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달콤 & 짜릿 짜릿 9 삼양출판사 SC컬렉션
아마가쿠레 기도 글.그림, 노미영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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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6.27.

그릇이 작으니 조금씩


《달콤 달콤 & 짜릿 짜릿 9》

 아마가쿠레 기도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8.7.30.



  저는 인천이라는 고장에서 나고자란 터라, ‘우리집 밭’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땅뙈기가 없더라도 모든 곳이 밭이더군요. 씨앗을 심어서 돌보는 자리라면 어느 빈터이건 꽃밭으로 바뀌고 풀밭으로 거듭나요. 여러 이웃이 골목과 마을에 아기자기하게 일구는 골목밭을 지켜보면서 마음밭이 있는 줄 느꼈습니다.


  이윽고 글밭이며 책밭이 있는 줄 알아차립니다. 우리가 보금자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터전은 살림밭을 지으며 스스로 즐거운 나날이로구나 싶더군요. 일하고 놀고 쉬고 어울리는 모든 곳은 그저 밭일 테니, 하루하루 이야기밭과 노래밭을 헤아려 본다면, 호미를 쥐지 않고도 언제 어디에서나 밭일을 하는 이 하루를 꽃피울 만하다고 느낍니다.


  《달콤 달콤 & 짜릿 짜릿》은 아이어른이 함께 ‘살림꾼’으로 한 발짝씩 떼면서 시나브로 ‘살림꽃’으로 깨어나는 줄거리를 다룹니다. 이를테면 아주 놀랍도록 훌륭한 ‘성평등 교과서’ 같은 그림꽃입니다. ‘집안일 못한다는 핑계’를 대는 아저씨한테 읽힐 훌륭한 그림꽃이요, 무엇보다도 ‘집’이란 어떤 곳인지 부드럽게 다루는 그림꽃입니다. 짝을 짓는 놀이인 ‘짝짓기(연애)’가 아니라, 살림을 짓는 하루인 ‘사랑’이 무엇인지 참하게 들려주는 그림꽃이고요.


  어릴적에 으레 “어머니를 거들”었지만, 어머니는 으레 말렸습니다. ‘(대학입시) 공부’를 해야지,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느라 품을 빼앗기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오늘날 우리나라는 아직 이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씁니다. 어린이는 ‘공부’를 하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모든 어린이는 ‘어버이하고 보금자리를 이루’려고 태어납니다. 어린이는 푸름이로 나아가는 길목이 아닙니다. 어린이는 그저 어린이요, 푸름이는 그저 푸름이입니다. 저마다 제 나이에 익히고 배우면서 맞아들일 살림살이를 알아갈 나이입니다.


  혼자서 밥할 줄 모르는 12살이라면 참으로 불쌍합니다. 혼자서 빨래할 줄 모르는 15살이라면 참으로 딱합니다. 혼자서 비질과 걸레질을 할 줄 모르는 18살이라면 그야말로 안타깝습니다. 아기를 어떻게 안거나 얼러야 하는 줄 모르는 20살이라면, 그야말로 여태껏 뭘 하면서 왜 살았을까요?


  아기를 낳아 보아야 아기를 달래는 눈짓과 손짓과 몸짓을 알 수 있지 않습니다. 동생을 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스스럼없이 알아요. ‘우리집 동생’뿐 아니라 ‘이웃집 동생’을 나란히 눈여겨보면서 따스히 돌보는 매무새로 살아갈 노릇이고, ‘아기돌봄’은 어버이뿐 아니라 모든 어린이와 푸름이가 잘할 만한 작은 살림길입니다. 그저 어린이는 그릇이 작으니 조금 먹고 조금 거들 뿐입니다. 푸름이는 그릇이 조금 크니 조금 더 먹고 조금 더 거들 뿐입니다. 어른으로 설 적에는 그릇이 꽤 크게 마련이니 어린이나 푸름이보다 조금 많이 먹으면서 집살림을 도맡을 뿐입니다.


  밥 한 그릇을 달콤하게 나눕니다. 밥 두 그릇을 느긋하게 나눕니다. 밥 석 그릇을 신나게 나눕니다. 좋은 밥이나 맛난 밥이 아닌, 즐거우면서 수다꽃이 피어나는 밥그릇을 나눌 하루입니다.


ㅍㄹㄴ


“성가시네. 좋아하는 애랑 좋아하는 놀이를 하고 싶은 건데.” (13쪽)


“여자애랑은 안 논다느니, 창피하다느니, 그리고 어린이라서 안 된다느니, 자꾸 그래서 나 폭발할 거 같다구!” (18쪽)


“어른이 되는 건 귀찮지만, 머리를 쓰면 돼!” (24쪽)


“그리고 여러분, 여기에 남자 여자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는 없어요. 모처럼 같은 반이 됐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그런 식으로 나누면 아깝잖아요.” (33쪽)


“아빠.” “응?” “매일 놀지 않아도 친구할 수 있어?” (91쪽)


‘이런 기회를 꼭 다시 만들어 가자. 아이들끼리 스스로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102쪽)


“츠무기는 점점 새로운 것을 향해 가고, 거기에 충격을 받은 게 아빠로서 그릇이 작은 걸까 싶어.” (151쪽)


