분 남짓입니다. 그러나 이 길에 책을 읽고 하늘을 보고 글을 씁니다. 책집에 닿으면 두런두런 책시렁을 살피고, 등허리를 쉬다가, 책 몇 자락을 고르고서 새로 등짐에 얹어서 사뿐히 집으로 돌아가지요.


  전남 고흥 시골집에서는 ‘가까운 마을책집’이 적어도 70km는 떨어집니다. 어느 책집이건 그저 이웃책집이라 여깁니다. 하루를 들여서 거닐고, 하루가 저무는 빛을 느끼고, 하루가 흐르는 바람을 읽습니다.


  서두르려면 설익습니다. 느긋하려면 넉넉합니다. 말 한 마디에는 말눈이 있고, 마음 한켠에는 마음눈이 있고, 살림터에는 살림눈이 있습니다. 모든 눈을 씨눈처럼 천천히 함께 틔우기에 여러 길동무를 만납니다.


  ‘좋다’라는 낱말을 한동안 안 쓰다가, 또 써 보다가, 이제는 더 안 씁니다. ‘좋다·좁다·졸다·좇다’가 나란한 말밑이기도 하지만, ‘좋다·나쁘다’나 ‘좋다·싫다’처럼, 무엇을 좋아하면 반드시 나빠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요.

  글에 담는 낱말도, 마음에 담는 말씨도, 주고받는 말결도, 곰곰이 생각하면서 하나씩 추스릅니다. 추위도 더위도 아닌 날씨를 느끼려 하고, 오롯이 겨울과 여름을 떠올리면서 새삼스레 걸어갑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어른도, 이제는 “마음을 나누는 소리”인 ‘말’을 다시 바라볼 때라고 느낍니다. 좋은말을 하거나 나쁜말을 삼가기보다는, 마음말을 살피고 살림말을 지피면서 사랑말로 나아갈 적에 서로서로 숲말을 이루리라 봅니다.


ㅍㄹㄴ


《어린이가 꼭 알아야 할 인권》(오늘 글·김연정 그림·사자양 기획, 다른매듭, 2023.5.15.)

《나의 다정한 유령 친구》(레베카 그린/황유진 옮김, 북뱅크, 2023.4.30.)

#HowtoMakeFriendswithaGhost #RebeccaGreen

《서평의 언어》(메리케이 윌머스/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2.6.30.첫/2022.8.19.2벌)

#HumanRelationsandOtherDifficulties #Essays #MaryKayWilmers

《그림책 책 VOL.5》(편집부, 한국그림책출판협회, 2023.9.20.)

《녹색 인간》(신양진 글·국민지 그림, 별숲, 2020.3.31.)

《우리말꽃》(숲노래 기획, 최종규 글, 곳간, 2024.1.31.)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모두 돌아가는 저녁에 (2024.12.21.)

― 부산 〈파도책방〉



  보수동책골목 책집지기가 하나둘 가게를 닫고서 들어갈 저녁입니다. 모두 닫으려나 싶어 두리번두리번하는데, 마침 〈파도책방〉은 아직 안 닫습니다. 고맙게 깃들어 얼른 책을 살핍니다. 오늘은 또 책을 얼마나 더 사읽어야 속을 채울 수 있나 모를 노릇입니다만, 아무리 잔뜩 사읽고 다시 사읽고 새로 사읽어도 속을 채울 길은 없다고 느껴요.


  이제 그만 사읽으면 되려나 하고 밤마다 곱씹습니다. 여태 장만한 책을 처음부터 하나씩 되읽기만 해도 넉넉하지 않느냐고 꿈자리에서 스스로 되묻습니다. 이러다가 아직 모르는 책이 끝없다고 떠올리고, 이미 읽은 책이라 하더라도 ‘이웃손길’을 거친 책으로 마주하면 늘 새로운 책이기도 하다고 되새깁니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서 앙상나무를 마주합니다. 겨울이 저물면 봄이 오면서 봄나무를 반깁니다. 봄이 떠나면서 여름나무에 짙푸른 잎빛을 만나고, 여름이 가면서 가을나무에 무지개처럼 물드는 빛살을 헤아립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나 같아요. 늘 ‘새로읽기’하고 ‘다시읽기’ 사이를 오갑니다. 날씨도 철도 하루도 모두 새롭습니다. 똑같은 1월 1일은 없고, 나란한 12월 31일도 없습니다. 같은 책을 되읽을 적마다 늘 새롭게 느끼고 배웁니다. 같은 책을 여러 사람이 이야기할 적에도 다 다른 느낌과 마음을 듣고서 배웁니다.


  책을 읽는 틈을 낸다면, 스스로 속(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루를 쓴다는 뜻입니다. 글을 쓰는 짬을 낸다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스스로 속빛을 이웃하고 나누려고 마음을 쓴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과 오늘까지 걸어온 날을 되새기면서 읽고 씁니다. 책도 읽지만 하늘도 읽고, 글도 쓰지만 생각도 씁니다.


  책을 읽는 틈을 내는 오늘을 보낼 적에는 스스로 속(마음)부터 차리면서 새롭게 꿈을 그리는 씨앗을 살며시 심는 몸짓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글을 쓰는 짬을 내는 하루를 누릴 적에는 스스로 눈빛을 밝히면서 새록새록 사랑씨를 둘레에 흩는 매무새를 노래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한 해 끝자락에 저마다 마음을 돌아볼 책 한 자락을 그리면서 책집마실을 다닐 분이 늘어나면 기쁘지요. 즐겁게 노는 마음이라면, 어느 날 문득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큼 나아갑니다. 꿈같은 모습이 언제나 우리 곁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면서 서로 두런두런 지내기를 바랍니다. 다시금 책집마실을 하고, 더 묵직하게 등짐을 지고, 터덜터덜 길손집으로 갑니다. 책집마실은 보금자리를 떠나 먼먼 이웃고을에서 하니, 수북수북 책더미를 길손집에서 하나하나 풀며 읽다 보면 어느덧 동이 틉니다.


