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16 아이 2024.9.20.



  오래도록 ‘아이·어른’ 두 마디로 바라보았다. 아직 철이 들지 않을 적에는 누구나 ‘아이’요, 바야흐로 철이 들며 거듭날 적에는 ‘어른’이라 여겼다. 나이로 ‘아이·어른’을 가르지 않았다. 두 이름으로 가르는 잣대는 언제나 ‘철’ 하나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은 네 가지 철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철’을 안다면 해와 달과 날이 흐르는 길을 안다는 뜻이고, 이때에는 짚고 살피고 헤아리고 생각하는 매무새로 가리고 고르고 나누면서 읽고 아는 빛이 있는 셈이다. 봄인데 가을로 잘못 여긴다면 철이 없다. 겨울인데 여름타령을 하면 철을 모른다. 바다에서 멧나물을 찾으니 철이 없고, 숲에서 바닷고기를 바라니 철을 모른다. 아이란, 천천히 철을 돌아보면서 찬찬히 배우는 때요 몸이자 삶이다. 어른이란, 차분히 철을 짚고 헤아리면서 참하게 익혀서 누구한테나 펼 줄 아는 몸짓이요 살림이다. 일찍 철이 드는 사람이라면, 일찍 살림을 알아보고서 스스로 서기에 ‘어른’이며, ‘어른스럽다’고 본다. 나이가 한참 들었어도 철이 안 든다면 ‘어른’이 아닌 ‘아이’로 치고, ‘아이처럼’ 군다고 나무란다. 요즈음은 ‘아이’라는 낱말을 잘 안 쓰고 으레 ‘어린이’라는 낱말을 널리 쓰는데, ‘어린이 = 어리다 + -이’인 얼개이고, “나이가 적은 사람”이나 “나이가 적은 탓에 어리숙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밑뜻이 흐른다. 나이로 사람을 가를 적에는 세 가지이니, ‘어린이·젊은이·늙은이’이다. 나이로 사람을 가를 적에는, 나이가 적어서 어리석다고 여기거나, 다리를 절듯 여기저기 마구 부딪힌다고 여기거나, 이제 늙고 낡고 삭아서 죽어간다고 여긴다. ‘나이’로 사람을 볼 적에는 철을 등진다. ‘아이’란 낱말을 차츰 안 쓰면서 오히려 우리 스스로 철을 잊고 잃는 어리석은 길로 가는 듯싶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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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15 하늘 2024.9.19.



  하늘빛은 파랗다. ‘파란하늘’이다. 그렇지만 아직 낱말책에 없는 우리말 ‘파란하늘’이다. 들빛은 푸르다. ‘푸른들’이다. 그런데 여태 낱말책에 없는 우리말 ‘푸른들’이다. 우리말 ‘파란하늘’은 낱말책에 없으나, 한자말 ‘창공(蒼空)·창천(蒼天)’은 낱말책에 있다. 게다가 ‘창공·창천 = 맑고 푸른 하늘’로 뜻풀이를 하니 얄궂다. 높다랗기에 하늘인데, ‘공중(空中)·천공(天空)·천상(天上)’이라는 한자말을 쓰기도 한다. 하늘이 비었다고 여긴다면 ‘빈하늘’처럼 우리말을 쓸 만하다. 오늘날은 ‘하늘’로 적지만, 예전에는 ‘하·날(낧)’로 적었고, ‘하 + 날·낧’인 얼개요, ‘하 + ㄴ + 아 + ㄹ·ㅀ’로 뜯을 만하다. 그리고 하늘을 ‘한울’이라고도 했다. 하늘은, 하나인 덩어리로 아우르는 바람빛이다. 하늘은, 하나인 해가 하얗게 비추는 바람길이다. 하늘은, 하나로 살아가는 숨을 이루는 바람터이다. 함께 마시는 바람줄기는 함께 나누는 숨줄기이다. 하늘은 높다랗게 있는 곳이니, 높다란 자리에 놓은 살림집은 ‘하늘채·하늘칸(← 옥탑)’이다. 하늘처럼 높다란 데에 마련하는 뜰이나 밭이니 ‘하늘밭·하늘뜰(← 공중정원)’이다.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바라기이다. 해를 바라본다. 해바라기이다. 하늘을 가르는 새를 바라본다. 새바라기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바란다. 비바라기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본다. 별바라기이다. 하늘에도 나라가 있으니 ‘하늘나라·하늘누리·하늘터’이다. 하늘나라를 지키는 분은 이 땅을 굽어살핀다. 사람들이 저마다 어떻게 하루를 짓는지 돌아보기에 ‘하늘님·하늘지기’일 테지. ‘하늘임금’이라 할 테고, ‘하늘꽃’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선 사람은 두 곳을 나란히 아우르면서, 서로 ‘우리’를 이룬다. 하나인 울타리로 ‘한울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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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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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말 14 처마 2024.9.14.