#甘々と稲妻

#雨隠ギド 


+


《달콤 달콤 & 짜릿 짜릿 9》(아마가쿠레 기도/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8)


슬슬 가정의 맛이 그리운 거구나

→ 슬슬 살림맛이 그립구나

→ 슬슬 포근맛이 그립구나

→ 슬슬 따뜻맛이 그립구나

48쪽


그대로 식히면서 간이 배도록 하면 좋아요

→ 그대로 식히면서 간이 배면 돼요

130쪽


요즘 친구네 집에서 노는 주간이거든

→ 요즘 동무네에서 노는 즈음이거든

→ 요즘 동무 집에서 노는 때이거든

→ 요즘 동무네에서 노는 나날이거든

→ 요즘 동무 집에서 노는 철이거든

15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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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
코다마 하츠미 지음, 김수연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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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6.27.

외롭지 않아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

 코다마 하츠미

 김수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5.30.



  하찮은 책이건 대단한 책이건, 한 벌을 훑고서 ‘읽었다’고 여기는 마음이기에, 오늘날에는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책을 ‘알아보는’ 눈길은 드물다고 느낍니다. 온누리에 안 바쁜 사람은 아무도 없게 마련이라서, 어느 책이건 여러 벌 차근차근 되읽을 틈을 스스로 내지 않을 적에는, 어느 책이건 겉이며 속을 제대로 모르는 채 지나가기만 하겠지요.


  ‘읽기’란 스스로 이곳에 고이 있으면서, 나하고 너(나를 둘러싼 모든 숨결)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면서 이으려고 하는 몸짓이라고 봅니다. ‘읽다’란 ‘일다 + 익다’이기에, 마음에 일어나고 마음으로 익히는 ‘읽다’를 이루려면, 더 많은 책을 더 많이 눈으로만 훑을 적에는 ‘훑다’에서 그칠 테지요. 틈이 없이 밭아서 훑는 하루에서 그친다면, 스스로 이곳에 있으면서 물결을 일으키는 읽는 살림에는 못 닿는구나 싶어요.


  마음에 드는 몇 가지 책이나 글바치만 되읽을 적에는 으레 몇 가지 눈길에 고이거나 닫힌다고 느낍니다. 마음에 안 드는 모든 책이나 글바치도 언제나 나란히 되읽으면서 차분히 새길 적에는 스스로 새롭게 피어나는 눈길로 깨어난다고 느낍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읽눈(문해력)을 잃고 잊는 까닭이라면, 먼저 어른 자리에 있는 사람들부터 읽눈을 되찾을 일이라고 봅니다. 모든 책을 꾸준히 지켜보고 살펴보고 돌아볼 적에, 모든 일과 이웃과 들숲메바다를 찬찬히 헤아리고 알아보고 품을 적에, 나부터 읽눈을 틔우고서 아이어른 모두 읽빛을 밝힐 테고요.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은 이제 더 살아갈 값어치가 없다고 느낀 나날에서 막바지 발버둥을 치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둘레(사회)에 맞추어 그저 굽신굽신 고분고분 지내던 나날을 멈추고서, “나는 뭘 하려고 이곳에 태어났는가?” 하고 돌아보는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책이름은 ‘거꾸로’ 말하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싸울 값어치가 없는데 여태 싸워 온 줄 느끼고서, 이제부터는 그만 싸우고서 나답게 하루하루 살겠노라 외치는 셈입니다.


  싸우려고 들기에 밉놈을 세워야 합니다. 밉놈을 세워야 하니 마음에 사랑이 아닌 미움을 놓아야 합니다. 사랑이 아닌 미움을 놓는 마음이기에, 스스로 무엇을 하는 길인지 어느새 잊어버립니다. 마음을 잊어버리니 살림도 숲도 마을도 죄 안 보이면서 무엇보다도 ‘나’를 바라보거나 품을 수 없습니다.


  혼자 걸어가면 외롭다고 여기면서 길들이려는 나라(사회·정부)입니다. 함께 걸어가도록 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여기면서 길들이려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함께걷기’를 하자면 ‘혼자걷기’를 하는 사람이 다 다르게 만나야 할 뿐입니다. 그저 발걸음을 똑같이 맞춘대서 함께걷기이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걸을 뿐 아니라, 이리로 걷거나 저리로 걸으면서 홀가분하게 춤출 수 있어야 함께걷기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즐겁기에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외로워도 혼자 걸어가지 않아요. 나는 나로서 숨을 쉬고, 나는 나대로 둘레를 보고, 나는 나답게 눈을 뜹니다. 나는 바로 ‘나’라고 하는 ‘하나’부터 알아보아야, ‘너’라고 하는 ‘다른 하나’을 알아차립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혼자·홀·홑)인 줄 받아들일 적에, 하늘도 물도 바다도 숲도 그저 오롯이 하나인 줄 깨닫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으레 바쁘다고 외치면서 책도 글도 못 읽습니다. 책을 사읽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책 한 자락을 느긋이 다섯 벌이고 열 벌이고 되읽을 줄 알아야 비로소 책읽기입니다. 보임꽃(영화)도 한 벌 슥 보고 끝난다면 “아예 안 봤다”고 해야 맞습니다. 책이건 보임꽃이건 다섯 벌이며 열 벌이며 꾸준히 다시 짚으면서 차근차근 짚어 나가야 비로소 ‘읽다’라고 여깁니다. 우리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할 적에 한 마디만 들려주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나요? 때로는 한 마디로 넉넉하겠으나, ‘이야기’란 “끝없이 주고받는 말”입니다. 물이 흐르면서 싱그러이 잇듯, 말도 끝없이 흐르면서 맑게 이을 적에 이야기인 터라, 책읽기이건 삶읽기이건 구태여 싸울 까닭이 없이 살림하는 손길로 지을 적에 제대로 깨어납니다.