ㅍㄹㄴ


《한 스푼의 시간》(구병모, 위즈덤하우스, 2016.9.5.첫/2021.10.20.21벌)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와타나베 준이치/정세영 옮김, 다산초당, 2018.4.10.첫/2018.4.23.2벌)

#渡邊淳一 #鈍感力

《시골기행》(강신재, 갤리온, 2010.10.15.)

《꼬마 니콜라》(르네 고시니/이재형 옮김, 문예출판사, 1987.12.20.첫/1993.12.30.9벌)

《돼지책》(앤서니 브라운/허은미 옮김, 웅진주니어, 2001.10.15.첫/2013.5.24.84벌)

#Piggybook #AnthonyBrowne

《La Mare au Diable》(George Sand, Librairie Hachette, 1935.)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인지부조화



 인지부조화가 발생하는 이유 → 엉키는 까닭

 인지부조화의 결과라고 해석한다 → 엇갈리는 탓이라고 풀이한다

 크고작은 인지부조화를 경험하면서 → 크고작게 따로놀면서


인지부조화 : x

인지(認知) : 1. 어떤 사실을 인정하여 앎 2. [법률] 혼인 외에 출생한 자녀에 대하여 친아버지나 친어머니가 자기 자식임을 확인하는 일 3. [심리]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 지각, 기억, 상상, 개념, 판단, 추리를 포함하여 무엇을 안다는 것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용어로 쓴다 ≒ 인식(認識)

부조화(不調和) : 서로 잘 어울리지 아니함



  낱말책에 없는 ‘인지부조화’는 그냥 일본말입니다. 한자말을 쓰더라도 ‘부조화’라고만 하면 됩니다. 우리말로는 ‘그릇되다·잘못·틀리다·틀려먹다·틀어지다’나 ‘기울다·기우뚱·꼬이다·이지러지다·일그러지다·휘청’으로 풀어낼 만합니다. ‘절다·뒤뚱거리다·뒤엉키다·뒤틀다·비틀다·비틀거리다’나 ‘가르다·갈리다·따로놀다·떨어지다·멀어지다·벌어지다’로 풀어낼 만합니다. ‘삐걱대다·어그러지다·엇가락·엇나가다·엇갈리다·엉키다’나 ‘다르다·두동지다·동떨어지다·두모습·두얼굴’로 풀어낼 수 있어요. ‘쿵짝이 안 맞다·종잡을 길 없다·흔들리다’나 ‘사이·틈·팔팔결·하늘땅’으로 풀어내고, ‘말 같지 않다·말과 삶이 어긋나다·안 될 말이다·앞뒤 안 맞다’나 ‘으르렁’으로 풀어내어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그 역시 인지부조화를 겪을 것이다

→ 그도 휘청거리리라 본다

→ 그도 뒤엉키리라 본다

→ 그도 꼬이리라 본다

《병든 의료》(셰이머스 오마호니/권호장 옮김, 사월의책, 2022) 5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인지능력



 인지능력이 결여된 듯하다 → 아는힘이 없는 듯하다

 인지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 보는눈을 키우려고

 인지능력이 저하될 시에는 → 생각힘이 떨어질 때에는


인지능력(認知能力) : [심리] 사물을 분별하여 인지할 수 있는 능력 ≒ 인식능력



  무엇인가 알거나 생각하거나 살피는 힘을 가리킬 적에는 ‘생각힘’이나 ‘아는힘·머리힘’이라 할 만합니다. ‘귀힘·듣는힘·눈힘·보는힘’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ㅍㄹㄴ



아직 인지능력이 미성숙해서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미분화 상태입니다

→ 아직 생각힘이 덜 자라서 둘레와 나를 나누지 못합니다

→ 아직 머리힘이 덜 여물어 나라와 나를 나누지 못합니다

《인권, 여성의 눈으로 보다》(인권연대, 철수와영희, 2020) 3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중간중간



 중간중간 냄비 뚜껑을 열고 → 이따금 솥뚜껑을 열고

 말하는 중간중간에 → 말하는 사이사이에

 행렬 중간중간에는 → 무리 사이사이


중간중간(中間中間) : 어떤 장소나 사물, 행위, 사건 따위의 틈과 틈 사이



  한자말 ‘중간 + 중간’ 꼴로 ‘중간중간’처럼 엮곤 하는데, 우리말로는 ‘사이사이’라 하면 됩니다. ‘이따금·가끔’으로 손볼 만하고, ‘더러’나 ‘틈틈이·짬짬이’로 손볼 수 있습니다. ㅍㄹㄴ



중간중간 물을 갈아 주며

→ 틈틈이 물을 갈아 주며

→ 사이사이 물을 갈아 주며

《밥을 지어요》(김혜경, 김영사, 2018) 76쪽


중간중간 아이는 계속 훌쩍인다

→ 사이사이 아이는 내내 훌쩍인다

→ 아이는 이따금 훌쩍인다

→ 아이는 틈틈이 훌쩍인다

《살림문학》(김대성·강경주와 12사람, 곳간, 2024) 4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