  처마가 없는 집이 부쩍 늘었기에 ‘처마’라는 말소리를 들은 바 없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 골목집이나 시골집에서 지낸 적이 없으면 더더구나 ‘처마’를 알 길이 없다. ‘초리’처럼 지붕 끝이 살며시 나온 곳인 처마요, 집을 이루는 곳에서 처음인 길로 여길 처마이다. 처마에 붙여서 ‘처마종’이다. 처마종은 바람이 불면 살살 춤을 추면서 소리를 낸다. 처마에 붙인 작은 쇠라서 ‘처마쇠’이고, 꽃이나 새나 물고기 모습으로 꾸며서 ‘처마꽃·처마새·처마물고기’이다. 처마끝에서 모이며 떨어지는 물이니 ‘처맛물’이다. 처마를 모르는 탓에 ‘낙숫물(落水-)’ 같은 겹말을 잘못 쓰는 분이 제법 있다. 한자말 ‘낙수 = 떨물·떨어지는 물’이기에, ‘낙수 + 물’처럼 쓸 수 없다. 비가 오면 빗방울이 처마에 부딪히고 모이면서 떨어진다. 처마 밑에 서면 비를 긋는다. 제비는 처마 밑에 둥지를 짓는다. 참새는 아예 처마 둘레에 구멍을 내어 서까래에 둥지를 엮곤 한다. 이제는 굳이 한집(한겨레집)을 지어서 살아야 하지 않으니, 처마가 없는 집에서 살며 처마를 모를 수 있다. 그런데 처마를 조금 내기에 집채가 아늑하다. 처마가 빗물을 튕겨 주기에 집채가 고스란하다. 큰고장에 가득한 ‘아파트·빌라’에는 처마가 아예 없다시피 하기에 바깥담은 늘 눈비에 닳고 햇볕에 삭는다. 집에 처마를 놓으면서 오래오래 건사하는 셈이다. 집에 처마가 있기에 누구나 처마 밑에서 비를 긋거나 해바라기를 하면서 가볍게 쉴 만하다. 처마가 있으니 작은새도 깃들어 노래를 베푼다. 살림자리에서 쓰는 이름 하나가 사라질 뿐일까? 살림을 하는 뜻이 나란히 잊히면서 살림 한켠이 사르르 닳거나 삭아서 사라지는 셈이지 않을까? 처마를 낸 오랜 골목집이나 시골집은 두온해(200년)도 닷온해(500년)도 너끈하지만, 다른 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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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말 13 이름 2024.9.16.