ㅍㄹㄴ


“전 남친 때려눕히고 돈 돌려받아서 돌아온 날 바로 이사하고 싶어졌거든.” (9쪽)


‘하지만 이렇게 그 누구에게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시간낭비는 처음 해 봤어. 나쁘지 않은데―!” (35쪽)


“그게 재밌어.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배우들의 손때 묻은 연기, 더는 내 것이 아닌 대사.” (60쪽)


“부모님이 널 사랑으로 키워 주셔서, 동그랗고 예쁜 그릇이 된 거지. 자기 스스로가 타인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라고 생각해 봐. 힘은 경험으로 보충할 수 있어. 하지만 그릇은 부모에게서만 받을 수 있다고.” (117쪽)


“그래도 옛날에 들었던 그 말이 다시 깨달음을 줬어. 결산을 계속해 나간다면 분명 이런 일이 여러 번 생길 거야. 인간은 한쪽 면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내 인생에 가치가 있었는지 알려면 매사의 표면만을 더듬어서는 안 돼.” (175쪽)


“내 의지를 관철하는 일은 곧 고독을 마주보는 일이구나.” (194쪽)


#この世は戰う價値がある

#こだまはつみ


+


《이 세상은 싸울 가치가 있다 2》(코다마 하츠미/김수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


그 누구에게도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시간낭비는 처음 해 봤어. 나쁘지 않은데―!

→ 그 누구도 돕지 않으며 헤프게 처음 지내 봤어. 나쁘지 않은데!

→ 처음으로 누구도 안 살피고서 부질없이 지냈어. 나쁘지 않은데!

→ 처음으로 아무도 안 보면서 헛되게 놀아 봤어. 나쁘지 않은데!

35쪽


인간의 방정식을 모으는 중이지

→ 사람이란 실타래를 모으지

→ 사람이란 수수께끼를 모으지

64쪽


성인군자라는 요란한 말도 왠지 진실감이 느껴져

→ 꽃어른이라고 떠드는데 왠지 참말 같아

→ 온꽃이라고 하는데 왠지 거짓없다고 느껴

141쪽


그래도 옛날에 들었던 그 말이 다시 깨달음을 줬어

→ 그래도 옛날에 들은 그 말이 다시 깨우쳐 줬어

→ 그래도 옛날에 들은 그 말로 다시 깨달았어

175쪽


결산을 계속해 나간다면 분명 이런 일이 여러 번 생길 거야

→ 꾸준히 되짚어 나간다면 아마 이런 일이 여럿 생겨

→ 그대로 되살펴 나간다면 또 이런 일이 여럿 생길 테야

175쪽


인간은 한쪽 면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 사람은 한쪽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 누구나 한쪽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으니까

175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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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먹고 자고 기다리고 4
미즈나기 토리 지음, 심이슬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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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6.19.

마음에 짓고 마음으로 빚는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4》

 미즈나기 토리

 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4.1.30.



  온마음(감정)을 바라보노라면 언제나 사랑이라는 길로 걸어온 나날이었네 하고 느껴요. 꽃길도 가시밭길도 모두 우리가 걷는 길이고, 밤길도 낮길도 우리가 마주하는 길이고, 새벽길도 저녁길도 우리 스스로 다스리는 길일 테니, 오늘 걸어가는 길에서 새여름 새빛을 한껏 누리자고 여깁니다.


  첫여름이 슬슬 한복판으로 이르면서 한여름이 머잖은 나날입니다. 오늘꽃을 피우는 새아침을 넉넉히 누리자고 돌아보면서 하루를 맞습니다. 바쁘지 않거나 느긋하자는 마음이 아닌, 오늘 맞아들여서 누릴 일을 헤아립니다. 크거나 작은 일이 아닌, 오늘 새롭게 보살피면서 일굴 이야기를 살핍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모든 일이 배움길이면서 배움씨앗이라고 느낍니다. 궂은일은 궂은 대로 기운을 북돋우고, 기쁜일은 기쁜 대로 마음을 다독이고, 안된일은 안된 대로 다시 일어서자는 생각을 지핍니다. 집안일은 언제나 바로 이곳을 다시 바라보는 손끝을 일구는 밑거름이로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짓는 씨앗대로 차근차근 맞이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빚는 씨앗으로 찬찬히 나아갑니다. 이따금 불씨를 터뜨렸다면, 불풀이를 하고 불다툼을 하고 불장난에 이르다가 불벼락을 맞을 수 있어요. 불길이 꼭 나쁘지 않습니다. 불바다란 얼마나 끔찍한지 온몸으로 배우는 길이에요.


  풀씨를 흩날렸다면, 풀내음을 맡으면서 풀빛을 머금고 풀잔치를 이루면서 풀꽃을 피우는 마음을 품어요. 누가 우리를 푸근하게 안아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푸근히 안을 줄 알기에 서로 다가가서 온하루를 풀어내는 눈빛을 나눕니다.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4》은 앞선 석걸음이며 이다음으로 잇는 꾸러미하고 매한가지입니다. 가다가 서고, 또 서다가 가더니, 다시 가다가 서고, 그야말로 한참 서고서야 가는 길을 들려줍니다.


  숱한 사람들은 몹쓸놈(사탄)이 이기면 매우 싫어하는데, 놈이 이긴대서 싫어해야 할 까닭이 없어요. 놈(사탄)은 놈(사탄)대로 응어리를 풀 수 있습니다. 놈이 아닌 빛(천사)은 그저 빛이라서 지든 이기든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언제나 스스롬없이 지고, 스스로 기쁘게 짐을 지면서 놈을 달랩니다.


  이기느냐 지느냐에 얽매이는 이는 모두 놈(사탄)이에요. 이기느냐 지느냐를 안 쳐다보면서 오늘 이곳과 이웃을 헤아리는 사람은 누구나 님(천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바로 님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굳이 놈이 되어야 할 까닭은 없어요. 우리는 저마다 다 다른 빛으로서 한결같이 새롭게 사랑으로 모두 품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ㅍㄹㄴ


“카라 씨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토요일에도 일하시니까, 그 정도는 따뜻한 눈으로 봐드리자.” (6쪽)


“SNS에서 반려동물로 닭을 키우는 분을 팔로하고 있는데, 그분을 통해 닭이 풍부한 표정을 가진 동물이란 걸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달걀을 낳을 때도 굉장히 괴로워 보이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매일 보다 보니, 나 같은 인간이 먹어도 되는 걸까? 라는 마음이 생겨서, 저절로 고기에서 멀어지긴 했어요.” (16쪽)


‘이주라, 생각도 못해 봤어. 자연의 힘으로 컨디션을 조절한다. 그런 게 의외로 나와 맞을지도.’ (34쪽)


“온천은,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오래 있으면 몸에 탈 나니까 조심해.” (72쪽)


“이거, 굉장하네∼. 귀마개가 이리도 강력하다니.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들릴까? 옆집 아가씨가 당신이 내는 소리 듣기 싫어서 하루 종일 이걸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거참 밉살스러운 아가씨네. 뭐, 그래도 어차피 이제 곧 이사 갈 거니까.” (119쪽)


+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4》(미즈나기 토리/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4)


저도 제 전용 행복 레일을 갖고 싶어서 이것저것 시험해 보고 있어요

→ 저도 제 나름대로 꽃길을 가고 싶어서 이것저것 해봐요

→ 저도 제가 누릴 꽃길을 바라면서 이것저것 해요

3쪽


리모트로 하면 되지 않나

→ 멀리서 하면 되지 않나

→ 먼발치서 하면 안 되나

5쪽


베지테리언이세요? 저도 채식에 관심이 있거든요

→ 풀사랑이세요? 저도 풀밥에 마음이 있거든요

→ 풀살림이세요? 저도 숲밥에 마음이 있거든요

14쪽


SNS에서 반려동물로 닭을 키우는 분을 팔로하고 있는데

→ 누리길에서 벗짐승으로 닭을 키우는 분이 있는데

→ 누리빛에서 곁짐승으로 닭을 키우는 이웃이 있는데

16쪽


팔다리가 같은 방향끼리 나가고 있어

→ 팔다리가 같은 쪽끼리 나가

→ 팔다리가 똑같이 나가

17쪽


저희도 그 점에 큰 기대를 걸고 있어요

→ 저희도 그 일을 크게 지켜봐요

→ 저희도 그 대목을 크게 그려요

20쪽


원래 지역 산업은 목각인형이니까요

→ 예부터 마을일은 나무둥이니까요

→ 워낙 마을에서 작은나무를 깎았어요

21쪽


이래 봬도 가벼운 천식이 있는데

→ 이래 봬도 가볍게 기침을 하는데

→ 이래 봬도 가벼이 재채기 하는데

23쪽


종기가 하루 만에 없어지는 온천도 있어요

→ 부스럼이 하루 만에 녹는 포근샘도 있어요

→ 뾰루지를 하루 만에 푸는 푸근샘도 있어요

→ 고름을 하루 만에 없애는 따뜻샘도 있어요

23쪽


가끔씩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어요

→ 가끔 더 못 견딜 때가 있어요

→ 가끔 더 못 참을 때가 있어요

26쪽


영구 이주를 생각 중이라고 하더라고

→ 아주 옮길 생각이라고 하더라고

→ 뿌리내릴 생각이라고 하더라고

31쪽


원래 주거라는 건, 자신의 몸에 맞는 고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게 맞지 않을까

→ 모름지기 집이란, 제 몸에 맞는 고장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맞지 않을까