  우리한테는 ‘이름’이 있지만, 곳곳에서 ‘성명(姓名)’처럼 한자를 쓰라고 밀었다. “여기에 손으로 사인(sign)을 하세요”나 “이곳에 수기(手記)로 서명(署名)하세요” 같은 겹말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는다. ‘사인·서명’은 ‘이름’을 가리키면서 ‘손으로·스스로’ 하는 몸짓을 담는다. ‘수기 = 손으로 적다’요, ‘서명 = 이름을 적다’이다. 곰곰이 짚자면 처음부터 ‘이름’이라는 낱말과 ‘손으로·스스로’라는 낱말을 쓰면 된다. 우리말로 쉽게 쓴다면 겹말로 잘못 쓸 일이 없고, 어린이부터 알아들을 만하다. 이름을 ‘이름’이라 하지 않다 보니, ‘딴이름·다른이름’을 한자로 ‘별명(別名)’처럼 엮는다. 글을 쓸 적에 붙이는 이름인 ‘글이름·붓이름’을 굳이 한자로 ‘필명(筆名)’처럼 여민다. 이리하여 오늘날처럼 누리집이 새로 뻗는 곳에서는 영어를 끌어들여 ‘아이디(ID)·닉네임(nickname)’을 쓰거나 다른 한자말 ‘계정(計定)’을 쓰기까지 한다. 옛사람은 ‘덧이름’을 ‘호(號)’처럼 한자로 적어야 멋스럽다고 여겼다. 멋스럽게 부르고 싶다면 ‘멋이름’이라 하면 될 텐데, 그만 ‘예명(藝名)’처럼 한자말로 해야 멋지다고 여기기도 한다. 서로 이르는(이야기하는) 소리이기에 ‘이름’이다. 서로 마음으로 이르려고(다가서려고) 하기에 ‘이름’이다. 이름을 부르면서 새롭게 일어난다. 이름을 들려주고 듣는 사이에 뜻을 잇는다. 이름이란 바로 ‘나’이고 ‘너’이다. 이름을 알아가는 동안 이곳에 있는 너랑 나는 새삼스레 어울리면서 한빛을 이룬다. 우리가 쓰는 이름에는 이제부터 일구려는 길이 깃든다. 지난날 임금은 사람들을 다 다른 이름이 아닌 ‘백성(百姓)’ 같은 한자말로 뭉뚱그렸다. 오늘날은 ‘국민(國民)·민중(民衆)·대중(大衆)’으로 뭉뚱그리는데, 우리 이름을 찾아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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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말 12 님 2024.9.11.



  ‘이르다’라는 낱말에서 ‘이름’이라는 낱말이 가지를 뻗고, ‘임’이라는 낱말하고 ‘임자’라는 낱말로 뻗는다. ‘이르다·이름’은 지난날에 ‘니르다·니름’에 ‘일홈’이기도 했다. ‘임·님’은 맞물리고, ‘이름·이르다’는 ‘일다·이루다·일구다’하고 만난다. ‘임·님’은 ‘임자’처럼 “쥐거나 있거나 다루는 사람”이거나 “사랑으로 맺은 짝”을 가리킨다. ‘이’라는 말밑처럼 “잇고 있는 사람”도 가리킨다. 어느 곳에 이르고(닿고) 어떤 뜻을 이르기(말하기)에 ‘잇’고 ‘있’는 ‘임·임자’인 ‘님’이다. 다만, ‘님·임’은 높낮이로 가르지 않는다. 나이가 많거나 자리가 높더라도 꼭 ‘님·임’이지는 않다. 어린이도 ‘아기님·아기씨’이다. 해도 꽃도 별도 ‘해님·꽃님·별님’이다. 서로 돌아보는 마음이 맞물려서 이르는 ‘님·임’이다.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을 잇고 싶은 사이인 ‘님·임’이다. 때로는 윗자리에 선 이가 둘레를 내려다보면서 그이를 ‘님’이나 ‘임금’으로 부르라고 이르곤 한다. 그러나 서로 헤아리거나 살피거나 돌보는 마음이 없이, 저 혼자 높이기를 바라는 ‘님·임금’ 같은 이름일 적에는, 오히려 안 높일 수밖에 없는 결이라고 할 만하다. 억지로 높이는 ‘님·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북돋우는 말씨인 ‘님·임’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이르고(말하고), 마음이 이르는(닿는) 사이일 적에 ‘님·임’이다. 서로 ‘이름’을 부르는 허물없는 ‘너나들이’라는 사이일 적에 비로소 ‘님·임’이다. 모든 말은 “남을 높이는 결”이 아닌 “나를 돌아보는 결”로 둘 사이를 나타내는 속빛이다. 누가 위나 밑(아래)인가 하고 가르려고 하기에, ‘님’뿐 아니라 ‘씨’라 이를 적에도 거북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고, ‘님’이라는 낱말을 가려쓸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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