→ 아무래도 땅은, 우리 몸에 맞는 고장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맞지 않을까

32쪽


설국에서 가혹한 여행을 이어가는 얘기인데요

→ 눈밭에서 고단히 돌아다니는 얘기인데요

→ 눈벌판에서 힘겹게 다니는 얘기인데요

89쪽


지금 바람이 견갑골을 스치고 갔어요

→ 막 바람이 어깨뼈를 스치고 갔어요

98쪽


감자보다 위에 더 자극이 없는 것 같아

→ 감자보다 뱃속을 덜 건드리는 듯해

→ 감자보다 속에 더 부드러운 듯해

113쪽


확실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분이, 저는 이 단지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저는 똑똑히 목소리를 내는 분이 이곳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저는 제대로 외치는 분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121쪽


도시를 떠나는 게 예전부터 꿈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 예전부터 서울을 떠나는 꿈이 있었더라고요

→ 예전부터 큰고장을 떠나려는 꿈을 키웠더라고요

140쪽


보양식을 생각해 봤어요

→ 돌봄밥을 생각해 봤어요

→ 살림밥을 생각해 봤어요

→ 보듬밥을 생각해 봤어요

142쪽


건무화과는 와인과 같이 먹으면 정말 잘 어울리잖아요

→ 말린속꽃은 포도술하고 먹으면 참말 어울리잖아요

15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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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먹고 자고 기다리고 5
미즈나기 토리 지음, 심이슬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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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5.23.

한달벌이란?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5》

 미즈나기 토리

 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3.30.



  고흥 보금숲에서 밤에 잠들면, 첫여름을 앞둔 늦봄에 구성지게 노래하는 뭇밤새와 뭇개구리가 맑밝게 소리를 베풉니다. 밤소리를 듣노라면, 그저 ‘소리’일 수 없다고, 새와 개구리와 바람이 들려주는 마음이 묻어난다고, 오롯이 ‘노래’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제 밤이 저물고 얼추 03시 30분부터 동이 희뿌윰히 트는데, 이즈음에는 뭇개구리 소리는 잦아들고 온갖 낮새가 하나둘 깨어나서 아침까지 신나게 소리를 베풉니다. 새벽소리와 아침소리를 듣노라면, ‘지저귄다’고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새가 운다’고도 말하기 어렵고, 언제나 ‘새노래’에 ‘새벽노래’로구나 싶습니다.


  어느 분이 “자연에 나쁜 디자인이 없다”고 말씀하는데, 이 말을 들으면서 아예 말이 될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나쁜 디자인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다 다른 숨결이 다 다른 몸을 입고서 다 다르게 살기 때문입니다. 더 낫거나 좋은 모습(디자인)이기 때문에 살아남는 결이 아니라, 그저 다른 숨빛으로 살기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숲에는 ‘숲’이 있을 뿐, ‘디자인’이 없습니다. 숲에는 ‘숲’이 있게 마련이라, ‘좋거나 나쁜 디자인’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습니다.


  숲을 제대로 본다면, 나무 한 그루에 달린 잎이 모두 다르게 생겼고, 강아지풀조차 잎이 모두 다르고, 토끼풀도 다 다른 크기와 모습인 줄 알 테지요. 다 다르기에 어울리며 살아가는 숲(자연)일 뿐, 나쁘거나 좋은 모습(디자인)이란 처음부터 있을 까닭마저 없습니다. 이러한 결을 읽고서 마음에 새길 적에 비로소 사람 사이에서도 누구나 다르게 마련인 줄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이 잘못 여기는 대목 가운데 하나로, ‘흰사람(백인)’이기에 살갗이 희지는 않은데, 너무 모릅니다. 흰사람도 들숲에서 일하며 뛰놀 적에는 아이어른 모두 ‘구릿빛’이게 마련입니다. 흙사람도 들숲을 잊으면 허여멀건 살빛으로 바뀌고, 흙사람도 들숲메바다를 품으면서 뛰놀면 차츰 ‘까무잡잡’하게 바뀝니다.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5》을 기다리고 기다려서 읽었습니다. 우리집 두 아이랑 함께 읽는 그림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음을 기울이는 길이 무엇인지 들려주는 줄거리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스스로 짓는 하루는 어떻게 태어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기울여서 마주하는 여러 사람이 저마다 어떻게 든든히 다리로 서서 즐겁게 손으로 빚고 엮고 가꾸고 짓는지 밝히는 알맹이입니다.


  ‘한달벌이’란 뭘까요? ‘한해벌이’란 무엇이지요?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돈을 벌거나 ‘돈벌자리’를 찾아야 하는가요? 이 나라는 총칼(전쟁무기·군수산업·자주국방)에 돈을 얼마나 쏟아붓는지요? 이 나라는 갖은 나루터(공항·항구·터미널)에 돈을 얼마나 들이붓는가요?


  오늘날 시골은 서울을 흉내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서울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서울에 있는 대로’ 흉내를 내요. 그런데 처음 몇 가지만 따라가거나 흉내를 낼 뿐, 서울에서 바꾸거나 고치거나 가꾸는 길은 좀처럼 안 따라가고 안 배우더군요. 이를테면, 이제 서울 곳곳에서는 ‘빛먼지(빛공해)’라 여겨서 밤에 길불을 줄이는데, 오히려 시골에서는 길불을 늘립니다. 서울에서는 아이들이 먹는 모둠밥(급식)을 ‘농약 없는 낟알과 푸성귀’로 바꾸어 가는데, 정작 시골에서는 ‘드론으로 농약 듬뿍 뿌리기’에 나랏돈을 어마어마하게 퍼붓습니다.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는 닷걸음을 지나서 엿걸음 이야기를 앞둡니다. 유난히 몸이 여리고 쉽게 앓는 아가씨가 맞닥뜨릴 고단한 삶길이지만, 고삭부리 아가씨를 둘러싼 마을사람과 일터사람이 한마음으로 조금씩 짐을 나눕니다. 저마다 짊을 수 있을 만큼 기쁘게 나눠받아요. 그리고 고삭부리 아가씨가 몸소 하려는 일을 가만히 지켜봅니다.


  우리 터전은 무엇을 바라보는지 짚을 노릇입니다. 돈(경제성장)을 바라볼 적에는 고삭부리 아가씨나 ‘고삭부리 아가씨 둘레에서 일손을 거드는 사람’은 이바지를 못 하겠지요. 이와 달리, 돈이 아닌 ‘살림’을 헤아릴 적에는 나란히 서거나 어깨동무를 하면서 모든 하루를 즐거운 어울림마당으로 누리고 나눌 만합니다.


  우리나라는 2025년 6월에 나라지기를 새로 뽑습니다만, 이날은 잔칫날이 아닌 싸움날 같습니다. 누가 나라지기로 뽑히든 반기고 기뻐하고 손뼉을 치면서 ‘높낮이 없는’ 틀을 세우도록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누가 뽑히거나 안 뽑히면 ‘일거리가 사라지거나 늘어난다’고 여기면서, 꼭 누가 뽑혀야 한다고 여기거나 누가 뽑히면 안 된다고 몰아세우면, 누구를 나라지기로 뽑더라도 끝없이 싸움판에 미움판에 불바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누구를 세우느냐’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무엇을 하느냐’여야지 싶습니다. 먼저 어린이를 앞자리에 세울 일입니다. 이다음으로 푸름이를 곁에 세울 일입니다. 이러고서 스무살과 서른살은 조금 뒷자리에 서고, 마흔살과 쉰살은 더 뒷자리에 서고, 예순살과 일흔살은 더더 뒷자리에 서면서, 온나라가 새길을 여는 슬기로운 숨빛을 이야기하고 나누고 펴면서 어울려야 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보금자리를 보셔요. 엄마 뜻대로만 이끌든 아빠 뜻대로만 이끌든, 어느 한 사람 목소리대로 이끌면 다 괴롭습니다. 엄마아빠가 한마음을 이루도록 끝없이 얘기할 노릇이고, 아이어른이 한몸으로 움직이도록 끝없이 얘기해야지요. 이제는 ‘멋대로(승자독식)’를 걷어치우고서, “내가 나라지기로 뽑히더라도, 벼슬자리(장관·기관장)는 서로 고르게 나누어서 일을 잘할 만한 사람으로 함께 뽑겠습니다” 하고 밝힐 뿐 아니라 지킬 수 있는 틀로 갈 일이라고 봅니다.


ㅍㄹㄴ


‘드디어 손에 넣은 24시간을 날 위해 쓸 수 있는 기쁨.’ (27쪽)


“뭐, 처음엔 다들 가볍게 여겨서 힘들 때도 있었지만, 똑같이 그런 말을 해도 앞으로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난 지금 인간관계를 정비하는 시기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44쪽)


“저는 애들을 위해 일하고, 조만간 부모님 간병도 해야 할 텐데, 평생 일만 하면 내 인생은 언제 살지? 그런 생각이 들지 뭐예요.” (72쪽)


“게다가! 돈을 위해 무리하게 일했다가 몸이 망가져서 치료비에 돈을 쓰는 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어요!” (73쪽)


“우리 집은 지금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많은 재료가 모여 완성된 우리 집만의 수제비 같잖아.” (114쪽)


“이렇게 타인의 컨디션을 배려하면서 요리하는 거 좋네요. 저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건 상상조차 안 돼서, 금방 몸에 탈이 나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거든요.” (141쪽)


“아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평소에 먹는 평범한 음식일 거예요.” (144쪽)


#しあわせは食べて?て待て

#水?トリ


+


《행복은 먹고자고 기다리고 5》(미즈나기 토리/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


잘 어울리네. 맛있어

→ 어울리네. 맛있어

→ 잘 했네. 맛있어

106쪽


지병을 앓으면서 혼자 사는 여직원이 있는데

→ 오래앓이로 혼자 사는 일순이가 있는데

110쪽


맛있게 잘 만들었네―

→ 맛있게 잘 했네!

124쪽


진심으로 걱정해 주시는 게 느껴졌어요

→ 깊이 걱정해 주신다고 느꼈어요

→ 무척 걱정해 주신다고 느꼈어요

137쪽


금방 몸에 탈이 나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가 없거든요

→ 곧 몸이 말썽이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틈이 없거든요

→ 이내 몸이 아프니까, 맨날 저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틈이 없거든요

141쪽


아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건, 평소에 먹는 평범한 음식일 거예요

→ 아마 가장 맛있다면, 늘 먹는 수수한 밥이에요

→ 아마 늘 먹는 수수한 밥이 가장 맛있어요

14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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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의 곤충생활 2
아메갓파 쇼죠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5.5.14.

네가 살고 나랑 살며


《마이의 곤충생활 2》

 아메갓파 쇼죠군

 정은서 옮김

 대원씨아이

 2019.7.31.



  벌레가 없으면 논밭이 모두 망가집니다. 벌레 없는 시골이라면 논밭이 모두 무너져서 사람은 굶어죽을 수 있습니다. 왜 벌레가 없으면 논밭이 모두 망가져서 사람도 다 굶어죽을 판이 될까요?


  잎을 갉는 벌레는 새밥이자 개구리밥입니다. 새와 개구리는 벌레를 먹으면서 살아갑니다. 뱀은 개구리와 쥐를 먹고, 새는 또 뱀을 먹습니다. 벌레와 뱀이 없으면 새는 낟알과 씨앗을 어마어마하게 쪼아댈 뿐 아니라, 쥐가 엄청나게 득시글대면서 사람살이는 하루아침에 망가집니다.


  박정희가 내세운 새마을바람은 시골벌레를 비롯해서 벌나비를 몽땅 없애는 죽임더미(농약·화학비료·비닐)를 퍼뜨렸고, 새까지 모조리 내쫓는 죽임길로 치달았습니다. 이리하여 고작 쉰 해도 걸리지 않은 2025년 무렵 시골은 새와 개구리와 풀벌레가 거의 자취를 감추려고 하는 ‘죽음터’로 치닫습니다. 이미 중국과 하늬(유럽·미국)에서는 새와 벌레를 안 건드려야 하는 줄 깊이 깨닫고는 섣불리 죽임더미를 쓰지 않는 길로 가지만, 우리나라만큼은 ‘드론 농약’까지 나오면서 거꾸로 죽음시골로 몰아세우는 판입니다.


  오늘날 시골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은 대단히 드뭅니다. 시골에서 일자리를 얻은 벼슬아치(공무원)는 수두룩하되, 이들 가운데 시골마을에 집을 둔 사람은 몇 없습니다. 시골 벼슬아치조차 읍내에서 살거나 가까운 다른 큰고장에서 부릉부릉 몰면서 오갑니다. 시골에는 도무지 안 살려고 하는 ‘진보당·정의당·녹색당’이기도 합니다. 하나같이 서울에서 맴돌고, 이따금 부산·대구·인천이나 전주쯤에는 머물지만, ‘읍’이 아닌 ‘면·리’로 터전을 옮겨서 흙을 만지려는 ‘진보좌파’는 영 안 보입니다.


  《마이의 곤충생활》은 두걸음으로 단출히 맺습니다. 그저 ‘시골 + 벌레 + 흙 + 논밭 + 푸른길’로 엮어도 될 텐데, 자꾸 ‘짝맺기(순이끼리 짝맺기)’로 줄거리를 맞추려고 하면서 샛길로 빠지기 일쑤였어요. 짝맺기가 나쁠 일이란 없으나, 애써 푸른살림을 차분히 풀어내는구나 싶을 때마다 짝맺기를 끼워넣는 얼거리는 아쉬울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나 푸른별 뭇나라를 보면 ‘순이가 마음놓고 살 만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순이가 마음놓고 살 만하지 않은 터전’은 ‘돌이도 나란히 마음놓고 살기 팍팍한 터전’입니다. 어느 쪽만 살 만하지 않을 수 없어요. 둘 모두 나란히 고단합니다. 그러면 누가 살기에 좋을까요? 바로 ‘힘꾼(권력자)’하고 ‘힘꾼한테 빌붙는 심부름꾼’만 살기에 좋습니다.


  순이가 마음놓고 살아갈 터전이란, 돌이도 마음놓고 살아갈 터전입니다. 둘은 따로 갈라야 할 사이가 아닌, 어깨동무를 이루면서 함께 배우고 가르쳐서 나란히 노래하고 놀며 일하는 길을 열어야 할 동무이자 이웃입니다.


  이러구러 ‘벌레살이’를 읽고 익혀서 벌레랑 함께살기를 이룰 적에 비로소 논밭살림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벌레살이 곁에 새살이가 있고, 개구리살이와 뱀살이가 있는 줄 눈여겨볼 때라야, 사람이 어떻게 사람살이를 푸르게 일구면서 온숲을 이루는 온별로 피어나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재(아파트)’하고 ‘쇠(자가용)’가 아예 없더라도 굶어죽거나 다치거나 힘들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논밭이 망가지고 들숲메바다가 망가지면 모든 사람이 떼죽음입니다. 2025년 6월에 우두머리를 새로 뽑을 텐데, 이놈과 저놈과 그놈과 딴놈 가운데 어느 놈도 ‘푸른시골’을 헤아리지 않을 뿐 아니라, ‘푸른시골에서 즐겁게 땀흘릴 어린이와 푸름이를 돌보는 배움길’을 살피지 않아요. 푸른시골이 사라지면 서울도 하루아침에 끝장나는 줄 모른다면, 그대는 왼날개도 오른날개도 아닌, ‘우리에 스스로 갇힌 몸뚱이’일 뿐입니다.


ㅍㄹㄴ


“멸종 우려가 있는 종 중 하나야. 서식 조건이 조금 특수하거든. 가끔 습원에 온 멧돼지가 먹이를 찾으라 파둔 구멍에 물이 고인 상태가, 꼬마잠자리 유충의 성장에 가장 적합하대.” “조건이 엄격하구나.” “여기선 우리가 비슷한 구멍을 파서 환경을 조성해 주지만.” (17쪽)


“가늘고 긴 건 소금쟁이아과. 동글동글한 건 바다소금쟁이아과에 속해. 즉 광대소금쟁이는 바다소금쟁이아과지.” (25쪽)


“이놈들은 더위에 약해. 고추좀잠자리의 체온은 날갯짓을 할 때마다 주위보다 10도 높아진다. 그래서 여름엔 산 위로 피난했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기슭으로 내려오지.” (74쪽)


“우리나라는 자연이 풍부하고산림이 3분의 2를 차지하지. 그다음으로 많은 것이 농지야. 북에서 남까지 논밭이 없는 지역은 하나도 없어. 논밭을 경작하면 이 나라의 모습을 만들어 나갈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자 자랑스러워서 가슴이 벅차오르더구나.” (79쪽)


“이대로 내가 죽으면, 넉점박이송장벌레가 청소해 주면 좋겠어.” (82쪽)


“너한테선 흙냄새가 난다. ” “밭일을 하니까요.” “그게 아니라 더 깊은 부분에서야. 이 땅이 널 지켜주고 있는 거겠지.” (141쪽)


“흰개미는 주택에 해를 끼치지만, 산야의 쓰러진 나무를 분해해 주는 중요한 곤충이에요.” “해충이라도 함부로 죽이면 안 되겠구나.” (157쪽)


“날 여기로 불러줘서 고마워.” “후후,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회사에 근무할 땐 일하는 게 고역이라 싫었어. 하지만 신기하게도 농사는 그런 생각이 안 들어. (166쪽)


#麻衣の蟲ぐらし #雨がっぱ少女群


+


《마이의 곤충생활 2》(아메갓파 쇼죠군/정은서 옮김, 대원씨아이, 2019)


상속분은 상쇄하고도 남아

→ 물림몫은 비기고도 남아

7


형용하기 힘든 쓸쓸함만 남았다

→ 말하기 힘들 만큼 쓸쓸했다

→ 몹시 쓸쓸했다

8


밭의 쪽도 일단은 혼자서 괜찮으니까 내일부터는 각자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요

→ 아무튼 밭도 혼자서 할 만하니까 이튿날부터는 처음대로 돌아가요

→ 밭일도 뭐 혼자서 할 만하니까 다음날부터는 예전대로 돌아가요

9


멸종 우려가 있는 종 중 하나야. 서식 조건이 조금 특수하거든

→ 사라질 수 있는 하나야. 보금자리가 조금 다르거든

→ 사라질 듯한 한 가지야. 삶터가 조금 유난하거든

17


가끔 습원에 온 멧돼지가 먹이를 찾으러 파둔 구멍에 물이 고인 상태가, 꼬마잠자리 유충의 성장에 가장 적합하대

→ 가끔 늪에 온 멧돼지가 먹이를 찾으러 파둔 구멍에 물이 고여야 꼬마잠자리 애벌레가 잘 자라

17


용수는 강이나 연못의 물과 비교하면 녹아있는 불순물이 아주 적어

→ 샘은 내나 못물과 대면 부스러기가 아주 적어

→ 샘물은 냇물이나 못물보다 찌꺼기가 아주 적어

22


그런 예비 전력을 지녔기 때문에 개미무리는 다양한 트러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런 뒷심이 있기 때문에 개미무리는 갖은 말썽에도 잘 맞설 수 있다

→ 그런 뒷힘이 있기 때문에 개미무리는 온갖 고비도 잘 넘길 수 있다

44


일본에서 제일 큰 수생 곤충이야

→ 일본에서 가장 큰 물벌레야

47


할아버지의 잔영을 찾고 있었다

→ 할아버지 그림자를 찾는다

→ 할아버지 뒤안길을 찾는다

70


혹은 썩어서 낙과(落果)가 되는걸요

→ 또는 썩어서 떨어지는걸요

→ 아니면 썩어서 뒹구는걸요

113


일본흰개미는 유성생식 말고도 단성생식도 가능하거든요

→ 일본흰개미는 암수맺이 말고도 혼맺이도 하거든요

→ 일본흰개미는 암수사랑 말고도 그냥맺이도 하거든요

159


출하할 채소의 종류를 늘리고 싶어요

→ 내놓을 남새를 늘리고 싶어요

→ 선보일 남새를 늘리고 싶어요

162


무늬가 특이하네. 흰색 땡땡이야

→ 무늬가 다르네. 흰얼룩이야

→ 무늬가 새롭네. 흰동글이야

163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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